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 삼척여고 사서교사,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대외협력국


몇 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 도교육청 감사팀이 파견되었다. 3일에 걸쳐 학교의 행정과 교육과정 등 학교 전반을 감사한다는 말에 학교 전체가 바쁘게 움직였다. 교무부장 선생님께서는 학교도서관 운영 계획서 및 운영 관련 서류도 제출해야 하니 준비하라 하셨고 처음 감사를 받던 나는 긴장하며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감사가 시작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드디어 감사팀의 한 직원이 나를 불렀고 준비했던 서류를 들고 감사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은 나에게 “왜 다른 학교는 학부모 사서 도우미(명예사서)를 운영하는데 선생님은 안 하시나요?”라고 물었고 긴장했던 나는 “제가 아직 총각이라 아주머니들이 너무 무섭습니다.”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대답을 하며 엄숙한 표정을 한 감사관에게 웃음을 안겨 드렸다.


초등학교에서의 실패
사실 학부모 명예사서를 꾸려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5년 중 2～3년 정도는 학부모 명예사서가 있었다. 초기 모집 때, 꽤 많은 어머니들이 참가를 희망하셨고, 오전・오후로 나누어 도서관 정리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에게 책 읽어 주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에 참가해 주시어 학교도서관에 나름 활력을 불어 넣어주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부모님들의 참여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오전에 참가를 희망하셨던 학부모들은 도서관에 별도로 봉사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 아니었던 터라 매일 수업이 진행되는 도서관에서 불편하게 수업을 지켜보고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도서관에서의 활동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오후에 신청하신 분들도 어려움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끝난 오후에 오셔서 간단히 도서관 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 프로그램을 하시던 학부모들도, 저학년은 점심을 먹고 곧바로 하교하고, 고학년은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이 많아 준비하신 것을 하지 못하며 허탈하게 되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다.
모집 첫 해, 학부모 명예사서 프로그램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듬해, 학부모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진행하고자 했지만 학교의 지원 부재로 인하여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도서부의 부족한 2%
실패를 경험하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긴지 2년째인 나는 학부모 명예사서의 필요성을 별다르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 같은 도서부 학생들이 도서관의 모든 업무에 대해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일을 독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 정리가 늦을 때에는 “이래서 학생들이 책을 빌릴 수 있겠냐?”라는 핀잔을 주고 급하게 필요한 자료가 있으니 일주일 내에 준비해 달라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곤 한다. 이렇듯, 고등학교에서는 도서부 학생들이 학부모 명예사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한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에 비해 어른 같았던 도서부 학생들이 도서정리는 잘 하지만 행사진행이나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데는 리더십과 경험 부족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학부모 명예사서의 역할
학교도서관에서 활동하는 학부모 명예사서의 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sup>◆1

◆1</sup>장혜란, 이세진 2012. 학교도서관의 학부모 자원봉사자 만족도 연구 : 안양·과천지역 초등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국문헌정보학회지」, 46(1) : 183–200.


첫째, 학교도서관의 운영 실무 영역을 보조한다. 대출 반납 업무, 서가 정리, 훼손된 도서의 보수 등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업무를 돕는 것이다.
둘째, 독서 활동을 지도한다. 학교마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학부모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활동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셋째, 도서 기증이나 도서 교환전, 도서바자회와 같은 후원활동을 한다.
사서교사들이 생각하는 위와 같은 역할과는 달리, 학부모들은 주로 자녀의 도서관 이용 활성화와 독서습관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학교도서관 운영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기대 및 수행역할은 대출, 반납, 서가, 정리, 도서관 청소, 이용지도 순으로 높으며, 행사 운영이나 목록작성 등에 대한 참여 요구는 저조한 편이다. ^◆2
◆2김종성, 윤명자, 2008. 학교도서관의 학부모 자원 봉사 활동 실태 연구 : 대구지역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경성대학교인문학논총」, 3(1) : 269–296.


고등학교 학교도서관 살아남기
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 명예사서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있더라도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하기를 꺼려한다. 그 이유는 입시에 대한 부담감과 학교도서관에 대한 관심 부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의 다양한 활동과 잦은 이용은 성적 하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불안 심리가 학생들의 이용뿐만 아니라 학교도서관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도 떨어트리고 있다. ^◆3
◆3 송기호. 2012. 학생의 자아 탄력성 신장을 위한 사서교사와 학부모의 협력 관계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한국비블리아학회지」, 23(2) : 69–86.

하지만 이것은 고등학교에서 학부모 명예사서를 운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서교사도 입시제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 아이들과 함께 오는 초등학교 도서관과는 다르게 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학교도서관에 들르지 않고 교무실에 있는 담임교사에게 진학에 대한 정보나 학생 상담을 하고 돌아가신다. 이렇게 학교도서관에 무관심한 학부모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서교사가 독서상담 및 진학 관련 독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와 관련된 사항인 자기소개서나 논술, 그리고 학생부 독서이력 기재 사항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관리하여 학부모에게 진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학부모들은 학교도서관이 단순히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곳이라고 여기기보다 교육과정 및 진로・진학과 연계된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진로・진학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학부모 명예사서의 역할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명예사서들의 여러 역할 중 운영 실무 보조(대출반납, 정리)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이 부분보다는 도서관 후원활동 및 행사활동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바자회, 도서 기증전 등을 통하여 수익금을 학교도서관 및 학생활동에 기증하거나 학부모들이 학교도서관에서의 행사 진행을 하며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를 제공하여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도서관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한지 7년, 학교도서관에서는 대학에서 배운 학문적 지식보다 몸으로 부딪쳐 얻는 경험적 지식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인 체제의 학교도서관에서는 학부모가 도서관에 도움을 준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학부모와 함께 도서관 운영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솔직히 학부모 명예사서 운영을 실패했다. 경험부족, 관리 및 지원 부족 등으로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이력을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좋은 밑바탕이 되었음은 틀림이 없다.
시작이 반이다. 학부모 명예사서와의 운영이 어렵다면, 학교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행사부터 학부모의 손을 빌려보자. 그들을 학교도서관으로 이끌고 학교도서관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학교도서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도록 노력해 보자.
사서교사들이여! 두려워 말자! 한 번의 행사를 학부모와 함께 잘 이끌어 갔다면 고등학교에서도 학교도서관을 위해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