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책 읽어 주기는 함께 살고 싶은 삶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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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13 08:41 조회 6,881회 댓글 0건본문
육용희
어린이책시민연대 대표
1990년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오도네 부부의 5살 아들 로렌조는 ‘부신백질이영양증’인 뇌를 퇴화시키는 매우 희귀한 유전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는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엄마에게 “집에 가서 책 읽어 줄 거지.” 하며 안긴다. 아이는 불안하고 낯선 상황에서 자기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찾는다. 엄마와 늘 책을 함께 읽으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로렌조가 점점 말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엄마는 이전과 다름없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이는 병원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으며 누워서 숨을 쉬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엄마는 겉으로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교감한다. 이런 문화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어떻게 부추길 것인가
아이들이 만나면 좋을 세상은 우리 모두가 살고 싶은 세상이다.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는 세상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펼쳐놓은 다양한 삶들을 만나 좋아 보이는 것과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운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낯설지만 다양한 세상을 이런 세상도 있더라 하며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살면서 겪어봄직한 일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같이 꿈을 꾼다.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여러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서로 존중하고 사는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고,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읽고 좋았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어 집에서, 공공도서관에서, 지역아동센터에서, 복지관에서 그리고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준다.
책을 읽어 준다고 하면 그 대상은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될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책 읽어 주는 걸 듣는 것은 글을 안다고 해도 본인이 직접 읽는 것보다 좀 더 편안하게 듣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유아부터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이야기의 재미를 알아가고 함께 읽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 주지만,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에서는 영유아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읽어 준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은 아이 엄마나 할머니에게도 읽어 준다.
간혹 책 읽어 주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몸이 반쯤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거나 눈이 슬며시 감기는 아이도 있고, 옆에 있는 책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도 있다. 뒤돌아 앉은 아이, 친구랑 소곤소곤 하며 다른 세상에 들어선 아이도 있다. 미안할 뿐이다. 아이들의 몸짓이 바로 언어이다. 말하지 않아도 책을 같이 읽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해준 것이 고맙다. “이런 세상도 있는데 참 좋아 보이지 않니?” 하며 보여주는 것까지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좋은 책을 읽어 주는데 왜 안 듣지?’ 하며 “조용히 해!”라든가 “똑바로 앉아서 들어!” 하며 강요하기도 한다. 실제로 책 읽어 줄 때 아이들이 안 듣는다고 생각해서 아이 엄마가 뒤에 앉아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 않도록 자청해서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존중 받으면서 살면 좋겠다고 하는 책을 읽어 주는데 책 밖에서는 지시하고 명령하고 나무란다. 게다가 책 읽어 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딴청을 피우면 그것을 못 견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우미를 요청하기도 한다. 한 사람은 앞에서 읽어 주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지시나 명령은 존중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책을 읽어 준다고 아이들이 언제나 책의 내용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야기에 푹 빠지지 않아 힘들어할 땐 책 읽어 주기를 멈춘다. 시간을 정해놓고 읽어 주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꼭 책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아이가 고른 책을 읽어 달라고 가져올 때도 있다. 아이와 늘 같이 읽어 온 정말 좋아하는 책도 있어 그럴 때는 그냥 읽어 주지만, 즉석에서 그야말로 아무거나 뽑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역시 같이 읽는다. 읽으면서 정말 이야기가 뜨악할 때 눈이 커지면서 놀라기도 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감정을 넣어서 읽게 된다. 같이 읽는 것이 바로 대화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어떤 특정한 책을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여겨 읽으라고 권하거나 읽어 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감동을 받았다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장도서목록으로는 모자라 필독서가 연령별로 넘쳐나고 있는 거다. 그뿐인가? 권장도서목록이라든가 필독서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여겨 독서지도, 독후활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책놀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한다.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퀴즈를 내고 시험을 본다. 이것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읽어 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똑같이 느끼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읽어 주고 굳이 빵을 만드는 활동을 할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도 하고 또 책을 읽는 것은 간접경험이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책 읽어 주기는 살아가는 힘을 준다
조르푸아 드 페나르의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를 읽어 줄 때가 있다. 늑대 루카스가 엄마염소와 아기염소를 만나고 빨간모자를 만났을 때 아이들은 잔뜩 긴장하다가도 루카스가 난데없이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물으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무 슬플 거라는 엄마염소의 말과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빨간모자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늑대 루카스한테 아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길을 같이 떠난다. 뽀얗고 통통한 돼지 세 마리를 만나 헤어진 자기 형제를 그리워하는 루카스가 버릇없는 피터를 만나도 괜찮은 듯하다. 루카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러다 마냥 마음 약한 줄로만 알았던 루카스가 못된 거인을 만나 한 방에 잡아먹었을 때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사람 잡아먹는 거인’이라고 연필로 쓰는 것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은근히 물어본다. 아이들은 그제야 책에서 눈을 떼고 슬며시 웃는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 주는 것 이외에 어떤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은 위험해, 그러니까 조심해야 해,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거나 좋고 나쁨을 한정해서 수없이 이야기한들 그것이 잔소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좋아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며 꿈을 꾼다.
책 읽어 주기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책을 사이에 두고 둘러 앉아 함께 책에서 펼친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거다. 특히 도서관은 영유아부터 유치원 아이들 그리고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고루 모여 있을 때가 있다. 연령별로 나누지 않는다. 물론 아이 엄마들도 함께 읽는다. “자, 이제 책을 읽었으니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하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책을 읽어 줄 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간혹 읽어 줄 때 중간에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이 다른 아이들에게 호기심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질문일 수도 있고 자기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판단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함께 둘러앉아 있다는 것은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읽어 주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것인지,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하는 이야기인지. 그래서 함께 나누어야 할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를 말이다.
아이들은 길 가다 마주치는 처음 보는 어른과 쉽게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책 읽어 주기는 어려서부터 책 읽어 주는 어른을 만나 책을 들으면서 누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책 속의 삶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기도 하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자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려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온 엄마들에게 선뜻 다가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고 하면 마침 목이 아팠는데 잘 됐다며 반색을 한다.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듣는 엄마들은 어느덧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읽어 주는 거 들으니까 더 재미있네요,” 한다.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즐거움을 주는 책 읽어 주기를 우리 일상의 문화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어린이책시민연대 대표
1990년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오도네 부부의 5살 아들 로렌조는 ‘부신백질이영양증’인 뇌를 퇴화시키는 매우 희귀한 유전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는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엄마에게 “집에 가서 책 읽어 줄 거지.” 하며 안긴다. 아이는 불안하고 낯선 상황에서 자기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찾는다. 엄마와 늘 책을 함께 읽으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로렌조가 점점 말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엄마는 이전과 다름없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이는 병원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으며 누워서 숨을 쉬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엄마는 겉으로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교감한다. 이런 문화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어떻게 부추길 것인가
아이들이 만나면 좋을 세상은 우리 모두가 살고 싶은 세상이다.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는 세상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펼쳐놓은 다양한 삶들을 만나 좋아 보이는 것과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운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낯설지만 다양한 세상을 이런 세상도 있더라 하며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살면서 겪어봄직한 일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같이 꿈을 꾼다.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여러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서로 존중하고 사는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고,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읽고 좋았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어 집에서, 공공도서관에서, 지역아동센터에서, 복지관에서 그리고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준다.
책을 읽어 준다고 하면 그 대상은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될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책 읽어 주는 걸 듣는 것은 글을 안다고 해도 본인이 직접 읽는 것보다 좀 더 편안하게 듣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유아부터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이야기의 재미를 알아가고 함께 읽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 주지만,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에서는 영유아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읽어 준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은 아이 엄마나 할머니에게도 읽어 준다.
간혹 책 읽어 주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몸이 반쯤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거나 눈이 슬며시 감기는 아이도 있고, 옆에 있는 책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도 있다. 뒤돌아 앉은 아이, 친구랑 소곤소곤 하며 다른 세상에 들어선 아이도 있다. 미안할 뿐이다. 아이들의 몸짓이 바로 언어이다. 말하지 않아도 책을 같이 읽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해준 것이 고맙다. “이런 세상도 있는데 참 좋아 보이지 않니?” 하며 보여주는 것까지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좋은 책을 읽어 주는데 왜 안 듣지?’ 하며 “조용히 해!”라든가 “똑바로 앉아서 들어!” 하며 강요하기도 한다. 실제로 책 읽어 줄 때 아이들이 안 듣는다고 생각해서 아이 엄마가 뒤에 앉아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 않도록 자청해서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존중 받으면서 살면 좋겠다고 하는 책을 읽어 주는데 책 밖에서는 지시하고 명령하고 나무란다. 게다가 책 읽어 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딴청을 피우면 그것을 못 견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우미를 요청하기도 한다. 한 사람은 앞에서 읽어 주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지시나 명령은 존중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책을 읽어 준다고 아이들이 언제나 책의 내용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야기에 푹 빠지지 않아 힘들어할 땐 책 읽어 주기를 멈춘다. 시간을 정해놓고 읽어 주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꼭 책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아이가 고른 책을 읽어 달라고 가져올 때도 있다. 아이와 늘 같이 읽어 온 정말 좋아하는 책도 있어 그럴 때는 그냥 읽어 주지만, 즉석에서 그야말로 아무거나 뽑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역시 같이 읽는다. 읽으면서 정말 이야기가 뜨악할 때 눈이 커지면서 놀라기도 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감정을 넣어서 읽게 된다. 같이 읽는 것이 바로 대화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어떤 특정한 책을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여겨 읽으라고 권하거나 읽어 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감동을 받았다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장도서목록으로는 모자라 필독서가 연령별로 넘쳐나고 있는 거다. 그뿐인가? 권장도서목록이라든가 필독서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여겨 독서지도, 독후활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책놀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한다.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퀴즈를 내고 시험을 본다. 이것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읽어 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똑같이 느끼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읽어 주고 굳이 빵을 만드는 활동을 할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도 하고 또 책을 읽는 것은 간접경험이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책 읽어 주기는 살아가는 힘을 준다
조르푸아 드 페나르의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를 읽어 줄 때가 있다. 늑대 루카스가 엄마염소와 아기염소를 만나고 빨간모자를 만났을 때 아이들은 잔뜩 긴장하다가도 루카스가 난데없이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물으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무 슬플 거라는 엄마염소의 말과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빨간모자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늑대 루카스한테 아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길을 같이 떠난다. 뽀얗고 통통한 돼지 세 마리를 만나 헤어진 자기 형제를 그리워하는 루카스가 버릇없는 피터를 만나도 괜찮은 듯하다. 루카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러다 마냥 마음 약한 줄로만 알았던 루카스가 못된 거인을 만나 한 방에 잡아먹었을 때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사람 잡아먹는 거인’이라고 연필로 쓰는 것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은근히 물어본다. 아이들은 그제야 책에서 눈을 떼고 슬며시 웃는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 주는 것 이외에 어떤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은 위험해, 그러니까 조심해야 해,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거나 좋고 나쁨을 한정해서 수없이 이야기한들 그것이 잔소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좋아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며 꿈을 꾼다.
책 읽어 주기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책을 사이에 두고 둘러 앉아 함께 책에서 펼친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거다. 특히 도서관은 영유아부터 유치원 아이들 그리고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고루 모여 있을 때가 있다. 연령별로 나누지 않는다. 물론 아이 엄마들도 함께 읽는다. “자, 이제 책을 읽었으니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하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책을 읽어 줄 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간혹 읽어 줄 때 중간에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이 다른 아이들에게 호기심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질문일 수도 있고 자기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판단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함께 둘러앉아 있다는 것은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읽어 주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것인지,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하는 이야기인지. 그래서 함께 나누어야 할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를 말이다.
아이들은 길 가다 마주치는 처음 보는 어른과 쉽게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책 읽어 주기는 어려서부터 책 읽어 주는 어른을 만나 책을 들으면서 누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책 속의 삶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기도 하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자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려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온 엄마들에게 선뜻 다가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고 하면 마침 목이 아팠는데 잘 됐다며 반색을 한다.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듣는 엄마들은 어느덧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읽어 주는 거 들으니까 더 재미있네요,” 한다.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즐거움을 주는 책 읽어 주기를 우리 일상의 문화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