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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힐링 나를 치유하는 것들, 내게 힘이 되는 것들]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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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17:13 조회 6,51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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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상처는 아는 이에게 받는다.
아는 이에게 받은 상처는
모르는 타인의 글과, 타인의 사진과, 타인의 노래로
위로를 받고, 위안 삼는다.
— 밤삼킨별

당신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나요? 힘들 때 어떻게 극복하세요? 도대체 모르겠어서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인간’을 통해 치유한다고 합니다. 답안지의 정답과 해설을 보고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 기분입니다. 인간이라니.

저는 도서관장이입니다. 발령 6개월 차에 교장선생님께 크게 실망하고 사표를 써야겠다 마음먹고 도서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재잘거리는 여고생들 소리에 마음이 그만 풀어져버리고 말아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무르고 무른 사서교사입니다. 사명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이내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투덜거리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지요. 공교롭게도 이 글을 부탁받을 때, 저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학교에서 독서모임을 하기도 하고, 좋은 강연이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합니다. 이날도 광주에 신영복 선생님이 오신다고 몇몇 선생님께서 같이 가자고 하십니다. 오후 4시라 학교 일정상 힘들 것 같아 보이는데, 의욕적으로 조퇴하고 가자고 저를 꼬드기더니 가기 전날 모두 못 간다는 겁니다. 혼자 조퇴 낸 나는 미.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요. 말해 무엇합니까.

언제 어디서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만 온 마음을 집중할 수 있길 바라며
— 윌리엄 B. 어빈

실망하던 차에 전에 같이 근무하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는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근무하는 환경을 뻔히 아는 처지에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반 담임이 어떻게 조퇴를 냈는지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시며 망설이지 않고 조퇴를 냈다고 하시네요. 지금도 그 환하게 웃던 표정을 떠올리면 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갑니다.
어느 날 문득 한 뼘 자란 아이를 만날 때의
기쁨이란
도서관과 독서문화가 뿌리 내리지 않은 이 땅에서, 사서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들 때가 많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상처 받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그 열정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습니다. 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지프의 신화에서 시지프는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로 옮깁니다. 산 아래로 떨어질 줄 알면서 바위를 옮기는 시지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건 가혹한 형벌이기만 했을까요? 누군가는 시지프가 산 아래로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의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바위를 옮긴 건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하더군요.
제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의 모습이 당장은 요원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시지프라면 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달콤한 휴식을 기대했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고 너무 힘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요. 그리고 꿈을 꾸겠지요. 모르긴 몰라도 바위를 옮길 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땀이 식을 때,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볼 때 모두 행복했을 거예요. 실은 제가 그렇거든요. 말은 힘들다고 하지만 아이들과 실랑이하고, 어느 날 문득 한 뼘 자란 아이를 만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리고 순전히 제 욕심으로 무리해서 독서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때때로 아이들의 고운 모습을 발견하고 혼자 기뻐하지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소한 기쁨을 만나기 힘드니까, 이건 순전히 제 욕심인 거죠.

겨울 들판을 걸으며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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