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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청소년에게 필요한 책, 그리고 사서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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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4-07 23:35 조회 7,85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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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훈 경기 광동고 국어교사,
『송승훈의 꿈꾸는 국어 수업』저자
 
 
고등학생인데도 책이 낯선 친구들이 꽤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고 부끄럽게 웃으며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책을 읽으라고 목록을 주었는데, 그 책들이 도무지 자신에게 읽히지가 않아, ‘아 나는 책 읽기가 적성에 안 맞구나.’ 하고 마음을 접은 학생들이 있다.
책 읽기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언제나 그 자신에게 어울리는 책을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학생들은 거의 모두 잘 읽을 수 있는 책을 안내 받지 못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에 학생들이 잘 읽으면서 인생과 세상을 잘 알게 하는 책들이 있으면 책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이 없어지리라고 본다.
 

청소년이 나오는 책, 슬픈 책
학교도서관에는 우선 읽는 재미가 생기는 책이 있어야 한다. 그냥 흥미만 따지자면, 남학생에게는 판타지 소설이 그 마음을 확 사로잡고, 여학생에게는 인터넷 소설이 푹 빠질 만하다. 하지만 이런 책은 엄청나게 재미가 있지만, 배우는 게 별로 없으니까 아니다. 재미가 있으면서, 청소년들이 잘 읽는 책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를 닮은 사람이 나오는 책을 잘 읽는다. 책을 펼쳐서 몇 장 읽었는데,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싶으면 글 읽는 맛이 난다. 청소년에게는 자기 또래의 청소년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책이 인기를 끈다. 이런 책으로는 성장기에 인간이 겪는 문제 상황을 다룬 성장소설, 학교를 배경으로 쓴 문학작품, 교사가 쓴 교단일기가 있다.
 
"청소년기가 되면 옳고 그름에 예민해진다. 자기 가치 체계를 세워가는 때라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 정의에 대해 쓰인 책을 학교도서관에 충분히 갖추어 놓으면, 학생들은 책을 더 잘 읽게 된다."

성장소설은 쏟아져 나온다는 표현을 해도 좋을 정도로 여러 책이 나온다. 이옥수와 김중미 같은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학생들이 잘 읽는 책은 몹시 곤란한 문제 상황을 다룬 책들이다. 학교폭력과 10대 청소년이 임신한 내용을 다룬 책이 도서관에 있으면 그 책에 학생들 손이 자주 간다.
학교폭력에 대한 책으로는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라고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사들이 직접 자신이 겪는 일을 쓴 단편소설집이 있다. 이 책에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여러 학교폭력 사례가 나오는데, 학생들이 다들 ‘정말 자기들 이야기와 같다’고 놀라워한다. 이옥수가 쓴 『키싱 마이 라이프』도 10대 임신을 다루어서 학생들이 재밌어 한다. 여성학자 김고연주가 6년 동안 원조교제를 하는 청소년들과 면담해서 그들의 사연을 담은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학생들이 잘 읽는다.
그리고 학생들은 인생이 안 풀려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책을 좋아한다. 가학적인 취미가 있어서 아니다. 원래 사람은 남 안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나쁘지 않다. 슬픔을 느낄 때 사람은 욕망이 정화되고 더욱 사람답게 되기 때문이다. 맹자도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보고 슬픔을 느낄 줄 알면 인간이라(無惻隱之心 非人也)고 했다. 『안철수의 생각』을 쓴 제정구가 세명대 르포학과 학생들과 같이 쓴 『벼랑에 선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는 『현시창』과 『4천원 인생』도 있는데, 이 두 책은 기자가 쓰다 보니 현실의 어려움을 너무 답답하게 써놓아 학생들이 그만 질려서 희망을 잃어버린다. 앞으로 자신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싶어 막막해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 일상에서 기쁨과 희망을 있기에 삶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데, 이 두 책은 현실을 비판하려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력을 놓쳐버렸다.
나는 『4천원 인생』이나 『현시창』도 권하지만, 그보다는 『벼랑에 선 사람들』와 오도엽이 쓴 『밥과 장미』를 더 잘 권한다. 이 두 책은 앞의 두 책과 다르게, 현실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실현 가능해 보이는 희망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책은, 그 책을 쓴 저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학생을 경쟁주의로 더 몰아넣고, 더 이기적으로 만들 수 있다. 지나친 공포는 인간을 짐승처럼 제 한 몸 살 궁리만 하게 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옳고 그름에 예민한 때
청소년기가 되면 옳고 그름에 예민해진다. 자기 가치 체계를 세워가는 때라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 정의에 대해 쓰인 책을 학교도서관에 충분히 갖추어 놓으면, 학생들은 책을 더 잘 읽게 된다.
예전에 성장소설은 주로 개인적인 고민들이 주로 나왔는데, 요즘에는 사회역사적인 고민을 다루는 소설들이 나오고 있다. 북멘토에서 펴낸 『난 아프지 않아』와 『벌레들』을 보면, 가출과 성매매, 5.18광주항쟁과 제주4.3항쟁, 삼청교육대와 촛불시위를 배경으로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성장소설을 많이 읽어서 이야기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여기는 학생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은 성장소설을 권해 보자.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일이 생기면, 그에 대해 책을 빨리 사서 학교도서관에 전시하면 좋다. 얼마 전에, 세계적인 흑인 인권운동가인 만델라가 세상을 떴다. 만델라는 그 삶이 극적이어서 학생들이 반응을 보일 만하다. 만화책이라 읽기 쉬운 『넬슨 만델라』를 보여 주면, 학생들이 한 사회가 나아지는 데 얼마나 많이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이 책으로 전체 흐름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자크 랑이 쓴 『만델라 평전』과 『만델라 자서전』를 소개한다. 만델라가 성공한 이유를 정리해서 실용서처럼 쓴 『만델라스 웨이』를 권해도 좋다. 만델라에 대해서는 어린이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데, 이 어린이 책을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들여놓아도 좋다.
최근에 민영화 문제로 철도 파업 문제가 터져서 뉴스에 나왔는데, 이런 때는 민영화와 노동인권에 대한 책을 준비해서 전시하면 좋다. 의료민영화 문제가 생겼을 때는 보건의료와 관련해서 고민한 책들을 정리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으면 학생들이 관심을 보인다.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사회 정의를 이루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자신의 생일에 노숙자를 교황청으로 초청해서 큰 감동을 주었다. 언론에 이런 보도가 크게 나오면, 그 신문기사와 함께 종교인으로 감동적인 실천을 하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책을 구입해서 전시하면 좋다.
사서가 최대한 빨리 관련된 책들을 찾아 들여오는 게 중요하다. 빠르게 사회적 관심사가 옮겨가는 때라, 속도가 늦으면 학생들의 관심이 적어지고 만다. 사회 쟁점이 되는 주제는 사실 정해져 있다. 사랑, 노동, 환경, 역사, 종교, 양극화, 빈부격차, 건축, 전통, 민주화, 여성, 평화, 분단 등 여러 주제를 적어 두고, 거기에 맞게 책 목록을 정리해 두고, 미리 책을 사두었다가, 어떤 내용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 곧바로 그 책을 꺼내 전시할 수도 있다.
 

사서의 태도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살 때는 당연히 이용자를 고려해서 책을 골라야 한다. 이 방법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도서 분류에 따른 방법이다. 학생들이 공부할 때 필요한 책,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이해하게 해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을 제대로 알게 하는 책이 있고, 남과 조화를 이루며 바르게 살도록 가치관을 세우는 책이 있다. 마음을 위로받는 예술 책이 있고, 어떤 일에 대해 내용을 자세히 알려 주는 책이 있다. 이 책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도서 분류 체계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분류번호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분류번호 아래에 속한 책들이 어떤 정신에서 나왔는지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서는 이 책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자꾸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럴 때 도서 구입 예산과 책 구입 과정은 피곤한 일이 되지 않는다. 그 물리적인 과정이야 고단하지만, 그 책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사서를 꿈꾸게 하고 신나게 해서 피로를 잊게 한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들고,
그 책들이 제대로 된 책들이라면, 학생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학생들이 나아지면, 그들은 세상을 더 낫게 해서 우리 모두를 좀 더 행복하게 한다."
 
둘째, 사회 분위기에 대응하며 책을 사는 방법이다.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읽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학생들 요구의 크기만큼 분야별로 책을 사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상위 부자 20%가 사회 자원의 80%를 갖고 나머지 자원 20%를 중하위 80% 사람들이 나누어 갖는, 20:80의 사회 양극화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사회가 불안해지자 안정된 일자리인 교사와 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졌다. 학생들이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크게 받기에 그에 맞추어 책을 사면 호응을 얻는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책을 사려면 도서관 담당 교사, 사서, 사서교사가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춰야 한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정도는 봐야 하고, 〈한겨레21〉이나 〈시사저널〉 등의 주간지에 실리는 주요 기사도 보면 좋다. 인터넷 신문으로는 <프레시안>을 읽으면 좋다. 스마트폰으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벙커1’과 ‘이털남’ 정도는 가끔 들어 줘야 한다. 격월간지인 〈녹색평론〉까지 본다면 수준이 높다고 하겠다. 이 매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손닿는 곳에 두고 자주 집어 들고 눈에 뜨이는 글을 읽으면 충분하다. 가끔 길담서원이나 나눔문화와 대전시민아카데미와 같이 인문학 강의를 하는 곳에 가면 지적으로 싱싱해지는 자극을 받는다. 책 읽는 모임에 참여해서 교사 자신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 가장 좋다.
누가 각 분야의 전문가이고 지성인인지 알기 어려운 때는, 김두식과 지승호가 유명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한 인터뷰 책을 구해서 보는 방법이 해결책이다. 그 인터뷰에 나온 인물들이 쓴 책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셋째, 학생들의 상처와 관련된 내용으로 책을 사는 방법이다. 학교도서관은 특정한 나이의 이용자가 집중되어 있는 특성이 있다. 그 나이 때 보통 겪는 인생 문제에 대해 도서관이 장서를 갖추어 두고 이용자에게 도움을 주면 좋다. 학생들이 겪는 고민은 학교 부적응, 학교폭력, 친구관계의 어려움, 이성교제의 욕망, 성에 대한 고민, 가난한 가정 형편에 대한 걱정,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하는 진로 고민, 불의가 판치는 사회에 대한 불만 들이 있다.
학생들의 인생 문제와 상처와 고민에 대해 책을 갖추려면, 도서관 담당자가 먼저 학생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점은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된다.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면 수업을 하든 하지 않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 그 나이 때 학생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리면 잘 안다. 그 다음에는 학생의 고민에 따라 어떤 책을 권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은 어렵다. 교사 혼자서 이 책 목록을 만들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광주국어교사모임의 ‘상캐’ 모임에서 지난 십년 동안 쌓아온 성과가 큰 도움이 된다.
‘상캐’ 모임(http://gj.naramal.or.kr)은 학생의 고민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가족문제로 갈등할 때, 친구와 선후배 문제로 갈등할 때, 학교와 사회 때문에 갈등할 때, 성과 사랑과 이성문제로 고민할 때, 나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인데, 각 상황에 맞게 책을 권한다. 상캐 선생님들은 십년 동안 중학생들이 겪는 고민의 종류에 맞게 책 목록을 정리해 왔고, 그 목록에는 학생들의 반응이 반영되어 있다. 이 목록은 매우 신뢰도가 높다.

학교도서관에 있는 책과 그 책이 어떤 식으로 놓여 있는지는 도서관 담당교사, 사서, 사서교사의 공부를 모두 보여준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들고, 그 책들이 제대로 된 책들이라면, 학생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학생들이 나아지면, 그들은 세상을 더 낫게 해서 우리 모두를 좀 더 행복하게 한다. 이 작은 도서관에서 내 손으로 하는 작은 실천이 세상에 나비 효과를 내리라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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