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꿈꿔,그럼 네가 갈 길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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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3:38 조회 7,921회 댓글 0건본문
올챙이야, 너는 아니?
여러분은 하루하루 보내면서 꿈을 꾸고 사나요?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하나요? 여러분
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물었더니 어떤 청소년은 “꿈꿀 시간이 없어요.” 하고 말
하더군요. 잠을 푹 자야 꿈을 꿀 텐데 잠잘 시간이 늘 부족하다면서 졸린 눈을 부비더
라고요. 그래요. 매일 잠을 달게 푹 자야 꿈도 꾸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야 꿈에 대해 생각도 하고 그러는 것인데 말입니다.
다들 잠을 푹 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선은 꿈꾸는 것을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
는 것’이라고 해봅시다. 그럼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래요.
아, 누군가 바로 말해주네요. “학교 안 가고 아침잠을 푹 잤으면 좋겠어요.” 또 들리는
군요. “며칠 전에 시험 본 것 같은데 금세 또 시험이에요. 시험 좀 안 보면 안 되나요?”
이것도 바라는 것은 맞아요. 지금 하기 싫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피하고 싶다고 바라
는 마음이니까요. 하지만요, 이렇게 ‘당장 피하고 싶다며 바라는 마음’과 ‘꿈을 꾸면
서 바라는 마음’은 많이 다릅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또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큰 변신을 상상하는 것이
에요. 상상이 크면 클수록 변신도 커지겠지요.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나오지요. 여자
가 남자로 변신하고 남자가 여자로 몸이 바뀌는 이런 것이 상상입니다.
참, 변신 알지요? 이미 말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끼
손가락 한 마디 크기도 안 되는 작은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팔다리도 없이 꼬물꼬물 물 속을 움직이는 올챙이 자신이 장차 커서 팔다리
도 생겨나고 여기에서 번쩍 하고 저만큼 멀리 뛰어오르는 개구리로 변신한다는 것을
알까요, 모를까요? 나도 잘 모릅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넘어갑시다
꿈을 꾸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냐
상상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이 변신하여 지금과 꽤나 다르게 바뀌어 있는 미래의 나,
이것이 꿈을 꾸면서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어른은 이렇게도 말하더군요. 이룰 수 없
는 꿈은 꿀 필요가 없다고요. 이룰 수가 없는데 꿈만 꾸면 실망감만 커지고 시간만 낭
비하는 것이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꿈을 꾸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그럼 꿈을 왜 꿀까요? 꿈을 꾼 만큼 꿈을 닮아가기
때문이에요.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이런 꿈도 꾸고 저런 꿈도 꾸고 해서 이것저
것 꾸었던 꿈들이 내 몸 안에 들어와서 내 모습이 그 꿈들을 닮아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를테면 “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꿈이 지금은 또 바뀌어 있을 겁니다. 그동안 한두 번 바뀐 게 아니겠지요. 그래
요. 꿈은 계속 바뀌는 것이에요.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 즉
꿈이 바뀌고 또 바뀌는 것이 어린이의 모습이잖아요. 이렇게 날마다 바뀌던 꿈이 한
달, 일년, 삼년, 십년씩 점점 더 띄엄띄엄 바뀌지 않게 되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데요, 이것은 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른 중에서도 어린이나 청소년보다 더
많이 꿈꾸면서 계속 새로운 꿈을 꾸는 어른도 많아요. 여러분은 더 많이 더 새롭게 꿈
꾸는 어른이 될 수 있답니다.
그럼 계속 꿈을 꾸는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그냥 공상을 많이 해서 기분
이 좋아지려고 일까요?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유는 이래요. 사람은 다음 두 가지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데요, 하나는 밥을 먹고 잠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밥을 계속 안 먹거나 잠을 계속 안 자면 몸이 병들지요. 꿈도 계속 안 꾸
면 마음이 병이 들어요. 날마다 밥 먹고 잠자서 몸이 잘 사는 것이나 날마다 꿈을 꿔서
마음이 잘 사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이중 어느 한 개만 갖고는 사람이 사람답
게 살아갈 수 없거든요.
하루 세 번, 꿈이 뭐니?
좀 더 설명을 해볼게요. 철학자 베이컨이 한 말인데요. “배부른 돼지보다 차라리 배고
픈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몸만 잘 먹어서 배부른 것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마
음이 배부를 수 있게 늘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이 되라는 뜻인데요. 나는 이
말에 완전히 다 찬성할 수가 없네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은 이것대로 인생의 큰 목
적이거든요.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만 또한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거든요.
먹는 것이 즐거움이고 자는 것이 즐거움이에요. 이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고 생각해요. 요즘엔 덜 쓰는 인사말이지만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하루 세 번
이렇게 물어봤어요. “밥은 먹었니?” 혹은 “진지 드셨어요?” 하고요. 이 인사말은 하루
세 끼의 밥을 굶지 않고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이고요. 또 밥을 잘 먹는 것이 사람이 살
아가는 인생의 소중한 목적인데 그걸 잊어먹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져서야 밥을 찾는 것이 아니라도, 즉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하루
세 번은 밥을 먹어야지.” 하고 먼저 생각하라는 뜻을 가진 인사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원하는 사람을 말릴 것까지는 없지
만 그렇다고 ‘배부른 돼지’를 나무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배부른 돼지’는
배가 부르게 잘 먹고 또 잘 자서 살아가는 목적을 잘 이루고 있으니까요. 물론 바라기
는 우리 모두가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겠지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서 꿈도
잘 꾸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피해야 할 것은 ‘배고픈 돼지’가 되어버리는 것이겠고요.
밥 먹기와 잠자기를 잘 안 해 버릇하고 꿈꾸기도 잘 안 해 버릇하는 사람이겠지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만 하는 ‘배부른 돼지’나 생각하고 상
상하고 꿈꾸는 것만 잘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각자 반쪽만 하고 사는 거랍니다.
행복한 상태라고 할 수 없지요. 둘 다 고르게 해야 좋아요. 고루고루 잘하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혼자 노력도 해야 하지만 부모님이 선생님이 친
구가 옆에서 같이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밥은 먹었니?” 하고 누군가 여러분에게 하
루 세 번 물어보는 것입니다. 도와주려고요. 그런데 “꿈이 뭐니?” 하고 누군가 여러분
에게 하루 세 번 정도 물어보는지 궁금하네요.
그래, 꿈꾸는 버릇을 들여봐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처럼 꼭 어떤 대답
을 듣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너 혹시 오늘 꿈꾸는 것 까먹지는 않
았니?” 하고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왜 누군가 곁에서 이렇게 일깨워줘야 할까요?
여러분은 배고파지니까 저절로 밥을 찾아 먹는다고 생각하고 졸리니까 저절로 잠을
자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른들을 보세요. 하루 한 끼만 먹는 어른도
있고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만 자고 일만 하는 어른도 있어요. 앞에서 말했지만 이러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겠지요. 밥 먹고 잠자는 것의 중요함을 자꾸 까먹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밥은 먹었니?” 하고 누군가 옆에서 일깨워줘야 해요. 마찬가지예요. 꿈꾸
는 것도 누군가 늘 일깨워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꿈을 안 꿔 버릇하게 됩니다. 밥 먹고
잠자고 꿈꾸는 것은 모두 날마다 생각을 해서 실천해야 하는 연습 같은 것이기 때문이
에요.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매일 규칙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쌓아올려서 그
실력으로 치러야 결과도 좋지요. 즉 날마다 공부 연습을 반복하는 것 말입니다. 가끔
은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성적을 조금 올리기도 하지만, 밥 먹고 잠자고 꿈꾸는 연습
은 절대로 벼락치기로 되지가 않는답니다. 꿈을 잘 꾸는 사람은 늘 꿈꾸는 연습을 하
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꾼 꿈을 꼭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꾸는 버릇을 들여야
꾸었던 꿈들만큼 내가 그 꿈들을 닮아가며 성장하기 때문이고요.
여러분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든 대학에 가지 않고 곧바로 현장에서 실력을 닦
든 또 장차 어떤 직업을 갖든, 일찍부터 이 꿈 저 꿈 꿈꾸는 연습을 계속해서 날마다 꿈꾸
는 버릇이 든 사람이 되면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씩씩하게 자신이 행
복하게 걸어갈 길을 찾아낼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꿈꾸기가 곧 길 찾
기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어본 만큼 그 경험을 가지고 길을 찾아내는 것이거든요.
날마다 꿈꾸고 또 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꿈꾸기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봅시다. 앞에서 꿈꾸는 것이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또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큰 변신을 상
상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여기서 변신變身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옮기면 탈바꿈, 이
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탈바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의 모양이나 형태를 바
꿈”이라고 나오네요. 탈바꿈 단어에 대해 생물학의 설명을 보태면 “동물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하는 데에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크게 형태를 바꿈”이라고 나오고요.
어떤가요,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나비를 떠올려보세요. 처음에는 알이었다가 애
벌레로 다음엔 번데기 상태가 되었다가 갑자기 날개가 달린 화려한 색상과 신비한 형
태의 나비로 한순간에 탈바꿈을 해서 하늘로 훌훌 날아오르잖아요. 상상해보세요.
꼼짝없이 한자리에서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로 지내는 시간 동안 그 안에서 놀라운
나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것이 탈바꿈이에요. 앞에서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
신하는 것에 비하면 번데기가 나비로 바뀌는 것은 몇 백배 더 큰 변신입니다. 알은, 애
벌레는, 번데기는 과연 무슨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역시 나도 모릅니다만 궁
금해서 여러분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대신 나는 그냥 이렇게 멋대로 상상을 해봐요. 알 속에서, 애벌레 속에서, 번데기 속
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날마다 계속 꾸고 또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요. 아니 어쩌면 나
비의 모습을 정확하게 상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인데요, 실은 그 비슷한 무엇을 날마
다 꿈꾸고 또 꿈꾸면서 이런 날개 저런 몸통 자꾸 꿈을 꾸다보니 어느 한순간 나비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라고요. 그렇게 이것저것 비슷하게나마 꿔 버릇한 꿈들이
알 속에서, 애벌레 속에서, 번데기 속에서 합쳐지고 비벼지면서 나비가 된 것이라고요.
꿈도 몰아서 벼락치기로 꾸려고?
여러분의 꿈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꿈꾸기는 그냥 방 안에서 혼자 공상을 하
거나 책만 보고 그친다면 아무 것도 안 되겠지요. 요즘 청소년들은 미래의 꿈이 선생
님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는데, 이것도 청소년들이 날마다 늘 만나고 겪어
보는 사람이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같아요. 여러분이 무슨 꿈
을 꾸든, 꿈을 꾼다는 것은 그 꿈과 가장 닮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보고 물어
보고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하는 것을 같이 해보는 경험을 말하는 것이에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새로운 경
험을 많이 해봐야, 즉 꿈꾸기를 계속해야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좋은지를 스스
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중단하거나 빼먹고서 혹은 뒤에 하면 되지 하고 미루
어 놓고서 당장은 시험 공부만 열심히 해서 높은 성적을 내고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하면 꿈꾸기를 할 줄 모르게 될 수 있어요. 꿈꾸기의 실마리가 되
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훗날 한데 몰아서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엔
꿈꾸는 것을 까먹게 되고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되고 말아요.
말했지요. 하루 한 끼만 먹고 살면서 그동안 안 먹었던 과거의 끼니를 다 모아서 훗
날 한꺼번에 백 끼 먹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 안 잤던 잠들을 다 모아서 한꺼번에 백 시
간 잘 수 있을까요? 꿈도 같아요. 날마다 꿔 버릇 안 하고는 그동안 안 꿨던 꿈들을 한
데 모아서 백 가지 꿈을 한꺼번에 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린이 시절에, 청소년 시
절에, 청년 시절에 해보아야 할 백 가지 이상의 작고 큰 다양한 경험들을 빼먹고 나이
를 먹어서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싫어요, 몰라요, 그냥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관한 생각의 틀을 제시해주는 탁석산 선생님의 이야기를 빌려
올게요. 아래 인용은 탁석산의 ‘직업에 관한 청소년 고찰’ 시리즈 책에 있는 것으로 1
탄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와 2탄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창비)에서 옮겨
온 겁니다. 1탄 33쪽에 실린 ‘소망, 적성, 실현 사이 괴리가 있다’에 나오는 표랍니다.
여러분도 바라기는 장차 A 유형에 속하는 것일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관심과 맞는지 안 맞는지도 알게 되었고, 또 내
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꾸준하게 길러간다면 말이지요. 반대로 우리 모두가
피하고 싶은 유형은 H일 겁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 적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내가 해내기 위해 실력을 쌓아가는 연습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내 자녀와 학생이 A 유형이 되기를 원하지만,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실은 H 유형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서 어른들 걱정이
꽤 많아요.
여러분도 인터넷이나 방송, 신문을 통해 그런 걱정을 전하는 뉴스를 종종
접해보았을 겁니다. 싫어요, 몰라요, 그냥요. 어른들이 “꿈이 뭐니?” 물어보거나 “이
것을 해볼래?” 권유했을 때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반복하는 답변이 이
세 마디 같은데요, 청소년들은 왜 이런 반응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나는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날마다 꿈을 꿔 버릇하지 않아서입니다. 날마다 꿈을 꾸게 만
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라면 태어나자마자 “나는 이
것이 하고 싶다!”면서 바라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태어나서 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의 시기를 겪어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만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을 하게 되면서 차츰차츰 “이것을 하고 싶다.”거나 “저것
도 하고 싶다.”거나 “이것을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것을 더 하고 싶었다.”
거나 “나중에 보니 이것과 저것을 합쳐 놓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거나 하고 알아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이 경험들을 어릴 때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싹 빼버린
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보고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르겠다.”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뭐든지 해봐, 뭔가 찾게 될 거야
여러분이 혹시 이런 상태라면 음, 좀 걱정이 드네요. 그런데 이런 걱정은 어른들한테
더 많아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라는 공부 열심히 했고, 바라는 대학
에 들어갔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회사에 취직해서 높은 자리까지 빨리 올라간 어른인
데도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표정
이 어두운 것 말이에요. 앞으로 살날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더 적다고 볼 만큼 나이
를 먹었으니 이젠 하고 싶은 것을 안다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나는 이런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지금까지 안 해 버릇했던 작은 것들을 해보세요. 하루 반나절
동안 동네 근처의 숲길을 걸어도 좋고요. 꽃꽂이를 해보아도 좋고요. 오랜 시간 안 만
났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뭔가를 찾게
될 거예요.” 이렇게 하면 뭔가를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꿈꿔 버릇하게 되
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살날이 훨씬 더 많지요. 40~50대 어른들은 물론이고 60~70대의
나이든 어른들도 새로운 꿈을 꾸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에 비하면 여러분은 아휴, 뭐
든지 해보세요.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이런 질
문을 할 줄 알게 되면 여러분은 아주 잘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
데 내가 이것을 하게 된다면 누가 기뻐할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을 계속 하다보면 조금 탈이 날 수가 있어요. 나는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인데
그것이 내 친구나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을 때 마음이 좀 아
파질 것이거든요. 그럼 탈이 나지요. 너무 탈이 심하게 나서 시름시름 앓게 되면 안 되
겠지만, 분명하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 탈이 아주 소중한 진짜 경험이라는 것
입니다.
앞서 꿈꾸기란 큰 변신을 상상하는 것이고 큰 변신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탈바꿈이라고 했잖아요. 탈바꿈은 어쩌면 내 몸과 마음에 탈이 나서 그 탈 때문에 뭔
가가 나에게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뜻으로 탈바꿈이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 그런데 이것은 나이를 좀 먹은 나도 쉽지 않아요. 단지 어린
이 때, 청소년 때, 청년의 시기에 그런 경험을 조금씩 먼저 해보면 여러분이 내 나이 비
슷한 때가 되면 훨씬 더 잘 알게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기를…
이제 이야기를 마쳐야겠어요. 여러분이 지금 바라는 앞날의 내 모습, 나의 진학과 진
로, 내가 하게 될 직업을 찾아가는 이 모든 길 찾기가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
는 다양한 꿈꾸기,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만 잘 기억해주면 좋겠네요.
끝으로,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지만 어른 티를 내면서 내 나름
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방법 세 가지를 추천할게요.
하나는 이것저것 다른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는 경험이에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
의 이야기, 다른 사람이 겪어본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서 직접 많이
들어보는 경험이에요. 마지막 하나는 친구들과 여럿이서 같이 놀든 공부하든 색다른
것을 시도하든 어울려보는 경험입니다. 내 충고가 맘에 들지는 모르겠네요. 긴 이야
기를 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 보내면서 꿈을 꾸고 사나요?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하나요? 여러분
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물었더니 어떤 청소년은 “꿈꿀 시간이 없어요.” 하고 말
하더군요. 잠을 푹 자야 꿈을 꿀 텐데 잠잘 시간이 늘 부족하다면서 졸린 눈을 부비더
라고요. 그래요. 매일 잠을 달게 푹 자야 꿈도 꾸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야 꿈에 대해 생각도 하고 그러는 것인데 말입니다.
다들 잠을 푹 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선은 꿈꾸는 것을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
는 것’이라고 해봅시다. 그럼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래요.
아, 누군가 바로 말해주네요. “학교 안 가고 아침잠을 푹 잤으면 좋겠어요.” 또 들리는
군요. “며칠 전에 시험 본 것 같은데 금세 또 시험이에요. 시험 좀 안 보면 안 되나요?”
이것도 바라는 것은 맞아요. 지금 하기 싫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피하고 싶다고 바라
는 마음이니까요. 하지만요, 이렇게 ‘당장 피하고 싶다며 바라는 마음’과 ‘꿈을 꾸면
서 바라는 마음’은 많이 다릅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또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큰 변신을 상상하는 것이
에요. 상상이 크면 클수록 변신도 커지겠지요.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나오지요. 여자
가 남자로 변신하고 남자가 여자로 몸이 바뀌는 이런 것이 상상입니다.
참, 변신 알지요? 이미 말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끼
손가락 한 마디 크기도 안 되는 작은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팔다리도 없이 꼬물꼬물 물 속을 움직이는 올챙이 자신이 장차 커서 팔다리
도 생겨나고 여기에서 번쩍 하고 저만큼 멀리 뛰어오르는 개구리로 변신한다는 것을
알까요, 모를까요? 나도 잘 모릅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넘어갑시다
꿈을 꾸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냐
상상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이 변신하여 지금과 꽤나 다르게 바뀌어 있는 미래의 나,
이것이 꿈을 꾸면서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어른은 이렇게도 말하더군요. 이룰 수 없
는 꿈은 꿀 필요가 없다고요. 이룰 수가 없는데 꿈만 꾸면 실망감만 커지고 시간만 낭
비하는 것이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꿈을 꾸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그럼 꿈을 왜 꿀까요? 꿈을 꾼 만큼 꿈을 닮아가기
때문이에요.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이런 꿈도 꾸고 저런 꿈도 꾸고 해서 이것저
것 꾸었던 꿈들이 내 몸 안에 들어와서 내 모습이 그 꿈들을 닮아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를테면 “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꿈이 지금은 또 바뀌어 있을 겁니다. 그동안 한두 번 바뀐 게 아니겠지요. 그래
요. 꿈은 계속 바뀌는 것이에요.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 즉
꿈이 바뀌고 또 바뀌는 것이 어린이의 모습이잖아요. 이렇게 날마다 바뀌던 꿈이 한
달, 일년, 삼년, 십년씩 점점 더 띄엄띄엄 바뀌지 않게 되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데요, 이것은 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른 중에서도 어린이나 청소년보다 더
많이 꿈꾸면서 계속 새로운 꿈을 꾸는 어른도 많아요. 여러분은 더 많이 더 새롭게 꿈
꾸는 어른이 될 수 있답니다.
그럼 계속 꿈을 꾸는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그냥 공상을 많이 해서 기분
이 좋아지려고 일까요?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유는 이래요. 사람은 다음 두 가지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데요, 하나는 밥을 먹고 잠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밥을 계속 안 먹거나 잠을 계속 안 자면 몸이 병들지요. 꿈도 계속 안 꾸
면 마음이 병이 들어요. 날마다 밥 먹고 잠자서 몸이 잘 사는 것이나 날마다 꿈을 꿔서
마음이 잘 사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이중 어느 한 개만 갖고는 사람이 사람답
게 살아갈 수 없거든요.
하루 세 번, 꿈이 뭐니?
좀 더 설명을 해볼게요. 철학자 베이컨이 한 말인데요. “배부른 돼지보다 차라리 배고
픈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몸만 잘 먹어서 배부른 것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마
음이 배부를 수 있게 늘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이 되라는 뜻인데요. 나는 이
말에 완전히 다 찬성할 수가 없네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은 이것대로 인생의 큰 목
적이거든요.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만 또한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거든요.
먹는 것이 즐거움이고 자는 것이 즐거움이에요. 이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고 생각해요. 요즘엔 덜 쓰는 인사말이지만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하루 세 번
이렇게 물어봤어요. “밥은 먹었니?” 혹은 “진지 드셨어요?” 하고요. 이 인사말은 하루
세 끼의 밥을 굶지 않고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이고요. 또 밥을 잘 먹는 것이 사람이 살
아가는 인생의 소중한 목적인데 그걸 잊어먹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져서야 밥을 찾는 것이 아니라도, 즉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하루
세 번은 밥을 먹어야지.” 하고 먼저 생각하라는 뜻을 가진 인사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원하는 사람을 말릴 것까지는 없지
만 그렇다고 ‘배부른 돼지’를 나무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배부른 돼지’는
배가 부르게 잘 먹고 또 잘 자서 살아가는 목적을 잘 이루고 있으니까요. 물론 바라기
는 우리 모두가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겠지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서 꿈도
잘 꾸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피해야 할 것은 ‘배고픈 돼지’가 되어버리는 것이겠고요.
밥 먹기와 잠자기를 잘 안 해 버릇하고 꿈꾸기도 잘 안 해 버릇하는 사람이겠지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만 하는 ‘배부른 돼지’나 생각하고 상
상하고 꿈꾸는 것만 잘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각자 반쪽만 하고 사는 거랍니다.
행복한 상태라고 할 수 없지요. 둘 다 고르게 해야 좋아요. 고루고루 잘하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혼자 노력도 해야 하지만 부모님이 선생님이 친
구가 옆에서 같이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밥은 먹었니?” 하고 누군가 여러분에게 하
루 세 번 물어보는 것입니다. 도와주려고요. 그런데 “꿈이 뭐니?” 하고 누군가 여러분
에게 하루 세 번 정도 물어보는지 궁금하네요.
그래, 꿈꾸는 버릇을 들여봐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처럼 꼭 어떤 대답
을 듣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너 혹시 오늘 꿈꾸는 것 까먹지는 않
았니?” 하고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왜 누군가 곁에서 이렇게 일깨워줘야 할까요?
여러분은 배고파지니까 저절로 밥을 찾아 먹는다고 생각하고 졸리니까 저절로 잠을
자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른들을 보세요. 하루 한 끼만 먹는 어른도
있고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만 자고 일만 하는 어른도 있어요. 앞에서 말했지만 이러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겠지요. 밥 먹고 잠자는 것의 중요함을 자꾸 까먹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밥은 먹었니?” 하고 누군가 옆에서 일깨워줘야 해요. 마찬가지예요. 꿈꾸
는 것도 누군가 늘 일깨워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꿈을 안 꿔 버릇하게 됩니다. 밥 먹고
잠자고 꿈꾸는 것은 모두 날마다 생각을 해서 실천해야 하는 연습 같은 것이기 때문이
에요.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매일 규칙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쌓아올려서 그
실력으로 치러야 결과도 좋지요. 즉 날마다 공부 연습을 반복하는 것 말입니다. 가끔
은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성적을 조금 올리기도 하지만, 밥 먹고 잠자고 꿈꾸는 연습
은 절대로 벼락치기로 되지가 않는답니다. 꿈을 잘 꾸는 사람은 늘 꿈꾸는 연습을 하
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꾼 꿈을 꼭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꾸는 버릇을 들여야
꾸었던 꿈들만큼 내가 그 꿈들을 닮아가며 성장하기 때문이고요.
여러분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든 대학에 가지 않고 곧바로 현장에서 실력을 닦
든 또 장차 어떤 직업을 갖든, 일찍부터 이 꿈 저 꿈 꿈꾸는 연습을 계속해서 날마다 꿈꾸
는 버릇이 든 사람이 되면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씩씩하게 자신이 행
복하게 걸어갈 길을 찾아낼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꿈꾸기가 곧 길 찾
기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어본 만큼 그 경험을 가지고 길을 찾아내는 것이거든요.
날마다 꿈꾸고 또 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꿈꾸기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봅시다. 앞에서 꿈꾸는 것이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또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큰 변신을 상
상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여기서 변신變身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옮기면 탈바꿈, 이
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탈바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의 모양이나 형태를 바
꿈”이라고 나오네요. 탈바꿈 단어에 대해 생물학의 설명을 보태면 “동물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하는 데에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크게 형태를 바꿈”이라고 나오고요.
어떤가요,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나비를 떠올려보세요. 처음에는 알이었다가 애
벌레로 다음엔 번데기 상태가 되었다가 갑자기 날개가 달린 화려한 색상과 신비한 형
태의 나비로 한순간에 탈바꿈을 해서 하늘로 훌훌 날아오르잖아요. 상상해보세요.
꼼짝없이 한자리에서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로 지내는 시간 동안 그 안에서 놀라운
나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것이 탈바꿈이에요. 앞에서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
신하는 것에 비하면 번데기가 나비로 바뀌는 것은 몇 백배 더 큰 변신입니다. 알은, 애
벌레는, 번데기는 과연 무슨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역시 나도 모릅니다만 궁
금해서 여러분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대신 나는 그냥 이렇게 멋대로 상상을 해봐요. 알 속에서, 애벌레 속에서, 번데기 속
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날마다 계속 꾸고 또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요. 아니 어쩌면 나
비의 모습을 정확하게 상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인데요, 실은 그 비슷한 무엇을 날마
다 꿈꾸고 또 꿈꾸면서 이런 날개 저런 몸통 자꾸 꿈을 꾸다보니 어느 한순간 나비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라고요. 그렇게 이것저것 비슷하게나마 꿔 버릇한 꿈들이
알 속에서, 애벌레 속에서, 번데기 속에서 합쳐지고 비벼지면서 나비가 된 것이라고요.
꿈도 몰아서 벼락치기로 꾸려고?
여러분의 꿈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꿈꾸기는 그냥 방 안에서 혼자 공상을 하
거나 책만 보고 그친다면 아무 것도 안 되겠지요. 요즘 청소년들은 미래의 꿈이 선생
님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는데, 이것도 청소년들이 날마다 늘 만나고 겪어
보는 사람이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같아요. 여러분이 무슨 꿈
을 꾸든, 꿈을 꾼다는 것은 그 꿈과 가장 닮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보고 물어
보고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하는 것을 같이 해보는 경험을 말하는 것이에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새로운 경
험을 많이 해봐야, 즉 꿈꾸기를 계속해야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좋은지를 스스
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중단하거나 빼먹고서 혹은 뒤에 하면 되지 하고 미루
어 놓고서 당장은 시험 공부만 열심히 해서 높은 성적을 내고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하면 꿈꾸기를 할 줄 모르게 될 수 있어요. 꿈꾸기의 실마리가 되
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훗날 한데 몰아서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엔
꿈꾸는 것을 까먹게 되고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되고 말아요.
말했지요. 하루 한 끼만 먹고 살면서 그동안 안 먹었던 과거의 끼니를 다 모아서 훗
날 한꺼번에 백 끼 먹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 안 잤던 잠들을 다 모아서 한꺼번에 백 시
간 잘 수 있을까요? 꿈도 같아요. 날마다 꿔 버릇 안 하고는 그동안 안 꿨던 꿈들을 한
데 모아서 백 가지 꿈을 한꺼번에 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린이 시절에, 청소년 시
절에, 청년 시절에 해보아야 할 백 가지 이상의 작고 큰 다양한 경험들을 빼먹고 나이
를 먹어서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싫어요, 몰라요, 그냥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관한 생각의 틀을 제시해주는 탁석산 선생님의 이야기를 빌려
올게요. 아래 인용은 탁석산의 ‘직업에 관한 청소년 고찰’ 시리즈 책에 있는 것으로 1
탄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와 2탄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창비)에서 옮겨
온 겁니다. 1탄 33쪽에 실린 ‘소망, 적성, 실현 사이 괴리가 있다’에 나오는 표랍니다.
여러분도 바라기는 장차 A 유형에 속하는 것일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관심과 맞는지 안 맞는지도 알게 되었고, 또 내
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꾸준하게 길러간다면 말이지요. 반대로 우리 모두가
피하고 싶은 유형은 H일 겁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 적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내가 해내기 위해 실력을 쌓아가는 연습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내 자녀와 학생이 A 유형이 되기를 원하지만,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실은 H 유형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서 어른들 걱정이
꽤 많아요.
여러분도 인터넷이나 방송, 신문을 통해 그런 걱정을 전하는 뉴스를 종종
접해보았을 겁니다. 싫어요, 몰라요, 그냥요. 어른들이 “꿈이 뭐니?” 물어보거나 “이
것을 해볼래?” 권유했을 때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반복하는 답변이 이
세 마디 같은데요, 청소년들은 왜 이런 반응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나는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날마다 꿈을 꿔 버릇하지 않아서입니다. 날마다 꿈을 꾸게 만
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라면 태어나자마자 “나는 이
것이 하고 싶다!”면서 바라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태어나서 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의 시기를 겪어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만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을 하게 되면서 차츰차츰 “이것을 하고 싶다.”거나 “저것
도 하고 싶다.”거나 “이것을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것을 더 하고 싶었다.”
거나 “나중에 보니 이것과 저것을 합쳐 놓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거나 하고 알아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이 경험들을 어릴 때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싹 빼버린
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보고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르겠다.”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뭐든지 해봐, 뭔가 찾게 될 거야
여러분이 혹시 이런 상태라면 음, 좀 걱정이 드네요. 그런데 이런 걱정은 어른들한테
더 많아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라는 공부 열심히 했고, 바라는 대학
에 들어갔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회사에 취직해서 높은 자리까지 빨리 올라간 어른인
데도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표정
이 어두운 것 말이에요. 앞으로 살날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더 적다고 볼 만큼 나이
를 먹었으니 이젠 하고 싶은 것을 안다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나는 이런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지금까지 안 해 버릇했던 작은 것들을 해보세요. 하루 반나절
동안 동네 근처의 숲길을 걸어도 좋고요. 꽃꽂이를 해보아도 좋고요. 오랜 시간 안 만
났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뭔가를 찾게
될 거예요.” 이렇게 하면 뭔가를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꿈꿔 버릇하게 되
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살날이 훨씬 더 많지요. 40~50대 어른들은 물론이고 60~70대의
나이든 어른들도 새로운 꿈을 꾸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에 비하면 여러분은 아휴, 뭐
든지 해보세요.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이런 질
문을 할 줄 알게 되면 여러분은 아주 잘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
데 내가 이것을 하게 된다면 누가 기뻐할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을 계속 하다보면 조금 탈이 날 수가 있어요. 나는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인데
그것이 내 친구나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을 때 마음이 좀 아
파질 것이거든요. 그럼 탈이 나지요. 너무 탈이 심하게 나서 시름시름 앓게 되면 안 되
겠지만, 분명하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 탈이 아주 소중한 진짜 경험이라는 것
입니다.
앞서 꿈꾸기란 큰 변신을 상상하는 것이고 큰 변신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탈바꿈이라고 했잖아요. 탈바꿈은 어쩌면 내 몸과 마음에 탈이 나서 그 탈 때문에 뭔
가가 나에게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뜻으로 탈바꿈이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 그런데 이것은 나이를 좀 먹은 나도 쉽지 않아요. 단지 어린
이 때, 청소년 때, 청년의 시기에 그런 경험을 조금씩 먼저 해보면 여러분이 내 나이 비
슷한 때가 되면 훨씬 더 잘 알게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기를…
이제 이야기를 마쳐야겠어요. 여러분이 지금 바라는 앞날의 내 모습, 나의 진학과 진
로, 내가 하게 될 직업을 찾아가는 이 모든 길 찾기가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
는 다양한 꿈꾸기,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만 잘 기억해주면 좋겠네요.
끝으로,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지만 어른 티를 내면서 내 나름
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방법 세 가지를 추천할게요.
하나는 이것저것 다른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는 경험이에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
의 이야기, 다른 사람이 겪어본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서 직접 많이
들어보는 경험이에요. 마지막 하나는 친구들과 여럿이서 같이 놀든 공부하든 색다른
것을 시도하든 어울려보는 경험입니다. 내 충고가 맘에 들지는 모르겠네요. 긴 이야
기를 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