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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삶을 생각하고 배우는 인문학 체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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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6-28 20:59 조회 6,9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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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보영 홍천 서석고 국어교사
1. 왜 인문학일까?
시골의 소규모 학교 아이들은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학교에 온다. 어릴 때 집 나간 엄마 얼굴을 기억조차 못하는 아이,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된 가정불화 끝에 자살한 어머니를 둔 아이, 술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둔 아이, 공부를 못한 다는 이유로 집 근처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몇 십 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촌 동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 등. 상처 받은 아이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학교 수업은 너무 먼 이야기이고 자꾸만 무기력해 진다. 생기라곤 없는 이 아이들에게 뭔가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해 주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사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함께 책을 읽고, 좋은 어른들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듣고, 관련된 체험활동을 하고, 자신의 체험을 친구들과 함께 담아내는, 이 모든 활동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 뭐가 있 을까? …… ‘인문학!’ 이거다!
 
2. 인문학 강의 어떻게 펼칠까?
우연한 기회에 학교도서관과 인연을 맺었고, 훌륭한 선생님들을 흉내 내며 순간순간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회성의 행사가 아이들의 마음에 얼마만큼의 울림을 주는 것일까,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도서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삶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지만,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다양한 행사는 아이들의 삶에 스며들기보다는 그저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장기적인 비전으로 진행하는,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일치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을 줄 수 있는 도서 관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영어로 ‘휴머니티(humanity)’라고 하는 것도 인간 성,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이다. 결국 아이들의 삶과 관련된 모 든 것이 주제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50분의 수업을 견디는 것도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고고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 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아이들의 삶과 밀접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 학습 능 력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어려움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주제.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를 섭외할 수 있으며, 강사가 직접 쓴 책이 있어야 할 것! 그래서 뽑은 여 섯 개의 주제가, ‘밥, 집, 몸, 돈, 일, 길’이다. (*주제 선정은 길담서원청소년인문학교실 시리즈의 도움을 받았다. 다양한 주제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인문학강좌에 대한 감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프로그램은 총 세 단계로 구성했다. 우선 한 달 전에 주제 책을 배부한다. 아이들은 미리 책을 읽고 금요일 저녁(7시~10시)에 강의를 듣는다. 사전에 책을 읽고 저자를 만 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들도 중간 중간 건너뛰면서라도 책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강사의 질문 에 답을 하는 데 적극적이다. 강연 다음 날, 주제와 관련된 장소로 체험학습을 떠난다. 이곳은 가장 가까운 영화 관도 100km 밖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마을 밖을 나가는 경험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파 주 헤이리에서 유기농 음식을 체험하고, 송승훈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하였으며, 뚝섬 나눔 장터에서 직접 모 은 물건을 팔기도 하였다. MBC 방송국에 가서 노조원들과 만나 매스컴 속의 화려한 방송국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터’를 경험했다. 강화도 함민복 시인과 함께 강화의 아름다운 나들길을 걷기도 했다.
학교와 집.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부모님과 선생님, 동네 어르신이 전부인 아이들이 선하고 좋은 ‘어른’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열리고 눈빛이 깊어졌다. 아이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가 만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는 그것으로 자극이 되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체험 학습을 다녀온 다음 주 화요일 저녁에 도서관에 모여 모둠별로 활동을 하였다. 모둠원들끼리 포스터 만들기, 내가 살고 싶은 집 그리고 모둠원과 함께 살고 싶은 마 을 만들기, 몸으로 표현하기, 벌어 온 돈 어디에 쓸 것인지 정하기, 내가 일하는 일터에 요구사항 표현하기, 시 쓰기 등의 활동을 했다. 활동 후에는 모든 모둠원이 나와 발표 하였으며, 만들어낸 작품은 도서관 벽면에 게시하여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4. 아이들은 어떻게 모을 것인가?
자발성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망자를 우선 모집하였다. 하지만 학기 초인데다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신청자가 별로 없었다. ‘인문학’이란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 쉬는 날인 토요일에 진행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6개월 동안 이루어지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라는 것도 아이들이 꺼리는 이 유였다. 이럴 때, 교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공고했을 때는 별 관심 없어 보이던 학 생들도 개인적으로 접촉(?)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할 만한 아이들, 했으면 좋겠는 아이 들에게 프로그램의 장점을 홍보하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절반 정도의 아이들은 교사 를 믿고 신청을 했고, 나중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아이들 덕에 30명 모집에 33명이 신 청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논의 끝에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적극적인 학생들이 많은 학교의 경우에는 사전에 선발 기준을 함께 공고하면 신청자가 많아서 생기는 어 려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미적거렸던 것에 비해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변해갔 다. 소수의 인원으로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을 하다 보니 마치 자신들이 특별히 선발 된 아이들처럼 느꼈고, 횟수가 계속될수록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게 되는 33명의 아이 들이 자체적인 하나의 동아리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예외 없이 6 개월을 함께했으며,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5. 비용은?
학생들의 비용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사전강의-체험활동-모둠활동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질 높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다행히 우리 학 교의 경우 교보생명의 사회공헌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었다. 교사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보길 권한다. 교육청이나 어린이청 소년도서관 등 다양한 외부 기관에서 기회를 준다. 흘려보지 말고 꼼꼼히 챙기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교 교육과정 안에 녹여 내어 학교 예산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6. 활동 시간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간 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사전 활동은 금요일 저녁 7시(10시까지)에, 체험활동은 다음날 토요일, 평가회는 화요일 저녁 7시(10시까지)에 진행하였다. 야간자습에 합법적 으로(?) 빠질 수 있어 아이들은 기뻐했지만, 담당 교사에게 부담이 많 은 일정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일과가 좀 한가해져서 이런 프 로그램이 해가 떠 있을 때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7. 내가 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고 있는 당신에게
아이들은 배우고 싶어 한다. 교사가 보기에 최악처럼 보이는 학생도 그 안을 들여다보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모를 뿐. 그럴 때 인문학은 교실 속 공부를 넘어 ‘배움’으로 가는 큰 길을 안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주 착해졌다고 말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말이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우리의 가르침이 아 이들 마음속 ‘착함’을 꺼내 주고, 키워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 지 않을까?
뭔가를 하려면 생각이 많아진다.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 지? 이게 맞는 걸까? 망설이는 선생님께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해 볼 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냥 하라고. 하다보면 좀 서툴지만 뭔가 이 루어지고 있고, 그 속에서 배우는 내가 있고, 무엇보다 나의 서툼을 탓하지 않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 우 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고 믿는다.
루쉰의 유명한 구절로 끝을 맺고 싶다. 그냥 가만히 편하게 살고 싶 은 마음이 들 때 읽으면,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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