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실천 2 - 학년협의회에서 평화 물꼬 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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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2 17:01 조회 7,632회 댓글 0건본문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지키는 ‘통일된’ 약속
초등학교 고학년 지도의 가장 큰 고충라면 생활지도일 것이다. 특히 6학년 중 한 반은 ‘학급붕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6학년 담임 자리는 피하고 싶은 영순위다. 그런 6학년을 재작년에 맡았고 작년엔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두 해 연이어 고학년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또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보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고학년의 특성상 또래문화와 집단문화가 강해지는 시기라 학급 안에서 지도를 잘한다 해도 사건이 터지면 꼭 다른 반 아이들과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급별로 지도 원칙이나 규칙이 다른 경우 아이들은 ‘왜 우리 반만!’, ‘다른 반은?’ 하며 형평성의 문제를 들고 일어난다. 학급에서 지도를 잘하여도 전체 학년이 공조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부분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 반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바로 옆 반으로 번지게 되고 전체 학년이 함께 휩쓸려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아 힘겨운 상황들도 보았다. 교사들은 “아이들도 똘똘 뭉치는데 우리도 똘똘 뭉쳐야 하지 않겠냐”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다.
올해 다시 6학년 교과전담을 맡게 되었고 6학년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특히 6학년 교사들은 주로 다른 학교에서 전입한 교사이거나 젊은 교사들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6학년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최고참인데 교사는 학교도 낯설고 아이들도 낯설다. 따라서 더욱 교사들이 함께 협의하고 공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학하기 전 봄방학 기간에 6학년 선생님들이 모였다. 교사들이 연대하여 지도해야 한다는 데 마음을 같이했고, 6학년 학생 대상 오리엔테이션을 기획하게 되었다. 6학년 교육활동과 생활지도 목표를 ‘화목하여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통해 행복한 일상되기’로 세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기’를 가치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학교 생활인권규정을 바탕으로 학년에서 통일해 지도해야 할 부분을 협의하고 그 내용을 모아 몇 가지 생활규칙을 만들었다. 교사에게서 나온 생활규칙이라는 점에는 한계가 있으나 생활지도 방향과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개학 첫날, 마지막 시간에 강당에서 6학년 전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교직 경력 10년 만에 처음으로 해본 시도이자, 풍경이었다. 각 반 담임교사 소개에 이어 6학년 생활목표와 생활규칙을 안내하고 마지막으로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그리고 공통규칙을 각 학급에 게시하고 공유했다. 반마다 원칙이 달라 지도에 어려움이 있던 대표적인 경우가 핸드폰 소지 여부와 실내화였는데, 이를 전체 규칙으로 정하고 나니 ‘통일된 약속’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이들도 불평불만 없이 훨씬 잘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교사가 어느 반 아이든지 지도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 생활지도가 수월했다.
내 학급 일, 네 학급 일 따지지 말고 함께!
학생들이 교사를 탐색하는 3월이 지나고,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들의 본색이 드러난다는 4월이 되었다. 사건 없이 잠잠한 것이 이상하다 여길 즈음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았던 아이의 제보가 들어왔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카톡으로 다른 학교와 소위 ‘맞짱을 뜨자’는 모의를 한 것이다. 각 반의 관련된 아이들을 불러 이런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 그리고 발생시 문제에 대해 선생님들과 함께 지도했다. 한숨을 돌리고 있던 차에 다음날 또 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고무적인 것이 사건 모의를 한 학생이 “같이 하지 않을 사람은 카톡 창에서 나가도 좋다”고 하자 전에 지도를 받았거나 상황을 알고 있던 아이들이 전부 퇴장한 것이다. 사전 지도의 효과였다. 이 아이들도 각 반 선생님들과 공조해 지도를 했고 후로 ‘카톡 세계’는 잠잠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교사에 대한 불만을 화장실에 낙서로 표출한 사건이 생겼다.
화장실 벽면 전체를 입에 담기 힘든 말로 도배해 놓은 것이다. 당사자 선생님이 직면해서 해결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상처가 되고 속이 상할 일이다. 선생님 역시 낙서 내용을 보면 앞으로 그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 것 같다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사건 처리 과정과 사후 지도를 분리했다. 누가 낙서를 했는지 밝혀내고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아이와 이해관계가 덜 밀접한 교과전담 교사가 맡았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벌 청소 역시 교과전담 교사가 매일매일 임장臨場 지도를 했다. 그리고 담임 교사는 부모에게 사건을 알리고 아이와 함께 사과를 받고 차후에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상담하는 역할을 했다. 사건 처리를 분담해서 진행하니 해당 교사가 받은 스트레스와 압박이 덜했다. 그리고 사건을 빨리 처리하게 되어 유사 행동이 다른 아이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학급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일이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거나 다른 교사나 관리자가 알게 되면 지도를 잘못한다는 눈초리를 받을까 쉬쉬하며 안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내 무능력함을 보일 것 같아 학급 안에서 해결해보려다 일을 크게 만든 경험이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일수록 알리라는 말이 있듯이 내 학급의 일, 다른 학급의 일이라 생각지 않고 함께 지혜를 모으면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되고 또 서로 의지가 되어 교사가 받는 중압감이 덜한 것 같다. 아이들도 사건이 생겼을 경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유심히 관찰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모든 교사들이 촉각을 세우고 함께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전 예방 교육이 될 것이다. 교사들이 열린 마음으로 함께 연대하여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더욱 느끼게 되었다.
교사끼리 협의하고, 아이들 의견도 구하고
학교생활규정을 검토하기 위해 6학년 선생님들이 다시 머리를 맞대었다. 규정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잘 살펴보지 않았을 뿐더러, 개정 여부 회람이 돌아도 그냥 사인만 하고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다른 학교 생활규정과 비교해가며 개선하고 개정해야 할 것이 없는지 토론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모인 것이다.
각자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생활규정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아이들도 인권과 자율성이 있는데 교사 기준으로만 판단해서 규정 지어도 될까 하는 문제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 생활과 밀접한 부분은 아이들의 생각과 의견이 반영되어야 책임 있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과도 토론을 해서 그들의 의견과 생각을 모으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수업시간에 꼭 지켜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학생 신분에 맞는 복장은 어떤 복장일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복장은?’ 등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설문 문항을 작성하고 아이들과 함께 토론해보기로 하였다. 아이들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토론을 하니 고민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이후 토론한 것을 바탕으로 의견을 모아 다시 모이기로 했다. 참 기대되는 만남이다.
교사들이 아무리 의기투합한다 한들 아이들은 계속 사고를 칠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동학년 협의가 아이들에 대한 괴로움을 성토하는 장을 넘어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교실을 넘고 교사를 넘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 동학년 협의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