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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우리사회가 낳은 교육제도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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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2 23:05 조회 9,25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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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이 안기는 일상적 씁쓸함
오늘 아침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고1인 둘째 아이 생일이라 미역국 끓이고 나물해서 모처
럼 식구들이 둘러 앉아 아침을 먹었다. 각자 나가는 시간이 달라 아침 먹는 것도 제각각인
데 생일이라 마음을 써서 다들 일찍 서둘렀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친구한테서 문자가 오는
모양이다. “야~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보냈구나~~”, “그러게~ 제법인데…” 남편도
나도 한 마디씩 했다. 둘째는 서둘러 밥을 먹더니 추리닝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숙제 빌려달라고 집 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기 전에 베끼겠다고....

둘째가 지난주에 학교에서 지구과학 숙제를 받아와서 이렇게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
리는 숙제를 내주냐고 투덜거렸다. 다큐를 보고 의견을 쓰는 건데 다행히 각종 기록물들 보
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일주일 동안 틈틈이 해서 어젯밤에 숙제를 끝냈다. 그런데 아침에 친
구가 그걸 베껴서 내겠다고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애써서 했는데 걔는 그냥 베끼
겠다는 게 말이 되니?’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아이가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겉으
로 보기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대로 베끼지는 않겠
지만 애써서 하는 애나 힘 안들이고 짜깁기하는 애나 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동안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불편한 심기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을 해봤다. 결과물에 따라 상대 평가하는 상황에
서 노력하는 아이가 잘 받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면 친구가 빌려 달라고 하는데
“안 돼! 내가 얼마나 힘들게 한 건데”라고 말할 것인가? 나도 우리아이처럼 했을 것 같다. 불
편한 마음이 있더라도. 동시에 친구에 대한 마음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도
빌려주기는 했지만 속마음까지 흔쾌하지 않았다면 다음부터는 숙제를 못 했다고 하거나
빌려주지 않을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아님 조금 덜 친하게 지내거나.

괜히 숙제 때문에 친구만 잃게 된다면 학교가 아이들에게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
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모둠별 과제물을 주고 우리 아이처럼 기록물 좋아
하는 아이는 그 방법으로, 음악 좋아하는 아이는 그런 감성으로, 과학적 호기심이 높은 아이
는 그런 방법으로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 겪어가며 알아가는 기쁨, 뭔가 형체를 만들어 가
는 기쁨을 누리게 한다면 숙제도 하고 우정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런 세상을 살게 할 기회를 주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떤 게 아이들에게
좋은 일인가 생각하기 보다는 이런 상황이니 네가 그렇게 하면 나쁜 거지 하면서 불편해 하
고 있었으니 우리가 얼마나 생각의 굴레에 갇혀 있는가?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익숙한 대로,
군중 심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함정에 빠져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삶을 그르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경쟁을 부추기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우리의 일상이 이러할진대 이런 가치를 반영하는 교육은 어떠할까? 우리 사회가 ‘살아남
기 위한’ 끝도 없는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나, 교육정책들이 나왔다 하면 아이들을 경쟁
시켜 효율성을 높이려 하는 것들뿐인 것은 같은 이유이다. 사회의 가치가 교육 속으로 들어
가고 교육이 이런 가치를 더 심화시키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어 정신이 없다고 하지만 같은 기반 위에서 방법만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니 실제
로 일관되게 경쟁과 효율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 교과부가 내놓은 <독서교육종합지
원시스템>을 보면, ‘경쟁’과 ‘효율’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지 극단의 경지를 보는 것 같
다. 초중고 아이들에게 컴퓨터에 접속하여 책 읽은 것을 평가 받고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학입시에도 반영하고 개인의 독서기록을 평생 누적 관리하겠다고 한다. 머
지않아 온 국민의 책읽기가 관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것마저 경쟁시키겠다는 것
이다.

오로지 독서를 하는 아이들 숫자를 늘리겠다는 의욕만 있지, 그것이 어떻게 해야 잘
될지 생각하지 않는 안일한 발상이다. 이것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또 긴장할 것인가? 다
른 아이보다 많이 기록해야 할 텐데. 다른 아이보다 잘 해야 할 텐데. 책 한 권을 읽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책을 더 잘 기록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어른들은 아이들 삶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효율과 경쟁 위주의 삶을 내면화 시켜
가고 있다.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들을 순례하며 이기기 위해 정답 맞추는 공부만 하고 있
는 아이들에게 책읽기마저 암기 과목을 만들어 경쟁시키려 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방법도 좋아야 비로소 원래의 의미도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을 협박하고 감시하여 빠른 성과를 내려고만 한다. 아이들의 삶이 정책의
중심에 있지 않다.

이 독서지원시스템 같은 경우도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독서 정책들에 대
해 많은 시민단체들과 아동교육 관련자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이라고 반대했는
데도 더욱 심화하고 강하게 통제하는 방법으로 나온 결정판이다. 생각을 달리 하지 않기 때
문이다. 경쟁과 효율이 아닌 인간성을 실현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 하기 때문이
다. 생각의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혀 수정하거나 보완한다는 것이 경쟁과 효
율을 심화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독서 교육의 일그러진 목적
정부가 독서를 학교 교육과정으로 들여온 것은 90년대 후반이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과 창
의력을 기르고 학력신장과 정보화 시대에 맞는 전인적 인간을 키운다는 인식을 하면서 부
터이다.

고등학교 국어교과 과목으로 독서를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독서 이론을 이해하고
독서기능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텍스트의 구조 파악과 내용의 이해’에만 주
안점을 두고 있어, 독서를 국어 과목의 연장 정도로만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서
를 통해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인다는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와서 교육부(현 교과부)의 독서교육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독서 활동과 독서
실적을 강제하겠다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다. 결국 독서 실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을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개선안>에 담았다. 학생들
의 독서 활동을 기록, 평가 그 결과가 우수한 학생이 대학진학에 유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와 연결 지음으로써 억지로라도 책을 읽히겠다는 적극적인 방침인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 입시로 매우 바쁘다. 그러므로 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
지 않는 독서를 요구한다면 학생들이 이에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약간의 강제적
인 제도와 지도가 필요하다. 그 한 예로 독서를 대학 입학시험과 연계한다면 학생들은 독서
를 매우 많이 그리고 깊게 할 것이다.”
- 노명완, <효율적인 독서교육 및 학교생활기록방안 정책 연구 보고서>

독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는 정책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등
학생들이 대학입시로 매우 바쁘기 때문에 독서도 입시와 연결시키겠다는 것은 학생들을
지금보다 더 심한 중노동에 시달리게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따르게 하겠다는 발
상이다. 지금도 바쁘다 하면서 더 쥐어짜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게다가 ‘대입’이라는
부모들의 취약점을 노려 아이들의 강제 독서를 위해 부모들도 아이들을 몰아세우는데 동
참하게 하는 것이다. 그 생각 속에 오로지 독서만 있을 뿐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하는 아이
들은 없다. 물론 ‘독서’도 결과물만 바랄 뿐 독서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는 생각이 없다. 오직 독서를 하게 하겠다는 실용의 목표만 가지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
다. 지금의 온갖 밀어붙이기식 정책과 뭐가 다른가?


진정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2004년 교육부의 이런 발표에 따라 독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각 교육청들
은 저마다 앞다투어 다양한 시책들이 내놓았다. 독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 기 보다는 오로지
다른 교육청보다 정부정책을 더 잘 실행하기 위한 시책들을 내놓은 것이다. 2005년,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학교 독서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독서지도 자료>를 개
발 배포했다.

학년별 교과별 단원별 학습도서에 대한 독서활동 프로그램과 평가, 활용방안까
지 제시했으며, 부산시 교육청은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을 개발하여 학생들이 책을 읽은 후 컴
퓨터상에서 자신의 독서활동에 대해 확인받고 결과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부산시교육청에서 실시한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은 강원대와 강원도 교육청이 공동 개발
한 것으로 2004년부터 실시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독서이력관리 및 독서인증시스템이다.

초·중·고생들이 책을 읽고 독서교육지원시스템 홈페이지에 접속해 책 내용 관련 퀴즈를
풀고 독후감을 올려 누적 관리토록 하는 것이다. 1단계에서 단답식 문항을 풀어 통과하면
(초등 10개 문항, 중고등 30개 문항을 출제해서 그중 60%를 맞추면 통과), 2단계에서 감상문
쓰기 등 독후활동을 하여 핵심단어가 들어가면 읽은 책으로 기록된다. 최근 부산시교육청
은 이 시스템 시행 이후 부산지역 초중고생 누적 독후감 수가 900만 건이 넘었다고 자랑하며
‘재미있는 책읽기’를 이끌어내고 사고력 향상에 기여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내용의 단편적 사실이나 세부적인 부분을 확인하는 단답형 문제를 풀
기 위해서는 책을 꼼꼼하게 읽는 정도로는 안 된다. 예상문제를 뽑아 연습하거나 세부적인
사항들을 구석구석 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책 읽는 즐거움, 책읽기의 풍부
함은 사라진다.

책과 세상을 연결하며 행간에서 얻는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가슴 벅
찬 설렘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소년기로 가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때에 이런 단순한 암
기 문제는 더욱 답답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니면 청소년들이 깊이 있는 사고를 못
하고 유치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핵심단어가 들어간
독후감으로 책 읽은 것을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누가 자유로운 감상을 쓸 수 있겠는가? 정답
이 있는 독후감이라면 독후감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 개인
이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험이다. 그것을 독후감의 형
태로 표현할 수도 있고, 혹은 먼 훗날 어떤 상황에서 그 감동이나 기억이 되살아나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획일화 한다면 독자는 이미 생각이 있는 개인으로 존
재하는 것이 아니고 획일화된 집단의 생각을 강요받아 암기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거기에
서 어떻게 사고력이 향상되었다는 결론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미 사고력 향상이라는 결론
을 가지고 만든 시스템을 더욱 심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전략일 뿐이다.

오히려 이런 제도 때문에 아이들은 시간과 정신을 혹사당하고 있다. 자유로운 책읽기를
통해 폭 넓은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문제풀이와 독후활동을 해주는 사교
육기관을 찾아 헤매야 한다. 부모들은 사교육비로 등골이 휘어지면서도 아이들 스펙 관리
를 위해 온 힘을 쓸 것이고, 더 좋은 사교육 기관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 보다 발빠르게 움직
이고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파행에도 불구하고 부산시교육청
은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을 독후감 누적 건수를 내세워 강요, 관리하는 일을 더욱 확대해 나
가고 있고, 이런 성과물을 낼 수 있는 정책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2009년, 부산시교육청은 이런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의 독서이력 관리를 바탕으로 부산
·울산·경남(동남권) 19개 대학과 대학입학전형에 학생의 다양한 독서활동을 반영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공동선언을 했다. 또한 부산시교육청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의 활용과 더
불어 경상남도교육청에서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독서이력 향상을 위해
도교육감 특별 강조 사항으로 2009년도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인증제 시행
계획을 발표, 시행하고 있다.





독서교육을 생각한다면 독서의 본질부터 재고해야
이번에는 교과부가 전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직접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6월에 발표
하여 추진하고 있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 바로 부산시교육청의 독서교육지원시스
템에 학교도서관 업무지원시스템(DLS)의 기능을 통합한 것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독
자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독서교육지원 시스템을 전국의 아이들, 나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의 기록을 평생 관리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삶, 독서의
자유마저 통제하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서를 대학입시를 위한 평가의 도구로 삼으면서 독
서의 강제성은 더욱 높아져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형식적이고 눈 속임식 독서기록을 하게 하
려는 것이다.

스스로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예상문제를 풀어 독서 권수를 늘리거나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멋진 활동지를 남기는데 집중하게 할 뿐이다. 이것은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
템이 아니라 독서를 ‘완전 방해하는’ 종합지원시스템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초중고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저당 잡히고 있는 아이들에게 독서만 방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을 더욱더 성과위주로, 경쟁 지상주의로 몰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는 재미는 자발적일 때 가능한데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은 아이들에게서
그 재미를 빼앗아 버린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때 읽어야 책의 재미에 푹 빠지는데 권
장도서들 중에서 그것도 평가나 독후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아이들은 책의 재미를 맛
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성세대가 받은 감동만을 정답으로 정해 놓고 암기하게 한다면
기존의 가치관이나 관습을 뛰어넘는 폭넓은 경험에서 느낄 수 있는 책의 재미는 알지 못하
게 된다.

교과부가 아이들의 독서교육을 생각한다면 독서의 본질부터 생각해야 한다. 자유
로운 책읽기가 되어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이 작가의 이야기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읽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감동도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자신이 받은 감동에 따라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돌아보며 내면의 힘을 쌓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이 없다면 책읽기는 그저 글자 읽기에 불과하다.
교과부가 아이들에게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면 무엇 때문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사고를 통제하고 자기검열하게 하는 시스템으로는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아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독서를 강조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
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독서가 너무나 중요해서 강제
로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 독서를 할 수 있도
록 도와야겠다고. 그러면 방법도 나올 것이다. 독서가 우리 아이들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
을지, 그런 삶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말이다.

다시 학교도서관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다
교육부(현 교과부)가 2002년 학교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
한 바 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 방안>의 취지에 따르면, 사회가 산업경제 패러다임에서 지
식경제 패러다임으로 바뀌면서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의 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데다 그 지식의 수명
도 무척 짧고, 직업의 변화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식을 쌓는 것보다 지식을 활용
하는 능력이 더 중요시 된다. 교육에서도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하기보다는 스스로 유연하
게 생각하는 힘과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답을
맞히어 통과해야 하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의 테스트 방식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스스
로 생각을 하고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정답을 찾아가려 노력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
다. 학교교육에 있어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
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모든 과목이 가르쳐야 하는 분량이 정해져 있고, 암기식 답으로 평가해 아이들의 변별력
을 갖겠다고 하는 제도에서는 교과목에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서 가
능하다고 본 것이다. 학교도서관의 자료와 운영의 원리를 보면 인간의 의식이 어떤 외적 요
인으로부터도 지배당하거나 억압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독서 행위에 관한 이야
기이고, 도서관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조장되거나 전통
적으로 내려오는 구조적인 악습, 또는 교육 이념이나 정책에서 생기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
유로운 인간형을 길러내는 것이 학교도서관의 역할이라고 한다. 그 중심에 책이 있기 때문이
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인간답게 사는 것,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생각과
노력들을 해왔다. 아직도 정답은 없지만 그렇게 성찰하고 노력해 가는 과정이 모두를 위한
일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
런 지혜들이 담겨 있는 책을 보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생각을 공유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얼마나 자유롭게 깊고 풍부한 삶을 경험 할 수 있겠는가?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고 하고, 여성들에게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도 대학 공간 안에서 만큼은 히잡을 쓰지 못 하게 한다고 한다. 공부
하는데 종교나 사회적 관습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회가 현재 추구하
고 있는 가치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최선인지를 늘 점검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의미가 사람을 위한 일이고, 이것은 인류 전체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일임
을 알 수 있다.

우리 교육 전체가 지향해야 할 일이지만 당장은 최소한 누구나 책 읽을 자유
를 누릴 수 있는 공간, 학교도서관만큼은 제대로 지켜줘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독서를 강조하며 만든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학교도서관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고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오로지 권장 되고 있는 책이나 사교육 기관에서 요점 정리, 혹은 예상
문제 풀이로 널리 알려진 책을 빌려보는 자료창고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 더 심하게는 사교
육 기관을 순례하는 시간이 길어져 학교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없을 지도 모른다.


학교도서관 활성화 절실
정부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것인가? 모든 아이들이 책과 가
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학교도서관을 활성화 하면 된다. 정부에서 학교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그동안 학교마다 도서관을 만들 수 있게 지원했다면 이제 학교도서관이 제대로 기능
을 하면 된다. 학교도서관은 부모의 조건에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학교도서관이 단지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이들이 오고
싶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한다. 쉽게 갈수 있는 곳에 쾌적하게 공간이 마
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과 책, 교육, 도서관의 역할을 잘 이해하는 사서교사가 있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쾌적한 도서실에 어떤 책을 꺼내 보아도 무방한 책이 있고 거기에 사서교사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어린이책을 즐겨 읽어 학생들이 책이나 자료를 잘 찾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
와야 한다. 거기에 학부모나 자원활동가들이 있어서 사서교사와 함께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
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읽기를 부추길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안내하고 전시해야 한다.

이런 환경이 되면 아이들은 자유롭고 즐겁게 책을 보며 세상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경험
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책읽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은밀한 경험을 쌓
고, 때로는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 해 나가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나아가 책을 통해, 공부를 통해 어떤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옳은 답을 찾아가기 위해 노
력하는 것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할 수 있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독서를 통해 아이들의
풍부한 삶을 보장해줄 것이다.

아침에 우리 아이 친구를 원망했던 불편한 마음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잘못된 가치, ‘경쟁’과 ‘효율’이라는 굴레에 갇혀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안이함이 낳은
마음이다. 아이 친구가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기록한다고 우리 집에 많이 있는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그 시스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책읽기를 할 수 없다는 걱정보다는 우리 아이보
다 많은 양을 기록할까봐 걱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
을 만들어 놓고 억지로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편법만 터득하게 된다. 진실한 삶을 살 수 없
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즐기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유와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서
좋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되는 길이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사고력, 창의력을 길러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려면
그럴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면 된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돌려주
어야 한다. 모두다 책을 좋아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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