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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학교도서관에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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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4:02 조회 7,58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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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도서관에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최근 내 일기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 나는 요즘 꿈을 꾼다. 말을 또박또박 하진 못하지만 한 선생님을 사랑하고, 책을 잘 읽지 못하지만 열심히 읽고 또 읽는다. 물론 아직도 남들처럼 글을 빨리 읽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젠 아니다.

이전에는 사실 무척 힘들었다. 꿈을 꾸지 않았던 예전에는. 매시간 특히 국어시간에 그랬다. 말을 빠르게 하시면 경상도 발음이 가끔 나오시는 국어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표정이나 행동이 워낙 생생해서 분위기만은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내가 그 국어선생님과 함께 텔레비전 청소년독서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청소년독서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독서프로그램도 심야 시간대에 방송을 하는 등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드물었다고 한다. 이제 청소년독서프로그램은 공영방송에서는 저녁 시간대에 반드시 갖추게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어떤 방송에서는 전국학교도서반연합모임에서 추천한 책을 가지고 학교마다 돌아가며 도서반 아이들이 출연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방송에서는 학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책 이야기를 하고, 어떤 방송에서는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출연하여 독서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처럼 도서반도 아니고 책을 잘 읽지도 못하는 학생이 독서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어쩌면 정말 행운인지 모르겠다.

그랬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그것으로 나는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손들게 한 사람은 바로 우리 반 담임이자 나의 국어선생님이시다. 내가 언제부턴가 좋아하게 된 선생님.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 선생님. 정말 내가 사랑한 선생님. 이렇게 말하니까 혹시나 내가 그 선생님을 이성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결단코 아니다. 나는 남자고 그 선생님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름이 선주여서 가끔 여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남자가 남자를 사랑했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를 듣고 우리 어머니는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신다. 예전에는 대중가요에 ‘술’이라는 낱말만 들어가도 청소년에게 유해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여 금지곡으로 지정된 때가 있다는데, 동성애를 담은 노래가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니. 사실 난 아무렇지도 않지만.

여름방학이 지난 어느 날, 우리 반 담임이신 추선주 선생님은 아침 독서시간이 끝나자마자 말씀하셨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할텐데 잘 들어보렴. 너희들, YBS 방송국에서 하는 청소년독서프로그램 ‘청소년, 책을 만나다’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방송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운다. 나야 연예인이나 드라마 따위에 관심이 별로 없지만.
“얘, 미선아, 조용히 좀 해. 시끄러워서 선생님이 이야기를 못 하잖아.”
“선생님은 항상 내 이름을 부르셔. 나를 좋아하시나봐.”

“하하하.”
“미선아, 농담 그만하고 선생님 말 좀 들어보렴. 좀 급하거든.”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그래, 그 방송국에서 선생님에게 방송 출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그런데 선생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말이야.”
“선생님, 우리 학교에 사서선생님도 몇 분 계시잖아요. 수서 담당 사서선생님 이쁘신데.”
“얘, 이쁜 선생님만 출연하는 게 방송이 아니야. 예전에 선생님이 쓴 여행에 관한 책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책과 관련이 있는 선생님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선생님도 참. 농담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요.”
“아~ 내 참. 선생님이 지금 무지 급하다고 이야기했거든. 오늘까지 결정을 내려줘야 해. 아무도 없으면 참가 못 한다고 연락해줘야 한다고.”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든다.
“선생님, 저 참가하고 싶어요.”
“저도요.”
“저도요.”
“그래, 알았어. 민국이, 미영이, 성호, 은석이. 더 없지? 그럼, 너희 네 명은 어떤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의논하렴. 선생님은 너희 네 사람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방송국에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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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기 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 꿈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 꿈을 꾸게 해준 선생님을 위하여 나는 요즘 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책 읽기가 느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어떻게 선생님이 제안하신 독서프로그램에 번쩍 손을 들게 되었는지를 말할 차례다.
우리 학교에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방과 후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고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간단한 진단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학교 자체에서 치르는 다양한 기초진단 테스트를 통해 나온 결과에 따라 방과 후 수업이 이루어진다. 물론 모든 비용은 학교에서 부담하며 전문가교사 그룹에서 의지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나도 처음에는 읽기능력향상 기초단계반에 들어가 공부를 했지만 나의 의지 부족 때문인지 기초능력의 한계 때문인지 능력 향상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진이다. 문자언어 없이도 마음껏 이야기를 만들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공부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진책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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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주 선생님이셨다.
“민국아, 안녕?”
“네, 선~생~~님.”
처음에 나는 선생님이 나한테 인사하시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여겨졌고 다소 불편했다.
“그래, 민국아.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니?”
“사, 진, 집….”
“그래, 어디 보자. 이건 최문식 작가의 인간 시리즈네. 너, 몇 권까지 보았니? 이전 것도 다 봤니?”
“네.”
여전히 나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사진집 좋지. 아마도 우리 학교 도서관만큼 사진집이 많이 있는 곳도 드물꺼다.”

나는 그때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서 우리 학교 도서관에 왜 사진집이 많은지를 알게 되었다. 선주 선생님은 한때 화가가 꿈이셨는데, 공무원 출신인 부모님의 반대로 예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사범대학에 진학하셨다. 그때까지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만 두고 계시다가 교사가 된 이후에 그림을 다시 하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런 아쉬움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좋은 사진을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종로, 인사동, 충무로 등의갤러리에서 사진을 구경하기도 하고, 좋은 사진집을 찾아 서점을 전전했지만 가격이 비싸서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 학교도서관에 신청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도서관에는 국내작가의 사진집뿐 아니라 외국작가의 사진집도 제법 눈에 띄었다.

그날 이후 여러 번 선생님을 만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거워졌고,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조금씩 이야기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럴 여유가 없었겠지만 공부에 관심을 안 가지니까 그 시간만큼 사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독서프로그램 출연 준비를 하였다. 사실 선생님의 특별한 지도는 없었고 함께 모인 아이들끼리 책을 정하고 방송국에서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만 전달받았다. 읽은 책에서 감동을 받은 구절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또 평소 어떤 책을 자주 읽는지, 왜 그런 책을 읽는지 등등.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확실히 좋아하는 분야가 있어서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있다는 것은 어떤 한 분야에 빠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사서 선생님께서는 편식이 좋지 않다고 했지만 (물론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무조건 편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라고 추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한때 무협소설에 빠지기도 하고, 한때 만화에 빠지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편식으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알게 되고, 그 분야에 식상하거나 더 깊게 알고 싶어서 다른 분야 책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 넣으며 실천했다. 조금 느리긴 하지만 사진집 외에도 사진작가의 생애와 사진이론에 관한 책들도 제법 보았다. 단순히 사진기술에 대한 책은 아직 사진촬영을 몇 번 해보지 않아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작품을 보는 법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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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프로그램 출연은 성공(?)리에 끝났다. 한 번의 실수를 제외하곤. 한 번의 실수는 선주 선생님의 발음 때문에 일어났다. 선생님도 우리처럼 감동받은 구절을 읽었는데, 그 구절 중 ‘쌀’이라는 낱말이 미영이에게 ‘살’ 로 들리면서 웃고 말았던 것이다. 일부 경상도 출신들은 ‘쌀’ 발음이 잘 안 되긴 하지만 하필 그 구절에서 ‘살’이 나오면서 문장의 내용마저 웃기는 내용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웃음은 아이들 전체로 퍼져나갔고, 5분 쉬었다가 하자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 미래중학교 사서선생님은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녹화를 해보기는 처음이라면서 정말 감동받았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그 사회자 선생님은 자신이 속해 있다는 학교도서관 사서교사모임의 기념품을 선주 선생님께 보내오셨다. ‘독서대’였는데, 우리들 것까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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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씩 학교생활에 적응해가고 국어수업에도 차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을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길 때 가끔 나쁜 일이 터지기도 하나 보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신이 인간을 시샘해서 그렇다고 한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상에 항상 좋은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짧은 내 삶 속에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힘든 일이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힘든 일을 책 속 주인공을 통해 나름 이겨내고 있지만, 이번 일은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내가 읽은 소설을 통하여 내린 결론이다. 내가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 ‘레이몽’ 때문이다. 레이몽이 학교 선생님과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동네 빵집 아저씨에게 빵 굽는 일을 배우면서 겨우 세상을 버텨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전부였고 존재 이유였던 그 빵집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일어난다. 그 이후 레이몽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죽고 만 것이다. 레이몽은 죽으면서도 현실에는 없었던 좋은 아버지, 좋은 선생님을 꿈꾸었다. 그 순간 나와 레이몽은 하나가 되었고, 너무 괴로워서, 너무 불쌍해서 한동안 성장소설을 싫어한 적도 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겼다는 말이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국어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시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풀이해준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그렇게 나에게 전부였던 선생님이 한 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셨다. 그리고는 영국에서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누군가가 남자는 일생에 몇 번만 울라고 했지만 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최문식의 사진집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힘들어도 버텨내는 힘이 울음이고, 웃음이다. 그것을 참는 것은 마치 자신 앞의 맛있는 음식을 구경만 하고 먹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한참을 울었다. 답장을 하려다가 참았다. 아직 내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걱정이 안 된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마음 한쪽은 다르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선생님을 위하여, 선생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놔두어야 한다는 생각과 선생님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했다. 사실 선생님은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집도 없고 딸린 가족도 없다고 들었다. 서울 한 대학가의 작은 카페가 선생님의 주소지다. 이처럼 원래 보헤미안의 습성을 타고난 선생님을 내가 오래오래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더불어 선생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고? 이번 시월 학교도서관 행사에 초대되는 작가가 사진가 최문식이다. 선주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없는 빈자리에 다른 한 분을 잠깐 채워 넣으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내가 단단해질 것을 믿으신 걸까? 가슴이 저려온다. 선생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아직 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한다. 선생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그때 내 일기장에는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라는 말만 나왔다. 결국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선생님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가오는 시월 북콘서트에서 선생님을 위하여 시를 낭송하는 것. 선생님을 위하여 지은 시를.

학교도서관에서 날다 선주 선생님을 위한 노래
나에게도 선생님이 있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날개를 달게 해 준
하늘 아래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이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습니다
선생님의 노란 머리는 일탈이었고
선생님의 반바지는 여유였고
선생님의 청바지는 노동이었습니다
……
- 2020. 10. 8. 학교도서관에서, 장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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