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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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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5-02 14:50 조회 6,64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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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도서관에 오는 사연
도서관 가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어디론가 새 고 싶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 도서관 나들이 차례인 우리 반 남자아이가 바람을 놓고 달아났다.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몰려가 ‘얼음땡’을 하 고 있었고, 그걸 본 남자아이가 놀고 싶은 맘을 어쩌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아이는 이미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점심 도서관 나들이를 딱 하루 만 미뤄달라고 했다. 결국 도서관을 간 건 차례를 치러야 할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조용했다. 휘 둘러보니 맞은편 푹신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깊숙이 몸을 묻었는지 까만 머리만 보였다. 이런 날 도 서관에 혼자 있는 아이는 누굴까 궁금해 다가갔다. 조금 놀랐다. 그 아이는 4학년 국어 보충반에 오는 옆 반 남자아이였다. 아이도 나를 보더니 놀라는 듯했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거 같았다. 뭘 잘못하다 들킨 것처럼 몹시 수줍어했다. 아이가 무슨 책을 보고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서가에서 그림책 한 권을 골라 다시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점심시간 무렵 도서관에 갈 일이 있으면 괜히 그 아이가 있는지 둘러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만화책을 붙들고 있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면 서 어느 순간 그 아이가 날마다 도서관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급식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 때문에 그 아이가 늘 도서관에 오는 사연을 조금은 알 게 되었다.
급식실 식탁 앞 반 아이들 자리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그 아이가 곤란한 처지에 놓인 걸로 보여 소란한 곳으로 다가갔다.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아이들 몇이 그 아이 곁에 앉지 않으려고 자리다툼을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 옆 에 앉아야 하는 아이가 딴 자리로 샜고 뒤따라온 아이는 옆으로 샌 아이를 원망하며 마냥 버티고 있었다. 차례로 앉는 건데 그러면 되냐며 타일러 보았다, 주변 아이들은 한층 더 수선을 떨며, 오래전 그 아이가 바지에 변을 본 얘기까지 들먹였다. 그러면서 그 아이한테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어찌어찌 수습을 하고 자리로 왔다. 밥을 먹는 내내 아이 가 마음에 걸려 몇 차례 보았는데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머리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는 느리게 먹었다. 부러 그러는 거 같기도 했다. 아이들이 얼른 떠나 주기를 기다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이는 교실로 갈 수도 있었다. 운동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시리도록 푸른 날에도 아이는 도서관을 택했다. 친구들한테 초라하게 비치는 게 싫었을까, 아니면 꺼지듯 푹신한 의자가 있는 도서관이 마음을 당겼을까.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이 이에 미치면서 그 아이에게는 도서관이 구원과도 같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아이는 제 몸을 어디에 숨길 수 있었을까.
 
표현이 서툰 아이들과 오감으로 책 읽기
그 뒤, 쥘 르나르의 성장소설 『홍당무』의 주인공처럼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한 그 아이에게 남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다. 호감 갖기 어려울 만큼 주눅이 들어있는 아이는 하루 종일 누구하고도 놀지 않았다.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국어보충반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아이가 가장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듯했다.
국어보충반 모임은 어느덧 그 아이에게 초점이 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웃고 말하고 움직이게 하고 싶었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어책도, 좋은 학습지도 아니었다. 그림책이었다. 십 년 넘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어떤 자신감에 차 있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나는 이 아이들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정규 수업시간에 교실 안에서 여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그저 읽어 주기만 해도 온갖 감탄사와 더불어 열렬한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보충반 아이들은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감탄사를 스스럼없이 내뱉고, 궁금한 것을 물으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낯설어서였다.
지금까지 해 오던 나머지 공부와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함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림책을 보여 줄 기대로 두근거렸지만, 남는 것도, 뭘 하기도 싫은 아이들에게는 그림책조차 그리 반갑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이어졌다. 들쑥날쑥인 날이 더 많았다. 그러면서 일 년간 아이들과 모여 그림책을 읽었고 책 놀이를 했다.
어쩌면 우리가 한 책 읽기는 ‘오감으로 책 읽기’라고 이름 붙여도 될 거 같다. 『사과가 쿵!』을 읽어 준 날은 준비한 사과를 눈앞에 두고 보면서 사과 속에 숨은 색을 찾아보기도 하고 사과 가 나무에 매달려 익을 때까지 무엇이 스쳐 지나갔는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고 나서는 사과를 깎아 먹기도 하고 잘라놓은 기다란 껍질을 늘어뜨리면서 길이를 어림해 보기 도 했다. 어림이 끝나면 자로 쟀다. 국어보충반 시간에는 그림책마다 어울리는 활동을 찾아 그 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연극을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고 몸짓놀이를 할 때에 는 이런 활동에 서투른 아이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우리 반 똑똑이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같이 어울려 활동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시간을 정해서 한 명씩 오게 하기도 했다.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아이 여럿을 데리 고 그림책 읽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시도한 일이 었다. 한 아이와 그림책을 읽은 날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네댓 명 앞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이도 이런 날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오직 한 아이만을 위한
섬세한 책 읽어 주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서 책을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아졌다. 예쁘게 단장한 도서관도 있고 교실로 찾아와 책을 읽어 주는 어머니도 있다. 운이 좋으면 날마다 책을 읽어 주는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열정적인 사서와 도서관담당교사가 있는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이 뭘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할 만큼 풍성한 독서프로그램을 연다.
하지만 공부도 처지고 친구와 어울리는 일에 도 서툰 몇몇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 이 펼쳐져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혼자 놓여 있곤 한다. 읽기 능력이 떨어지고 정서적으로 불안정 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일이 보통 아이들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어오며 느낀 게 있다.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공식적인 독서 프로그램과 비공식적인 독서지원 활동을 함께 해나간다면 더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경기도 시흥의 작은 도서관에서 하 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는 책 읽기 봉사’도 중요 한 자극이 되었다. 마을도서관에서 책 읽어 주 기 봉사를 하는 분들은 그 지역의 다문화 가정 과 학습부진이 심한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일주일에 한 차례씩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한 아 이와 책 읽기를 하면서 아이 집으로 찾아가 책 을 읽어 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할 때가 많았는데 바로 내가 꿈꾸는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은 한 아이를 위한 섬세한 독서활동이 필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가정방문 독서지도를 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기간을 두고 ‘선생님과 함께하는 도서관 나들이’는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실천을 내가 꾸려 내면서 나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산책을 할 때도 있지만 덥거나 비가 오는 날은 도서관으로 간다. 15~20분 정도 되는 시간에 아이에게 그림책 한 권 읽어 줄 수도 있고 책과 관련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과정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만나면 어떨까. 담임교사라면 방과 후 교실에서 읽어 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사서선생님과 도우미 분들은 바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여유로운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도우미 어머니들은 도서관을 자주 찾는 아이들 면면을 꽤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렇게 정과 느낌을 바탕으로 자주 오는 ‘어떤’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학교도서관이다. 점심시간에 놀지 않고 책만 보는 아이, 수업 마치고 늦도록 책만 보는 아이, 만화만 보는 아이, 그냥 뒤적거리다 가는 아이…. 그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읽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래서 들곤 했다.
 
학교도서관에 아늑하고 숨을 곳이 많았으면
도서관에는 분위기가 있다. 공간과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있다. 오래도록 독서지도를 하면서 교실을 책 냄새 나게 만들고 싶었던 것도 교실이 아이들이 사는 공간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또 내 자신이 책을 즐기는 모습을 아이들이 볼 거라는 생각을 늘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을 때 더 그림책 책장을 서성이고, 고르고, 읽고는 했다. 교실에서도 그런 풍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할 듯하다.
앞서 말한 아이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도서관이 아늑하거나 구석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구석구석 숨어들기 좋아하기 때문에 작고 꺼질 듯 아득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주간 같은 시기에 천 같은 것을 활용해 공간을 나누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공간 구석구석, 사서선생님의 책상 언저리에 아이들이 쓰고 그린 독후감 조각들이 많이 붙어있으면 좋겠다. 『까마귀 소년』의 이소베 선생님이 그랬듯, 공식적인 행사에서 얻은 자료를 전시하는 일뿐 아니라 일상에서 얻어낸 것들을 모양 있게 꾸미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지금도 아름답게 기억하는 오래된 서점 주인의 공간이 있다. 그 서점에 가면 서점 주인장이 소장하고 있는 책장과 소품에 더 맘을 빼앗기곤 했다. 그래서 교실 내 자리 주변을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공간 분위기에 아이들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오랜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과 사서선생님의 공간, 담임교사가 있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더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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