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성장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들 - 청소년소설의 우화와 판타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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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31 16:55 조회 11,092회 댓글 0건본문
1. 청소년소설의 비약적 발전
최근 청소년소설이 보여주는 행보는 가히 ‘눈부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의 위기와
죽음을 선고한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 불씨라고나 할까. 역동적인 청소년기의 활력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해가는 청소년소설은 이 시대 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자질
을 지녔다. 이미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베스트셀러가 속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
키고 있으며, 전문 작가군의 형성은 물론 십대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
보해가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소설의 비약적인 발전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빗대어 볼 때 이례적인 사건
일 수밖에 없다. 논술 교육의 포기와 영어 위주의 교육정책이 교단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아
이들을 학업 경쟁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현 상황에서 청소년소설의 열기는 더욱 높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는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청소년소설의 주독자층이 청소
년보다는 성인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더욱 강화된 입시 경쟁과 영어 교육 열풍에 시
달리는 청소년들이 책을 읽으며 자아를 되돌아볼 조금의 시간적 여유마저 송두리째 빼앗기
고 말았다는 자조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일수록 문학의 힘은 더욱 크게 발휘된다. 청소년들의 억눌린 자아에 작
은 숨통이라도 틔워 주고 활력을 주는 게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다. 또 독자층이 청소년에 국
한되지 않고 성인에까지 널리 포진해 있다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 굳이 사양할 필요
까지는 없을 터이다.
청소년소설의 독자층이 성인에까지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과도 연
관이 있다. 원종찬은 청소년소설의 수요를 넓히는 요인으로 “성년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
고 오로지 입시에 매달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 아닌 성인이 되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성”1)
을 꼽고 있다. 또 이를 청소년소설이 성장서사를 지향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사실 성인문학에서도 성장소설은 미완의 근대성에 머물고 있다. 근대 시민계급의 내면 탐
구를 통해 성장 과정을 표현하는 독일 교양소설에서 “시민사회의 형성기와 불가분의 관계”
에 있는 교양이 “시민사회에서의 자아와 세계의 조화, 긍정적 발전을 기본항으로”2) 하고 있
음에 비해 우리는 사회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적 기준
에서의 근대 체험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정체성 있는 근대화를 체험하
지 못함으로 인해 한국의 성장소설이 그 실체를 완성하지 못”3)했으며, 이는 성장소설이야
말로 “문학의 근대성이라는 문제의 발원지인 근대적 자아의 문제가 진지하게 취급되는 장
르의 하나”4)라는 점에서 이루지 못한 근대성의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산업화를 이룩한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성장
소설은 동구권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더욱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은희경의 『새의 선물』,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등 한국 소설을 대표할 만한 굵
직굵직한 작품들이 성장소설에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은 “개인의 확대된 외부(민족, 이념)
나 밀폐된 내부(감성, 내면)가 아닌 개인과 사회의 균형과 긴장 속에서 자기 동일성을 정립
함으로써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는 작가들의 탐색의 결과물”5)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이
성장서사를 지향하는 것도, 나아가 독자들의호응을 폭넓게 받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
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원종찬, 「우리 청소년문학의 발전 양상」, 『창비어린이』, 2009. 겨울호, 214쪽. 2) 김윤식, 「교양소설의 본질」, 『한국현대소설비판』, 일지사, 1981. 278쪽. 3) 이최현주, 『한국 현대 성장소설의 세계』, 박이정, 2002, 18쪽. 4) 이보영·진상범·문석우, 『성장소설이란 무엇인가』, 청예원, 1999, 313쪽. 5) 최현주, 앞의 책, 17쪽 .
2. 청소년소설과 성장서사
더욱이 청소년소설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을 일차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즉 그
들의 성장 과정과 갈등 양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성장서사라는 특성을 띠게 된
다. 그러나 모든 청소년소설이 곧 성장소설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성장소설이 청소
년소설인 것 또한 아니다.
성장소설은 일반적으로 청소년기 아이의 내면적 성장을 다룬 소설을 일컫는데, 교양소설
(Bildungsroman), 형성소설(Novel of Formation), 입사소설(Initiation novel), 발
전소설(Entwicklungsroman) 등으로 불리는 소설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각기 발생한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점을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어느 특정한 시대
배경 속에서 주인공이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는 동안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내
면을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유형이다.6)
그러나 성장소설이 어린 주인공을 내세워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일차적으로 청소년을 대
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소년소설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성장소설은 이미
어른으로 성장한 서술자아가 자신의 과거 성장기를 되돌아보는 회고담류가 보편적인 유
형인데, 이런 유의 소설에서는 성인이 주체이며, 청소년보다는 성인 독자를 주요 대상으
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장소설과 청소년소설의 차이는 작품 속에서 관점의 차이로 드
러난다.
성장소설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기)의 경험을 성인의 시각에서 재
구성한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 반추해낸다. 성인이 된 서술자아의 경험담은 과거의 특정 시
점을 배경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에 현재의 시점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전개된다. 이
때의 거리감은 지난날의 일을 이상화하고 낭만적으로 채색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인이
된 자아가 이미 겪은 사건과 고통을 이겨낸 회상감에 젖어 과거 경험의 편린들을 재구성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독자들에게 경험자아의 청소년기 갈등과 방황이 직접적
으로 체험되기보다는 성장한 서술자아의 회고담으로 전달될 뿐이다. 가령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보면 이미 성장한 서술자인 ‘나’는 한국전쟁 후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하면서 겪
은 가난과 전후의 피폐한 현실을 회상해 가면서 과거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내고 있다. 성인
을 대상으로 한 소설에서 어린아이를 내세워 성장 과정을 반추하면서 삶의 의미를 파고드
는 이런 유의 성장소설은 성인문학에서 일반화된 양식에 속한다. 즉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
의 관점에서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6) 오한진, 『독일 교양소설 연구』, 문학과지성사, 1989, 11~28쪽. 참조. 7) 오세란,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009. 봄호, 166쪽. 8) 『장자』 <우언>편에서 ‘우언은 다른 것을 빌려서 논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즉 “우언은 우회하여 다른 어떤 것에 가탁하여 말하는 방식이다.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보편적인 것을 통해 특수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우언인 것이다.” 홍순애, 『한국 근대문학과 알레고리』,제이앤씨, 2009, 23~24쪽.
반면에 청소년소설은 등장인물인 청소년 자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탐구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현재진행형의 삶에 주목한다. 여기서의 경험자아는 어른이 된 서술자아의 기억
에서 ‘대상화’된 청소년이 아닌 현재의 삶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
을 모색해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는 “청소년소설을 규정짓는 것은 성장소설
의 형식이 아니라 청소년 화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화하려는 의지이”며 “십대인 주인공
이 주체로서 꿋꿋이 서서 자신의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지”7)가 청소년소설이 갖추
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이 지닌 ‘성장’이라는 함의는 주체와 독자 대상의 특성상 성장소설에 비
해 포괄적이며, 장르의 본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기 주인공이 삶의 도정에서 보
여주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탐색 과정이야말로 그대로 성장서사일 수밖에 없으며, 성장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서사조차도 청소년들의 내면적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게 된다.
이 글은 성장소설류의 성장서사와는 다른 각도에서 청소년들의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우화와 판타지를 활용한 청소년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당대성 논의에
힘입어 ‘지금 여기’의 청소년의 삶과 문제에 집중해온 청소년소설에서 우화와 판타지는 생
소한 영역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학 양식의 추구는 청소년소설의 폭을 넓히고 청소년들에
게 다채로운 사유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논의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3. 우화적 상상력과 내면의 성장
우화(寓話, fable)는 알레고리의 대표적인 유형으로서,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서사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화는 기원전 6세기에 이솝이 지은 동물우화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서양에서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와 루키아노스 등에 의해
이솝풍의 우화가 번창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시적 표현을 옹호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성서의 해석을 위한 수사적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많
은 우화가 나올 정도로 더욱 번성했다. 그후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문학적 형상화 방법의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우화소설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우화가 우의성을 지닌 우언(寓言)8)에 뿌리를 두고 발전해 왔는데, 최초의 우언
은 『좌전』(BC 598)이라고 하나, 이보다 널리 알려진 것은 『장자(莊子)』의 <우언> 편이다. 우
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의 설총이 남긴 「화왕계(花王戒)」를 시작으로 해서 많은 우화가 창작
되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우화소설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토끼
전」, 「두껍전」, 「장끼전」을 비롯해 「노섬상좌기」, 「서동지전」 등 다수의 작품이 창작되었고,
이러한 우화의 전통은 근대 계몽기로 이어져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김필수의 「경세종」,
흠흠자의 「금수재판」 등의 우화소설이 창작되었다.
본래 우화는 이솝우화처럼 단형의 서사가 주축을 이루어 창작되었다. 우화는 주로 동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세상의 일을 동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가탁(假託)하여 인간 세계의
본질을 신랄하게 풍자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동물 의인화와 풍자라는 우화의
특성은 그릇된 인간성과 행동에 대한 비판과 조소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려는 목적성을 띠
고 있다.
이러한 동물우화가 현실적 시대 상황에 적절히 부합하면서 소설적으로 변형된 것이 동물우
화소설이다. 따라서 우화소설은 “동물로 의인화된 다양한 현실적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성
에 내재한 약점을 교정하고 시대 정신을 신랄하게 풍자한 독특한 소설 문학이”며, “동물에
추상화되어 있는 인간의 속성을 들어 우의한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가 깃들어 있는
소설” 9)이다.
여기서 동물의 의인화는 대상 동물을 하나의 특성으로 단순화하거나 집약해 보여주며, 동
시에 인간의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즉 “관념화된 인간의 성격이 하나의 동물로 대입됨으로
써 관념은 구체적인 형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인식들이 동물을 통해, 동
물의 속성과 연관됨으로써 구체화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 의인화”10)이며, 이러한 의인화의
특성이 우화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동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본질에 대한 탐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화는 의인화를 주요 기
법으로 사용하는 동화 장르와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화와 동화는 장르적 속성상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우화에서 동물 의인화는 인간적 본질을 풍자하기 위한 서
사의 간접화 방식이다.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인화된 동물 세계를 통
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안전하고도 유감없이 현실 세계를 풍자하기 위한 서사 전
략인 것이다.
반면에 동화에서의 의인화는 아이들의 물활론적인 사고방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동식물이
나 심지어는 무생물까지도 의인화해서 인간과 똑같은 가치의 생명과 의식을 불어넣는 동화
는 우주만물의 화해와 통합을 추구한다. 의인화된 현실이긴 하지만, 인간 세계에 대립적이
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화의 풍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 - 이러한 우화적인 풍자의 세계를 터키 출신 작가인 아
지즈 네신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가령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11)을 보면,
인간 세계의 선거제도를 동물에 빗대어 인간들의 이기주의와 시기심, 인신공격 등을 적나
라하고 함축적으로 풍자해내고 있다. 즉 인간들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뽑는 것처럼 숲속의
동물 세계도 사자가 왕이었던 왕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직접 선출하기
로 하면서 벌어지는 동물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인간 세계를 풍자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동물들이 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후보자가 필요한데, 우선은 줄곧 왕
을 지낸 사자가 자연스럽게 후보가 되고, 이어 호랑이가 후보로 나선다. 곧 선거운동이 시작
되었는데 “두 후보는 틈만 나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등 격렬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었
다. 그런데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오자, 사자와 호랑이는 서로 선거에서 질
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자는 자신이 뽑히지 않을 바에야 호랑이만 아니라면
다른 누가 선출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호랑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선거유세
에서 엉뚱하게도 물소를 칭찬하기 시작한다. 이는 물소가 뽑혀도 자신들보다 못하므로 경
쟁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물소가 후보에 오르자, 이번엔 물소의 경쟁자인 하
마가 후보로 나선다. 그러곤 서로 헐뜯고 비방하다가 앞의 후보들과 같은 이유로 곰을 칭찬
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후보 자격이 비경쟁자인 ‘더 못한 동물’로 내려가다가 결국 ‘거세된 황소’에게
후보 자격이 주어지고 우두머리가 된다. 왜냐하면 “암컷도 아니고 수컷도 아”닌 황소는 “거
세를 해서 성적 특성이 없었으므로, 그 어떤 동물도 황소를 자신과 평등하게 보거나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 누구도 황소를 질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은
황소를 우두머리로 뽑은 것이 “자신들에게는 수치라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 깨달았”지만 다
음 선거까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맹목적인 경쟁 심리와 질투심 때문에 일을 그르
치고 마는 인간 사회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우화는 현실의 직접적인 묘사는 아니지만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면서 현실과 인간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이러한 풍자의 세계가 청소년들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문제의식만큼은 아주 적절하게 구
현해낼 수 있다. 자아와 세계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성큼성큼 성숙해 가는 청소년들에게 우
화적 상상력과 풍자 정신은 내면의 성장을 촉발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열혈 수탉 분투기』 - 반면에 우화소설에서 성장서사는 의인화된 동물의 성장 과정을 통해 간
접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중국 출신 작가인 창신강의 작품 『열혈 수탉 분투기』12)가 바로 그
러한 우화소설이다. 이 작품은 수평아리가 어엿한 우두머리 수탉으로 성장해가면서 토종닭
으로서의 자존감을 형성해 가는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 소설은 주인 내외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적 속성을 풍자하면서 인
간 앞에 나약하기만 한 존재인 닭의 존재 의미를 생존의 문제와 결부시켜 진정한 삶이란 무엇
인가에 대해 환기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평범한 농가에서 식용으로 사육하기 위해 부화시킨 수평아리이다. 그러나 여느
닭들과는 다르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이러한 면모는 인간
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다가 고기닭으로 팔려가거나 주인의 밥상에 오름으로써 생을 마감
해야 하는 닭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계기로 작용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닭들
과는 달리 인간의 속셈을 꿰뚫어 보면서 ‘생각’을 할 줄 아는 수평아리인 주인공이 스스로 수
탉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해 가는 것이다. 즉 그는 자신만의 생존에 급급하기보다는 토종
닭 식구 모두의 안위를 지켜내 함께 공존하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 ‘좋은 수탉’으로 거듭나고
자 노력한다. 그가 추구하는 ‘좋은 수탉’의 의미는 아빠 수탉의 다음 말에 잘 드러나 있다.
9) 김재환, 『우화소설의 세계』, 박이정, 1999, 12쪽. 10) 홍순애, 앞의 책, 108쪽. 11) 아지즈 네신, 이난아 옮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푸른숲,
2005.
“좋은 수탉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양질의 고기닭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단다. 하
루 종일 먹고 자기만 하면 되거든. 뭔가 배울 필요 없이, 체중이 이 킬로그램만
되면 주인 밥상에 오르는 요리가 되기에 충분하지. 네가 세상에 나온 사명을
다한 거란 말이다.”(70쪽)
아빠 수탉은 토종닭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탉이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웃집
얼룩무늬 수탉과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이기도 하며, 족제비에게 물려 갔다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살아 돌아온 위대한 수탉이다. 그는 족제비의 공격으로 성대를 다쳐 더 이
상 소리를 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새벽이면 홰를 치던 울타리 위에 올라 자리를 지키
며 마지막까지 고고한 자신의 존엄을 지켰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목에 난 상처
의 작은 구멍으로 바람 소리를 흘”리던 아빠 수탉은 결국 살아 돌아온 며칠 만에 ‘울타리 위’
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아빠 수탉의 고고하고도 존엄한 면모는 주인공에게 롤 모델로 작용할 만하다. 즉
“아빠가 볏단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홰를 치던 모습”은 주인공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오
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각인되었고, “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멋지고 든든”
한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인공은 “아빠의 그런 기품을 닮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토종닭’으로 지을 정도로 자존감이 아주 강한 수탉으로 성장
해 가는데, 여러 면에서 아빠 수탉과 같은 우두머리 수탉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가축으로서
의 경제성이 떨어지는 수탉은 한 마리만 남겨 암탉들을 돌보게 하려는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
공은 같은 수탉인 ‘하얀 깃털’과 우두머리 경쟁을 벌인다. 그야말로 이긴 자만이 선택되어 살
아남는 생존경쟁에서 “닭으로서의 약점뿐 아니라 인간들의 나쁜 점까지 모두 갖고 있”는 하얀
깃털은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여기서 하얀 깃털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풍자와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주인공은 이웃집의 얼룩무늬 수탉과 당당하
게 혈투를 벌여 물리치는 등 가족을 이끌어갈 만한 우두머리 수탉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결국 주인공이 갈망했던 ‘좋은 수탉’으로의 성장은 우두머리 수탉이 됨으로써 다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의 성장은 식용 가축이라는 존재론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아무리 깨
어 있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해도 가축의 울타리 속에 갇힌 영혼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다. 따라서 주인공은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
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숨을 거두는 비극적 결말을 맺지만 그의 가족
은 멀고먼 여행을 계속해 감으로써 새로운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4. 판타지를 통한 삶의 성찰과 치유
청소년소설 창작에서 판타지는 우화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미개척의 영역에 머물고 있
다. 최근 판타지 기법을 활용한 소설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와 최민경의 『나는 할머
니와 산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긴 하지만, 판타지 창작이 그다지 활성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의 청소년소설에서는 판타지가 다양한 형태로 창작되고 있어서 국내에도 많
은 작품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판타지는 청소년소설에서 주요한 창작 방
법으로 대두되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들에게 판타지는 아주 친숙한 세계이다. 무협서사나대중 판타지 소설과 같은 장르문학,
온라인 게임, 인터넷의 가상세계, SF영화 등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모토로 한
매체의 주요 소비층이 바로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락성과 소비주의적인 성향의 대중문화와
청소년소설의 판타지는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이 지닌 친연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인 판타지는 보다
호소력이 강한 장르일 수 있다. 판타지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실을 비틀어 재구
성해 보임으로써 입시 공부와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억눌린 내면을
풀어주고, 나아가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위저드 베이커리』 - 성장서사로 볼 수는 없지만, 판타지 코드로 폭력적인 현실의 이면을 비
틀어 보여줌으로써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위저드 베이
커리』13)는 주목할 만한 판타지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환상 공간은 현실 경계 너머의 이차세
계도 아니고, 시간의 뒤틀림 같은 환상 기제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아파트 단지에서 몇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빵집”인 ‘24시간 제과점’이 바로 마법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현실 공간의 이면에 존재하는 틈새적 공간이 곧 환상 공간이라는 점에서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미스터리와 호러 색채를 가미한 환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공간 이면에 존재하는 환상 세계는 비일상적 사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즉 가족들의 폭력에 쫓기다가 몸을 피해 빵집으로 뛰어든 한 소년 앞에
마법의 세계는 문을 열어 준다.
주인공 소년은 여섯 살 때 친모에 의해 유기된 경험이 있고, 급기야는 친모의 자살을 목격해
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주인공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자식에 대해 무관심하기 짝이 없는 인
물인 아버지는 자식 걱정 운운하며 초등학교 여교사인 배 선생과 재혼을 해 새 가정을 꾸린
다. 두 살 난 딸을 데리고 있는 배 선생 역시 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
선생과 소년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다는 것이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나 고1이 되기까지 아버
지의 무관심과 새엄마의 구박 속에서 소년은 점차 말을 잃고 침울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
간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소년은 마침내 의붓동생의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고, 배 선생과 아버지, 그리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위저드 베
이커리’의 대형 오븐 속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이다.
마법사가 운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소년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는 마법의
과자를 알게 된다. 이 과자는 소원을 빌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욕망의 대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악마의 시몬드 쿠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면 “2시간 동안 뇌신
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준다. 한 여학생이 기말고사 첫
날 경쟁자인 친구에게 이 과자를 먹였는데, 그 친구는 시험 내내 복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답
안지를 한 칸씩 밀려 쓰는 실수를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답안지를 제출하던 순간 그만 설
사가 쏟아져버린 거였다. 이 일로 시험 망친 것은 둘째치고 전교에 소문이 퍼져버리자 친구
는 절망감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
친구에게 ‘악마의 시몬드 쿠키’를 준 여학생은 친구의 죽음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지만, 사실
이는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행위가 발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다. 결국 그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와 책임 소지를 따지지만, 마법사는 어떤
선택이든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르는 법이며,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즉
모든 욕망은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며, “모든 마법의 사용시 그 힘이 자
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선택에 따른 대가와 책임은 어쩔 수 없는 것
이다.
그렇다면 마법사는 왜 이러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마법의 과자를 만들어 제공하는 걸
까? 이는 마법사의 임무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릇된 욕
망의 대가를 치르게 해서라도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아 우주의 질서가 균형을 이루게 조정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년은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하면서 배 선생에게 마법의 과자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만다. “남의 목을 조르려는 자는 자기 관자놀이가 먼저 터질 각
오를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이다. 결국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은 현실의 욕망에 대한 경
고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전처소생을 학대하는 것이나, 어린
의붓딸을 성추행하는 아버지의 행위는 모두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자신
들의 선택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
는 과자인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써서 두 가지 선택에 따른 결말을 보인 것은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인과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14) -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열여섯 살 손녀의 몸에 들어와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는 빙의현상을 다룬 소설이다. 자칫 호러물이 될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주인공
은재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현실 문제에 밀착된 서사의 경쾌한 흐름이 비현실적 요소와 결
합되어 신선한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판타지는 아니지만, 죽은 영혼이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나타나는 비현실성이 삶의 이면을 비틀어 보여줌으로써 삶을 새로이
성찰하게 하는 판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은재가 할머니와의 동거 이후에 내면의
성숙을 보인다는 점에서 성장서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 귀신은 왜 은재의 몸에 들어왔을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은재는 생전의 할
머니처럼 말을 하고, 할머니의 식성을 보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예지력을 보이곤 한
다. 빙의가 일어난 것이다. 더군다나 할머니는 은재의 방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누
군가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할머니가 은재에게 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이 누구길래 할머니는 죽어
서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는 할머니가 생전에 풀지 못한 삶의 매듭이자, 아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할머니의 아픔은 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은재 스스로 자신
의 내면을 성찰할 계기로 작용한다. 즉 할머니는 혼전에 딸을 낳아 해외에 입양시킨 아픔을
지니고 있었고, 입양아인 은재는 자신을 보육원에 버린 친모에 대한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
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은재의 몸에 들어온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아픔의 공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은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할머니가 자신의 아픔을 통해 손
녀의 상처를 씻어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은재는 빙의 덕분에 친모를 만나 내면의 아픔을 씻어내고, 할머니 귀신이 말한 “포도나
무……자애원”을 찾아가 입양 간 고모의 주소를 알아내 한국으로 초청해서 할머니와의 재
회를 주선해 준다. 이러한 빙의를 계기로 은재는 할머니의 아픔을 통해 친모의 삶을 이해하
고, 나아가 가족의 의미를 새로이 인식함으로써 내면의 성숙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5. 성장서사 문법의 다양성을 위하여
얼마 전에 필자가 청소년소설을 다루는 글에서 김려령의 『완득이』나 이옥수의 『키싱 마이
라이프』 등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과도한 성장 의식의 표출을 성장 강박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5) 이는 청소년의 현재적 삶과 문제에 주목하고자 하는 당대성의 구현이 청소년소설의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창작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그동안 금기시되어 오던 성, 임신과
낙태, 자살 등의 예민한 부분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여 청소년들이 부딪치는 현실적 문제를 다
각도로 조명하는 대신 성장을 통한 화해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성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계몽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에 압도되다 보면 소설이 작위
적인 구성으로 흐르거나 소재주의로 전락하기도 한다. 결국 성장은 보여주기 위한 기획이 아닌,
현재 삶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의 문학적
진정성에서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14) 최민경, 『나는 할머니와 산다』, 현문미디어, 2008. 15) 졸고, 「‘지금 여기’ 청소년의 발견과 그들의 이야기」, 『시작』, 2009. 여름호.
따라서 청소년소설에서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굳이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성장기 청소년을 독자 대상으로 하는 장르의 특성상 그 자체만
으로도 성장서사의 속성을 지니게 된다. 예컨대 성장이 아닌 문학적 완성도에 무게중심을
더 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적 삶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
도 없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표출만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서사 문법을 다각도의 방식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청소년소설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
적 코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우화나 판타지 기법을 도입한 소설뿐만 아니라 SF, 역사,
추리 등 청소년소설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도교육과 입시에 억눌린 청소년들이 획일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긴 하지만, 그들
의 의식마저 현실 논리에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첨단 디지털시대의 다원화
되고 다층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중심 세대이며, 자신의 기호(嗜好)를 중시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코드를 찾기 위해 목말라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두어
두는 것은 또 다른 속박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라는 계몽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들의 기호와 코드에 부합하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곧 그들의 성장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의 이야기 방식은 새로운 코드와 다양한 방식으로 늘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우화와 판타지라는 이야기 방식은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
리라 기대하게 된다.
● 조태봉
서울여대와 단국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비둘기 아줌마」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동화집 『첨성대와 아기별똥』,그림책 『당나귀 임금님』 들을 냈다. 평론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공간들」 「현실의 무게와 존재의 가벼움」 「차별과 혼돈의 벽을 넘어서」 등이 있다.
최근 청소년소설이 보여주는 행보는 가히 ‘눈부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의 위기와
죽음을 선고한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 불씨라고나 할까. 역동적인 청소년기의 활력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해가는 청소년소설은 이 시대 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자질
을 지녔다. 이미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베스트셀러가 속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
키고 있으며, 전문 작가군의 형성은 물론 십대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
보해가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소설의 비약적인 발전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빗대어 볼 때 이례적인 사건
일 수밖에 없다. 논술 교육의 포기와 영어 위주의 교육정책이 교단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아
이들을 학업 경쟁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현 상황에서 청소년소설의 열기는 더욱 높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는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청소년소설의 주독자층이 청소
년보다는 성인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더욱 강화된 입시 경쟁과 영어 교육 열풍에 시
달리는 청소년들이 책을 읽으며 자아를 되돌아볼 조금의 시간적 여유마저 송두리째 빼앗기
고 말았다는 자조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일수록 문학의 힘은 더욱 크게 발휘된다. 청소년들의 억눌린 자아에 작
은 숨통이라도 틔워 주고 활력을 주는 게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다. 또 독자층이 청소년에 국
한되지 않고 성인에까지 널리 포진해 있다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 굳이 사양할 필요
까지는 없을 터이다.
청소년소설의 독자층이 성인에까지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과도 연
관이 있다. 원종찬은 청소년소설의 수요를 넓히는 요인으로 “성년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
고 오로지 입시에 매달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 아닌 성인이 되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성”1)
을 꼽고 있다. 또 이를 청소년소설이 성장서사를 지향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사실 성인문학에서도 성장소설은 미완의 근대성에 머물고 있다. 근대 시민계급의 내면 탐
구를 통해 성장 과정을 표현하는 독일 교양소설에서 “시민사회의 형성기와 불가분의 관계”
에 있는 교양이 “시민사회에서의 자아와 세계의 조화, 긍정적 발전을 기본항으로”2) 하고 있
음에 비해 우리는 사회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적 기준
에서의 근대 체험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정체성 있는 근대화를 체험하
지 못함으로 인해 한국의 성장소설이 그 실체를 완성하지 못”3)했으며, 이는 성장소설이야
말로 “문학의 근대성이라는 문제의 발원지인 근대적 자아의 문제가 진지하게 취급되는 장
르의 하나”4)라는 점에서 이루지 못한 근대성의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산업화를 이룩한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성장
소설은 동구권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더욱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은희경의 『새의 선물』,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등 한국 소설을 대표할 만한 굵
직굵직한 작품들이 성장소설에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은 “개인의 확대된 외부(민족, 이념)
나 밀폐된 내부(감성, 내면)가 아닌 개인과 사회의 균형과 긴장 속에서 자기 동일성을 정립
함으로써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는 작가들의 탐색의 결과물”5)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이
성장서사를 지향하는 것도, 나아가 독자들의호응을 폭넓게 받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
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원종찬, 「우리 청소년문학의 발전 양상」, 『창비어린이』, 2009. 겨울호, 214쪽. 2) 김윤식, 「교양소설의 본질」, 『한국현대소설비판』, 일지사, 1981. 278쪽. 3) 이최현주, 『한국 현대 성장소설의 세계』, 박이정, 2002, 18쪽. 4) 이보영·진상범·문석우, 『성장소설이란 무엇인가』, 청예원, 1999, 313쪽. 5) 최현주, 앞의 책, 17쪽 .
2. 청소년소설과 성장서사
더욱이 청소년소설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을 일차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즉 그
들의 성장 과정과 갈등 양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성장서사라는 특성을 띠게 된
다. 그러나 모든 청소년소설이 곧 성장소설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성장소설이 청소
년소설인 것 또한 아니다.
성장소설은 일반적으로 청소년기 아이의 내면적 성장을 다룬 소설을 일컫는데, 교양소설
(Bildungsroman), 형성소설(Novel of Formation), 입사소설(Initiation novel), 발
전소설(Entwicklungsroman) 등으로 불리는 소설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각기 발생한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점을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어느 특정한 시대
배경 속에서 주인공이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는 동안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내
면을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유형이다.6)
그러나 성장소설이 어린 주인공을 내세워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일차적으로 청소년을 대
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소년소설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성장소설은 이미
어른으로 성장한 서술자아가 자신의 과거 성장기를 되돌아보는 회고담류가 보편적인 유
형인데, 이런 유의 소설에서는 성인이 주체이며, 청소년보다는 성인 독자를 주요 대상으
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장소설과 청소년소설의 차이는 작품 속에서 관점의 차이로 드
러난다.
성장소설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기)의 경험을 성인의 시각에서 재
구성한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 반추해낸다. 성인이 된 서술자아의 경험담은 과거의 특정 시
점을 배경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에 현재의 시점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전개된다. 이
때의 거리감은 지난날의 일을 이상화하고 낭만적으로 채색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인이
된 자아가 이미 겪은 사건과 고통을 이겨낸 회상감에 젖어 과거 경험의 편린들을 재구성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독자들에게 경험자아의 청소년기 갈등과 방황이 직접적
으로 체험되기보다는 성장한 서술자아의 회고담으로 전달될 뿐이다. 가령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보면 이미 성장한 서술자인 ‘나’는 한국전쟁 후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하면서 겪
은 가난과 전후의 피폐한 현실을 회상해 가면서 과거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내고 있다. 성인
을 대상으로 한 소설에서 어린아이를 내세워 성장 과정을 반추하면서 삶의 의미를 파고드
는 이런 유의 성장소설은 성인문학에서 일반화된 양식에 속한다. 즉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
의 관점에서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6) 오한진, 『독일 교양소설 연구』, 문학과지성사, 1989, 11~28쪽. 참조. 7) 오세란,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009. 봄호, 166쪽. 8) 『장자』 <우언>편에서 ‘우언은 다른 것을 빌려서 논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즉 “우언은 우회하여 다른 어떤 것에 가탁하여 말하는 방식이다.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보편적인 것을 통해 특수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우언인 것이다.” 홍순애, 『한국 근대문학과 알레고리』,제이앤씨, 2009, 23~24쪽.
반면에 청소년소설은 등장인물인 청소년 자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탐구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현재진행형의 삶에 주목한다. 여기서의 경험자아는 어른이 된 서술자아의 기억
에서 ‘대상화’된 청소년이 아닌 현재의 삶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
을 모색해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는 “청소년소설을 규정짓는 것은 성장소설
의 형식이 아니라 청소년 화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화하려는 의지이”며 “십대인 주인공
이 주체로서 꿋꿋이 서서 자신의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지”7)가 청소년소설이 갖추
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이 지닌 ‘성장’이라는 함의는 주체와 독자 대상의 특성상 성장소설에 비
해 포괄적이며, 장르의 본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기 주인공이 삶의 도정에서 보
여주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탐색 과정이야말로 그대로 성장서사일 수밖에 없으며, 성장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서사조차도 청소년들의 내면적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게 된다.
이 글은 성장소설류의 성장서사와는 다른 각도에서 청소년들의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우화와 판타지를 활용한 청소년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당대성 논의에
힘입어 ‘지금 여기’의 청소년의 삶과 문제에 집중해온 청소년소설에서 우화와 판타지는 생
소한 영역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학 양식의 추구는 청소년소설의 폭을 넓히고 청소년들에
게 다채로운 사유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논의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3. 우화적 상상력과 내면의 성장
우화(寓話, fable)는 알레고리의 대표적인 유형으로서,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서사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화는 기원전 6세기에 이솝이 지은 동물우화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서양에서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와 루키아노스 등에 의해
이솝풍의 우화가 번창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시적 표현을 옹호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성서의 해석을 위한 수사적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많
은 우화가 나올 정도로 더욱 번성했다. 그후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문학적 형상화 방법의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우화소설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우화가 우의성을 지닌 우언(寓言)8)에 뿌리를 두고 발전해 왔는데, 최초의 우언
은 『좌전』(BC 598)이라고 하나, 이보다 널리 알려진 것은 『장자(莊子)』의 <우언> 편이다. 우
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의 설총이 남긴 「화왕계(花王戒)」를 시작으로 해서 많은 우화가 창작
되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우화소설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토끼
전」, 「두껍전」, 「장끼전」을 비롯해 「노섬상좌기」, 「서동지전」 등 다수의 작품이 창작되었고,
이러한 우화의 전통은 근대 계몽기로 이어져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김필수의 「경세종」,
흠흠자의 「금수재판」 등의 우화소설이 창작되었다.
본래 우화는 이솝우화처럼 단형의 서사가 주축을 이루어 창작되었다. 우화는 주로 동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세상의 일을 동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가탁(假託)하여 인간 세계의
본질을 신랄하게 풍자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동물 의인화와 풍자라는 우화의
특성은 그릇된 인간성과 행동에 대한 비판과 조소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려는 목적성을 띠
고 있다.
이러한 동물우화가 현실적 시대 상황에 적절히 부합하면서 소설적으로 변형된 것이 동물우
화소설이다. 따라서 우화소설은 “동물로 의인화된 다양한 현실적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성
에 내재한 약점을 교정하고 시대 정신을 신랄하게 풍자한 독특한 소설 문학이”며, “동물에
추상화되어 있는 인간의 속성을 들어 우의한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가 깃들어 있는
소설” 9)이다.
여기서 동물의 의인화는 대상 동물을 하나의 특성으로 단순화하거나 집약해 보여주며, 동
시에 인간의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즉 “관념화된 인간의 성격이 하나의 동물로 대입됨으로
써 관념은 구체적인 형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인식들이 동물을 통해, 동
물의 속성과 연관됨으로써 구체화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 의인화”10)이며, 이러한 의인화의
특성이 우화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동물을 의인화해서 인간 본질에 대한 탐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화는 의인화를 주요 기
법으로 사용하는 동화 장르와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화와 동화는 장르적 속성상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우화에서 동물 의인화는 인간적 본질을 풍자하기 위한 서
사의 간접화 방식이다.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인화된 동물 세계를 통
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안전하고도 유감없이 현실 세계를 풍자하기 위한 서사 전
략인 것이다.
반면에 동화에서의 의인화는 아이들의 물활론적인 사고방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동식물이
나 심지어는 무생물까지도 의인화해서 인간과 똑같은 가치의 생명과 의식을 불어넣는 동화
는 우주만물의 화해와 통합을 추구한다. 의인화된 현실이긴 하지만, 인간 세계에 대립적이
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화의 풍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 - 이러한 우화적인 풍자의 세계를 터키 출신 작가인 아
지즈 네신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가령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11)을 보면,
인간 세계의 선거제도를 동물에 빗대어 인간들의 이기주의와 시기심, 인신공격 등을 적나
라하고 함축적으로 풍자해내고 있다. 즉 인간들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뽑는 것처럼 숲속의
동물 세계도 사자가 왕이었던 왕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직접 선출하기
로 하면서 벌어지는 동물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인간 세계를 풍자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동물들이 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후보자가 필요한데, 우선은 줄곧 왕
을 지낸 사자가 자연스럽게 후보가 되고, 이어 호랑이가 후보로 나선다. 곧 선거운동이 시작
되었는데 “두 후보는 틈만 나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등 격렬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었
다. 그런데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오자, 사자와 호랑이는 서로 선거에서 질
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자는 자신이 뽑히지 않을 바에야 호랑이만 아니라면
다른 누가 선출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호랑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선거유세
에서 엉뚱하게도 물소를 칭찬하기 시작한다. 이는 물소가 뽑혀도 자신들보다 못하므로 경
쟁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물소가 후보에 오르자, 이번엔 물소의 경쟁자인 하
마가 후보로 나선다. 그러곤 서로 헐뜯고 비방하다가 앞의 후보들과 같은 이유로 곰을 칭찬
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후보 자격이 비경쟁자인 ‘더 못한 동물’로 내려가다가 결국 ‘거세된 황소’에게
후보 자격이 주어지고 우두머리가 된다. 왜냐하면 “암컷도 아니고 수컷도 아”닌 황소는 “거
세를 해서 성적 특성이 없었으므로, 그 어떤 동물도 황소를 자신과 평등하게 보거나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 누구도 황소를 질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은
황소를 우두머리로 뽑은 것이 “자신들에게는 수치라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 깨달았”지만 다
음 선거까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맹목적인 경쟁 심리와 질투심 때문에 일을 그르
치고 마는 인간 사회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우화는 현실의 직접적인 묘사는 아니지만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면서 현실과 인간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이러한 풍자의 세계가 청소년들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문제의식만큼은 아주 적절하게 구
현해낼 수 있다. 자아와 세계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성큼성큼 성숙해 가는 청소년들에게 우
화적 상상력과 풍자 정신은 내면의 성장을 촉발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열혈 수탉 분투기』 - 반면에 우화소설에서 성장서사는 의인화된 동물의 성장 과정을 통해 간
접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중국 출신 작가인 창신강의 작품 『열혈 수탉 분투기』12)가 바로 그
러한 우화소설이다. 이 작품은 수평아리가 어엿한 우두머리 수탉으로 성장해가면서 토종닭
으로서의 자존감을 형성해 가는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 소설은 주인 내외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적 속성을 풍자하면서 인
간 앞에 나약하기만 한 존재인 닭의 존재 의미를 생존의 문제와 결부시켜 진정한 삶이란 무엇
인가에 대해 환기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평범한 농가에서 식용으로 사육하기 위해 부화시킨 수평아리이다. 그러나 여느
닭들과는 다르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이러한 면모는 인간
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다가 고기닭으로 팔려가거나 주인의 밥상에 오름으로써 생을 마감
해야 하는 닭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계기로 작용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닭들
과는 달리 인간의 속셈을 꿰뚫어 보면서 ‘생각’을 할 줄 아는 수평아리인 주인공이 스스로 수
탉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해 가는 것이다. 즉 그는 자신만의 생존에 급급하기보다는 토종
닭 식구 모두의 안위를 지켜내 함께 공존하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 ‘좋은 수탉’으로 거듭나고
자 노력한다. 그가 추구하는 ‘좋은 수탉’의 의미는 아빠 수탉의 다음 말에 잘 드러나 있다.
9) 김재환, 『우화소설의 세계』, 박이정, 1999, 12쪽. 10) 홍순애, 앞의 책, 108쪽. 11) 아지즈 네신, 이난아 옮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푸른숲,
2005.
“좋은 수탉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양질의 고기닭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단다. 하
루 종일 먹고 자기만 하면 되거든. 뭔가 배울 필요 없이, 체중이 이 킬로그램만
되면 주인 밥상에 오르는 요리가 되기에 충분하지. 네가 세상에 나온 사명을
다한 거란 말이다.”(70쪽)
아빠 수탉은 토종닭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탉이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웃집
얼룩무늬 수탉과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이기도 하며, 족제비에게 물려 갔다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살아 돌아온 위대한 수탉이다. 그는 족제비의 공격으로 성대를 다쳐 더 이
상 소리를 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새벽이면 홰를 치던 울타리 위에 올라 자리를 지키
며 마지막까지 고고한 자신의 존엄을 지켰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목에 난 상처
의 작은 구멍으로 바람 소리를 흘”리던 아빠 수탉은 결국 살아 돌아온 며칠 만에 ‘울타리 위’
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아빠 수탉의 고고하고도 존엄한 면모는 주인공에게 롤 모델로 작용할 만하다. 즉
“아빠가 볏단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홰를 치던 모습”은 주인공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오
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각인되었고, “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멋지고 든든”
한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인공은 “아빠의 그런 기품을 닮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토종닭’으로 지을 정도로 자존감이 아주 강한 수탉으로 성장
해 가는데, 여러 면에서 아빠 수탉과 같은 우두머리 수탉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가축으로서
의 경제성이 떨어지는 수탉은 한 마리만 남겨 암탉들을 돌보게 하려는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
공은 같은 수탉인 ‘하얀 깃털’과 우두머리 경쟁을 벌인다. 그야말로 이긴 자만이 선택되어 살
아남는 생존경쟁에서 “닭으로서의 약점뿐 아니라 인간들의 나쁜 점까지 모두 갖고 있”는 하얀
깃털은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여기서 하얀 깃털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풍자와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주인공은 이웃집의 얼룩무늬 수탉과 당당하
게 혈투를 벌여 물리치는 등 가족을 이끌어갈 만한 우두머리 수탉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결국 주인공이 갈망했던 ‘좋은 수탉’으로의 성장은 우두머리 수탉이 됨으로써 다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의 성장은 식용 가축이라는 존재론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아무리 깨
어 있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해도 가축의 울타리 속에 갇힌 영혼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다. 따라서 주인공은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
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숨을 거두는 비극적 결말을 맺지만 그의 가족
은 멀고먼 여행을 계속해 감으로써 새로운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4. 판타지를 통한 삶의 성찰과 치유
청소년소설 창작에서 판타지는 우화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미개척의 영역에 머물고 있
다. 최근 판타지 기법을 활용한 소설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와 최민경의 『나는 할머
니와 산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긴 하지만, 판타지 창작이 그다지 활성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의 청소년소설에서는 판타지가 다양한 형태로 창작되고 있어서 국내에도 많
은 작품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판타지는 청소년소설에서 주요한 창작 방
법으로 대두되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들에게 판타지는 아주 친숙한 세계이다. 무협서사나대중 판타지 소설과 같은 장르문학,
온라인 게임, 인터넷의 가상세계, SF영화 등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모토로 한
매체의 주요 소비층이 바로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락성과 소비주의적인 성향의 대중문화와
청소년소설의 판타지는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이 지닌 친연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인 판타지는 보다
호소력이 강한 장르일 수 있다. 판타지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실을 비틀어 재구
성해 보임으로써 입시 공부와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억눌린 내면을
풀어주고, 나아가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위저드 베이커리』 - 성장서사로 볼 수는 없지만, 판타지 코드로 폭력적인 현실의 이면을 비
틀어 보여줌으로써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위저드 베이
커리』13)는 주목할 만한 판타지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환상 공간은 현실 경계 너머의 이차세
계도 아니고, 시간의 뒤틀림 같은 환상 기제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아파트 단지에서 몇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빵집”인 ‘24시간 제과점’이 바로 마법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현실 공간의 이면에 존재하는 틈새적 공간이 곧 환상 공간이라는 점에서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미스터리와 호러 색채를 가미한 환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공간 이면에 존재하는 환상 세계는 비일상적 사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즉 가족들의 폭력에 쫓기다가 몸을 피해 빵집으로 뛰어든 한 소년 앞에
마법의 세계는 문을 열어 준다.
주인공 소년은 여섯 살 때 친모에 의해 유기된 경험이 있고, 급기야는 친모의 자살을 목격해
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주인공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자식에 대해 무관심하기 짝이 없는 인
물인 아버지는 자식 걱정 운운하며 초등학교 여교사인 배 선생과 재혼을 해 새 가정을 꾸린
다. 두 살 난 딸을 데리고 있는 배 선생 역시 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
선생과 소년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다는 것이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나 고1이 되기까지 아버
지의 무관심과 새엄마의 구박 속에서 소년은 점차 말을 잃고 침울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
간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소년은 마침내 의붓동생의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고, 배 선생과 아버지, 그리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위저드 베
이커리’의 대형 오븐 속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이다.
마법사가 운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소년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는 마법의
과자를 알게 된다. 이 과자는 소원을 빌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욕망의 대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악마의 시몬드 쿠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면 “2시간 동안 뇌신
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준다. 한 여학생이 기말고사 첫
날 경쟁자인 친구에게 이 과자를 먹였는데, 그 친구는 시험 내내 복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답
안지를 한 칸씩 밀려 쓰는 실수를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답안지를 제출하던 순간 그만 설
사가 쏟아져버린 거였다. 이 일로 시험 망친 것은 둘째치고 전교에 소문이 퍼져버리자 친구
는 절망감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
친구에게 ‘악마의 시몬드 쿠키’를 준 여학생은 친구의 죽음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지만, 사실
이는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행위가 발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다. 결국 그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와 책임 소지를 따지지만, 마법사는 어떤
선택이든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르는 법이며,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즉
모든 욕망은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며, “모든 마법의 사용시 그 힘이 자
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선택에 따른 대가와 책임은 어쩔 수 없는 것
이다.
그렇다면 마법사는 왜 이러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마법의 과자를 만들어 제공하는 걸
까? 이는 마법사의 임무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릇된 욕
망의 대가를 치르게 해서라도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아 우주의 질서가 균형을 이루게 조정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년은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하면서 배 선생에게 마법의 과자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만다. “남의 목을 조르려는 자는 자기 관자놀이가 먼저 터질 각
오를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이다. 결국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은 현실의 욕망에 대한 경
고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전처소생을 학대하는 것이나, 어린
의붓딸을 성추행하는 아버지의 행위는 모두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자신
들의 선택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
는 과자인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써서 두 가지 선택에 따른 결말을 보인 것은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인과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14) -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열여섯 살 손녀의 몸에 들어와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는 빙의현상을 다룬 소설이다. 자칫 호러물이 될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주인공
은재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현실 문제에 밀착된 서사의 경쾌한 흐름이 비현실적 요소와 결
합되어 신선한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판타지는 아니지만, 죽은 영혼이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나타나는 비현실성이 삶의 이면을 비틀어 보여줌으로써 삶을 새로이
성찰하게 하는 판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은재가 할머니와의 동거 이후에 내면의
성숙을 보인다는 점에서 성장서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 귀신은 왜 은재의 몸에 들어왔을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은재는 생전의 할
머니처럼 말을 하고, 할머니의 식성을 보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예지력을 보이곤 한
다. 빙의가 일어난 것이다. 더군다나 할머니는 은재의 방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누
군가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할머니가 은재에게 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이 누구길래 할머니는 죽어
서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는 할머니가 생전에 풀지 못한 삶의 매듭이자, 아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할머니의 아픔은 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은재 스스로 자신
의 내면을 성찰할 계기로 작용한다. 즉 할머니는 혼전에 딸을 낳아 해외에 입양시킨 아픔을
지니고 있었고, 입양아인 은재는 자신을 보육원에 버린 친모에 대한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
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은재의 몸에 들어온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아픔의 공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은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할머니가 자신의 아픔을 통해 손
녀의 상처를 씻어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은재는 빙의 덕분에 친모를 만나 내면의 아픔을 씻어내고, 할머니 귀신이 말한 “포도나
무……자애원”을 찾아가 입양 간 고모의 주소를 알아내 한국으로 초청해서 할머니와의 재
회를 주선해 준다. 이러한 빙의를 계기로 은재는 할머니의 아픔을 통해 친모의 삶을 이해하
고, 나아가 가족의 의미를 새로이 인식함으로써 내면의 성숙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5. 성장서사 문법의 다양성을 위하여
얼마 전에 필자가 청소년소설을 다루는 글에서 김려령의 『완득이』나 이옥수의 『키싱 마이
라이프』 등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과도한 성장 의식의 표출을 성장 강박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5) 이는 청소년의 현재적 삶과 문제에 주목하고자 하는 당대성의 구현이 청소년소설의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창작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그동안 금기시되어 오던 성, 임신과
낙태, 자살 등의 예민한 부분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여 청소년들이 부딪치는 현실적 문제를 다
각도로 조명하는 대신 성장을 통한 화해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성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계몽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에 압도되다 보면 소설이 작위
적인 구성으로 흐르거나 소재주의로 전락하기도 한다. 결국 성장은 보여주기 위한 기획이 아닌,
현재 삶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의 문학적
진정성에서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14) 최민경, 『나는 할머니와 산다』, 현문미디어, 2008. 15) 졸고, 「‘지금 여기’ 청소년의 발견과 그들의 이야기」, 『시작』, 2009. 여름호.
따라서 청소년소설에서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굳이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성장기 청소년을 독자 대상으로 하는 장르의 특성상 그 자체만
으로도 성장서사의 속성을 지니게 된다. 예컨대 성장이 아닌 문학적 완성도에 무게중심을
더 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적 삶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
도 없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표출만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서사 문법을 다각도의 방식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청소년소설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
적 코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우화나 판타지 기법을 도입한 소설뿐만 아니라 SF, 역사,
추리 등 청소년소설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도교육과 입시에 억눌린 청소년들이 획일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긴 하지만, 그들
의 의식마저 현실 논리에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첨단 디지털시대의 다원화
되고 다층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중심 세대이며, 자신의 기호(嗜好)를 중시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코드를 찾기 위해 목말라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두어
두는 것은 또 다른 속박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라는 계몽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들의 기호와 코드에 부합하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곧 그들의 성장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청소년소설의 이야기 방식은 새로운 코드와 다양한 방식으로 늘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우화와 판타지라는 이야기 방식은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
리라 기대하게 된다.
● 조태봉
서울여대와 단국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비둘기 아줌마」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동화집 『첨성대와 아기별똥』,그림책 『당나귀 임금님』 들을 냈다. 평론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공간들」 「현실의 무게와 존재의 가벼움」 「차별과 혼돈의 벽을 넘어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