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사의 책 읽기를 응원!] ‘함께’ 책을 읽는 교사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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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8-14 07:55 조회 6,691회 댓글 0건본문
박혜숙 울산 다운고 교사
교사 자신을 위한 책 읽기의 필요성
얼마 전 작고하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을 몇 년 전 월간 <우리교육>에 실린 인터뷰 기사 때문에 만나 뵌 적이 있었다. 최민식 선생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을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진 작업을 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대신 ‘최민식 선생은 정말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구나. 사진이 좋고,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가난한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 오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살이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이고 ‘사회 개혁’이나 ‘사회 고발’은 그 다음 문제라고 느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았다. 교사는 학생을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아이들이 좀 더 올바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아이들 속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과의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재의 독서교육이 ‘교사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독서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모임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중 대부분이 어떤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권하고 읽힐 것인가에 집중된다. 그 속에 교사 자신을 위한 책 읽기는 없다.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계획은 있지만 교사가 자신의 동료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계획은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교사 자신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배우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속에 객관적인 관찰자란 없다.” 인문학자가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는 관찰자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으며, 관찰자에 머무는 한에서는 현장에 참여한 게 아니다. ‘교수행위’를 하는 인문학자는 ‘배움의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의 교수 행위 역시 자기 배움의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해방에 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해방을 구하는 과정에서이며, 누군가를 교육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배움을 통해서이다.
— 고병권(2009), 『추방과 탈주』, 그린비, 165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인 고병권 선생은 『추방과 탈주』에서 인문학자의 역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글을 읽을 당시 나에게는 ‘인문학자’가 ‘교사’로 읽혔다. 교사 자신이 책을 읽고 배우는 과정에 있어야 하며, 그 배움에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그런 모습에서 ‘독서의 힘’을, ‘독서의 가치’를 배우게 되고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교사 독서모임을 시작하다
1997년,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았다. 수업시간은 내가 상상했던 풍경과 전혀 달랐다. 어려운 교과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 열정만 앞서는 교사. 이 삼박자는 항상 엇박자를 만들어냈다. 교직 3년차가 되던 1999년에 국어교과에서 가장 막내였던 내가 국어과 부장이 되고 신규 교사 두 분이 오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던 차에 두 분에게 수업연구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인근 학교의 신규교사 한 분도 함께 참여해서 교실에서 수업할 내용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학습지도안을 만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수업시간이 조금씩 즐거워졌다.
2002년이 되자 모임을 함께하던 동료 교사들이 모두 각기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맡은 학년, 과목이 달라지면서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 모임은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으로 발전했다. 이 모임에 ‘희망찾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이 모임 외에도 각자 학교에서 동료 교사와 독서모임을 꾸려 책을 읽었다. 나 또한 ‘희망찾기’ 외에도 여러 독서모임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2005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만들어진 ‘그리메’라는 모임은 여러 교과 교사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이었다. 매달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 몇 년 후 각자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된 후에도 모임을 계속 해나갔고 이 모임의 교사들 중 몇 분은 나중에 ‘희망찾기’에서 대중강연과 정기강좌를 하게 되었을 때 함께했다. 같은 교과 교사들끼리의 모임일 경우 해당 도서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그 책을 수업시간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의 폭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여러 교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에서 채워갈 수 있었다. 그리고 추천하는 책의 범위가 넓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배움의 자리를 열어가는 모임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자 4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주변에서 역할모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고미숙 선생을 알게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한 동료의 추천으로 고미숙 선생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었다. 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곳에 모인 지식인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풍경’이라는 독서모임을 꾸리고 있었다.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강연회가 있으면 함께 참가했다. 아이들과의 활동을 통해 내 자신도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 부분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통해 조금씩 채워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우리가 원하는 배움의 자리를 직접 만들어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2008년, 나는 희망찾기 모임에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우리 모임의 문을 열어 전공과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어느 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참가하는 데 만족했지만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가 감동받은 책의 저자를 우리 모임에서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제안을했다. 나의 제안을 동료 교사들은 흔쾌히 받아들어 주었다.
그해 12월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을 모시고 ‘현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첫 강연회를 열었다. 처음에 20명 정도만 참가한다면 행사가 가능하겠다는 소박한 희망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교사와 학생이 170명 이상 참가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병권 선생의 명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 교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고 있는 또 다른 독서모임과 연계가 되고 ‘어린이책시민연대’, ‘한살림’ 같은 단체와 인연이 닿아서 폭넓은 배움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해인 2009년부터는 한 학기 단위로 공부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모시고 싶은 저자를 섭외해서 학기말에 대중강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저자에게 추천받은 책들로 우리끼리 공부하는 시간을 한 달에 한 번씩 모두 네 번을 가졌다. 모임에 참가하는 교사는 여러 교과의 교사로 확대되었다. 꼭 정해진 모임 구성원이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학기 단위로 공부할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참가하는 방식이었다. ‘희망찾기’ 모임을 하는 교사들이 주변에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소개를 해서 항상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끼리 하는 공부가 끝나면 학기말에 저자를 모시고 대중강연을 열었다. 모임을 함께하는 동료 교사가 있는 학교의 시청각실을 빌리고 안내문을 만들고 모금함을 만들었다. 강연회에 필요한 경비는 모금함을 통해 해결했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일반인도 참여하는 대중강연회로 진행을 했는데 학생들은 무료로 참가했고 어른들은 참가비로 만 원 정도를 모금함에 넣었다.
이런 형태로 2009년 상반기에는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를 쓰신 정출헌 선생을 모시고 판소리계 소설 속에 담긴 우리 민중의 삶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희망의 인문학』을 읽고 세미나를 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는 이 세미나와 관련하여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현장인문학을 독서모임 교사들과 함께 직접 참관했다. 노들야학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인문학 집중세미나를 통해 클레멘트 코스가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학기말에 『희망의 인문학』을 번역하신 고병헌 선생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2010년 상반기에는 『보노보 찬가』를 쓰신 조국 선생을, 하반기에는 『교실이 돌아왔다』를 쓰신 조한혜정 선생의 책을 읽고 공부한 뒤 강연회를 열었다.
2011년부터는 모임의 운영 방식을 또다시 바꾸었다. 그 즈음에 인문학강연회 자리가 귀하던 울산에서도 그런 행사가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공부를 더 채울 수 있는 형태로 배움의 자리를 변화시켰다. 한 강사를 한 번 만나는 대중강연 형태에서 고미숙 선생의 조언으로 한 강사를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정기강좌 형태로 모임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그리고 매달 강의를 듣기 전에 강의를 듣는 구성원 중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2011년에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철학 강의를 들었고 2012년 상반기에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쓰신 엄기호 선생을 모시고 ‘교육’에 관한 고민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고미숙 선생을 모시고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읽고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엄기호 선생의 추천으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쓰신 전성원 선생을 모시고 정기강좌를 진행 중에 있다.
강의를 듣는 공간도 학교에서 벗어났다. 처음에는 학교도서관을 이용했으나 행사를 진행하는 동료교사 몇 분에게 지속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이 배움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는 북카페로 장소를 바꾸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 장소를 바꾸자 강사와 청강생 모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가 하고 있는 모임의 공부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책이 좋아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부한 시간만큼 우리들의 삶도, 관계도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내가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책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나의 동료들이 성장하고 그로 인해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삶도 성장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런 시간을 나와 내 옆에 있는 친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책을 읽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시작하기를 기대해본다.
교사 자신을 위한 책 읽기의 필요성
얼마 전 작고하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을 몇 년 전 월간 <우리교육>에 실린 인터뷰 기사 때문에 만나 뵌 적이 있었다. 최민식 선생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을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진 작업을 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대신 ‘최민식 선생은 정말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구나. 사진이 좋고,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가난한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 오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살이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이고 ‘사회 개혁’이나 ‘사회 고발’은 그 다음 문제라고 느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았다. 교사는 학생을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아이들이 좀 더 올바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아이들 속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과의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재의 독서교육이 ‘교사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독서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모임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중 대부분이 어떤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권하고 읽힐 것인가에 집중된다. 그 속에 교사 자신을 위한 책 읽기는 없다.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계획은 있지만 교사가 자신의 동료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계획은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교사 자신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배우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속에 객관적인 관찰자란 없다.” 인문학자가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는 관찰자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으며, 관찰자에 머무는 한에서는 현장에 참여한 게 아니다. ‘교수행위’를 하는 인문학자는 ‘배움의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의 교수 행위 역시 자기 배움의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해방에 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해방을 구하는 과정에서이며, 누군가를 교육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배움을 통해서이다.
— 고병권(2009), 『추방과 탈주』, 그린비, 165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인 고병권 선생은 『추방과 탈주』에서 인문학자의 역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글을 읽을 당시 나에게는 ‘인문학자’가 ‘교사’로 읽혔다. 교사 자신이 책을 읽고 배우는 과정에 있어야 하며, 그 배움에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그런 모습에서 ‘독서의 힘’을, ‘독서의 가치’를 배우게 되고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교사 독서모임을 시작하다
1997년,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았다. 수업시간은 내가 상상했던 풍경과 전혀 달랐다. 어려운 교과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 열정만 앞서는 교사. 이 삼박자는 항상 엇박자를 만들어냈다. 교직 3년차가 되던 1999년에 국어교과에서 가장 막내였던 내가 국어과 부장이 되고 신규 교사 두 분이 오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던 차에 두 분에게 수업연구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인근 학교의 신규교사 한 분도 함께 참여해서 교실에서 수업할 내용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학습지도안을 만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수업시간이 조금씩 즐거워졌다.
2002년이 되자 모임을 함께하던 동료 교사들이 모두 각기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맡은 학년, 과목이 달라지면서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 모임은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으로 발전했다. 이 모임에 ‘희망찾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이 모임 외에도 각자 학교에서 동료 교사와 독서모임을 꾸려 책을 읽었다. 나 또한 ‘희망찾기’ 외에도 여러 독서모임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2005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만들어진 ‘그리메’라는 모임은 여러 교과 교사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이었다. 매달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 몇 년 후 각자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된 후에도 모임을 계속 해나갔고 이 모임의 교사들 중 몇 분은 나중에 ‘희망찾기’에서 대중강연과 정기강좌를 하게 되었을 때 함께했다. 같은 교과 교사들끼리의 모임일 경우 해당 도서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그 책을 수업시간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의 폭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여러 교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에서 채워갈 수 있었다. 그리고 추천하는 책의 범위가 넓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배움의 자리를 열어가는 모임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자 4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주변에서 역할모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고미숙 선생을 알게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한 동료의 추천으로 고미숙 선생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었다. 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곳에 모인 지식인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풍경’이라는 독서모임을 꾸리고 있었다.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강연회가 있으면 함께 참가했다. 아이들과의 활동을 통해 내 자신도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 부분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통해 조금씩 채워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우리가 원하는 배움의 자리를 직접 만들어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2008년, 나는 희망찾기 모임에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우리 모임의 문을 열어 전공과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어느 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참가하는 데 만족했지만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가 감동받은 책의 저자를 우리 모임에서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제안을했다. 나의 제안을 동료 교사들은 흔쾌히 받아들어 주었다.
그해 12월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을 모시고 ‘현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첫 강연회를 열었다. 처음에 20명 정도만 참가한다면 행사가 가능하겠다는 소박한 희망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교사와 학생이 170명 이상 참가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병권 선생의 명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 교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고 있는 또 다른 독서모임과 연계가 되고 ‘어린이책시민연대’, ‘한살림’ 같은 단체와 인연이 닿아서 폭넓은 배움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해인 2009년부터는 한 학기 단위로 공부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모시고 싶은 저자를 섭외해서 학기말에 대중강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저자에게 추천받은 책들로 우리끼리 공부하는 시간을 한 달에 한 번씩 모두 네 번을 가졌다. 모임에 참가하는 교사는 여러 교과의 교사로 확대되었다. 꼭 정해진 모임 구성원이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학기 단위로 공부할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참가하는 방식이었다. ‘희망찾기’ 모임을 하는 교사들이 주변에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소개를 해서 항상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끼리 하는 공부가 끝나면 학기말에 저자를 모시고 대중강연을 열었다. 모임을 함께하는 동료 교사가 있는 학교의 시청각실을 빌리고 안내문을 만들고 모금함을 만들었다. 강연회에 필요한 경비는 모금함을 통해 해결했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일반인도 참여하는 대중강연회로 진행을 했는데 학생들은 무료로 참가했고 어른들은 참가비로 만 원 정도를 모금함에 넣었다.
이런 형태로 2009년 상반기에는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를 쓰신 정출헌 선생을 모시고 판소리계 소설 속에 담긴 우리 민중의 삶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희망의 인문학』을 읽고 세미나를 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는 이 세미나와 관련하여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현장인문학을 독서모임 교사들과 함께 직접 참관했다. 노들야학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인문학 집중세미나를 통해 클레멘트 코스가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학기말에 『희망의 인문학』을 번역하신 고병헌 선생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2010년 상반기에는 『보노보 찬가』를 쓰신 조국 선생을, 하반기에는 『교실이 돌아왔다』를 쓰신 조한혜정 선생의 책을 읽고 공부한 뒤 강연회를 열었다.
2011년부터는 모임의 운영 방식을 또다시 바꾸었다. 그 즈음에 인문학강연회 자리가 귀하던 울산에서도 그런 행사가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공부를 더 채울 수 있는 형태로 배움의 자리를 변화시켰다. 한 강사를 한 번 만나는 대중강연 형태에서 고미숙 선생의 조언으로 한 강사를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정기강좌 형태로 모임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그리고 매달 강의를 듣기 전에 강의를 듣는 구성원 중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2011년에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철학 강의를 들었고 2012년 상반기에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쓰신 엄기호 선생을 모시고 ‘교육’에 관한 고민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고미숙 선생을 모시고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읽고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엄기호 선생의 추천으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쓰신 전성원 선생을 모시고 정기강좌를 진행 중에 있다.
강의를 듣는 공간도 학교에서 벗어났다. 처음에는 학교도서관을 이용했으나 행사를 진행하는 동료교사 몇 분에게 지속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이 배움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는 북카페로 장소를 바꾸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 장소를 바꾸자 강사와 청강생 모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가 하고 있는 모임의 공부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책이 좋아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부한 시간만큼 우리들의 삶도, 관계도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내가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책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나의 동료들이 성장하고 그로 인해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삶도 성장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런 시간을 나와 내 옆에 있는 친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책을 읽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시작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