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특집 학령인구 감소시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4-03 11:07 조회 2,511회 댓글 0건

본문


4955888b94aa38eb171645f7d040bba7_1680484160_3865.jpg

 

4955888b94aa38eb171645f7d040bba7_1680484318_0038.jpg 




학령인구 감소가 곧 

학교 교육의 축소인가? 


강석남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0.78명” 2022년 합계 출생률이 0.78명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1) ​ 인구 절벽, 붕괴, 소멸을 경고하는 온갖 무시무시한 진단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교사들에겐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는 나날이 적게 태어나는 후속세대가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에 이른바 ‘학령인구 감소’의 부정적인 효과가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곳이다.

교육현장의 거의 모든 곳에서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 아니 적응하기 위한 변화들이 휘몰아치고 있다. 초중등학교 통폐합, 교원 양성 제도 개혁,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혁, 대학구조조정 등등 학령인구 감소시대의 교육정책이란 곧 ‘학교 교육의 전방위적 축소’에 다름이 없다. 학생이 줄어드니 교사도 줄여야 하고, 학교도 줄여야 하고, 교육 재정도 줄여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논리가 이 모든 축소를 합리화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우리의 학교 교육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학령인구의 감소에 맞춰 점차 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이 글은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학교 교육의 구체적인 대안을 논하기에 앞서,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대표하는 전제를 되짚어 보고, 다시 질문해 보고자 한다.



모두가 아는 학령인구 감소··· ‘두 가지 장면' 


학령인구 감소를 해소할 골든타임은 옛날 옛적에 흘러갔다는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언론에 따르면 2023년 전국 6천 200여 개 초등학교 중 131곳은 신입생이 없었으며, 125곳은 신입생이 1명뿐이었다고 한다.2) 같은 보도에서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의 수는 41만 명을 조금 넘고, 2026년에는 약 30만 명, 작년에 태어난 학령인구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2029년에는 약 25만 명에 머무를 전망이라고 하니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2029년까지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금보다 40% 가까이 줄어든다.

대학의 사정은 더욱 어둡다. 고등학교 졸업자 수가 대학 입학 정원보다 적어지는 ‘입학 정원 역전’ 현상이 본격화된 것은 이미 2021년부터였다. 2024학년도 대입 선발 인원은 총 51만 명 수준인데3), 전국 고3 졸업생의 수는 39만 8천 명 수준으로 이미 11만 명에 가까운 정원이 빈다. 만약 현재의 입학 정원이 유지된다면,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한 명도 빠짐없이 대학에 진학해도 입학 정원의 절반도 채울 수 없다.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미 전국 대학의 절반은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이다.

모두가 아는 학령인구 감소의 현재와 예상되는 미래에도 불구하고 자칫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은 지난 10년간 초등학생의 수는 감소해 왔는데 초등학교의 수는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다. 2022년 8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수는 2012년 약 295만 명에서 2022년 266만 명으로 약 10%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초등학교의 수는 5,895개교에서 6,163개교로 약 5% 증가했다.

두 번째 장면은 대학 입학 정원 역전 현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각종 입학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점이다. 2022년 7월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지, 교원, 교사, 수익용 기본재산 등 4대 요건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5700명가량 확대하겠다고 밝혔다.4) 덧붙여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다른 첨단 분야의 입학 정원을 수도권에서만 8000명 증원할 가능성도 열어 두었으며5)2020년 의사 파업의 계기가 되었던 의대 정원 확대도 보건복지부 업무추진 계획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위 두 장면에 주목하는 이유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학교 교육도 축소한다.’라는 명제가 정말 당연하냐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증가에는 의무교육으로서 국가가 보장하는 초등교육의 특성과 같은 기간 놀랍도록 감소한 학교당 학생 수와 교사 1인당 학생 수에 의한 완충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대학의 경우 일부 첨단 분야 학과와 의대 정원 확대는 전체 대학 정원 감축을 골자로 한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따른 전체 정원 감소분을 상쇄할 여지가 있다. 쉽게 말해 신입생을 유치하기 어려워 사라진 학과의 정원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학과의 정원으로 몰아 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정원은 감소한다. 정원 역전 현상에 따른 미달사태의 급박함 속에서 줄일 수 있는 정원을 정책적 필요에 따라 줄이지 않는 모순적인 정원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학령인구 감소의 경향성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정책적·제도적 맥락에 따라 학교 교육의 양적 규모가 반드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학령인구 감소는 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교육의 양적 축소라는 단순한 관성이 아니라, ‘학교 교육이 조직되고 구성되는 형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의 관점에서 정책과 제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1) 통계청, 「2022년 인구동향조사」

2)““귀한 아이들”··· 나홀로 입학도 수두룩”(손은민 기자), MBC, 2023.03.03. 

3)“올해 고3 40만명 붕괴··· 대학 정원보다 11만명 부족”(박성민 기자), <동아일보>, 2023.01.12.

4)“대학정원 늘려 ‘반도체 인력’ 10년간 15만 육성… 수도권 쏠림 ‘우려’”(김민제 기자), <한겨레>, 2022.07.19.

5)“반도체발 수도권 정원 증가 8000+··· 대입 판도 흔드나”(이도경 교육전문기자), <국민일보>, 2022.07.25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를 정책과 제도의 관점에서 논의하기 위해서는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을 개념적으로 구별해야 한다. 학령인구는 말 그대로 각급 학교에 취학연령으로서 학교에 입학할 수 있거나 그러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6세에서 21세까지의 인구를 지칭하는 개념이다.6) 학령인구는 각급 학교의 가장 기초적인 존재 이유인 학생 규모의 ‘가능한 최대치’를 결정하기에 중요하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곧 ‘학생’들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은 학생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학령인구를 학생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교육제도가 학생정원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학생의 수와 학교의 양적 규모는 증가할 수 없다. 즉 학령인구는 학교 교육의 양적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인 학생정원 범위의 ‘조건’에 가까운 개념이다.
문제는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을 개념적으로 구별해도 한국의 각급 학교에서는 둘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가 희박해, 두 개념이 동일하다는 일종의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미 초중등교육의 취학률7)이 90% 후반대를 넘나들며 사실상 거의 모든 학령인구를 학생정원이 감당하는 완전교육 상태를 달성하여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의 양적 규모가 유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서 반복적으로 지적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교육의 축소라는 관성적 논리의 기저에는 이러한 맥락이 깔려 있다.
핵심은 학생정원의 학령인구 완전 수용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어느 순간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의 완전교육은 초등교육의 의무교육화를 위해 1954년부터 추진된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과 1984년 <교육법> 개정에 따른 중학교 의무교육 추진, 1973년에 등장한 고교평준화 정책의 1980년대 전국적 확대에 따른 고등학교 교육의 대중화 등 학생정원을 확대해 온 교육제도 변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일련의 학생정원 확대는 단순히 학령인구 증가에 따른 관성적인 결과였을까? 각급 학교의 학령인구와 학생정원 간의 착시효과는 학생정원 제도가 어떠한 제도적 변화의 맥락에서 학령인구를 수용해 왔는지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시장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학령인구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사례는 한국의 대학 정원 확대이다. 한국의 대학 정원이 팽창한 계기는 1995년 ‘5.31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대학정원 자율화’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995년 교육개혁 당시부터 ‘2000년을 기점으로 대입 학령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는 점이다.8) 한국의 대학 정원은 불과 5년 뒤로 예정된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팽창을 이루었다. 왜 그랬을까?
1995년 5.31 교육개혁이 김영삼 정부의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출범으로 시작된 노동개혁과 맞물려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개혁 모두 당시 청와대 수석이자 이른바 ‘세계화’ 담론의 주창자였던 박세일에 의해 주도되었다. 김영삼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했던 이유는 1987년 6월항쟁과 직후의 노동자대투쟁의 결과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이전까지 저임금에 의존해 왔던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이 상당 부분 상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개혁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골자로 ‘노동유연화’를 추진함으로써 자본의 노동비용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학령인구와 관계없는 대학 정원의 팽창은 노동비용 감소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의 공급이 적다면 당연히 대졸 노동자의 임금과 대우는 올라갈 것이다. 대학 정원이 확대되며 대학 졸업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기 전 특권을 누렸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처럼 말이다. 반대로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대졸 노동자의 공급이 많아진다면 구태여 높은 임금과 대우를 해 줄 필요가 없다. 이렇게학교가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졸업자이자 예비 노동자를 과잉공급하고, 그 결과 노동시장에서 예비 노동자들의 조건이 악화되는 현상을 ‘상대적 과잉교육’이라고 한다. 5.31 교육개혁은 상대적 과잉교육의 교과서적인 사례나 마찬가지이다.
5.31 교육개혁으로 추진된 한국 대학의 상대적 과잉교육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맞아 더욱 강화된다. IMF 금융위기는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대학 졸업장을 가진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언제든지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 각인시키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특정 대학 졸업장 소지 여부가 중요해지며 상위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진다. 더 많은 사람이 대졸자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더 높은 서열의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한 입시경쟁에 뛰어든다. 덩달아 대학 교육의 수요도 폭증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대졸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 정원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고졸자의 수는 감소하지만 기존보다 더 많은 비율의 고졸자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팽창해 올 수 있었다.9)

6)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7) 취학적령인구 중 취학자(학교교육을 받는 자)의 비율

8) 이주호, 1994. 「인력수급전망과 고등교육 개혁과제」, 『한국개발연구』 16(4): 3-25

9) 5.31 교육개혁과 상대적 과잉교육에 대해서는 강석남, 2021,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행기 고등교육제도와 노동제도의 종속적 제도결합”,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참조.

 


미래 교육을 위해 학생정원을 재정의하는 일

    
한국의 초중등교육이 대학입시 위주로 크게 왜곡되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5.31 교육개혁의 상대적 과잉교육 사례가 학령인구 감소시대에 우리에게 전하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학령인구와 학교 교육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학생정원의 관계는 항상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정원은 노동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학령인구의 흐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동해 왔기 때문에, 학령인구의 감소를 학교 교육의 축소로 연결 짓는 관성적 전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학생정원을 감축한다고 해서 상대적 과잉교육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핵심은 학령인구와 학생정원의 절대적 관계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학생정원의 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당장 현시점 한국 대학의 입학 정원 역전 현상을 보자.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고졸자가 대입 정원보다 적기 때문에 대학입시 경쟁률은 하락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서열 상위권 대학을 향한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10) 학령인구가 감소한 만큼 대졸 노동자가 감소해도 노동시장의 수요보다 여전히 과잉공급되고 있다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상위권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학교 교육의 축소가 아니라 학생정원의 재구성에 대한 쟁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일례로 교원 양성 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쟁들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정부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교사도 덜 필요하니 이에 맞춰 신규 교원 채용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OECD 평균에 도달했거나 도달할 것이라는 근거를 들고 있다. 반면 교원단체들과 교대생들은 공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제’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기준을 따르자면 앞으로 교원 채용 규모는 4만 5천 명 감소해야 하지만, 20명 상한제를 위해서는 오히려 교사를 2만 명 더 뽑아야 한다.11)
학령인구 감소시대, 우리 사회는 앞으로의 학교 교육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가? 학령인구 감소가 곧 학교 교육의 축소라는 부당한 전제를 넘어 학생정원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10)“수시모집 경쟁률 양극화 심화··· 서울 주요대 상승, 지방대 하락(종합)”(이도연 기자), 연합뉴스, 2022.09.19.

11)“[단독] 교사 1인당 학생수 OECD 기준 땐 초등교원 4만 5천명 줄여야”(장재훈 기자), 에듀프레스, 2022.07.02.



절반의 한국, 

지역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배문규 <경향신문> 기자




“저는 한국의 진보가 굉장히 서울중심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바꾸거나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때 지역인지감수성이 없어요. 꼭 정치적 지향과 관계없이도 이런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이, 제가 지역균형발전 관련해서 서울에서 기자들과 얘기할 때가 있었는데 정말 딴 나라 얘기 듣는 것처럼 하는 겁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죄다 서울 출신이더라고요···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퍼센트를 넘은 만큼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 정말로 지방은 보이지 않게 될 겁니다.”
- <창작과비평>, 2021 여름호, “지방 소멸, 대안을 찾아서” 중에서


<경향신문>은 2021년 10월 ‘절반의 한국’이라는 기획 기사를 내놨다. 전 국토 면적의 11.8퍼센트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와 경제 비중이 50퍼센트를 넘어선 현실과 그로부터 발생한 문제들의 대안을 모색한 기사였다. 서두에 쓴 정치학자 이관후의 말은 기획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이미 1970년대생만 해도 사오십 대인데, 그 이후 태어난 관료, 학자, 기자 등의 상당수가 서울 출생이거나 서울로 진학하면서 지역은 여행에서의 풍경 정도로만 남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해 상반기에는 지자체 수십 곳이 뛰어든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펼쳐졌다. 후보지는 서울 용산과 송현동 부지가 선정됐다(송현동 부지로 최종 확정). 후보지를 정한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미술계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며, 용산·송현동의 탁월한 입지를 고려하면 ‘납득할 만한’ 결정이었다. 
지자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문화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역 유치를 요구한 지역들에 대한 무시이자 최소한의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들은 얘기도 비슷했다. 전국이 들썩인 사안이었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후보지에 한 곳이라도 비수도권을 포함하는 것이 정무적으로도 옳은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후보지를 결정한 위원회에 지역 여론을 반영할 만한 ‘지방 인사’도 없었으니 반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이런 게 ‘지역인지 감수성’이 없다는 것이구나.”



서울이라는 ‘나쁜 심장’


지역인지 감수성은 성인지 감수성에 빗댄 조어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을 감지하는 민감성이라 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이 눈앞의 현실이 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역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앙 부처에서 위원회를 만들어서 결정을 내릴 때 모두 서울에 있는 교수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 인사들이 지방 문제까지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이다.
기획을 시작하면서 인구 감소의 근본 원인으로 ‘수도권 집중’을 중심에 뒀다. 취재를 마치며 인구 감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주요 모순들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가령 이런 논리의 흐름이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경쟁이 심해지고, 집값은 오르고, 안정적인 생활이 어려워져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지방은 사람이 떠나면서 인구가 줄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치열한 경쟁으로 아이를 낳지 못해 나라 전체의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은 지방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만,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면 어느 순간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소멸하는 암울한 미래다. 
젊은 세대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절반의 한국’ 기획을 통해 만 19∼39세 비수도권 출신 청년 123명을 인터뷰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인생을 100미터 달리기로 비유할 때 서울 출신의 출발선은 몇 미터 앞에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들이 내놓은 답은 “25미터”였다. 이 간격은 평생 따라잡지 못할 만큼 아득해 보이거나, 기를 쓰면 닿을 듯 말 듯한 ‘희망고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회의 격차’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이미 출발점이 달라요. 누릴 수 있는 ‘문화자본’과 ‘인간자본’의 차이가 크니까요. 서울 출신들은 금수저, 은수저에 버금가는 ‘서울수저’ 아닌가요.” 통역사로 일하는 한 청년은 통역이 필요한 행사의 절대다수가 서울 시내 몇 곳에 몰려 있어 고향에 머물며 전문성을 살릴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에도 높은 수준의 뭔가에 노출돼 있다는 게 서울살이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도 했다. 대도시에서 보고 듣는 것, 만나는 사람 모두 개인의 성장을 자극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회를 얻는 데는 돈이 든다. ‘입경(入京)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해 월세, 생활비를 합해 100만 원(월평균)을 최소 기준으로 꼽았다. 보증금을 합하면 1000만∼2000만 원이 추가된다. 상경한 청년들은 돈 문제를 가장 힘겨워했다. “고향에 있는 대학에 다녔더라면 집 한 채는 샀을 것.”, “서울살이는 돈을 밟고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만이 주류라는 감각은 지방 거주를 ‘낙오’나 ‘실패’로 여기도록 한다.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했거나 서울 진학·취업 등을 목표로 삼다가 유턴한 이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금의환향이 아니라 실패해서 돌아가는 느낌” “실패한 짝사랑”이라는 답변이었다. 서울은 ‘나쁜 심장’이다. 자원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지방과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심장이 펌프질을 해 피를 온몸에 내보내야 하는데 머금고만 있는 것 같아요. 순환이 안 되니 지방 발전은 더디죠.”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기


수도권 집중이 만든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기관 이전, 일자리 창출, 기업의 지역 이전, 지방대학 육성, 미디어의 지역 보도 강화 등 해결 방안은 이미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균형 발전을 가능케 하는 인식의 전환을 ‘지역인지 감수성’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현안을 지역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문제의 진단과 해법도 달라진다

(...)

혐오의 외부화
충북 청주시 북이면 장양1리는 마을회관에서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소각장 3곳이 있다. 주민들은 쉴새 없이 드나드는 화물차량의 먼지와 소각장 굴뚝의 연기로 고통받는다. 충남에는 전국 화력발전소의 절반인 29기가 몰려 있다. 세계 최대 석탄화력 발전단지가 있는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주민들은 바람이 거센 날이면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음과 저탄장의 탄가루 때문에 집에서 문을 열 수조차 없다.
이들 지역이 ‘혐오시설’ 집결지가 된 이유는 간명하다. 수도권과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소각장, 발전소 따위가 수도권의 외곽을 따라 입지한 것이다. 몇 년 전 전국지 지면을 뒤덮은 ‘쓰레기 대란’도 엄밀히는 ‘수도권 쓰레기 대란’이었다. 수도권의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을 위해 지방을 착취하는 구조가 여실히 드러난다.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안전과 기후위기와 경제성은 이야기되지만, ‘지방’은 빠져 있다. ‘친원전’ 진영에선 산업적·경제적 이득을 강조하지만, 결정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선 침묵한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방폐장을 누가 떠안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강남 원전’이다. 그렇게 원전이 좋으면 강남에다 지어 보라는 얘기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오죽하면 이런 소리가 나올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서울 사람들이 전기차를 타고 우아하게 생활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수도권 중심주의를 넘어
전국적으로 물난리가 나도 서울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뉴스 속 날씨는 맑음이라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 지역에서 발생한 태풍이나 산불, 사고를 단신 취급하는 미디어의 수도권 편향은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다. ‘여의도 면적 몇 배’로 넓이를 표현하거나, 비수도권 이슈를 다룰 때 농어촌 풍경을 등장시키는 ‘타자화’도 수도권 중심주의의 한 단면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문제의식의 공유와 확산이 필요하다.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바라보던 문제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위계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데서 문제의 해결은 시작된다. 학교 교실에서 자라나는 세대부터 이러한 토론이 이뤄진다면 변화도 가까워질 수 있다. 


4955888b94aa38eb171645f7d040bba7_1680486902_2774.jpg

 


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

시급한 지원은 무엇일까

 

황왕용 광양 광영고 사서교사


올해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신입생 수가 전년 대비 30명이 늘었습니다. 황금돼지(2007년 생)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이유라고 합니다. 한 학급에 5명이 늘었을 뿐인데 교실이 꽉 찬 느낌입니다. 그러나 광양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학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흥, 영암 등 인구가 소멸해 가는 지역에는 신입생이 없어 휴교가 결정된 학교가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휴교한 학교는 분교가 아닌 본교입니다. 지난해 4월 기준 휴교를 결정한 학교는 33곳이었습니다. 그중 전남 지역 학교가 17개였습니다. 학생이 없어 휴교하는 학교는 3년이 지나도록 학생을 받지 못하면 폐교가 결정됩니다. 휴교가 결정된 학교의 지역에 학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한두 명 정도의 학생이 그 지역에 살지만, 버티다 못해 전학을 가곤 합니다.

 


매달 서너 번 오는 강사 중 한 명이었다


2020년 11월 30일, 여수의 한 작은 섬에 있는 분교에 다녀왔습니다. 도서관 운영 및 독서교육 컨설팅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학생 2명이 넓은 운동장, 학교 2층 전체를 사용했습니다. 2층 끄트머리에는 도서관이 있었고, 약 칠천여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한 살 터울의 자매였습니다. 2022년, 그 학생들도 버티다 못해 멀리 떨어진 학교로 전학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재정의 효율성을 위해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는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보다 더 버티기 힘든 현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주 있는 일인 듯 처음 만나는 저를 반겼습니다. 대화의 물꼬가 쉽게 트였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벽이 느껴졌습니다. 당연합니다.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 쉽지 않을 테니까요.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외부에서 오는 강사와의 만남이 한 달에 3∼4번 정도 자주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고, 아이들은 곧 떠날 사람에게 마음의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분교장과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 가는 길에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더군요. “소미(가명)야, 밥 안 먹어?” 저는 지나가는 소미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들 급식이 없어요. 오전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야 해요. 선생님이나 행정실 직원도 마찬가지고요."


소미 대신 분교장이 대답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소미와 유미(가명)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둘은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가 아침에 차려놓은 밥을 데워 먹거나, 자신들이 밥을 차려 먹는다고 합니다. 분교장은 폐교가 될까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학교운영위원장인 소미의 할머니가 폐교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섬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 더 있었습니다. 차로 이동하면 20여 분이 걸리는 곳에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아직 2, 3학년인 소미와 유미가 그 학교로 전학 가기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찍 준비해서 등교하는 일도, 전교생이 30명이 되어 가는 큰 학교에 가는 일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가끔 배구와 축구를 하지만 정식으로 게임을 해 본 경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곤 하지만, 자신의 요리가 어떤 맛인지 말해 줄 학급 친구는 자기 동생뿐이라고 말했습니다

 4955888b94aa38eb171645f7d040bba7_1680487302_8023.jpg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4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