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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유쾌한 정치 수업을 꿈꾸며 - 초중등 정치교육, 아이들과 함께 어떤 책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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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09 17:51 조회 8,9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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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정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해 보인다. 정치는 정치인을 비롯한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이 바로 정치라고 설파한 『닥치고 정치』(김어준・지승호, 푸른숲, 2011)는 정치가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정치는 우리의 삶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출산율이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악의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일그러진 우리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구호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클린턴 후보는 이 구호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삶의 문제인 ‘경제’를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이때 경제는 단순히 경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태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 이런 식으로 분절적인 사고에 익숙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경제 이슈는 정치와 맞물려 있다. 무상급식을 비롯한 선택의 문제도 결국은 정치적 선택을 통해 해결되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경제민주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서 『내 아이가 살아갈 행복한 사회』(김윤태・이상이, 한권의책, 2012)와 『날아라 노동』(은수미, 부키, 2012)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책들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불안을 진단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한 대안으로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복지 사회에 초점을 맞춰 대안을 제시했다. 정치가 왜 중요한지, 또 정치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실천 방안과 새로운 관점과 사례 등을 통해 정치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열어가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 현장에서의 정치교육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은 무미건조하다. 정치교육은 대개 민주주의의 의미와 역사 또는 제도 등을 단순히 제시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정치는 지금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선 삶의 터전을 형성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갈 중요한 이야기다.
현재와 같은 학교 정치교육의 황폐화는 의도적인 측면도 있다. 마이클 애플은 『학교지식의 정치학』(마이클 W. 애플, 우리교육, 2001)에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수록되는 공식적 지식의 형성 과정과 성격을 짚어낸다. 사실 교과서 지식이라 통칭되는 공식적 지식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마련되는 것일지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 심의 및 검정 절차 과정 그리고 표준 지식으로 등재되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고도로 정치화된 의사결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과서에서는 지식의 중립성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중립성이라는 수사가 오히려 더 정치적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기준으로 시사성이 많은 소재 등은 의도적으로 교과서에서 배제한다. 하지만 쟁점이 있는 시사성 있는 자료를 폭넓게 사용하는 프랑스 등의 외국 교과서 사례 등을 비교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교육이 갖고 있는 편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교과서를 믿지 마라!』(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바다출판사, 2012 개정판), 『세계의 역사 교과서』(이시와타 노부오・고시다 타카시, 작가정신, 2005), 『독일의 역사교육』(최호근, 대교출판, 2009) 등의 저작을 통해 드넓게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변화의 모색
교과서 내용 등으로 살펴본 학교 현장에서의 정치교육은 아직 여러모로 미진하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확장됨에 따라 점차 교과서 수록 지식 내용과 교과서 활용 방안에 대한 관점들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자각이다. 교과서에 제시된 내용이나 사회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제대로 된 교육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것은 교육 환경도 한몫한다. 2012년 지금 학교 현장에서도 교원들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많다. 선거 전에는 교원의 정치적 참여를 제한하고 위축시키는 공문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과연 그 안들이 적절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치적 중립’은 말 그대로 중립적이며 합당한 것일까? 교육 및 교원의 정치적 중립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나온 경위와 그 의미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사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은 4.19혁명 이후 민주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서 마련된 것이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에는 교원과 공무원 등이 동원되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을 막고 교원과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교원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마련했다. 즉,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교원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1) 그러나 이 조항은 이후 교원 및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옥죄는 조항으로 바뀌었다.

이런 잘못된 통념은 『도덕교육의 파시즘』(김상봉, 길, 2005) 같은 책을 통해 톺아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인 김상봉 교수는 이 책에서 현재 우리나라 도덕교육을 ‘노예 도덕’이라며 통렬히 비판한다. 조목조목 교육과정과 교과서 분석을 통해 도덕 교육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짚어내면서 아예 도덕교육의 폐지를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철학교육을 제시한다. 이처럼 기존의 통념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피상적인 비판에 앞서
투표 시간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다. 사실 투표와 관련한 내용은 현재 초중등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고 다루고 있다. 투표율 저하에 따른 문제점 지적과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보자는 내용이 초등 사회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다. 하지만 이때 유의점이 있다. 현재 투표율이나 선거 참여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넘어서야 한다. 투표율과 관련해 일반적인 내용은 젊은 층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을 곱씹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투표율이 낮았던 것은 투표에 참여하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간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등 기본적인 투표권마저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니다.

이는 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미디어는 세상을 마주하는 창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불어 권력을 감시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기公器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창이 잘못될 경우 우리는 세상을 온전히 살 수가 없다. 특히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갖고 있는 현재 생각은 알게 모르게 미디어가 정해 놓은 프레임 속에서 결정되곤 한다. 이런 한계들을 일깨워준 것은 지식채널e를 만든 김진혁 피디의 『감성 지식의 탄생』(김진혁, 마음산책, 2010)이다. 이 책은 미디어의 역할과 세상을 따뜻하게 살피는 지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특히, 파업과 관련한 보도를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이자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함께 나누는 자세는 여러모로 시사점을 던져준다.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어른들뿐만 아이들도 일과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학생들과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사계절출판사, 2012),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갈까?』(박현희・이철수・송승훈・배경내・하종강, 철수와영희, 2011), 『더불어 사는 행복한 경제』(배성호, 청어람주니어, 2010)와 같은 책들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겠다. 이 책들은 아이들과 부자되기 경제가 아니라 더불어 행복한 경제를 모색하면서 무한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볼 수 있는 길동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알바에게 주는 지침』(이남석, 평사리, 2012),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이시백・제윤경・강신주・박성준・송승훈・박권일, 철수와영희, 2012), 『청소년 인권 수첩』(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공현, 양철북, 2010), 『10대와 통하는 미디어』(손석춘, 철수와영희, 2012), 『열정세대』(김진아・참여연대, 양철북, 2009) 등의 책을 나누면서 정치와 우리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들을 통해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한 안목을 틔워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이들
아이들과 학교 현장에서의 정치교육은 제도나 의미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으로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치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 교육은 모순이 많다. 교과서 상에서는 환경을 위해 자전거를 타라고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자전거 등하교 금지 명령을 내린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유쾌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상상력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을 틔울 수 있는 도움 자료가 필요하다. 바로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쿠루사, 동쪽나라, 2003)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베네수엘라 어린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네수엘라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평화를 몸소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희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서울 당산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앞에 자전거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아이들은 책의 독자에서 어느덧 책의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이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펼친 활동은 현실적으로 꾀나 어려웠지만 베네수엘라 친구들이 만든 길을 보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 역시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박남정, 소나무, 2008)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지구 반대편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자전거 길을 만든 이야기가 또 다른 길을 열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쾌한 도전을 도운 길동무들
최근에는 앞선 두 책(『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이 길잡이가 되어 또 다른 유쾌한 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을 아름답게 바꿔나가려는 학생들의 도전이다. 중박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하지만 중박은 치명적 한계가 있다. 아이들이 비바람이나 추위 등을 피해 도시락 먹을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2005년 용산 재개관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현재까지 고쳐지지 않았다.3) 이에 앞서 두 권의 책을 읽었던 친구들이 ‘응답하라, 국립중앙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박물관 바꾸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들은 중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이란 동아리를 만들어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솔루션 친구들은 이 과정에서 유쾌한 도전을 펼친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들의 계획을 세웠다. 이 친구들이 읽은 책들로는 『매기와 초콜릿 전쟁』(미셸 멀더, 초록개구리, 2011), 『무기 팔지 마세요!』(위기철, 청년사, 2002), 『레이시의 아프리카 할머니 돕기 대작전』(수 패럴 홀러, 초록개구리, 2011) 등이 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구상할 수 있었다. 이 책들은 또래 친구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게 용기를 건네준다.

더불어 이런 활동을 준비하면서 교사인 내게 도움이 된 책들은 『아름다운 교육실천 사회참여 체험교육』(천희완・최종순・김신기숙, 우리교육, 2001), 『주제가 있는 사회 교실』(전국사회교사모임 대안사회분과, 돌베개, 2004), 『아름다운 참여』(천희완・이민정・공영아・장대진・김원태, 돌베개, 2004), 『꿈꾸는 국어 수업』(송승훈, 양철북, 2010), 『교사로 산다는 것』(조너선 코졸, 양철북, 2011), 『19년간의 평화수업』(콜먼 맥카시, 책으로여는세상, 2007) 등이었다. 이 책들은 교육의 주체임에도 늘 소외되었던 학생들과 함께 다채롭게 펼칠 수 있는 교육 활동 등을 제시한다.





응답하라, 국립중앙박물관
솔루션 친구들은 중박에 도시락 먹을 장소를 만들어달라며 박물관에 전자 민원과 함께 박물관장님께 편지도 써서 보냈다. 하지만 전자 민원에서는 의견은 좋지만 현실적 여건상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언론에 해당 사실을 기고하며 계속 도전했다. 이윽고 이 내용이 기사4)로 실렸다. 기사로 인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당초 아이들이 제기한 민원에서 문제를 풀어볼 도리가 없다고 한 박물관 측에서 입장을 바꿔 직접 연락을 취했다.5) 아이들이 제기한 도시락 먹을 장소를 제공해주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신문에 나온 것도 신기하고 반가웠는데, 이 소식에 환호했다.

하지만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박물관 측에서는 기존 교육실습장을 도시락 먹을 수 있는 장소로 개방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도 100석 정도로 한정했다. 처음에 박물관의 입장 변화에 고마워하던 아이들도 마냥 그 제안을 환영하지 않았다. 찬찬히 박물관의 대응을 고려하면서 문제점을 찾은 것이다. 교육실습장은 실습장으로 제 기능을 하고, 도시락 먹을 장소는 드넓은 박물관 부지에 직접 마련하면 된다는 것을 짚어낸 것이다. 또한 불과 이틀 전 전자 민원 답변은 불가라고 했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태도를 바꾼 박물관 측의 태도에 씁쓸해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박물관 내 여러 장소 중 도시락 먹을 장소를 살펴보자는 제안을 하며 다 같이 직접 도시락 먹을 장소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또한 텐트 및 유리 등으로 마련된 장소 또는 한옥으로 마련된 식당 등을 직접 구상하고 있다.



쌍방향적 건축과 교육의 의미6)
아이들이 그저 박물관에서 형식적으로 답변한 내용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을 보며 문득 ‘말하는 건축가’ 고故 정기용 선생이 떠올랐다.

“건축가는 ‘내가 그린 대로 살아라!’라고 주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불확정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주민들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재조직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쌍방향적 건축이다.” 실제로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목욕탕을 면사무소 1층에 맞춰 설계하고, 공설운동장은 등나무로 관람석을 덮어, 경기가 없더라도 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는 설계상의 필요가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이용자 다수의 필요에 충성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건축 원칙은 ‘주민의 쓸모’였다. 땅의 기후와 풍토에 걸맞게, 놓일 풍경에 맞춰, 그리고 공공건물을 사용할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지은 것이다.7)정기용 선생이 『감응의 건축』(정기용, 현실문화, 2008)에서 하신 말씀은 비단 건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또한 지금 아이들과 함께 펼치고 있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중박에 아이들이 도시락 먹을 장소도 없는 건축 현실과 정답만 채우라고 강요하는 교육 현실은 묘하게 닮아 있다. 이미 정해진 건축과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에 아이들을 강제로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새롭게 의미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교육
민주주의와 교육은 동사다. 살아 움직이면서 그냥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살펴보고 좀 더 나은 것은 무엇인지 살피며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이자 교육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거대하며 으리으리한 박물관의 외양과 딱딱한 행정에 기죽지 않고 소박하지만 중요한 문제제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 이제 중박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며 진솔하게 응답할 차례다. 끝으로 반 친구가 쓴 소감을 나누며 국립중앙박물관의 성실한 응답과 혁신을 거듭 촉구한다!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비바람과 추위 등을 피해 도시락 먹을 장소가 마련되지 않은 이유가 박물관의 쾌적한 전시 환경과 유물의 보존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 먹을 장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박물관 측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내에 도시락을 먹을장소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비, 바람, 황사, 추운 겨울 같은 경우에는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는 어린이박물관에는 유치원생들도 견학을 오는데 어린이박물관 근처에도 간식이나 도시락을 먹을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원칙만을 고집하고 다른 대체 방법을 생각해내려고 하지 않는 박물관 측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실내에 도시락 먹을 공간을 마련한 박물관들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중에서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서울시과학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등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 시 실내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이런 박물관처럼 전시관과 따로 공간을 분리해서 환풍기를 마련하고 방음벽을 설치한다면 쾌적한 전시환경과 유물보존에 문제가 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보다 훨씬 작은 박물관들도 관람객들의 편의를 생각하고 있는데 규모가 가장 큰 국립중앙박물관은 공간 활용하기가 더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관장님께 편지를 쓰고 신문에 기사를 썼다. 그리고 국민 신문고에 민원을 넣어 국립중앙박물관의 실내에 도시락 먹을 장소가 필요한 이유를 알렸다.

처음에 우리가 청소년 사회참여 프로젝트 설명회를 갔을 때는 아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하는 것만 같고, 같이 앉아 있는 고등학생들처럼 커버린것만 같아서 신나게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어려운 숙제를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은 쉬운데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알아보고 토론하고 생각해내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 먹을 장소가 없다’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들의 생각을 모으고 토론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실내에 도시락을 먹으며 쉴 공간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그 점을 개선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토의하면서 나온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조사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보통의 관람객들 또한 문제점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보를 모으다 보니 박물관 측의 입장도 알 수 있었다. 유물보존과 전시장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실내에 도시락 먹을 공간을 만들지 않았다는 박물관 측의 입장이 이해는 갔지만 편의시설 역시 박물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이 불편해하는데도 대체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고 가지고 온 도시락은 야외 휴식공간에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을 알려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이런저런 토론을 하면서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었다. (중략)

국립중앙박물관에 민원을 넣고 신문사에 기사를 쓸 때는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솔루션 박수빈 학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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