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 쓰기 교육의 현실과 살아있는 시 쓰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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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5:16 조회 8,853회 댓글 0건본문
내가 보기엔 동시집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는 아이는 많지 않다. 그렇게 동시를 많이 읽지
않는 까닭은 뭘까? 가장 큰 까닭은 마음을 끌지 못해서다. 마음을 끌지 못하는 까닭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하고 생생한 참삶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내 생각
이다. 어린 아이 흉내 내고, 말재주 부리고, 꾸며 만들어 내어 별 맛 없는 그저 그런 내용으로 쓰기
때문이란 말이다. 또 아이들이 시를 많이 가까이하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아이들이 시를 자주 읽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렇다. 시험 점수에 매달리도록 만들고 학원으로 내몰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른은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도
바로 앞에 무슨 큰 이익을 줄 것 같은 그런 책이나 많이 읽히지 시집 같은 것은 잘 읽히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동시를 쓰는 어른이 살아 있는 좋은 동시를 써야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동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의 삶이 있는 시를 많이 읽도록 하고, 스스로 많이 써보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 시 쓰기 교육의 필요성
나는 아이들에게 시 쓰기 지도를 많이 하다 보니 읽기도 많이 읽는다. 살아 있는 아이들의
시는 아무리 읽어도 참 좋다. ‘참 그렇지!’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때도 많다. 또 살아 있
는 아이들의 시를 읽으면 마음도 맑아진다. 지금껏 읽은 수많은 아이들의 시 가운데도 특
별히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한 번 보자.
<배나무> 옆집에 있는 배나무 / 배가 신문지에 폭 싸여 있다. / 우리 마당으로 넘어온 가지에 / 달랑달랑
달린 배 / 그냥 톡 건드려 봤을 뿐인데 / 어머나! / 툭 떨어진다. / 우리 것도 아닌데 / 떨어뜨린 것이 미안
해 / 배를 담 위에 / 가만히 올려놓았다. (2004.10.09, 경산 성암초등 6학년 권수진)
보통 사람들, 특히 어른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것 참 잘 되었구나!” 하고 날름 따
먹기가 쉬울 것이다. 아마 우리 집에 가지가 넘어오지 않아도 팔을 쭉 뻗어 따먹을 지도 모
르겠다. 그런데 이 아이는 호기심에 살짝 건드려 보다 그만 툭 떨어뜨려 깜작 놀란다. 그리
고 배를 담 위에 가만히 얹어 놓는다. 왜 깜짝 놀랐을까? 내 것이 아니니까. 내 것 아닌 것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치지만 이
렇게 언제나 밖으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행
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같이 깨끗한 하늘마음이라야 가능하다.
좋아하는 시 한 편 더 있다.
<배추벌레> 배추벌레는 / 초록색깔. / 배추벌레야 / 배추벌레야 / 배추 / 고만 갉아먹어라. / 니가 다 먹으
면 / 우리 먹을 것 없단다. / 갉아 먹어도 / 잎은 고만 먹고 / 줄기 좀 먹어라. / 또 줄기 먹어도 / 너무 많이
먹지 마라 / 배추벌레야. (1990.09.29, 경산 부림초등 4학년 김태희)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요놈! 우리 배추 다 갉아먹는 아주 나쁜 놈!” 하면
서 그만 발로 싹싹 밟아 문대버리겠지. 그런데 이 아이는 그게 아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이런 마음이 자라야 이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
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어떤가? 너무나 메말라 있다. 정신 속에는 엉뚱한 물질
로 채워져 있고, 탐욕으로 넘친다. 이것이 아이들에게까지 옮아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
을까? 거기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단순 지식까지 달달 외우게 하고, 또 그것을 서로서로
많이 외우게 하려고 끝없는 경쟁까지 시켜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들고 있다. 참다운 삶
이 없다는 말이다. 참 안타깝다.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거나 높
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기도 하고, 참된 마음을 찾아내게 해 주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하
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혼탁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시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앞서 보인 두 아이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진다. 이는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본디 마음, 어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맑디맑은 동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켜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 교육의 절실한 필요성이 아닐까 싶다.
시 쓰기 교육의 목적 바로 알고 동시와 어린이 시 구분하기
교육과정 속에서 하고 있는 시 쓰기 교육은 국어교과의 한 영역이다. 따라서 표현 기교나
형식에 많이 치우쳐 있다. 그렇게 기교나 형식에 치우쳐 만들어내는 시는 삶이 없이, 관념
적이고 상투적인 시가 대부분으로 감동 또한 있을 수가 없다. 어른들의 동시 쓰기를 흉내
내는 식으로 지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는 또 어른들이 쓴 동시가 대
부분인데, 그런 시를 많이 읽다 보면 저절로 어른의 동시를 닮아가서 시 쓰기 지도에는 걸
림돌이 되기도 한다. 시 쓰기 지도에서의 예문은 또래 아이들의 살아 있는 시를 많이 내보
여야 한다.
어쨌든 시 쓰기 교육의 목적부터 좀 더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아이들
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 적어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좋은 결과물, 좋
은 작품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야 한다. 무엇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고, 느낌과 생각을
찾고, 다시 새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비뚤어지고 오염된 마음을 바르고 깨끗하게 해 준
다거나, 사람의 정신을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드높여 준다거나, 사물이나 어떤 현상의 참된
모습을 아주 짧은 순간에 느끼어 사물의 본질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참된 삶을 깨
달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다운 삶의 태도를 갖게 해 준다거나, 진정이 들어 있는 말, 진
실이 꽉 찬 말, 정직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런 말을 쓸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 준다거나 하는 이런 것들, 참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뭐 이런 것이 목적이란 말이다. 시를 쓰는 것은 이런 삶을 가꾸는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동시와 아이들의 시(어린이 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게 보는 데서 시 지
도가 그릇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을 보면 아주 또렷
해 질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현실 세계는 언제나 거짓과 악으로 넘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을 염원하여 허구의 세계를 문학으로 창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체험한 그대로 쓰면 된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행한 대로 정직하게’ 쓰는 태도가 글쓰기 지도의 처음이요 마지막이 될 만큼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른들이 쓰는 문학 작품과 어린이들의 글이 다른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의 것은 진실을 창조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진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앞의 것은 철저하게 의도적이고 보다 잘 다듬어진 글이지만, 뒤의 것은 자연 발생적이고 충동적이고 흔히 어설프게 씌어지기가 예사다. 이래서 어린이 글은 서툴고 정리가 안 되고 표현이 불충분하지만, 그러나 때로 어른들의 ‘만들어놓은 진실’ 이상의 진실이며 어떤 짧고 서투른 어린이의 글도 그 어린이 나름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실 바로 그것이어야 할 어린이들의 글이 어른들의 그릇된 교육으로 인해 진실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어른들의 이른바 ‘창조하는 진실’ 흉내를 내게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없고, 다만 허위가될 뿐이다. 그런 지도는 어린이의 본성과 본질을 무시하거나 망각하고서 오직 교육을 불순한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이오덕, 25-27쪽
아이들은 상상하는 글 외엔 어떤 글도 체험한 그대로 쓰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
로 보면 어른이 쓰는 동요와 동시는 느낌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가 생각이나 상상 같은 것
이 들어가고 표현하는 기술이 들어가지만, 아이들이 쓰는 시(어린이 시)는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일을 보거나 겪었을 때, 그 때 느낀 것을 그대로 바로 쓰면 된다는 말이다. 다만, 윗 학년
이 되면 말을 골라서 쓰기도 해야겠지. 아이들의 시 쓰기는 어른처럼 표현 기술로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지도하는 어른은 이 점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도하는 어른이 시를 바르게 이해한다 해도 또래 아이들의 여러 가지 시를 많
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 교육과정 시간만으로는 턱없이 시간이 모자라는 것 따위의 문제도
시 쓰기 지도에 걸림돌이 된다.
어린이 시 바로 보는 눈
시를 바로 지도하려면 지도하는 사람이 시를 바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글을 볼 때는 시든 산문이든 무엇
보다 먼저 ‘감동’이다. 글을 읽으면 가슴 찌릿한 무엇을 느끼는 감동이 있어야 좋은 글이란
말이다. 재미없고 별 맛이 없는 글은 좋은 글이라 볼 수 없다. 그 다음은 그 글을 쓴 아이의
가치 있는 ‘삶’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 ‘표현’이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
보아서 제대로 되어 있다면 더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다음 시를 보자.
<청소> 룰루랄라 / 콧노래하며 / 빗자루질을 해보자. // 밤새 쌓여 있던 / 먼지들 폴짝폴짝 / 춤을 춘다. //
“요놈들!” / 빗자루가 / 냉큼 삼킨다. // 하하호호 / 웃으며 / 빗자루질을 해보자. // 밤새 웅크리고 있던 /
먼지들 깔깔 낄낄 / 웃는다. // “이것 참...!!” / 어리둥절해하며 / 빗자루가 냉큼 삼킨다. (4학년)
어떤가? 콧노래하며 청소한다는 것도, 밤새 먼지가 쌓인다는 것도, 먼지들이 폴짝폴짝
춤을 춘다는 것도, 빗자루가 먼지를 냉큼 삼킨다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억지
로 꾸미고, 만들고, 말재주를 부린 가짜 시다. 실제로 청소를 해 보고 쓴 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다음 시를 한 번 보자.
<개구리> 개구리 한 마리가 찻길을 건너다 / 차에 그만 칭기고 말았어요. / 건너편 논에 알 놓으로 가다가
/ 칭기고 말았어요. / 엄마가 아기를 갖고 싶어 했던 소원이 / 이루어질라 하는데 / 가다가 차에 칭겨 죽고
말았어요. / 뱃속에 있던 개구리 알은 우무질 안에서 / 가만히 자고 있어요. / 새끼는 어미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 잠만 자요. / 나는 알을 논에 넣어주었어요. / 나는 알을 보고 열심히 자라라고 했어요. / 엄마 없
다고 너무 많이 울지 마라고 했어요. (1999.04.12, 청도 봉하분교 4학년 최기석)
길 건너편 논에 알 놓으러 가던 엄마 개구리가 지나는 차에 그만 치여 죽은 슬픈 모습을
보고 쓴 시다. 이 아이는 보고만 있지 않고 그 알을 논에 넣어주고 엄마 없다고 너무 울지 말
라고 위로한다. 누구나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구리> 시에서와 같은 감동은 실제 생활 속 어느 곳, 어느 시간에 구체로 얻어지는 것
이지, 시 <청소>처럼 구체 사실 뿌리도 없이 머리로 만들어낸 묘한 말로 꾸며 맞추어 쓰는
데서는 얻어질 수 없다. 또 거짓된 시는 아니지만 새로움이 없는 평범한 개념으로 쓴 감동
없는 시도 좋은 시라고는 볼 수 없다. 묘한 말을 꾸며 맞추고 만들어 쓰는 시를 두고 재미가
있다느니, 재치가 있다느니, 잘 다듬어졌다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건 사람으로 치
면 화장을 덕지덕지 하고 예쁘고 화려한 옷만 차려 입은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
제 모습은 죽거나 가려진 가짜다. 그래서 그런 ‘가짜 시’를 나는 ‘죽은 시’, ‘좋지 않는 시’라
고도 한다. 화장을 하지 않은 사람의 실제 모습이나 사람 속에 숨어 있는 솔직한 마음 같은
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 시도 그런 모습을 나타내어야 감동을 준다. 그런 시를 ‘진짜
시’ 또는 ‘살아 있는 시’, ‘좋은 시’라 한다.
그래도 어떤 시가 가짜 시인지 진짜 시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그러면 쉽게 구분
해 낼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을 한 번 추려보자.
● 가짜 시
①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시
②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형식을 닮은 시
③ 너무 매끈한 시
④ 어른스럽거나 어려운 시
⑤ 읽어 봐도 별 맛이 없는 시
⑥ 아기 같은 소리를 쓴 시
⑦ 너무 아름다운 시
⑧ 줄글을 시처럼 끊어 놓은 것 같은 시
● 진짜 시
①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시. ‘참 그렇구나!’ 하고 마음에 찡하게 느껴지는 시라야 한다.
② 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 어려운 말을 쓰거나 머리로, 꽤로,재주로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안 드는 시라야 한다.
③ 자기만의 느낌이 나타난 시. 남의 말이나 생각을 흉내 내지 않고 지금까지아무도 쓰지 않았던 것을
써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시가 된다.
④ 자기의 말로 쓴 시. 우스갯말, 수수께끼 놀이 말, 신기한 말, 아름다운 말, 고상한 말을 늘어놓으려
하지 않고 삶에서 쓰는 말 그대로 쓴 시라야 한다.
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시. 길게 쓰든지, 이야기 글 같이 쓰든지 마음대로 쓰되 꼭 하고
싶은 말만 쓴 시라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말해봐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대조되는 시를 보여주고 가려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글1] <봄> 봄 봄 바쁜 봄 / 매말랐던 나뭇가지 / 눈 틔우기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진달래 개나리 / 고
운 옷 입기에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졸졸졸 시냇물 / 노래부리기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노오란 병
아리 / 걸음마 연습에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우리들은 봄맞이 가기 / 바쁘네. (5학년)
[글2] <봄> 바람이 분다. / 까만 비닐봉지도 날리고 / 내 마음도 바람에 날린다. / 금호강을 보니 / 아아,
시원하다. / 새들이 날고 있다. / 그 바람에 마음이 커지는 것 같다. / 그 바람이 봄을 불렀는가? / 밭가에
보니 / 냉이가 속곳속곳 올라온다. / 쑥도 강아지 귀처럼 / 쫑긋쫑긋 세웠다. / 아이들 셋이 웃으며 / 밀고
당기며 / 냉이 캐러 간다. (1991, 경산 부림초등 6학년 한진숙)
두 시 모두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나타낸 시인데, [글1]은 어른의 동요나 동시 형식을
흉내 내어 관념으로 쓴 가짜 시고, [글2]는 실제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잘 살려 쓴
진짜 시란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많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글1]과 같은 시를 감동 있는 시라고 말하기
도 하는데, 그건 왜 그럴까? 이렇게 꾸며 만들어 쓴 시가 감동 있는 시라고 배워왔기 때문이
다. 그렇지만 한 번 만 그게 아니란 것을 깨트려 주면 그 다음부터는 잘 구별할 줄 알 것이다.
시 마음 일깨우고 많이 쓰게 하자
무엇이든 거리가 멀거나 익숙하지 않는 것을 가깝게 느끼고 익숙하게 되도록 하자면
많이 접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시와 가까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러니까 먼저 또래 아이들이 쓴 시 가운데 살아 있는 시를 자주 맛보게 해야 한다.
나는 둘째 공부시간 들어가기 전이나 짬짬이 시 맛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시를 읽어
주고 느낌이나 생각을 말해보기도 하고,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
던 새로운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말해보게 한다. 그리고 내 생각도 덧붙여 이야기 해 주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때로는 60년대 농촌 아이들의 시(『일하는 아이들』(이오덕 엮음)
에 나오는 시)를 읽어주기도 한다.
<콩> 점심때 / 마리에 앉았으니 / 아버지는 손을 불키 가면서 / 콩을 뽑아 가지고 / 소로 갖다 나른다. / 소
에서 니라 난 것이 / 햇빛에 비쳐 / 콩 껍데기가 틱 하면서 / 벌어진다. / 콩알이 탁 티 나간다. / 콩알은 / 지
붕에 얹혔다. (1963.10, 상주 청리 3년 김석범)
그런데 모든 것이 도시화 된 요즘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손을 불키 가면서 콩을 뽑아 소
로 실어 나르는 것이나, 그 콩이 탁 티어서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쌀밥> 쌀밥이 먹구 싶다. / 쌀밥을 먹을라 해도 쌀이 없다. / 지사가 오면 쌀밥을 먹을까 / 생일이 오면 먹
을까 / 쌀밥이 자꾸 먹고 싶다. (1969.12.23, 안동 대곡분교 2년 정창교)
그렇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시를 다시 읽어주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매우 흥미 있어 한다.
이렇게 많이 맛보다 보면 시는 이런 것이구나, 어려운 것이 아니네, 나도 쓰면 되겠구나,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겪은 나의 일들을 시로 쓰면 되겠구나, 그리고 써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벌써 반은 시 쓰기 공부가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온갖 시 쓰는 방법들
이 있겠지만, 시 쓰기는 쉽다, 나도 쓰면 되겠구나, 쓰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조금 도와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면, 본디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쓰게만 해도 시를 잘 쓸 수 있는
데 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를 쓰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그건 아이들이 살아 있는 시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서다. 아이들의 감각을 막는 것들, 새롭게 보는 눈을 가리는 것
들, 더 나아가서는 어른들이 쓰는 동시 흉내 내기로 잘못 가르친 것 이런 것들 때문이다.
나는 또 틈틈이 아이들을 밖으로 데려나가 자연의 모습을 살펴보고 느끼도록 한다. 그리
고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생각한 것을 그 자리에서 적어보게 하기도 한다.
<목련꽃 봉오리> 목련꽃 봉오리가 / 꼭 달걀 같다. / 거기서 뭐가 나올 것 같다. / 예쁜 병아리가 나올까? /
그러면 나무에 / 병아리가 열렸네! (1999.03.19, 청도 봉하분교 4학년 최기석)
이 글은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목련꽃 봉오리를 보고 표현한 것이다. 피지 않은 목련꽃 봉
오리를 보면 정말 달걀 같다. 달걀에서는 병아리가 나올 테니까 나무에 병아리가 열린 것이
나 같구나, 하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적어보게 한 것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다음은 두 아이가 잔디를 살펴보고 쓴 글이다.
[글1] <잔디> 잔디는 / 꼭 / 우리 아빠 / 다리 / 털같이 / 나있다. (2002.05.24, 청도 문명분교 3학년 송민규)
[글2] <잔디> 잔디들이 / 하늘을 콕콕 찌른다. / 하늘이 아파서 / 아야! / 아야! / 그만해, 해도 / 잔디들은
하늘을 / 끝도 없이 찌른다 / 콕 콕 콕……. (2002.05.24, 청도 문명분교 3학년 김대윤)
두 아이가 똑 같이 잔디를 보았는데 이렇게 다르다. 그러니까 [글1]을 쓴 아이는 서서
잔디를 보았다. 그리고 [글2]를 쓴 아이는 앉아서 잔디를 보아 잔디가 하늘에 닿아 콕콕 찌
르는 것처럼 보았다.
이렇게 다 같이 밖에 나가 자연을 살펴보고 느껴 보는 것도 좋지만, 제 스스로 자연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새롭게 보고 느낀 것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적어보도
록 하는 것도 좋다.
◉ 포도송이의 포도 알이 움직인다.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것 같다. 아이들의 대가리가 모여 있다.
(6학년 박정미)
◉ 버스 운전수가 아주머니들에게는 / “빨리 타이소.” / 하면서 할아버지한테는 / “빨리 타소!” / 소리를
꽥 지른다. 웃긴다. (6학년 소미령)
◉ 날씨가 춥다. 길에서 보니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며 목이 짧아졌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손을 주머니
속에 쿡 집어넣고 다닌다. (6학년 권경희)
이렇게 하면서 시를 자주 쓰도록 해야겠지. 글감을 찾고, 마음속으로 그 때 그 일로 돌아
가 그 때 그 감흥을 되살려 쓰도록 하면 될 것이다.
아이들 시 쓰는 방법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그냥 참고만 하기 바란다.
● 첫째, 시 마음에 빠지기 먼저 또래 아이들이 쓴 살아 있는 시를 여러 편 읽으며 시 마음에 빠져든다.
● 둘째, 무엇을 쓸까 찾아보기 아주 가까운 시간에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시 쓸 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여러 개 찾
아 제목을 적는다.
● 셋째, 가장 감동 있는 글감 하나 고르기 ‘무엇을 쓸까 찾아보기’에서 나온 여러 가지 시 글감 가운데 가장 또렷하
게 마음에 남아 있는 것 하나를 고른다.
● 넷째, 다시 시 마음에 흠뻑 빠지기 다시 또래 아이의 살아 있는 시를 몇 편 더 읽으며 더 깊이 시 마음에 빠진다.
● 다섯째, 시 쓰기 바로 앞서 마음으로 다시 겪어보기 그 때 그 감흥을 생생하게 되살려 낼 수 있도록 골라 놓은 쓸
거리에 얽힌 일을 마음으로, 또는 행동으로 겪어본다.
● 여섯째, 그 때 그 감흥을 살려 시 쓰기 겪어보기 할 때 떠올렸던 그 감흥이 깨어지지 않도록 해서 바로 자세하게
써내려 간다.
● 일곱째, 보태어 쓰고, 빼어버리고, 고치고, 다듬기 다 쓴 다음, 모자라는 것은 보충하고, 필요 없는 것은 빼어버리
고, 맞지 않는 것은 고치고, 껄끄러운 것은 다듬어서 시 한 편을 완성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시를 즐겨 쓰게 하는 방법은 시를 바르게 알도록 깨우쳐주고, 또래 아
이들의 시를 많이 읽게 하고, 아이들이 본디 가지고 있는 시 마음을 자꾸 일깨우고, 시를 많
이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렇게 시를 많이 접하고 많이 써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가까이하면서 즐겨 읽고 쓸 것이라 본다.
않는 까닭은 뭘까? 가장 큰 까닭은 마음을 끌지 못해서다. 마음을 끌지 못하는 까닭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하고 생생한 참삶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내 생각
이다. 어린 아이 흉내 내고, 말재주 부리고, 꾸며 만들어 내어 별 맛 없는 그저 그런 내용으로 쓰기
때문이란 말이다. 또 아이들이 시를 많이 가까이하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아이들이 시를 자주 읽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렇다. 시험 점수에 매달리도록 만들고 학원으로 내몰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른은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도
바로 앞에 무슨 큰 이익을 줄 것 같은 그런 책이나 많이 읽히지 시집 같은 것은 잘 읽히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동시를 쓰는 어른이 살아 있는 좋은 동시를 써야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동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의 삶이 있는 시를 많이 읽도록 하고, 스스로 많이 써보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 시 쓰기 교육의 필요성
나는 아이들에게 시 쓰기 지도를 많이 하다 보니 읽기도 많이 읽는다. 살아 있는 아이들의
시는 아무리 읽어도 참 좋다. ‘참 그렇지!’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때도 많다. 또 살아 있
는 아이들의 시를 읽으면 마음도 맑아진다. 지금껏 읽은 수많은 아이들의 시 가운데도 특
별히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한 번 보자.
<배나무> 옆집에 있는 배나무 / 배가 신문지에 폭 싸여 있다. / 우리 마당으로 넘어온 가지에 / 달랑달랑
달린 배 / 그냥 톡 건드려 봤을 뿐인데 / 어머나! / 툭 떨어진다. / 우리 것도 아닌데 / 떨어뜨린 것이 미안
해 / 배를 담 위에 / 가만히 올려놓았다. (2004.10.09, 경산 성암초등 6학년 권수진)
보통 사람들, 특히 어른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것 참 잘 되었구나!” 하고 날름 따
먹기가 쉬울 것이다. 아마 우리 집에 가지가 넘어오지 않아도 팔을 쭉 뻗어 따먹을 지도 모
르겠다. 그런데 이 아이는 호기심에 살짝 건드려 보다 그만 툭 떨어뜨려 깜작 놀란다. 그리
고 배를 담 위에 가만히 얹어 놓는다. 왜 깜짝 놀랐을까? 내 것이 아니니까. 내 것 아닌 것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치지만 이
렇게 언제나 밖으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행
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같이 깨끗한 하늘마음이라야 가능하다.
좋아하는 시 한 편 더 있다.
<배추벌레> 배추벌레는 / 초록색깔. / 배추벌레야 / 배추벌레야 / 배추 / 고만 갉아먹어라. / 니가 다 먹으
면 / 우리 먹을 것 없단다. / 갉아 먹어도 / 잎은 고만 먹고 / 줄기 좀 먹어라. / 또 줄기 먹어도 / 너무 많이
먹지 마라 / 배추벌레야. (1990.09.29, 경산 부림초등 4학년 김태희)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요놈! 우리 배추 다 갉아먹는 아주 나쁜 놈!” 하면
서 그만 발로 싹싹 밟아 문대버리겠지. 그런데 이 아이는 그게 아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이런 마음이 자라야 이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
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어떤가? 너무나 메말라 있다. 정신 속에는 엉뚱한 물질
로 채워져 있고, 탐욕으로 넘친다. 이것이 아이들에게까지 옮아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
을까? 거기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단순 지식까지 달달 외우게 하고, 또 그것을 서로서로
많이 외우게 하려고 끝없는 경쟁까지 시켜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들고 있다. 참다운 삶
이 없다는 말이다. 참 안타깝다.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거나 높
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기도 하고, 참된 마음을 찾아내게 해 주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하
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혼탁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시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앞서 보인 두 아이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진다. 이는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본디 마음, 어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맑디맑은 동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켜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 교육의 절실한 필요성이 아닐까 싶다.
시 쓰기 교육의 목적 바로 알고 동시와 어린이 시 구분하기
교육과정 속에서 하고 있는 시 쓰기 교육은 국어교과의 한 영역이다. 따라서 표현 기교나
형식에 많이 치우쳐 있다. 그렇게 기교나 형식에 치우쳐 만들어내는 시는 삶이 없이, 관념
적이고 상투적인 시가 대부분으로 감동 또한 있을 수가 없다. 어른들의 동시 쓰기를 흉내
내는 식으로 지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는 또 어른들이 쓴 동시가 대
부분인데, 그런 시를 많이 읽다 보면 저절로 어른의 동시를 닮아가서 시 쓰기 지도에는 걸
림돌이 되기도 한다. 시 쓰기 지도에서의 예문은 또래 아이들의 살아 있는 시를 많이 내보
여야 한다.
어쨌든 시 쓰기 교육의 목적부터 좀 더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아이들
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 적어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좋은 결과물, 좋
은 작품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야 한다. 무엇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고, 느낌과 생각을
찾고, 다시 새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비뚤어지고 오염된 마음을 바르고 깨끗하게 해 준
다거나, 사람의 정신을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드높여 준다거나, 사물이나 어떤 현상의 참된
모습을 아주 짧은 순간에 느끼어 사물의 본질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참된 삶을 깨
달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다운 삶의 태도를 갖게 해 준다거나, 진정이 들어 있는 말, 진
실이 꽉 찬 말, 정직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런 말을 쓸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 준다거나 하는 이런 것들, 참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뭐 이런 것이 목적이란 말이다. 시를 쓰는 것은 이런 삶을 가꾸는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동시와 아이들의 시(어린이 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게 보는 데서 시 지
도가 그릇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을 보면 아주 또렷
해 질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현실 세계는 언제나 거짓과 악으로 넘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을 염원하여 허구의 세계를 문학으로 창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체험한 그대로 쓰면 된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행한 대로 정직하게’ 쓰는 태도가 글쓰기 지도의 처음이요 마지막이 될 만큼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른들이 쓰는 문학 작품과 어린이들의 글이 다른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의 것은 진실을 창조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진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앞의 것은 철저하게 의도적이고 보다 잘 다듬어진 글이지만, 뒤의 것은 자연 발생적이고 충동적이고 흔히 어설프게 씌어지기가 예사다. 이래서 어린이 글은 서툴고 정리가 안 되고 표현이 불충분하지만, 그러나 때로 어른들의 ‘만들어놓은 진실’ 이상의 진실이며 어떤 짧고 서투른 어린이의 글도 그 어린이 나름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실 바로 그것이어야 할 어린이들의 글이 어른들의 그릇된 교육으로 인해 진실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어른들의 이른바 ‘창조하는 진실’ 흉내를 내게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없고, 다만 허위가될 뿐이다. 그런 지도는 어린이의 본성과 본질을 무시하거나 망각하고서 오직 교육을 불순한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이오덕, 25-27쪽
아이들은 상상하는 글 외엔 어떤 글도 체험한 그대로 쓰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
로 보면 어른이 쓰는 동요와 동시는 느낌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가 생각이나 상상 같은 것
이 들어가고 표현하는 기술이 들어가지만, 아이들이 쓰는 시(어린이 시)는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일을 보거나 겪었을 때, 그 때 느낀 것을 그대로 바로 쓰면 된다는 말이다. 다만, 윗 학년
이 되면 말을 골라서 쓰기도 해야겠지. 아이들의 시 쓰기는 어른처럼 표현 기술로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지도하는 어른은 이 점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도하는 어른이 시를 바르게 이해한다 해도 또래 아이들의 여러 가지 시를 많
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 교육과정 시간만으로는 턱없이 시간이 모자라는 것 따위의 문제도
시 쓰기 지도에 걸림돌이 된다.
어린이 시 바로 보는 눈
시를 바로 지도하려면 지도하는 사람이 시를 바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글을 볼 때는 시든 산문이든 무엇
보다 먼저 ‘감동’이다. 글을 읽으면 가슴 찌릿한 무엇을 느끼는 감동이 있어야 좋은 글이란
말이다. 재미없고 별 맛이 없는 글은 좋은 글이라 볼 수 없다. 그 다음은 그 글을 쓴 아이의
가치 있는 ‘삶’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 ‘표현’이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
보아서 제대로 되어 있다면 더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다음 시를 보자.
<청소> 룰루랄라 / 콧노래하며 / 빗자루질을 해보자. // 밤새 쌓여 있던 / 먼지들 폴짝폴짝 / 춤을 춘다. //
“요놈들!” / 빗자루가 / 냉큼 삼킨다. // 하하호호 / 웃으며 / 빗자루질을 해보자. // 밤새 웅크리고 있던 /
먼지들 깔깔 낄낄 / 웃는다. // “이것 참...!!” / 어리둥절해하며 / 빗자루가 냉큼 삼킨다. (4학년)
어떤가? 콧노래하며 청소한다는 것도, 밤새 먼지가 쌓인다는 것도, 먼지들이 폴짝폴짝
춤을 춘다는 것도, 빗자루가 먼지를 냉큼 삼킨다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억지
로 꾸미고, 만들고, 말재주를 부린 가짜 시다. 실제로 청소를 해 보고 쓴 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다음 시를 한 번 보자.
<개구리> 개구리 한 마리가 찻길을 건너다 / 차에 그만 칭기고 말았어요. / 건너편 논에 알 놓으로 가다가
/ 칭기고 말았어요. / 엄마가 아기를 갖고 싶어 했던 소원이 / 이루어질라 하는데 / 가다가 차에 칭겨 죽고
말았어요. / 뱃속에 있던 개구리 알은 우무질 안에서 / 가만히 자고 있어요. / 새끼는 어미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 잠만 자요. / 나는 알을 논에 넣어주었어요. / 나는 알을 보고 열심히 자라라고 했어요. / 엄마 없
다고 너무 많이 울지 마라고 했어요. (1999.04.12, 청도 봉하분교 4학년 최기석)
길 건너편 논에 알 놓으러 가던 엄마 개구리가 지나는 차에 그만 치여 죽은 슬픈 모습을
보고 쓴 시다. 이 아이는 보고만 있지 않고 그 알을 논에 넣어주고 엄마 없다고 너무 울지 말
라고 위로한다. 누구나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구리> 시에서와 같은 감동은 실제 생활 속 어느 곳, 어느 시간에 구체로 얻어지는 것
이지, 시 <청소>처럼 구체 사실 뿌리도 없이 머리로 만들어낸 묘한 말로 꾸며 맞추어 쓰는
데서는 얻어질 수 없다. 또 거짓된 시는 아니지만 새로움이 없는 평범한 개념으로 쓴 감동
없는 시도 좋은 시라고는 볼 수 없다. 묘한 말을 꾸며 맞추고 만들어 쓰는 시를 두고 재미가
있다느니, 재치가 있다느니, 잘 다듬어졌다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건 사람으로 치
면 화장을 덕지덕지 하고 예쁘고 화려한 옷만 차려 입은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
제 모습은 죽거나 가려진 가짜다. 그래서 그런 ‘가짜 시’를 나는 ‘죽은 시’, ‘좋지 않는 시’라
고도 한다. 화장을 하지 않은 사람의 실제 모습이나 사람 속에 숨어 있는 솔직한 마음 같은
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 시도 그런 모습을 나타내어야 감동을 준다. 그런 시를 ‘진짜
시’ 또는 ‘살아 있는 시’, ‘좋은 시’라 한다.
그래도 어떤 시가 가짜 시인지 진짜 시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그러면 쉽게 구분
해 낼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을 한 번 추려보자.
● 가짜 시
①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시
②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형식을 닮은 시
③ 너무 매끈한 시
④ 어른스럽거나 어려운 시
⑤ 읽어 봐도 별 맛이 없는 시
⑥ 아기 같은 소리를 쓴 시
⑦ 너무 아름다운 시
⑧ 줄글을 시처럼 끊어 놓은 것 같은 시
● 진짜 시
①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시. ‘참 그렇구나!’ 하고 마음에 찡하게 느껴지는 시라야 한다.
② 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 어려운 말을 쓰거나 머리로, 꽤로,재주로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안 드는 시라야 한다.
③ 자기만의 느낌이 나타난 시. 남의 말이나 생각을 흉내 내지 않고 지금까지아무도 쓰지 않았던 것을
써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시가 된다.
④ 자기의 말로 쓴 시. 우스갯말, 수수께끼 놀이 말, 신기한 말, 아름다운 말, 고상한 말을 늘어놓으려
하지 않고 삶에서 쓰는 말 그대로 쓴 시라야 한다.
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시. 길게 쓰든지, 이야기 글 같이 쓰든지 마음대로 쓰되 꼭 하고
싶은 말만 쓴 시라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말해봐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대조되는 시를 보여주고 가려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글1] <봄> 봄 봄 바쁜 봄 / 매말랐던 나뭇가지 / 눈 틔우기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진달래 개나리 / 고
운 옷 입기에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졸졸졸 시냇물 / 노래부리기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노오란 병
아리 / 걸음마 연습에 / 바쁘고, // 봄 봄 바쁜 봄 / 우리들은 봄맞이 가기 / 바쁘네. (5학년)
[글2] <봄> 바람이 분다. / 까만 비닐봉지도 날리고 / 내 마음도 바람에 날린다. / 금호강을 보니 / 아아,
시원하다. / 새들이 날고 있다. / 그 바람에 마음이 커지는 것 같다. / 그 바람이 봄을 불렀는가? / 밭가에
보니 / 냉이가 속곳속곳 올라온다. / 쑥도 강아지 귀처럼 / 쫑긋쫑긋 세웠다. / 아이들 셋이 웃으며 / 밀고
당기며 / 냉이 캐러 간다. (1991, 경산 부림초등 6학년 한진숙)
두 시 모두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나타낸 시인데, [글1]은 어른의 동요나 동시 형식을
흉내 내어 관념으로 쓴 가짜 시고, [글2]는 실제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잘 살려 쓴
진짜 시란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많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글1]과 같은 시를 감동 있는 시라고 말하기
도 하는데, 그건 왜 그럴까? 이렇게 꾸며 만들어 쓴 시가 감동 있는 시라고 배워왔기 때문이
다. 그렇지만 한 번 만 그게 아니란 것을 깨트려 주면 그 다음부터는 잘 구별할 줄 알 것이다.
시 마음 일깨우고 많이 쓰게 하자
무엇이든 거리가 멀거나 익숙하지 않는 것을 가깝게 느끼고 익숙하게 되도록 하자면
많이 접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시와 가까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러니까 먼저 또래 아이들이 쓴 시 가운데 살아 있는 시를 자주 맛보게 해야 한다.
나는 둘째 공부시간 들어가기 전이나 짬짬이 시 맛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시를 읽어
주고 느낌이나 생각을 말해보기도 하고,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
던 새로운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말해보게 한다. 그리고 내 생각도 덧붙여 이야기 해 주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때로는 60년대 농촌 아이들의 시(『일하는 아이들』(이오덕 엮음)
에 나오는 시)를 읽어주기도 한다.
<콩> 점심때 / 마리에 앉았으니 / 아버지는 손을 불키 가면서 / 콩을 뽑아 가지고 / 소로 갖다 나른다. / 소
에서 니라 난 것이 / 햇빛에 비쳐 / 콩 껍데기가 틱 하면서 / 벌어진다. / 콩알이 탁 티 나간다. / 콩알은 / 지
붕에 얹혔다. (1963.10, 상주 청리 3년 김석범)
그런데 모든 것이 도시화 된 요즘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손을 불키 가면서 콩을 뽑아 소
로 실어 나르는 것이나, 그 콩이 탁 티어서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쌀밥> 쌀밥이 먹구 싶다. / 쌀밥을 먹을라 해도 쌀이 없다. / 지사가 오면 쌀밥을 먹을까 / 생일이 오면 먹
을까 / 쌀밥이 자꾸 먹고 싶다. (1969.12.23, 안동 대곡분교 2년 정창교)
그렇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시를 다시 읽어주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매우 흥미 있어 한다.
이렇게 많이 맛보다 보면 시는 이런 것이구나, 어려운 것이 아니네, 나도 쓰면 되겠구나,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겪은 나의 일들을 시로 쓰면 되겠구나, 그리고 써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벌써 반은 시 쓰기 공부가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온갖 시 쓰는 방법들
이 있겠지만, 시 쓰기는 쉽다, 나도 쓰면 되겠구나, 쓰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조금 도와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면, 본디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쓰게만 해도 시를 잘 쓸 수 있는
데 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를 쓰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그건 아이들이 살아 있는 시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서다. 아이들의 감각을 막는 것들, 새롭게 보는 눈을 가리는 것
들, 더 나아가서는 어른들이 쓰는 동시 흉내 내기로 잘못 가르친 것 이런 것들 때문이다.
나는 또 틈틈이 아이들을 밖으로 데려나가 자연의 모습을 살펴보고 느끼도록 한다. 그리
고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생각한 것을 그 자리에서 적어보게 하기도 한다.
<목련꽃 봉오리> 목련꽃 봉오리가 / 꼭 달걀 같다. / 거기서 뭐가 나올 것 같다. / 예쁜 병아리가 나올까? /
그러면 나무에 / 병아리가 열렸네! (1999.03.19, 청도 봉하분교 4학년 최기석)
이 글은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목련꽃 봉오리를 보고 표현한 것이다. 피지 않은 목련꽃 봉
오리를 보면 정말 달걀 같다. 달걀에서는 병아리가 나올 테니까 나무에 병아리가 열린 것이
나 같구나, 하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적어보게 한 것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다음은 두 아이가 잔디를 살펴보고 쓴 글이다.
[글1] <잔디> 잔디는 / 꼭 / 우리 아빠 / 다리 / 털같이 / 나있다. (2002.05.24, 청도 문명분교 3학년 송민규)
[글2] <잔디> 잔디들이 / 하늘을 콕콕 찌른다. / 하늘이 아파서 / 아야! / 아야! / 그만해, 해도 / 잔디들은
하늘을 / 끝도 없이 찌른다 / 콕 콕 콕……. (2002.05.24, 청도 문명분교 3학년 김대윤)
두 아이가 똑 같이 잔디를 보았는데 이렇게 다르다. 그러니까 [글1]을 쓴 아이는 서서
잔디를 보았다. 그리고 [글2]를 쓴 아이는 앉아서 잔디를 보아 잔디가 하늘에 닿아 콕콕 찌
르는 것처럼 보았다.
이렇게 다 같이 밖에 나가 자연을 살펴보고 느껴 보는 것도 좋지만, 제 스스로 자연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새롭게 보고 느낀 것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적어보도
록 하는 것도 좋다.
◉ 포도송이의 포도 알이 움직인다.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것 같다. 아이들의 대가리가 모여 있다.
(6학년 박정미)
◉ 버스 운전수가 아주머니들에게는 / “빨리 타이소.” / 하면서 할아버지한테는 / “빨리 타소!” / 소리를
꽥 지른다. 웃긴다. (6학년 소미령)
◉ 날씨가 춥다. 길에서 보니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며 목이 짧아졌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손을 주머니
속에 쿡 집어넣고 다닌다. (6학년 권경희)
이렇게 하면서 시를 자주 쓰도록 해야겠지. 글감을 찾고, 마음속으로 그 때 그 일로 돌아
가 그 때 그 감흥을 되살려 쓰도록 하면 될 것이다.
아이들 시 쓰는 방법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그냥 참고만 하기 바란다.
● 첫째, 시 마음에 빠지기 먼저 또래 아이들이 쓴 살아 있는 시를 여러 편 읽으며 시 마음에 빠져든다.
● 둘째, 무엇을 쓸까 찾아보기 아주 가까운 시간에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시 쓸 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여러 개 찾
아 제목을 적는다.
● 셋째, 가장 감동 있는 글감 하나 고르기 ‘무엇을 쓸까 찾아보기’에서 나온 여러 가지 시 글감 가운데 가장 또렷하
게 마음에 남아 있는 것 하나를 고른다.
● 넷째, 다시 시 마음에 흠뻑 빠지기 다시 또래 아이의 살아 있는 시를 몇 편 더 읽으며 더 깊이 시 마음에 빠진다.
● 다섯째, 시 쓰기 바로 앞서 마음으로 다시 겪어보기 그 때 그 감흥을 생생하게 되살려 낼 수 있도록 골라 놓은 쓸
거리에 얽힌 일을 마음으로, 또는 행동으로 겪어본다.
● 여섯째, 그 때 그 감흥을 살려 시 쓰기 겪어보기 할 때 떠올렸던 그 감흥이 깨어지지 않도록 해서 바로 자세하게
써내려 간다.
● 일곱째, 보태어 쓰고, 빼어버리고, 고치고, 다듬기 다 쓴 다음, 모자라는 것은 보충하고, 필요 없는 것은 빼어버리
고, 맞지 않는 것은 고치고, 껄끄러운 것은 다듬어서 시 한 편을 완성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시를 즐겨 쓰게 하는 방법은 시를 바르게 알도록 깨우쳐주고, 또래 아
이들의 시를 많이 읽게 하고, 아이들이 본디 가지고 있는 시 마음을 자꾸 일깨우고, 시를 많
이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렇게 시를 많이 접하고 많이 써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가까이하면서 즐겨 읽고 쓸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