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청소년도 그림책을!]중학생 진로탐색 위한 그림책수업 - 14세, 그림책 작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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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4 22:16 조회 15,414회 댓글 0건본문
아이들 그림책,
갤러리 전시와 도서전 참가까지 2012년 6월 20일~24일, 서울 코엑스, ‘2012 서울국제도서전’ 불곡중학교 부스. 불곡중 학생 87명이 87권의 그림책을 전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소개하고 부스도 운영했습니다. 학원이나 그림책 만들어주는 업체라고 생각하고 흘깃거리던 분들께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중학교 1학년 14세 학생들이 이야기도 짓고 그림도 그려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하면 모두들 다가와 보고는 놀라워 했습니다. 예쁘게 그려진 그림책보다 마음을 울리는 그림책, 중학생들이기에 가능한 기발한 내용의 그림책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많이들 구입하고 싶어 했지만 판매용이 아니어서 아쉬운 마음을 사진에 담아들 가셨지요. 중학교에서 도서전에 참여한 것이 신기하고, 해마다 도서전 구경을 오는데 새롭고 재미있는 부스를 발견해 즐겁다는 말씀과 함께, 자신의 그림책을 소개하고 부스를 운영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불곡중학교에서는 미술 전공이 아닌 14세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북 일러스트레이터 최용호, 이육남 선생님과 함께 진로탐색과정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미술시간에 그림 그리고 글자 몇 자 적어 넣어 만들었나 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보면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책으로 만들어주는 상업적인 곳도 많고 도서관 체험 프로그램으로 그림책 만드는 곳도 더러 있으니까요. 하지만 불곡중 학생들이 만든 그림책은 단순히 그림을 책으로 묶어 만든 것과는 다릅니다. 수려한 문장력도 없고 뛰어난 미술 재능도 없는 학생들의 그림책에는 글로는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머릿속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림과 같은 시각적인 언어를 읽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각자 개성이 묻어난 문체로 그림책을 제작했습니다.
진로탐색에서 감성치유로 이어진 그림책 수업
그림책 만들기 수업은 2011년 불곡중학교가 미술교육과정 특성화학교로 지정되면서 보다 차별화되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자 미술과 독서 교육을 융합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학생들이 주제를 정해 썸네일로 만들어 스토리보드를 짜고 그에 맞는 일러스트와 텍스트, 주제에 맞는 표현 기법까지 학생 스스로 고려하여 그림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입시 미술이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진로로 잡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체험 역할이 컸습니다.
2011년 1학기 진로탐색과정 그림책 수업을 하는 동안 점심 급식을 빨리 ‘흡입’하고 그림책을 만들러 오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방과 후에 스스로 남아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들이 손수 만들어낸 수제手製 책을 보며 참으로 뿌듯하고 감동스러웠습니다. 교사가 자극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아이들을 위해 제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을 했고, 정말 출판된 것과 같은 느낌의 책을 만들어줘야겠다 싶어 2주간 밤새워가며 학생 그림 500여 장을 일일이 스캔하고 표지와 속표지까지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하여 ‘불곡출판’ 이름으로 인쇄된 책을 만들었습니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지만 표지 디자인과 밤샘 그래픽 작업은 제가 교사 생활을 한 이래 육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의 이러한 노력은 책에서 순수함과 신선함, 재미가 그대로 드러나 깜짝 놀랄 정도로 큰 감흥을 주었습니다. 우연히 이 책들을 본 전문 일러스트 작가와 전시 관계자에게서 전시 제의를 받게 되었고, 마침내 파주출판단지 보림출판사 ‘홍성찬 갤러리’(2011.8.13~22)에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진로탐색에서 시작하여 진로체험 및 감성교육까지 이어진 불곡중학교 그림책 수업의 시작입니다.
그림책,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통로
학생들이 만든 그림책 중에는 왕따를 당한 학생이 학교폭력을 극복해나가는 모습과 부모 형제와의 갈등 등 쉽게 말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나 환경오염, 문화현상 등과 같은 중학생들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당근 먹는 호랑이, 태권도 하는 펭귄, 인체의 신비 등 기발하고 다양한 주제를 통통 튀는 감성으로 풀어낸 학생들은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 정말 새롭고 즐거운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림책 캐릭터를 봉제인형으로 만들어 전시장 디스플레이도 직접 해보고,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에서 운영하는 ‘톡톡talk!! 진로체험스쿨(2012.7.28)에 강사로 초청되어 또래 친구들에게 그림책 만들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1일 강사도 되어보고 신문 인터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아이들을 좀 더 자라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진로탐색과정반 수업으로 그림책을 만든 학생 중 욕도 잘하고 자기방어가 강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그림책 주제로 잡은 건 ‘내가 잘못한 일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으로 힘들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가장 아픈 상처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혼을 내는 어머니께 덜 혼나려고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과 방어를 하는 아이였습니다. 이 학생이 만든 그림책 속의 어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하고 바라는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죠. 쉽게 꺼내지 못했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묻어둬야만 했던 마음속 이야기가 그림책 수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부모님과의 관계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이 학생은 직접적인 말이나 글이 아닌 시각적인 그림 언어로 두렵고 서툰 마음속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 하나를 배운 겁니다.
학교폭력과 왕따, 가족과의 단절 등은 감성이 부족한 오늘날의 학교와 학생들 현실을 보여줍니다.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교육이 아닌 ‘특색 있는 수업을 했다’는 것보다 ‘학생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마련했다’는 것이 의미 있는 그림책 수업이었습니다. 그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에서 더 나아가 그림책을 통한 감성치유 과정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