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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사의 책 읽기를 응원!] 부킹(book+ing)하는 선생님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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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8-14 07:45 조회 8,21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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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산 원주 문막초 교사,『교사, 가르고 치다』저자

읽기 전에 용어 정리 : 이 글에서 부킹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사전적 의미인 급 만남이고, 하나는 book+ing의 합성어로 책을 진행하는 행위, 곧 책 만남을 뜻합니다. 착오 없으시길.


1. 남자라는 동물은 추억합니다. 화려한 네온 불빛에서 알싸한 그녀를 만나는 부킹의 야릇함을 말이지요. 교육대학을 다녔던 저와 제 벗들에게도 부킹은 충동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화려한 클럽은 비밀의 정원이었고, 돈 없는 청춘들의 빈곤한 술상과 욕망들을 허락하는 청춘의 쉼터였지요. 여러 번 충동을 충족하기 위해 애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킹을 알기엔 저흰 너무 모범생이었지요. 성공보다 실패한 경험이 많습니다. 솔직히 부킹은 참을 수 없는 창피함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저희에게 부킹은 어울리지 않는 욕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누군가를 급 만나기에 저흰 느린 삶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저희를 가르쳐주시던 교수님들은 너무나 뚱뚱하셨고, 입은 옷가지만큼 특별히 고루하셨습니다. 피트 있는 정장은 본 적도 없고, 뽕 없는 가다마이를 선호하는 교수님을 만난 기억은 저만 없는 것은 아니었지요.

부킹(급 만남)의 실천력이 부족했던 저흰, 학교 현장에서도 부킹(booking–책 만남)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킹(급 만남)의 허탈을 부킹(booking)의 알참으로 변화하려는 실천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부킹의 성공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부킹(책과 만남 모두)하는 동료들은 드뭅니다. 기실 대학 때 이루지 못한 부킹처럼 허출하지요. 부킹할 이유는 부킹에 대한 욕망과 의지의 문제니까요. 사랑의 시작이 이성에 대한 지식이 아닌 이성에 대한 열망인 것처럼, 저희들의 부킹 실패의 원인은 몸에 비해 머리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실 급 만남의 실패와 책 만남의 실패는 욕망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됩니다. 모범생들이 바라보는 욕망에 대한 시각 말이지요. 솔직히 저희들은 욕망을 터부하며 살았지요. 체제 안에서 필요한 요건을 학습하는 모범 기계였습니다. 때문에 욕망은 나쁜 짓이라 여겼습니다. 솔직히 아직 욕망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부킹에 대한 이해를 접할 기회조차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욕망 탐구는 임용고사 점수를 위한 암기의 일종이었으니까요. 프로이트 할아버지의 리비도 정도가 욕망을 배운 전부일 듯합니다. 욕망이론의 거성인 라캉은 배운 적도 없고 아직도 들어본 적 없는 벗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욕망의 두 축인 급 만남의 부킹과 책 만남의 부킹을 모두 실패하고 살았지요.

2. 부킹에 대한 욕망 부제는 비단 저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인의 연간 독서율은 부킹의 어려움을 꾸준히 보여주지요.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중 3명이랍니다. 슬프지만 현실이지요. 교육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은 어떨까요? 재미삼아 졸업 시킨 아이 중 몇 명에게 한 달 동안 관찰을 의뢰했습니다.

메뚝 샘 — 너희 학교에서 한 달 동안 책을 읽는 선생님은 몇 분이나 되시는지 한 달 동안 조사해 오렴. 탕수육 사줄게.
A군, B군, C군 — 네, 선생님~ 짜장면도 사주는 거줘?
메뚝 샘 —통닭도 사줄게.^^

<한 달 후>
(탕수육과 통닭의 향기가 그득한 오후 6시 교실)

메뚝 샘 — 조사는 꾸준히 했겠지? 가감 없이 양심을 걸고 말해주어야 한다. 샘에게는 중요한 문제거든.
A군, B군 — 물론이지요, 조사하면서 저희들도 재밌었어요.
메뚝 샘 — 잘했다, 고맙구나. 책 읽는 선생님이 몇 분이나 되시니?
B군 — 없던데요.
메뚝 샘 — 거짓말하지 말고. 국어 선생님들은 읽으시지 않을까?
B군 — 본 적 없는데요. 진짜예요.
A군 — 저는 음악 선생님이 책 들고 다니는 모습 딱 세 번 봤어요.
메뚝 샘 — 너희들 맹세할 수 있어? 이거 공개될 정보야? ㅎㅎ
A군, B군 — 물론이지요. 저희가 인터뷰에 응할 자신도 있답니다. 이제 먹어도 되지요?
C군 — 죄송해요, 선생님. 저는 잘 못했어요. 그래도 짜장면은 먹고 싶은데…
메뚝 샘 — 잠깐 잠깐 너희들 배고파서 없는 이야기 만들어 내는 건 아니겠지?
A군, B군, C군 — 에이 선생님, 거짓말 안 해요.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메뚝 샘 — 그래 먹자, 그런데 쌤은 오늘따라 탕수육 냄새가 고약하구나. ㅠㅠ (뭔가 슬픈 아픔이 흘러온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부킹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돈벌이가 워낙 피곤한 일상이니까요. 하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직업인 저희에겐 다릅니다. 부킹의 소홀은 직무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 부킹은 그 자체로 당위입니다. 때문에 책을 보지 않는 선생님의 문화는 참으로 슬픕니다. 혹시 집에서 다독하시는 선생님들은 많으실까 애써 짐작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이유로 이 긍정적 진단 또한 바르지 못하리라 예상됩니다. 더 슬픈 현실은, 2012년 최신 통계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독서량은 점점 늘어나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독서량은 더욱 감소한다”고 하네요. 독서량에 불어오는 양극화 현상입니다. 부킹하는 분들은 더 많은 부킹을, 그렇지 않은 분들은 부킹을 포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을 그렇다 치더라도 선생님들에게 독서량의 감소는 비단 사적인 취미 문제만이 아닙니다. “일상을 녹음하여 들어보면 별반 차이의 언어를 만나지 못한다.”라는 강유원의 충고처럼, 부킹하지 않는 삶은 남루한 삶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는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세계와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킹하지 않는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별반 다르지 않는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교사로서 매우 부끄러운 부분이지요.


3. 학교 안에서 부킹이 유용한 만남이 되지 않는 데는 이유가 분명해 보입니다. 공부의 목적이 시험 성적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부킹은 공부가 아닙니다. 부킹은 일종의 사치지요. “책 그만 읽고 공부나 해.”라는 일부 선생님들의 말씀은 이런 이유로 타당해 보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는 독서가 아닙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아니라 문제집을 잘 푸는 아이지요. 잘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책을 사랑하는 선생님이기보다 문제집을 효율적으로 풀어주는 선생님일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이라는 그악한 그물은 책을 사치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부킹 포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부킹의 욕망이 자기 성찰의 도구로 사용된 경험이 부족했지요. 대학 때는 모범생이라 부킹하지 못했고, 현장에 나와 너무 열심히 가르치시느라 부킹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더불어 경쟁과 효율이란 경제적 논리가 대두된 이후 부킹하는 선생님들은 한량처럼 하릴없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부킹하기 싫은 선생님들에게 부킹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은 잉여인간처럼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경쟁력과 무관한 이야기는 불온한 짓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하지만 부킹을 통한 불온함이야말로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의 근간이 될 수 있습니다. 강유원의 지적이 옳다면, 부킹은 “체제 안으로 흡수-고용되어 살아가지 않으면서 꿋꿋이 살아가는 굳건한 의지”의 나를 만들어 주니까요. 부킹을 선택한다면 훨씬 개운한 삶과 기쁨이 함께합니다. 교육 당국의 의도대로 혹은, 관리자들의 눈치만 보는 선생님들에게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책을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까이 할 이유가 적습니다. 끌려가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운한 존재는 조직 외부를 인식하며 반성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상상력을 선물해 주기도 하지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조직 바깥은 사유하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삶을 욕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지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역시 노벨상을 거부한 샤르트르의 개운함은 부킹의 힘입니다.


4. 부킹은 책을 가지고 노는 행위(호이징아)나 책과 벗하는 행위(이탁오)를 떠나 존재 자체의 근원을 묻는 행위입니다. 교육의 본디 목적과 다르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학교 현장에서 부킹하는 선생님이 받아야 할 부담은 놀이와 우정이란 가치와 무관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책은 오히려 조직의 융합을 해체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지요. 조직 내 융합을 위해선 스스로 단단한 주체를 만드는 노력은 나쁜 욕망입니다.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요. 조직 내 융합은 교사 개인의 안정과 안락을 주지만, 부킹은 선생님들 사이의 안락함이 허망함임을 욕망하게 하니 말입니다. 공교육 교사들에게도 비주류가 있다면 아마 부킹하는 교사가 되겠지요. 저처럼요.

경력이 쌓이면서 선생님들이 수업 준비할 때 부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지도서나 교과서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수업한다고 자랑하시는 분도 계셨지요. 자신은 신이 내린 통찰력의 소유자라, 부킹을 통한 공부가 필요 없다는 넋두리도 들었습니다. 대단한 선배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부킹 없는 수업은 자신 없습니다. 수업 전에 관련 도서나 자료를 읽지 않았을 땐 초라해지는 제 자신을 느낍니다. 부킹하지 못했을 때는 수업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지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슬펐던 경험이었습니다. 초등학교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5~6학년 사회과목엔 역사, 한국사, 세계지리, 세계사, 현대사까지 나옵니다. 특히 독립운동 부분을 수업할 때 국내 자료가 많지 않아 애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강준만 교수의 20권이 넘는 『한국사 산책』이나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를 밑줄 쳐 가며 공부해야 억지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은 너무 간단해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었지요. 한국 근현대사의 균형 있는 시각 또한 매우 난해한 문제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무척 어렵게 공부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한국사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그 문제를 통한 다양한 수업이 가능합니다. 한국 근현대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논쟁거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날카로운 문제들이고 예민한 사안들이지요. 이런 문제들로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교사는 당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균형 있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만 느슨해도 매우 정치적인 입장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예민한 문제고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세계사 부분은 한 술 더 뜹니다. 지리적으로 이웃한 나라들의 경제 통산 구조와 현재 경제 시스템까지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조리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인지 많은 선생님들은 복잡한 이론을 생략하십니다. 그냥 외우라고 명령하시지요. 생각하면 복잡해지고 공부하면 더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은 오히려 떨어지지요. “우리나라와 무역 1위인 나라는 중국, 2위는 미국이다.”, “FTA는 아주 중요한 경제적 장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일제의 침략 앞에 당당히 독립했다.”, “신간회는 무엇이며, 김구가 세운 것이 임시정부다.” 정도의 내용을 이해 없이 통째로 외웁니다. 시험에 나오니까요.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OECD 국가 중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아이들이 된 이유지요.

특히 암기 머리가 둔한 저로서는 조건 없는 암기는 참 힘든 공부법입니다. 부킹을 좋아하는 제게 있어 공부는 암기보다 이해지요. 때문에 수업 준비 시간에 자료를 찾아야 합니다. ‘신간회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는 무엇인지’, ‘김구 선생의 진정한 인간성을 어디에 있는지’, ‘FTA가 주는 장점과 단점은 세계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등. 알아야 할 문제도 많고 풀어야 할 숙제도 많습니다. 관련 책들을 무지하게 찾아서 부킹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인 터라 어려운 용어를 순화시켜야 합니다. 어려운 내용을 쉬운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오해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언어로 설명하는 방법을 찾고 연습해야 합니다. ‘FTA를 어떻게 설명할까?’, ‘관세부터 알아야 하고 국가 무역의 구조도 알아야 하는데 경제라는 용어는 어떻게 설명하지?’, ‘아, 머리 아프다.’

그렇게 겨우겨우 준비한 수업도 틀어지기 쉽습니다. 몇 해 전 세계사 부분에 관심이 많은 은총이란 친구가 십자군 원정의 실패 원인을 물었습니다. 허걱~, 대답 불가입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터. “인터넷 검색해 보고 다음날까지 공부해 오면 네가 공부한 내용에 맞고 틀린 부분을 내가 고쳐 줄게”라고 에돌려 말하고 보냈습니다. 수업 후 십자군에 관한 책을 뒤져야 합니다. 완.벽.하.게. 공부해야만 했네요. 밤새 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를 읽었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제발 그만 물어봐라.’


5. 교사에게 부킹은 대단히 힘든 노동입니다. 또한 별다른 보상이 없기 때문에 쉽게 욕망할 수 없는 수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부킹을 통해 학교 바깥을 상상하는 창조력은 가치와 의미라는 교육의 양 마리 토끼를 잡는 그물입니다. 교사 스스로 가치와 의미로 단단해질 수 있을 때 아이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때론 이런 고집이 학교 내에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솔직히 교사들에게 외부에 대한 상상은 그 자체가 불온함입니다. 왜 불온할까요? 간단합니다. 부킹을 통해 발전된 ‘인문학적 상상력’은 경쟁력 강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체제와 조직의 안정을 욕망하는 선생님들에게 더없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부킹할 사치가 있다면 차라리 성인클럽에서 부킹(급 만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출세의 가속을 붙여주는 경쟁력입니다. 조직은 새로운 상상력보다 새로운 충동을 더 좋아하니까요.

이쯤 되면 소통을 위한 부킹 강화 운동이 학교라는 조직을 파괴하는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위험한 분들은 언제나 부킹하고 계셨으니까요.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외친 프란시스코 페레 선생님은 부킹을 너무 많이 하셔서 단두대에 오르셨습니다. 덕분에 저흰 체벌이 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페레 선생님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아동 인권의 소중함을 선물하셨지요. 박홍규 선생님의 페레 평전을 보고 알게 된 사실입니다. 연예인 김혜자 씨는 오묘하게 이 책을 패러디해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박홍규 선생님의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이처럼 부킹은 교사들에게 정확한 지식과 안목을 줍니다.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희생했던 위대한 사람들에게 대한 존경의 가치도 가르쳐 주지요. 부킹을 통해 배운 지식은 이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되기 때문에 장기 기억될 수 있습니다. 이해는 암기보다 깊은 학습 방법입니다.

부킹을 통해 저는 많은 부분 성장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들을 세 번 이상씩 읽어낸 후론 고등학생이 물어봐도 근현대사는 빠삭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고3인 조카는 제게 근현대사 특강을 듣고 그 수능 1등급을 받았답니다. (부끄~~ 자랑질^^) 지식의 성장만이 아닙니다. 부킹하면서 생긴 상상력은 재밌는 수업을 가능하게 합니다. 책과 자주 만나니 책 속에 무수히 넘쳐나는 세상들을 그대로 수업화할 수 있습니다. 미술시간엔 더 없이 좋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 그림의 미학사적 이야기와 화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더욱 신나게 그림에 몰입합니다. 큰 도판 책을 보여주면 더욱 좋습니다. 그런 책은 너무 비싸지만요.


6. 부킹의 의미에 대해 이권우는 “지식 습득을 위한 책읽기를 넘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소통을 위한 책읽기를 새롭게 제안”하고자 합니다. 부킹은 곧 변화와 소통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부킹은 자아 성찰이나 사회적 소통과는 무관하게 학생의 진로와 선생님 진급을 위해 쓰이곤 합니다. 목적 없이 책 읽는 선생님들은 드뭅니다. 솔직히 선생님들에게 부킹은 대학시절 부킹과 별로 차이 없는 욕망들이긴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은 그런 행위’이지요. 역설적이게도 부킹을 사회적 소통의 한 방식으로 말한 이권우의 지적은 선생님들에 대한 부킹의 당위를 요구합니다. 모름지기 선생님은 부킹해야 사회와 새로운 소통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돌려 말하면 부킹 없는 선생님은 소통 없는 선생님이요, 소통 없는 선생님은 별 볼 일 없는 직업인이란 뜻입니다. 조금 잔인하지요.

기실 성찰과 소통은 교육의 근본 목표입니다. 따라서 잘 가르치는 행위는 부킹 잘하는 행위가 됩니다. 부킹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지요. 부킹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세상과 대화하고, 세상을 배우는 그 자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가 됩니다.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때론 불온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가 창조에 대한 상상력이라면, 이제 교육 정책의 노선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과급보다 선생님들의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의 교육이 한발 진보하지 않을까요? 이건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까?


7. “읽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어둡고, 생각하고 읽지 아니하면 위태롭다”는 공자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공자는 부킹과 생각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고 말합니다. 부킹이야말로 인간의 위태로움을 슬기로운 성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킹은 곧 배움입니다. “선생님의 성찰이 학생의 성찰을 돕는다”는 교육 기본 원칙을 준수하자면, 부킹은 곧 교사 의무론이 됩니다. 소설가 장정일은 “책을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나쁜 시민’이라는 이야기지요. 독서하지 않는 시민은 나쁜 시민입니다. 나약한 신봉자가 되기 일쑤며, 우중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독서가 숙명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선생님이 사회적 관습에 신봉자가 되면 아이들은 그 사회의 노예가 되고, 선생님이 우중이면 아이들은 더 나쁜 우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선생님들에게 독서는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할 강도만큼의 당위입니다. 아니 당위가 돼야 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선생님은 체제의 노동자며 부속품일 뿐입니다. 책을 통해 세상과 존재의 벗들을 탐하지 않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변화 또한 탐할 수 없는 법이지요. 선생님들에게 독서는 인간 자체, 세상 자체를 탐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찰 조건입니다. 이쯤 오면 선생님의 자질을 부킹으로 물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습니다. ‘부킹하는 선생님이 아름답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나는 부킹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되겠지요. 아이들은 새로운 상상력과 소통에 목말라 있으니까요. 훌륭한 선생님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과감히 부킹하시라 종용해 봅니다. 아이들은 부킹 잘하는 선생님을 따를 테니까요. 상상력과 소통은 시대의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원하는 가장 큰 요구 사항입니다. 독서가 불온한 짓이 되지 않는 그날을 위하여 외칩니다. “부킹하는 선생님이 될래요.” 아이들은 이렇게 외치겠지요. “나는 부킹하는 선생님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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