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뻥! 아이들에게 환기구를 뚫어주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3:59 조회 7,262회 댓글 0건본문
일반 인문계고의 위기, 혁신학교는 예외인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은 곳은 도서관과 체육관이에요.”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진우의 말이다. 진우는 체육관에서 농구하고 학교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는 재미로 학교에 다닌다. 요즘 진우가 열독하고 있는 책은 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에게 더 어울릴 법한 『판타지 수학대전』이다. 우리 학교에는 진우처럼 수학이나 한자 만화에 푹 빠져 쉬는 시간마다 학교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꽤 있다.
나는 진우와 같은 학생들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내 전임 학교는 공고였는데, 그곳에는 공부할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일찌감치 공부의 길을 잃어버린 학생들이었다. 문제는 교사들도 이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메워줄 묘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 학교에서 책을 읽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습용 만화 목록을 만들고 만화책을 교재로 활용해 보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 인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그때 쓰던 그 만화 목록을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자립형 사립고가 상위 50% 학생들을 흡수하기 시작한 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의 형편은 더 열악해졌다. 특히 남자 자립형 사립고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일단 여학생에 비해서 남학생의 평균 성적이 훨씬 떨어졌다. 남학생들 중 상당수가 수업 준비 없이 수업에 임했으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전체 학생의 반 정도가 성적 하위 3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학업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 그러한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 내용을 이해시켜야 하는 문제, 설사 학습 동기와 수업 내용 이해에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이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한 의미 있는 수능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학교가 하위 그룹의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대안적 수업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상위 그룹과 고등학교 수업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하위 그룹 학생들 사이에 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성적 중상위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은 교사의 수업 내용이 너무 쉽고 수업 내용이 적다고 성토했으며, 성적 하위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교사는 어느 쪽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교사 개인의 역량에 의존함으로써,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잃고 타개책을 찾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우리 학교와 같은 혁신학교 교사들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처한 어려움을 ‘혁신’의 이름에 걸맞게 극복해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감까지 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를 비롯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겪고 있는 몸살을 제대로 극복해 내기 위해서 학교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이 글은 지난 6개월 동안 혁신학교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겪었던 실험의 기록이다.
내가 만드는 학교 도서관 _ 너도 한권, 나도 한권
3월 5일 신입생오리엔테이션 ‘내가 만드는 학교도서관’ 행사를 교보문고에서 진행하였다. 교보문고의 토요일은 학교들의 특별활동으로 늘 붐비는데 3월 초라서 한가했다. 9시 30분에 학생들은 담임교사로부터 서점탐방 안내지(서점 지도 및 기획 전시 코너 소개)를 받고 서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 시간 가량 서점을 돌아보며 자신이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나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좋을 책을 한 권(시리즈물은 지양함) 골라오면 되었다. 개중에는 대형서점에 처음 나온 학생들도 있었고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책 한 권 고르는 것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와도 거리가 먼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은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언제 끝나느냐며 재촉하였다. 이 학생들에게는 쉬운 자기계발서나 단행본 만화책, 중학교 수준의 성장소설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300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났다. 학생들은 처음 나누어준 안내지에 책을 고른 이유도 적어냈다. 학생들이 골라온 책은 반별로 모아 학교 예산으로 모두 구입하였다. 책이 많이 겹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비슷한 책이 많지 않아서 신기했다. 이 행사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300명의 학생들이 같은 공간같은 시간에 머물면서 서로 다른 책에 마음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도 친구가 골라온 책을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학생들이 고른 책은 이틀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반별로 포장되어서 나누기도 수월했다.
내가 맡고 있는 창의적체험활동 글쓰기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고른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책을 고른 이유를 색지에 적어서 책에 붙였다. 학교도서관은 아직 개관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고른 책을 한 달간 읽도록 권했다. 장기 대출인 셈이다. 이 책들은 한 달 뒤 수거하여 학교도서관에 전시하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과 추천 이유가 붙은 책들을 보면서 신기해 했고, 친구들이 쓴 글들을 들춰보며 재미있어 했다. 이로써 학생들에게 학교도서관이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책을 권하는 친구 _ 책은 그 다음 책을 부른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책을 권해주기 위해서 학교도서관 안에 책을 기획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학교도서관 앞면 전체를 이용하여 ‘책을 권하는 친구’라는 이름의 나무 책꽂이를 제작한 것이다. 이 책꽂이는 기존의 도서관용 가구가 아니라 가구공방에 의뢰한 것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미적인면을 고려하여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곳을 보면서 북카페 같다고 좋아하였다. ‘책을 권하는 친구’ 코너는 대형서점의 도서기획 전시 코너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3월 중에 동아리 ‘도서위원반’ 11명을 선발하였다. 동아리학생들은 도서 대출 정리뿐 아니라 도서를 기획 전시하는 북마스터의 역할도 하였다. 그 첫 번째로 전교생이 신입생오리엔테이션 때 구입했던 책을 모아서 분야별로 정리했다. 이 책들은 대략 ‘자기계발서, 성장소설, 추리물, 교과관련’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동아리 학생들은 전교생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내용을 바탕으로 도서신문을 제작하였고 도서관의 전시 코너 ‘책을 권하는 친구’에 전시하였다.
학교도서관 개관 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책도 주로 ‘책을 권하는 친구’에 전시된 책들이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은 추리물을 즐겨 읽었고, 추리물을 섭렵하고 나자 성장소설을 경쟁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은 그 다음 책을 부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하위 그룹의 학생들 중 공부할 능력은 어느 정도 되는데 그동안 삐딱하게 굴었던 학생들이 성장소설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이 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 공감하는 모양이다.
책읽기에 서툰 아이들을 도와 줄 몇가지 묘안
3월 한 주를 수업한 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학생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이 학생들을 위해서 교육용 만화책을 구입했다.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와서 만화책을 읽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까지도 만화책에 깊이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확실히 만화책의 힘은 대단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만화책이 인기 있다 보니 만화책이 분실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어느 날 나는 만화책 분실과 관련한 도서관의 입장을 쓴 공고문을 붙였다. 만화책이 2주 안에 회수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빼겠다는 내용이었다. 만화책을 가져간 학생들도 책을 훔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읽고 가져다 두어야지 했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만화책들은 대부분 학교 사물함이나 교실 구석에 던져져 있음이 분명했다. 2주가 지나자 기적처럼 대부분의 만화책이 회수되었다. 만화책을 찾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 학생은 만화책이 도서관에서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학생은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던 학생으로, 만화책을 찾는 일에 처음으로 자기주도적 행동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는 일 말고도 젠가나 도미노, 하노이탑 게임을 했다. 이 게임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학생들을 위해서 일부러 도서관에 마련해 둔 것들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자연스럽게 교정해 보려고 고안해낸 방법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하노이탑과 도미노가 집중력 향상과 욕구 지연에 효과적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지 말고 도서관에서 하노이탑도 하고 도미노도 세우라는 꼬드김이었다. 학생들은 도미노를 다양한 모양으로 세우고는 인증 사진까지 찍으며 뿌듯해 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초등학교 교실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게임들 중 젠가는 한 달을 못 넘기고 도서관에서 퇴출되었다. 학생들이 젠가를 너무 즐긴 나머지 웃고 떠드는 바람에 독서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특색사업으로 ‘성장반’을 운영하고 있다. 성장반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교사들이 공동 대처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거나 교사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게 ‘성장쪽지’가 발급되는 것이다. 2주 동안 두 장 이상의 성장쪽지를 받은 학생들은 그 다음주부터 방과 후에 6회의 성장반에 참여해야 한다. 6회 중 4회는 절 운동을 2회는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진행했다.
나는 처음에는 절 운동을 돕다가 이후에는 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혔다. 만화책만 보려는 학생들을 붙잡아 짧은 줄글을 읽히고 그 내용을 서로 물어보게도 해보았다. 또 마음의 평온을 가져온다는 만다라 그리기도 해보았다. 어떤 때는 글쓰기 시간에 쓰던 소설을 이어 쓰게 했다. 성장반 학생들을 데리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주기도 하였다. 이는 서울시교육청 독서오거서 운동 중 ‘북스타트’ 책 선물하기 프로그램과 연계해 본 일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학생들과 공유하다 보니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문제 학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하소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의 힘은 수업에서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창의적체험활동과 연계한 학교도서관
학생들과 학교도서관의 끈끈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은 늘 열린 공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서교사가 없는 상태에서 도서관의 상시 개방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나의 수업을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하였다. 나는 전교생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교의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신입생 300명이 전부이다 보니 전교생의 도서관 수업도 시도해 봄직했다. 학생들은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도서관에 왔고,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도서관이 열려 있는 일이 많아졌다.
다행히도 내가 맡은 수업이 올해부터 확대 운영되기 시작한 창의적체험활동이었다. 우리 학교는 특색사업으로 창의적체험활동 중 한 시간을 글쓰기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넓은 도서관에서 수업하는 것이 자칫 산만해질 수 있지만 이 점을 십분 활용해 수업을 짜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좁은 교실보다는 탁 트이고 넓은 도서관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체험활동이라는 말의 묘미를 살려 창의적인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1학기에는 소설, 2학기에는 시와 자기소개서 쓰기로 진행되었다. 이 수업에 맞추어 도서 전시 공간인 ‘책을 권하는 친구’에는 성장소설, 시집, 자기계발서 등을 전시했다. 학생들이 은연중에 이러한 책을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애를 먹은 점은 시험이나 수행평가도 없는 창의적체험활동에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오면 일단 책부터 집어 들어서 이를 저지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내준 과제를 충실히 수행한 학생의 경우만 책을 읽도록 했다.
또한 학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하기 위해 글쓰기를 백일장과 연계했다. 국어교사로서 백일장 심사를 하다보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가르치지 않고 일회성 글쓰기로 백일장을 심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해당 글쓰기 수업을 하고 그 결과물로 백일장 시상을 하겠다고 계획했다. 1학기 초반에는 학생들과 소설 수업용 유인물을 함께 풀었다. 1학기 중반 이후에는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곳저곳에 자유롭게 흩어져서 소설을 쓰도록 했다. 한편 학생들이 쓴 소설에 대한 평가를 공책에 써주고 그 내용을 창의적체험활동 자율활동누가기록에 올려주었다.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도 해주고 상도 주니까 더 열심히 하려 했고, 생활기록부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은 수업 대신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니 편안해 했다.
2학기, 시 쓰기 수업에 앞서 학교도서관으로 시인을 초대했다. 이는 전국청소년시낭송축제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행사였다. 이번에 온 시인은 손택수 시인으로,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 손택수 시인의 시를 읽었다. 또한 희망 학생들에 한해 시낭송 UCC를 만들도록 했다. 학교도서관에서 주최한 ‘시인과의 만남’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하기도 하고, 시낭송 UCC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초대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것도 시와 시인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다. 또 전교생이 쓴 시는 시화로 만들어져 축제 때 시화전을 열 계획을 세워두었다.
연말에는 학생들이 쓴 소설과 시 중 대표작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책은 도서관의 장서로 등록될 것이다. 늘 독자였던 학생들이 저자로한 발을 내딛는 셈이다. 책의 표지는 동아리 미술반 학생들이 맡아주었다. 미술반 학생들은 책의 표지와 책 사이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다. 미술반 학생들의 활약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도서관 개관을 위해서 도서관의 현판과 게시판, 칠판을 만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반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 도서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또한 이 작품들이 이후에도 오랫동안 도서관의 역사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뿌듯한 모양이었다. 이렇듯 많은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만드는 데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1학기가 끝나고 학교에서는 학교 전반에 관한 평가를 시행했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중학교때보다 학교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하고 책도 더 많이 대출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학교도서관을 상시 개방하지는 못했지만 글쓰기 수업과 성장반 등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자주 찾도록 했던 점이 주요했던 모양이다. 또한 교과 교실로서도 도서관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은 글쓰기라는 교과목과 도서관이 잘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내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현재진행형
‘혁신학교의 학교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나는 그 질문을 이렇게 알아들을 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라고 말이다.
나는 1992년 교직에 나온 이래 다섯 학교에서 근무했고, 그중 네 곳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학교도서관에 거는 기대와 목표도 바뀌었는데, 첫 학교인 수유중학교에서는 학교도서관을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꾸는 데에 힘을 쏟았다. 두 번째 학교인 방학중학교의 도서관에는 학생들의 도서 검색 및 대출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하였고, 세 번째 학교인 백운중학교도서관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가장 찾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편안한 북카페를 꿈꿨다. 네 번째 학교인 서울북공고에서는 학교도서관을 맡는 대신 독서 관련 업무를 맡았다. 사서교사가 학교도서관의 업무를 전담하고 있었기에 나는 온전히 국어교사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서교사가 상주하자 학교도서관 상시 개방의 꿈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학교인 이곳, 나는 지금까지 학교도서관에 걸었던 기대와 목표를 하나하 나씩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개가식 도서관, 도서 검색 대출 시스템을 갖춘 도서관, 아름답고 편안한 북카페, 교과와 연계한 도서관, 문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도서관, 공부로부터 소외된 학생들과도 친구가 되는 도서관, 그리고 사서교사의 배치와 상시 개방….
나는 학교도서관이 학생들 삶의 환기구가 되기를 바란다. ‘글쓰기 시간 도서관 창밖을 내다보며 소설을 쓰던 낭만, 하노이탑을 일곱 개 완성하고 선생님에게 초코파이를 받았던 즐거움과 도미노가 하나로 연결되어 쓰러질 때의 희열, 만다라 색칠을 하며 깨달은 미적 재능, 자신이 만든 도서관 현판을 보고 느낀 뿌듯함, 시인의 강연을 들으며 시에 대해 눈뜬 일, 좋아하는 남학생이 골라온 책을 남몰래 뒤적이며 느꼈던 설렘, 만화책을 선점 당할까봐 책꽂이 뒤에 숨겨 두며 가슴 두근거렸던 일, 친구가 없어도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외롭게 느끼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에서 삶의 여러 결들을 느끼게 되기를, 그리고 그안에서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이렇듯 학교도서관에 바라는 나의 기대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내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은 곳은 도서관과 체육관이에요.”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진우의 말이다. 진우는 체육관에서 농구하고 학교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는 재미로 학교에 다닌다. 요즘 진우가 열독하고 있는 책은 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에게 더 어울릴 법한 『판타지 수학대전』이다. 우리 학교에는 진우처럼 수학이나 한자 만화에 푹 빠져 쉬는 시간마다 학교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꽤 있다.
나는 진우와 같은 학생들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내 전임 학교는 공고였는데, 그곳에는 공부할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일찌감치 공부의 길을 잃어버린 학생들이었다. 문제는 교사들도 이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메워줄 묘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 학교에서 책을 읽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습용 만화 목록을 만들고 만화책을 교재로 활용해 보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 인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그때 쓰던 그 만화 목록을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자립형 사립고가 상위 50% 학생들을 흡수하기 시작한 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의 형편은 더 열악해졌다. 특히 남자 자립형 사립고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일단 여학생에 비해서 남학생의 평균 성적이 훨씬 떨어졌다. 남학생들 중 상당수가 수업 준비 없이 수업에 임했으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전체 학생의 반 정도가 성적 하위 3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학업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 그러한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 내용을 이해시켜야 하는 문제, 설사 학습 동기와 수업 내용 이해에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이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한 의미 있는 수능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학교가 하위 그룹의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대안적 수업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상위 그룹과 고등학교 수업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하위 그룹 학생들 사이에 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성적 중상위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은 교사의 수업 내용이 너무 쉽고 수업 내용이 적다고 성토했으며, 성적 하위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교사는 어느 쪽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교사 개인의 역량에 의존함으로써,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잃고 타개책을 찾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우리 학교와 같은 혁신학교 교사들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처한 어려움을 ‘혁신’의 이름에 걸맞게 극복해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감까지 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를 비롯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겪고 있는 몸살을 제대로 극복해 내기 위해서 학교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이 글은 지난 6개월 동안 혁신학교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겪었던 실험의 기록이다.
내가 만드는 학교 도서관 _ 너도 한권, 나도 한권
3월 5일 신입생오리엔테이션 ‘내가 만드는 학교도서관’ 행사를 교보문고에서 진행하였다. 교보문고의 토요일은 학교들의 특별활동으로 늘 붐비는데 3월 초라서 한가했다. 9시 30분에 학생들은 담임교사로부터 서점탐방 안내지(서점 지도 및 기획 전시 코너 소개)를 받고 서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 시간 가량 서점을 돌아보며 자신이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나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좋을 책을 한 권(시리즈물은 지양함) 골라오면 되었다. 개중에는 대형서점에 처음 나온 학생들도 있었고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책 한 권 고르는 것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와도 거리가 먼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은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언제 끝나느냐며 재촉하였다. 이 학생들에게는 쉬운 자기계발서나 단행본 만화책, 중학교 수준의 성장소설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300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났다. 학생들은 처음 나누어준 안내지에 책을 고른 이유도 적어냈다. 학생들이 골라온 책은 반별로 모아 학교 예산으로 모두 구입하였다. 책이 많이 겹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비슷한 책이 많지 않아서 신기했다. 이 행사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300명의 학생들이 같은 공간같은 시간에 머물면서 서로 다른 책에 마음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도 친구가 골라온 책을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학생들이 고른 책은 이틀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반별로 포장되어서 나누기도 수월했다.
내가 맡고 있는 창의적체험활동 글쓰기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고른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책을 고른 이유를 색지에 적어서 책에 붙였다. 학교도서관은 아직 개관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고른 책을 한 달간 읽도록 권했다. 장기 대출인 셈이다. 이 책들은 한 달 뒤 수거하여 학교도서관에 전시하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과 추천 이유가 붙은 책들을 보면서 신기해 했고, 친구들이 쓴 글들을 들춰보며 재미있어 했다. 이로써 학생들에게 학교도서관이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책을 권하는 친구 _ 책은 그 다음 책을 부른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책을 권해주기 위해서 학교도서관 안에 책을 기획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학교도서관 앞면 전체를 이용하여 ‘책을 권하는 친구’라는 이름의 나무 책꽂이를 제작한 것이다. 이 책꽂이는 기존의 도서관용 가구가 아니라 가구공방에 의뢰한 것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미적인면을 고려하여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곳을 보면서 북카페 같다고 좋아하였다. ‘책을 권하는 친구’ 코너는 대형서점의 도서기획 전시 코너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3월 중에 동아리 ‘도서위원반’ 11명을 선발하였다. 동아리학생들은 도서 대출 정리뿐 아니라 도서를 기획 전시하는 북마스터의 역할도 하였다. 그 첫 번째로 전교생이 신입생오리엔테이션 때 구입했던 책을 모아서 분야별로 정리했다. 이 책들은 대략 ‘자기계발서, 성장소설, 추리물, 교과관련’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동아리 학생들은 전교생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내용을 바탕으로 도서신문을 제작하였고 도서관의 전시 코너 ‘책을 권하는 친구’에 전시하였다.
학교도서관 개관 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책도 주로 ‘책을 권하는 친구’에 전시된 책들이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은 추리물을 즐겨 읽었고, 추리물을 섭렵하고 나자 성장소설을 경쟁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은 그 다음 책을 부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하위 그룹의 학생들 중 공부할 능력은 어느 정도 되는데 그동안 삐딱하게 굴었던 학생들이 성장소설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이 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 공감하는 모양이다.
책읽기에 서툰 아이들을 도와 줄 몇가지 묘안
3월 한 주를 수업한 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학생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이 학생들을 위해서 교육용 만화책을 구입했다.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와서 만화책을 읽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까지도 만화책에 깊이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확실히 만화책의 힘은 대단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만화책이 인기 있다 보니 만화책이 분실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어느 날 나는 만화책 분실과 관련한 도서관의 입장을 쓴 공고문을 붙였다. 만화책이 2주 안에 회수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빼겠다는 내용이었다. 만화책을 가져간 학생들도 책을 훔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읽고 가져다 두어야지 했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만화책들은 대부분 학교 사물함이나 교실 구석에 던져져 있음이 분명했다. 2주가 지나자 기적처럼 대부분의 만화책이 회수되었다. 만화책을 찾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 학생은 만화책이 도서관에서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학생은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던 학생으로, 만화책을 찾는 일에 처음으로 자기주도적 행동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는 일 말고도 젠가나 도미노, 하노이탑 게임을 했다. 이 게임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학생들을 위해서 일부러 도서관에 마련해 둔 것들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자연스럽게 교정해 보려고 고안해낸 방법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하노이탑과 도미노가 집중력 향상과 욕구 지연에 효과적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지 말고 도서관에서 하노이탑도 하고 도미노도 세우라는 꼬드김이었다. 학생들은 도미노를 다양한 모양으로 세우고는 인증 사진까지 찍으며 뿌듯해 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초등학교 교실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게임들 중 젠가는 한 달을 못 넘기고 도서관에서 퇴출되었다. 학생들이 젠가를 너무 즐긴 나머지 웃고 떠드는 바람에 독서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특색사업으로 ‘성장반’을 운영하고 있다. 성장반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교사들이 공동 대처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거나 교사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게 ‘성장쪽지’가 발급되는 것이다. 2주 동안 두 장 이상의 성장쪽지를 받은 학생들은 그 다음주부터 방과 후에 6회의 성장반에 참여해야 한다. 6회 중 4회는 절 운동을 2회는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진행했다.
나는 처음에는 절 운동을 돕다가 이후에는 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혔다. 만화책만 보려는 학생들을 붙잡아 짧은 줄글을 읽히고 그 내용을 서로 물어보게도 해보았다. 또 마음의 평온을 가져온다는 만다라 그리기도 해보았다. 어떤 때는 글쓰기 시간에 쓰던 소설을 이어 쓰게 했다. 성장반 학생들을 데리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주기도 하였다. 이는 서울시교육청 독서오거서 운동 중 ‘북스타트’ 책 선물하기 프로그램과 연계해 본 일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학생들과 공유하다 보니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문제 학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하소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의 힘은 수업에서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창의적체험활동과 연계한 학교도서관
학생들과 학교도서관의 끈끈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은 늘 열린 공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서교사가 없는 상태에서 도서관의 상시 개방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나의 수업을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하였다. 나는 전교생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교의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신입생 300명이 전부이다 보니 전교생의 도서관 수업도 시도해 봄직했다. 학생들은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도서관에 왔고,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도서관이 열려 있는 일이 많아졌다.
다행히도 내가 맡은 수업이 올해부터 확대 운영되기 시작한 창의적체험활동이었다. 우리 학교는 특색사업으로 창의적체험활동 중 한 시간을 글쓰기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넓은 도서관에서 수업하는 것이 자칫 산만해질 수 있지만 이 점을 십분 활용해 수업을 짜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좁은 교실보다는 탁 트이고 넓은 도서관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체험활동이라는 말의 묘미를 살려 창의적인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1학기에는 소설, 2학기에는 시와 자기소개서 쓰기로 진행되었다. 이 수업에 맞추어 도서 전시 공간인 ‘책을 권하는 친구’에는 성장소설, 시집, 자기계발서 등을 전시했다. 학생들이 은연중에 이러한 책을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애를 먹은 점은 시험이나 수행평가도 없는 창의적체험활동에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오면 일단 책부터 집어 들어서 이를 저지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내준 과제를 충실히 수행한 학생의 경우만 책을 읽도록 했다.
또한 학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하기 위해 글쓰기를 백일장과 연계했다. 국어교사로서 백일장 심사를 하다보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가르치지 않고 일회성 글쓰기로 백일장을 심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해당 글쓰기 수업을 하고 그 결과물로 백일장 시상을 하겠다고 계획했다. 1학기 초반에는 학생들과 소설 수업용 유인물을 함께 풀었다. 1학기 중반 이후에는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곳저곳에 자유롭게 흩어져서 소설을 쓰도록 했다. 한편 학생들이 쓴 소설에 대한 평가를 공책에 써주고 그 내용을 창의적체험활동 자율활동누가기록에 올려주었다.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도 해주고 상도 주니까 더 열심히 하려 했고, 생활기록부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은 수업 대신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니 편안해 했다.
2학기, 시 쓰기 수업에 앞서 학교도서관으로 시인을 초대했다. 이는 전국청소년시낭송축제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행사였다. 이번에 온 시인은 손택수 시인으로,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 손택수 시인의 시를 읽었다. 또한 희망 학생들에 한해 시낭송 UCC를 만들도록 했다. 학교도서관에서 주최한 ‘시인과의 만남’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하기도 하고, 시낭송 UCC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초대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것도 시와 시인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다. 또 전교생이 쓴 시는 시화로 만들어져 축제 때 시화전을 열 계획을 세워두었다.
연말에는 학생들이 쓴 소설과 시 중 대표작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책은 도서관의 장서로 등록될 것이다. 늘 독자였던 학생들이 저자로한 발을 내딛는 셈이다. 책의 표지는 동아리 미술반 학생들이 맡아주었다. 미술반 학생들은 책의 표지와 책 사이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다. 미술반 학생들의 활약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도서관 개관을 위해서 도서관의 현판과 게시판, 칠판을 만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반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 도서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또한 이 작품들이 이후에도 오랫동안 도서관의 역사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뿌듯한 모양이었다. 이렇듯 많은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만드는 데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1학기가 끝나고 학교에서는 학교 전반에 관한 평가를 시행했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중학교때보다 학교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하고 책도 더 많이 대출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학교도서관을 상시 개방하지는 못했지만 글쓰기 수업과 성장반 등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자주 찾도록 했던 점이 주요했던 모양이다. 또한 교과 교실로서도 도서관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은 글쓰기라는 교과목과 도서관이 잘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내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현재진행형
‘혁신학교의 학교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나는 그 질문을 이렇게 알아들을 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라고 말이다.
나는 1992년 교직에 나온 이래 다섯 학교에서 근무했고, 그중 네 곳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학교도서관에 거는 기대와 목표도 바뀌었는데, 첫 학교인 수유중학교에서는 학교도서관을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꾸는 데에 힘을 쏟았다. 두 번째 학교인 방학중학교의 도서관에는 학생들의 도서 검색 및 대출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하였고, 세 번째 학교인 백운중학교도서관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가장 찾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편안한 북카페를 꿈꿨다. 네 번째 학교인 서울북공고에서는 학교도서관을 맡는 대신 독서 관련 업무를 맡았다. 사서교사가 학교도서관의 업무를 전담하고 있었기에 나는 온전히 국어교사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서교사가 상주하자 학교도서관 상시 개방의 꿈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학교인 이곳, 나는 지금까지 학교도서관에 걸었던 기대와 목표를 하나하 나씩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개가식 도서관, 도서 검색 대출 시스템을 갖춘 도서관, 아름답고 편안한 북카페, 교과와 연계한 도서관, 문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도서관, 공부로부터 소외된 학생들과도 친구가 되는 도서관, 그리고 사서교사의 배치와 상시 개방….
나는 학교도서관이 학생들 삶의 환기구가 되기를 바란다. ‘글쓰기 시간 도서관 창밖을 내다보며 소설을 쓰던 낭만, 하노이탑을 일곱 개 완성하고 선생님에게 초코파이를 받았던 즐거움과 도미노가 하나로 연결되어 쓰러질 때의 희열, 만다라 색칠을 하며 깨달은 미적 재능, 자신이 만든 도서관 현판을 보고 느낀 뿌듯함, 시인의 강연을 들으며 시에 대해 눈뜬 일, 좋아하는 남학생이 골라온 책을 남몰래 뒤적이며 느꼈던 설렘, 만화책을 선점 당할까봐 책꽂이 뒤에 숨겨 두며 가슴 두근거렸던 일, 친구가 없어도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외롭게 느끼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에서 삶의 여러 결들을 느끼게 되기를, 그리고 그안에서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이렇듯 학교도서관에 바라는 나의 기대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내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