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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제 ‘책모임’이다 - ‘ 함께 읽기’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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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07 14:09 조회 7,20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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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어디로 가고 있는가
1994년의 일이다. 발령받아 간 곳이 강남에 있는 B중학교였다. 첫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교실에서 광채가 날 만큼 아이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빛이 났다. 집중력과 반응 또한 어찌나 좋은지 맹자의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기쁨’을 그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학급마다 ‘왕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큰 충격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따’니 ‘집단따돌림’이니 하는 말은 그 용어조차 낯선 것이어서 어떻게 멀쩡하게 생긴 아이들이 그처럼 잔인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지 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왕따 아이를 복도나 교실 한쪽에 몰아세우고 욕하고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발 걸어 넘어뜨리기, 가방 들게 하기, 심부름 시키기, 도시락에 모래나 오줌 뿌려 놓기, 돌아가며 뺨 때리기 등 기분 내키는 대로 방법을 바꿔가며 괴롭혔다.

도저히 모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어, 뜻이 맞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피해자 상담과 피해 사례 조사, 가해자상담과 가해 이유 조사 등으로 6개월을 보낸 후, 우리 나름대로 해결책을 세워 교장실을 찾아갔다. 다행히 교장 선생님은 그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상담교육을 실시하고 심하게 가해한 학생 몇몇에 대해서는 전출 명령을 내렸다. 이후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 학교에서 표면적으로 왕따 문제가 불거져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문제가 온전히 해결된 것일까? 18년이 지난 지금, 그 문제는 강남 몇몇 학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초・중・고 학교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반적인 문제가 되었다. 아니 초・중・고 학교뿐이 아니다. 대학교도 예외가 아니고 크고 작은 회사와 셋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과 단체에서 ‘왕따 문제’는 이제 너무도 흔한 일이 되어 자신이 당하기 전에는 무감각할 만큼 덤덤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이고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핀란드와 함께 매번 최고의 성적을 거둘 만큼 청소년들이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째서 그토록 뒤틀려 있고 어째서 우리에게는 자살이 그토록 잦은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다. 하루 42.2명, 연 15,413명이 자살한다.
월간 <노동리뷰> 2011년 12월호 참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적과 돈. 어렸을 때는 성적, 어른이 되어서는 돈. 성적은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이었을 테니 궁극적 가치는 ‘돈’이라 하겠다. 이것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명줄이자 품위이고 자유라는 걸 누군들 부정할 수 있겠는가. 또 그러한 돈을 잘 벌기 위해 ‘공부’를 잘할 필요가 있다는 걸 누군들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 그것은 ‘존재함, 그 자체’이다. 내가 없다면, 내 아이의 존재가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은 공부나 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일이지 않은가? 인간의 근원은 ‘존재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해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듯 자신의 존재함, 혹은 내 아이의 존재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전혀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게 함부로 하기 십상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집단따돌림, 집단폭력, 자살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혼자 하는 독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책모임’을 활성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게 된것은 이런 근원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성적보다 더 중요하고 진로 지도보다 더 근본적인 것, 그것은 ‘존재에 대한 성찰과 만남’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존재’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음에도, 아무도 더 이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 없고, 행여 누군가 그비슷한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아~ 썰렁!” 하며 바로 말끝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모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한다. 아이들 대화 내용을 가만 들어보면 연예인과 드라마, 게임과 스포츠, 공부와 연애, 그리고 남 욕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책모임’은 다르다. ‘책 속 인물들’을 빌미 삼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고민과 생각들을 굽이굽이 풀어놓을 수 있고, ‘책 속 사건들’을 핑계 삼아 마음껏 웃고 울 수 있다. 또한 내가 아닌 ‘너’의 마음과 생각 속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며 그가 물건이 아닌 사람, 많은 사연과 생각과 아픔과 고뇌와 꿈을 지닌 나와 같은 ‘사람’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존재에 대한 관심과 성찰은 사람의 내면을 깊게 만들어준다. 이런 사람은 중심이 단단하여 웬만한 바람이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존재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맘편히 나눌 친구가 여럿 있다는 것, 정서적으로 참으로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공부도 중요하고 돈도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들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더 앞선 것일 수 없고 ‘존재에 대한 성찰과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격려로 산다. 책모임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존재 하나하나를 깊이 만나며 서로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기에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되는가
공저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기』(우리교육, 2005)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 강남에서 4년을 근무한 후 옮겨간 곳이 난곡에 있는 N중학교였다. 이 아이들은 한 반 33명 중 열 명 이상이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을 만큼 ‘공부’에 무관심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워 강남의 공부못하는 아이처럼 승마나 하프를 배울 수도 없고 빌딩이나 가게를 물려줄 할아버지도 없었다. 게다가 생각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거의 모든 대답을 “예”, “아니요”, “몰라요”로 일관하고 방과 후에는 밤늦도록 빈집에 모여 술과 담배를 하고, 음란비디오를 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당연히 책과는 담을 쌓았고 두세 줄의 글을 쓰게 하는 데도 애를 먹어야 했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직 어린 나이에 이토록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책을 멀리해도 되는 것인가? 인간은 배움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완전한 인간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배워야 한다. 배움을 위한 곳이 반드시 학교여야 하고 오로지 책일수는 없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학교만큼 좋은 곳이 없고 평생을 통해서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학교의 가장 큰 임무는 ‘배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 일을 돕기에 가장 좋은 곳이 ‘학교도서관’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이럴 수만 있다면 가난한 아이든 부자 아이든 생각이 없던 아이든 감정이 뒤틀어졌던 아이든,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자신의 내면을 깊게 할 수 있으며 학교를 떠난 후에도 스스로 배울 수 있으리라. 내가 학교도서관과 독서교육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은 이러한 달동네 학교에서의 구체적인 경험과 학교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달음 때문이었다.

학교는 성장기 아이들 모두에게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배움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성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들은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아이들을 교실에 가둬둔 채 단편적인 지식들만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과 ‘진정한 성장’을 경험하기 어렵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책모임’을 활성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이처럼 ‘배움과 성장’의 문제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배울 때, 아이들은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함께 성장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지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혼자서는 힘들어도 서로 붙잡아주고 이끌어주며 함께 간다면 어렵게만 생각되던 배움, 불가능해 보이던 성장도 가뿐히 이뤄낼 수 있으리라.

책모임에서 함께 배우며 함께 자란다
8년 동안의 가정독서모임을 통해[졸저 『책으로 크는 아이들』(우리교육, 2010) 참조] 책모임의 크나큰 가치와 힘을 경험한 나로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서너 개 책모임을 운영해왔지만, 2011년 3월 초 가정통신문과 훈화, 특강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책모임(학생독서동아리, 학부모독서모임, 교사독서모임 등) 홍보와 조직에 나선 결과, 봉원중학교에는 학생독서동아리 22개 팀, 학부모독서모임 2개 팀, 교사독서모임 1개 팀, 이렇게 25개 책모임이 결성되어 지난 1년 동안 매우 활발히 활동했다.

우리 동아리 ‘싱책향’은 그동안 여러 책을 읽고 많은 활동을 하였다. (중략)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돈독하게 할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나도 막연히 연예인이나 친구들 뒷담 같은 것이 아닌 아직은 조금 어눌하지만 한층 높은 레벨의 시사나 사회 문제에 관련된 것들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매일 연예인 루머밖에 말할 줄 모르던 나에게 이렇게 큰 변화가 올 줄이야! 2학년 ‘싱그러운책의향기’ 김나윤

나는 이 독서동아리라는 것과 백화현 선생님 그리고 우리 ‘가람슬기’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독서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하지만 중2 때 이들을 만나 나의 생각과 습관 그리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모든 것을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독서동아리 활동 중 글을 쓰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배움이었다. 글을 많이 써보니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을 읽어도 조금이나마 작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 수월했고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을 정말 수시로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책과 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크게 놀랐다. 언젠가 밤새워 책 읽기를 할 때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그들의 생각에 깜짝 놀랐다. 그 놀람 중에 나는 나의 생각만이 옳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 라는 것보다는 그들이 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가끔은 나보다 행복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3학년 ‘가람슬기’ 박지민

친구들과 함께하는 책모임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의 존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해준다. 또한 ‘책’을 매개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따뜻한 나눔과 만남과 배움의 경험은 애벌레였던 우리를 나비로 탈바꿈시킨다. 이것은 미친 듯 성적과 돈만을 좇는 삶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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