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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 되고 싶은 거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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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31 17:31 조회 7,7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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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엄마 말 안들어, 알잖아
요즘 10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보면 도대체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글쎄,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계속 연습을 하고 있고, 학교를 그만두면 어떻겠느냐고 상담을 하는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님을 통해서 듣기도 한다. 지금의 10대들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은 너무 어른의 눈으로 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가끔 든다.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하고 싶은 게 어른들이 눈에 ‘일’ 같아 보이지 않거나 혹은 같잖아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 설령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좀 어떤가? 패기, 열정, 꿈, 도전, 이런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런 근대주의 국가를 건설할 때의 시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것인가? 하고 싶은 거 없으면, 뭐 죄 짓는 건가? 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 길을 왜 10대 때 결정해야 하는 건가?

한국이 무슨 진짜 마에스트로들이 장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인가? 아니, 그렇다면 자기들은 10대 때 무슨 대단한 결정을 해서 장인들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자기들도 엄청난 결정을 10대 때 했을까? 만약 그렇게 선택한 대학의 전공이 진짜 자기의 삶이 되었다면 너무 ‘범생이’처럼 밋밋한 삶을 산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10대 때 별 생각 없이 살았거나, 아니면 그때 했던 결심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내 경우부터 생각해보자. 나는 10대 때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글쓰기와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무협지도 열심히 읽었다. 10대 시절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은 서원평이 짧은 1년을 격동의 시간으로 살다가 결국 10대에 목숨을 읽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 『군협지』라는 무협지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딱 두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번이 바로 이 『군협지』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다. 그렇다고 사회적 인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은 대학에 간 다음에나 읽었고, ‘난쏘공’ 역시 대학에 들어가서 읽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저 도서관에서 남들 안 보는 옛날 소설책이나 읽는 게 즐거웠던 그런 평범한 남학생이었던 것 같다. 연애는? 내 주변의 친구들은 그때에도 가슴 아픈 사랑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나는 짝사랑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첫사랑은 학력고사를 끝내고 나서 알게 된 어떤 피아니스트였다. 그렇다면 전공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있었나? 난 경제학이 뭔지도 모르고 경제학과에 갔다.

경제학을 진짜로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대학교3학년 때의 일이다. 국문과로 가기에는 부모들과 친척들의 반대를 뚫을 자신이 없고, 내 돈으로 대학 다닐 돈을 마련할 자신도 없어서 그냥 점수 맞춰서 부모들 원하는 전공을 선택한, 그냥 그런 고등학생이었을 뿐이다. 법관으로 살기가 싫어서 법대는 안 갔고, 돈만 벌고 사는 삶인 것 같아 경영학도 싫었고, 손재주가 너무 없어서 의사나 엔지니어의 삶은 꿈꿔본 적도 없다. 그냥 재수할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녔는데, 선배들이랑 술 마시는 게 너무 재밌어서 ‘어디 가서 이런 사람들을 또 만날까’라는 생각에 그냥 눌러 앉았다.

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 시절까지 나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꿈을 펼쳐라!”, 이딴 소리는 나는 다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열심히? 나는 한 번도 내 삶에서 열심히 산 적이 없다. 놀고 싶으면 놀고, 남들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야 만다. 그러니 나는 누군가의 진로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 형편도 아니다. 결국 말하지 못했지만, 엄마한테 그 시절에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아마 다시 10대가 된다면 이 말을 꼭 할 것 같다.

“엄마 나, 엄마 말 안 들어, 알잖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자주인공 한결이 은찬과의 결혼을 추진하면서 엄마한테 했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고등학교 때 엄마한테 했어야 했다. 결국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 눈이 하얗게 세상을 덮던 날, 신림동 순대골목에서 소주를 잔뜩 마시고 화곡동에 있는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었다. 다음 날 “데모 하려면 호적에서 이름 빼라.”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그날이 내 삶에서 진짜 자유를 찾은 날이다. 1년 반을 집을 나와 살다가,유학 가기 전 한 달 동안 잠시 집에서 살았다. 그날이후로 나는 평생을 좌파로 살아간 것 같다. 우리 집안에서 처음 나온 좌파, 평생을 조선일보를 보는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자유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무조건 교사와 결혼하라는,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던 엄마의 꿈과 다시 한 번 부딪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교사가 아닌 환경단체의 활동가와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엄마와의 갈등은, 이제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바뀌었다. 좌파 아내와 결혼한 나는 여전히 엄마 때문에 괴롭다.

하고 싶은 거 해 , 이것도 이데올로기다
진로에 관한 얘기는 늘 화제인 것 같지만, 사실 이건 요즘 생긴 일이다. 가부장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시절에는 성공한 아버지가 아들의 진로를 결정했다. 의사 아들은 의사, 교수 아들은 교수, 법관 아들은 법관, 그리고 이도저도 아니면 행정고시 봐서 공무원,그런 방식이 내 또래의 부잣집이나 공무원 집안 친구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가끔 다른 걸하고 싶어 하면, 아버지와 싸우는 아들이 나오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여학생들은 더 간단했다. “나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했던 대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 시절에는 진로고 뭐고 그런 것도 없었고, 진로상담이나 진로교육이라는 것도 허당이었다. 점수가 어느 정도 나오는 학생들은 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서울대, 점수가 별로 안나오는 친구들 역시 절대 전문대 가지 말고 무조건 4년제,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거기에 진로교육이 무슨 필요 있었겠나.

진로가 중요해진 것은 ‘대치동 맘’ 혹은 ‘매니징 맘’현상이 생겨난 최근 수 년 동안의 일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던 아빠에서 엄마로 진로 결정의 주체가 옮겨가면서 사교육과 학과 선택에서 ‘정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교사? 교사 이야기를 듣는 엄마가 과연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기름을 쏟아 부은 것은 면접 강화라고 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이다.

이제는 중고등학생의 삶이 소위 ‘스펙화’되면서 활동이 곧 진로인 시대가 되었다. 물론 원칙대로만 적용하면, 문학회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정말 자기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았던 학생들이 더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건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학원 갈 시간 없다고 학생회 활동은 기피하던 부잣집 도련님들이 갑자기 학생회장도 되고, 글짓기 시간에도 공주님이 상을 받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입학사정권은 공정하겠는가? 면접이 있는 보다 상위권의 시험들, 예를 들면 대학원 시험이나 로스쿨 입학시험, 이런 걸 자기들은 공정하다고 하지만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시험이 나을 수도 있다. 점수가 딱 나오면 그거야 어쩌겠는가? 이래저래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컴퓨터를 더 믿게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좋든 싫든 장래 희망을 만들어내야 하고, 자기 진로에 대한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걸 혼자 하기 힘드니까, 진로 컨설턴트한데 가서 돈 주고라도 자기 희망을 디자인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장래 희망을, 진짜 자신의 희망이라고 믿고 그렇게 다짐하고 살 것이다. 그래야 대학도 가고, 엄마한테 칭찬도 받고, 선생님한테도 믿음을 얻을 테니말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그런 존재이던가?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희망은 언젠가 흔들리고,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진짜 자기 자신은 속여지지가 않는다. “난 그걸 원했어.” 그렇게 백번이고 다짐을 한다고 해도 거짓은 언젠가 자기 자신에게 “미안해. 그게 거짓말이었나 봐. 나에게 미안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 스무 살을 넘으면서 질문이 오고, 서른 살을 넘으면서 회의가 오고, 마흔 살을 넘으면서 후회가 온다. 마흔 살이 넘어서 자신이 살았던 삶을 뒤엎는 소위 ‘드롭다운’이라는 걸 하면 그래도 다행이다. 오십이 넘어가면 이제 자신의 삶이 쓰레기통으로 여겨지는 순간이 올것 같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인생이 행복하다? 그거 다 이데올로기이고, 성공한 사람들이 “사실, 저 잘 났어요.”라고 만들어내는 거짓부렁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자기 하고 싶은 걸 해서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 도와줘서 혹은 집이 부자라서, 아니면 운이 좋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백 배는 멋지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 몰라서, 그리고 때때로 진실이 아닌데도, 먹고 살려고 혹은 좀 멋있어 보이려고 약간씩은 가식적인 위선에 빠져들 때가 있기도 하다. 이런 ‘자뻑’은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데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지켜보는 사람, 특히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서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10대에게는 지나친 자학을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있다.
그렇다고 법으로 ‘자뻑’ 혹은 ‘가식적인 위선’을 금지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걸러서 들을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거 해라.” 10년 전만 해도 이 말이 워낙 10대를 통제하는 경향이 강해서, 학생들에게 ‘부모나 선생님들 아니면 학원에 휘둘리지 말아라.’ 그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 자체도 일종의 상징 자본이 되었다. “하고 싶은 거 해라.” 자본이 원하는 말 자체가 그거다. 자발적 순종을 준비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나는 이미 알아.” 그게 바로 상징적 자본이 된 시대가 아닌가? 만약 “저는 뭘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대답한다면? “너는 도대체 왜 아직도 뭘 하고 싶은지 몰라, 이 바보야!”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집에 가서 부모한테 돈 받아서 컨설턴트한테 오렴.” 이런 세상이다.

10대 후반에 대충 전 국민을 한 번 줄 세워서 그걸가지고 평생을 재단질 하는 구조가, 10대 후반에 대충 설계하고 그렇게 정한 것으로 삶을 살아라, 그것과 뭐가 다른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고단하게 평생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한 우파가 탄생하게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우파로 살아도 좋다. 그러나 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었던 것 같아’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누구나 고유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적성이 있고,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 있다, 이거야말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분업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이다. 그런게 있을 턱이 있나? 만약 우리가 농경시대에 태어났다면 최소한 ‘진로’라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자기에게 준 일대로 살아가는 것, 실제로 우린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적성, 재능, 영재……. 2011년 한국에서 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자식을 인질로 잡힌 엄마에게 돈 뜯어내는 것과, 말잘 듣고 고분고분해서 절대로 좌파가 되지 않을 그런 ‘착한 아이’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두 개의 힘이 만들어낸 기묘한 균형이자, 묘절한 이데올로기일뿐이다.

‘자기가 원하는 일.’ 이 말 속에는 “수틀리면 동료들을 다 베어죽여라!”라고 외쳤던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쟁 논리가 숨어있고, 공동체는 다 필요 없고 시장이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노동 시장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여러분들은 10대 때자신이 뭘 진짜로 원하는지 알고 있었고, 또 그때의 결심대로 삶을 사셨는가? 나는 시를 쓰면 좋겠다는 정도의 약간의 희망이 있었지만, 그게 직업에 대한 갈망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좋은 시인이 될 자신도 없었다. 경제학자가 되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지금의 내 삶,그런 생각은 10대 때는 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삶이 있는지도 몰랐다.

마음가는 대로 하세요, 컴퓨터 오락만 빼고
유학 시절에 어지간한 건 조금씩 해본 것 같다. 재미 삼아서 해킹도 좀 했는데, 나사에서 한 번만 더 몰래 들어오면 “we will trace you.”라는 경고장을 받고 그만두었다. 컴퓨터 오락도 좀 한 편이다. 현대그룹에 있던 시절, 업무가 끝나면 워크래프트 단체게임도 했고, 스타크래프트도 많이 한 편이다. 뭐든지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질리거나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는 편인데, 중독성이 있는 것들은 하면 할수록 더 재밌어진다. 필요한 일들이 재밌고 필요 없는 일들이 재미없으면 좋을 텐데, 세상일들은 그렇게 되어있지는 않다.

컴퓨터 오락만 빼고는 10대 때는 뭐든지 해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은 관리한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삶을 경영처럼 보면 진짜 맥 빠진 삶이 된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해보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게 아무 것도 없다면? 그러면 아무 것도 안 하면 될 것 아닌가?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그게 정상이다. 10대 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다는 사람, 거짓말이거나 허풍이거나 아주 이상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공부 말고는 다 재미있다는 생각, 그게 정상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혹은 자신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것, 그게 정상이다.

“저는 뭐가 될 거예요.” 이렇게 군인처럼 충일한 정신과 자기 몰두가 이미 10대에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악마가 되거나, 그 삶은 아주 비참해질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리모컨처럼 컨트롤하는 엄마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살고 있거나, 아니면 비범한 욕망의 화신일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만약 아무 곳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것, 그게 10대 때의 특권이다. 만약 신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 문제는 논리적으로 더 풀기가 쉬워진다. 설마 신이 모든 것을 예비했다고 하는데, 학원 열심히 가고, 욕망에 가득 차서 자신의 욕망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의 자리를 세상에 만들어 놓았을 리가 있는가? ‘얼리 버드’와 욕망의 화신들에게만 삶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에 나가 자빠지도록 되어 있다면, 그게 바로 악마들이 만들어놓은 지옥 아닌가? 삶은 팍팍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 정도의 지옥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공포에 쌓여있다. 그래서 10대의 꿈마저도 공장에서 만드는 것처럼 가공해서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모두 통치자와 지배자의 프로그램일뿐이다. 우리가 더 좋은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의 입에도 밥이 들어가고, 그런 사람들이 언젠가 창의적인 일들 혹은 자신만이 원하는 것을 찾았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간단하게 지옥이 된다.

하고 싶은 일 없으면 그냥 빈둥거리면서 만화책이나 보고 영화나 보시기 바란다. 그게 너무너무 지겨워져서 갑자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 그때 그걸 하면 된다. 안 되면? 또 다른 걸 하면 된다. 그걸 찾아가는 길, 그게 바로 인생이다. 그게 가능한 게 복지국가, 바로 우리가 만들려는 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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