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책의 세계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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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12-01 14:36 조회 3,670회 댓글 0건본문
판권지로 들여다본
책 만드는 사람들
박현주 의정부청룡초 사서
| 사서선생님들은 수십 권의 책을 매주 읽고, 수백 권의 책을 매일 정리하고, 수천 권의 책을 매년 아이들과 함께 읽기 위해 수서한다. 매일 쏟아지는 신간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 소중하고, 저 책은 수업 하는 선생님이 활용하기 좋아서 의미가 있고, 또 어떤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 귀하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활용되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책은 글 작가 혹은 그림 작가 등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위해 작사가, 작곡가, 편곡 전문가, 프로듀서 등이 함께 모여야 하듯 책도 마찬가지다. 작가, 편집자, 마케터, 제작자 등 많은 사람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이것을 우리는 책의 판권지를 통해 알 수 있다. |
책을 탈고하고 출판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바로 판권지를 발급하는 것이다. 판권지의 사전적 의미는 책의 맨 끝장에 인쇄 및 발행 날짜, 저작자, 발행자의 주소와 성명 따위를 인쇄하고 인지를 붙인 종이를 의미한다. 출판사는 판권에 다양한 정보를 넣는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발행인, 발행처, 편집, 디자인, 마케팅, 홍보, 관리, 제작, 제작처 등을 표기한다. 판권지에는 출판사의 홈페이지나 ISBN, 출판사 관련 링크 등 각 출판사에서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또 콩기름을 사용한 친환경 잉크로 책을 제작하였다거나 책의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는 등의 내용을 적어 두기도 한다.
주변 사서선생님들에게 판권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물어보았다. 가장 많았던 답변은 출판 연도 확인이었다. 아이들에게 추천할 책을 찾을 때나 서평을 쓸 때 출판 연도를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신간을 추천하려고 한다. 절판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거나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확인하기 위해 판권지를 본다. 책이 몇 쇄인지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재쇄 횟수를 보고 그 책의 인기도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개정판인지 아닌지도 확인한다. 개정판을 내며 책의 내용이 살짝 바뀌기도 해서 이를 꼭 확인하고 개정판으로 구입한다. 번역서의 경우 원제와 우리 정서에 맞게 번역한 제목을 비교하기도 하고, 상대 국가에서 언제 출판되었는지 등의 정보도 판권지에서 본다.
좌 원서와 번역서의 판권을 함께 기재한 판권지 / 우 번역서와 원서의 표지 디자인
책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판권지
얼마 전부터 판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봄볕 출판사의 특별한 판권지 때문이다. 처음 봄볕 출판사의 판권지를 보았을 때 마음이 따듯해지고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무턱대고 판권지에 적힌 단어들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서 권은수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다. 대표님은 흔쾌히 단어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출판사 이름인 ‘봄볕(봄철에 내리쬐는 햇볕)’은 순우리말이다. 이와 결을 맞추어 판권의 표기도 우리말로 풀어서 썼다. 책을 펴내는 것이니까 발행인은 펴낸이, 발행처는 펴낸 곳으로 바꿨고, 편집은 만듦, 디자인은 꾸밈, 마케팅은 가꿈, 홍보는 알림, 관리는 살림으로 바꿨다. 협업하는 제작처는 ‘함께 만든 곳’으로 묶어서 표기했다.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총체적인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이 편집자이니 ‘만듦’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봄볕의 판권을 보면 편집자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난다. 책을 아름답게 또는 멋스럽게 꾸미는 일은 디자이너가 한다. 그래서 ‘꾸밈’은 디자이너를 뜻한다. 출판 마케터는 거래처 관리와 책이 더 잘 팔리도록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때때로 이벤트를 기획하여 서점 및 도서관 등 다양한 곳의 사람들에게 책을 널리 알리는 일도 한다. ‘가꾸다’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상태로 만들려고 보살피고 꾸려 가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을 ‘가꿈’이라 부른다. ‘알림’은 말 그대로 책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 들어 인터넷과 SNS를 활용하여 책을 널리 알리는 홍보 분야의 일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 일을 하는 이를 ‘알림’에 넣었다. 출판사 내외의 전반적인 일을 관리하는 부분은 ‘살림’이라고 이름 붙였다. 출판사의 살림을 도맡은 사람을 뜻한다. 책을 인쇄하고, 제본하고, 종이를 공급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해 주는 제작처를 ‘함께 만든 곳’에 표기했다.
책 만드는 사람 ① 편집자
아자 이모가 들려주는
책 짓기의 시간
노정임 아이들은자연이다 출판사 대표
#농업이 적성? #일의 시작 아홉 살. 어느 날 저녁, 아빠가 물었다. “정임이는 커서 뭐 될래?”, “대통령!” 즉문즉답. 해맑은 어린이였다. 행복했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 10분마다 알차게 놀았다. 공기놀이하고 그네도 타고 바빴다. 학교 가기가 재밌었다. 열세 살, 6학년이 되자 친구 몇몇이 전학 간다고 인사한다. 도시로 간단다. 우리 마을을 그제야 빙 둘러본다. 온통 산이다. 하늘마저 좁아 보였다. 부모님은 농부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농촌에서 학교를 다녔다. 열여덟 살, 적성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반 접힌 종이를 담임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 나눠 주셨다. 기대하며 펼쳤다. “농업”이라는 단어가 굵게 표시돼 있다. 종이를 책상에 엎었다. 충격이었다. 친구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내 적성이 농업이라니!’ 대학을 졸업한 1997년은 IMF 사태가 터져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였다. 친구 소개로 참고서 만드는 출판사에 들어갔다. 꿈이나 적성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편집자가 되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직업이었다. ‘근데 왜 재밌지?’ 원고 분량을 조절해 판면을 맞추고, 틀린 글자를 찾아내는 집중의 시간이 좋았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은 인내심이 확실한데 교정교열은 예외였다. 퇴근 후 한겨레문화센터에 가서 교정·교열 강의도 들었다. 세 끼니를 매우 중시하는 내가 저녁도 거르면서. 어느 날이었다. 조카에게 책을 사 주려고 서점에 갔다. 어린이책 서가 앞에서 나는 시간을 잊었다. 아기책부터 독자의 연령별로 꽂힌 책들, 예쁜 그림이 가득한 양장본 그림책. 다 갖고 싶었다. 소유하고 싶었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심심해서 그랬어』(윤구병) 두 권을 사서 회사 책상 첫 번째 서랍 맨 위에 넣어 두었다. 일하다가 종종 서랍을 열어 표지를 보면 아홉 살처럼 행복해졌다. 무모하게 이직을 시도했다. 그림책 출판사 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긴 면접을 본 뒤,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었다. 2001년이었다.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켜 나는 지금 책마을에서 편집일을 하며 살고 있다. |
#책 만드는 과정? #마감과 결정의 연속!
기획 > 원고 > 편집과 디자인 > 인쇄판 제작 > 종이 선택 > 인쇄 > 제책(제본 |
이 과정에서 편집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모든 과정을 챙긴다. 대형 출판사에서 여러 팀이 나눠서 하든 1인 출판사에서 혼자 진행을 하든 비슷하다. 지름길도 없고 건너 뛸 수 있는 과정도 없다(교정교열이 다가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책이라는 물체를 손에 쥐기까지 책이 생성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이가 편집자다. 아,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마감일’을 정해야 한다.
“언제 할까요?” 책 한 권을 내기까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일 것이다. “(기획)회의 언제 할까요?”, “(원고)마감일을 언제로 잡을까요?”, “초고는 언제까지 완성될까요?”, “(디자인)시안 언제 주실 수 있어요?”, “(인쇄)감리 언제 갈까요?”, “보도자료 언제까지 쓸까요?” 등등. 출간일이 최종 마감이지만, ‘작은 마감’을 과정마다 한다. 출간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일정을 조율하면서 과정마다 작은 마감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챙기다 보면 책이 완성된다. 마감은 날짜만 정하는 일이 아니다.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과정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이 기획은 어린이들에게 가치가 있을까?’, ‘책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몇 부 팔 수 있을까?’, ‘저자를 섭외할 수 있을까?’, ‘이 원고로 편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어떤 제본 방식이 좋을까?’, ‘보도자료는 책의 매력을 충분히 담고 있나?’ 등등. 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상의하지만 그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도 되는지 판단하는 이는 결국 담당 편집자다. 편집자의 안목과 편집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홍선주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시절인연을 떠올리는 작업실 아침 직장인의 보통 출근 시간보다 조금 늦게 여는 아침. 작업실에 들어와 창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일정표를 들여다본다. 핸드폰 스케줄러, 다이어리, 벽에 붙인 일정표, 달력 이렇게 네 곳에 같은 내용을 표시해 둔다. 강박이다. A 출판사에서 내기로 한 원고 스케치를 하고 B 출판사와 계약서 협의를 봐야 한다. C 출판사에 채색 샘플을 보내야 하며, D 출판사에는 전화를 걸어 마감을 미뤄야겠다고 읍소해야 한다(아직 못했다. 늘 이렇다). 그리고 보험료 조정을 위해 공단에 제출할 서류 수집 작업을 하고 저녁엔 김장을 도와야 한다. 집중하기 힘든 번잡한 일과에 한숨부터 나오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 나를 붙잡아 준다. 꽤나 사연이 쏠쏠한 눅지고 침침한 유년이 끝나고 나는 꿈을 버렸다. ‘화가’의 꿈을 없던 일처럼 지우고 남들이 가는 길을 쫓아가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나의 20대는 온갖 패배감으로 버무려져 무기력과 분노로 가득했고, 서른 즈음에야 ‘그림을 그리는 삶’으로 돌아와 적당한 어른이 되었다. 그 적당한 어른이 되기까지도 무용담은 많지만 돌아보면 다행스럽게도 고마운 사람들이 더 생각이 난다. 변변한 포트폴리오도 없는 나에게 첫 일을 주었던 편집자 S, 민망할 만한 자신의 초창기 그림을 선뜻 보여 주며 용기를 주었던 일러스트레이터 K, 분노와 불안으로 눈이 번뜩였던 나의 간절함을 그렇게 받아 준 사람들 덕에 어느새 빼곡한 일정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쉴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자 일하자!” |
미팅 그리고 꼼꼼한 통독
오늘은 스케치를 앞둔 새 원고를 읽는 일부터 시작한다. 대여섯 번쯤 정독하고 있다. 지난여름 원고를 의뢰받고 통독을 한 후 내용이 흥미로워서 선뜻 계약서를 썼다. 출판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기존의 책(책에 실린 그림들)을 보고 화가를 섭외한다. 나에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안겨 준 『초정리 편지』(배유안, 홍선주)를 낸 이후, 삽화 의뢰가 들어오는 원고들은 대개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쉽지 않게 이 길에 들어온 내 기억이 그런 인물들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원고 역시 주인공은 어마어마한 모험을 해낸다!
계약서를 쓰자 곧 글 작가와 편집자와의 미팅 일정이 잡혔다. 작업 전 글 작가와 미팅을 하는 일이 많지는 않다. 이번 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정보를 세밀히 공유해야 했기에 미팅이 필요했다. 글 작가의 의견과 의도, 화가로서의 질문들, 출판사의 계획을 공유했다(편집자는 편집 일 이외에도 글 작가와 그림 작가를 사이에 두고 의견 조정과 정보 공유, 일정 체크까지 한다. 하는 일이 정말 많다). 글 작가를 만나고 나면 글 작가의 에너지와 기대를 느끼게 되어 그려야 하는 그림에 대한 부담과 책에 대한 의무감도 새삼 커진다. 그런 복잡한 마음과 압박감, 기대를 안고 원고를 한 줄 한 줄 읽고 또 읽는다. 원고 분석의 단계는 대체로 다음 순서로 진행한다.
또 삽화가 들어가면 좋을 장면들을 표시해 작은 박스에 표현할 그림의 콘셉트 방향을 정리해 둔다. 이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고 갈무리한다.
이야기의 여정을 몸으로 겪기: 자료조사
고증이 필요 없는 책은 없다. 아니, ‘고증’이라는 암묵적 협의의 선을 어디에 둘 것인지 명확히 하려면 충분한 자료조사가 최선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갓 21세기가 된 시절만 해도 자료 조사란 큰 행사와도 같았다. 책을 한 권 그리기 위해 작업에 필요한 책을 사 보고 빌려 본다. 이미지가 필요하면 직접 사진을 찍어 와야 한다. 카메라와 작은 스케치북을 챙기고, 노트와 필기도구까지 욱여넣고서 가방을 멘다. 목적지가 지방이라면 1박 2일이 될 수도 있다. 혼자 가기 무엇한 곳이면 가족을 끌어들이거나 출판사 편집자를 설득해서 동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거의 없어졌다. 구글 맵 하나면 이탈리아의 산동네, 미국의 네바다 사막 길 한가운데에도 서 있을 수 있다. 번역기의 도움을 구하면 국내를 넘어선 정보까지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얻은 데이터는 그림에 표현될 공간감을 충분히 알려 주지 못한다. 몇 년 전 왜군을 피해 실록을 감췄었다는 내장산 용굴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그림 몇 장 그리자고 내장산까지 갈 엄두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용굴 사진이 차고 넘쳤다. 적당히 그리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눙쳐서 스케치를 잡고 채색을 하려니 도저히 붓이 들리지 않았다. 첫차와 막차 표를 끊고 하루치기로 내장산으로 갔다. 다행히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준비할 게 없으니 몸은 가뿐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산까지 가는 길 그리고 산에 올라 용굴로 향하는 여정을 몸으로 겪었다. 그러자 책에 등장한 사람들에게 깊숙이 공감이 되었다. 용굴에 도착하여 굴의 실제 크기를 가늠하고, 계곡의 깊이를 가늠하니 스스로에게 떳떳한 마음이 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보이지 않는 많은 규칙을 따라 영리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대성에 맞지 않는 것들을 평범함으로 포장해 그려서도 안 되고, 화가의 자아를 뿜어내도 안 된다. 또한 화가 개인의 편견이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자기검증을 해야 한다. 그림 작가는 글 작가가 펼쳐 놓은 세계 안에서 ‘어린이’라는 명확한 독자가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20센티미터 안팎의 작은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고민이 빼곡히 담겨 있다. 비록 화가 자신만이 아는 사소함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좌 삽화 작업을 위해 찾아간 내장산 용굴 모습 / 우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에 실제로 표현한 삽화 장면
집중의 연속: 스케치와 채색
자료조사와 공부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스케치에 들어간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그릴 때는 글 작가가 설정한 외모를 기반으로, 성격이 예상 가능한 익숙한 이미지를 잡는다. ‘알고 보니 조용한 반찬가게 할머니가 조직 보스였다.’ 화가 마음대로 캐릭터에게 이런 반전을 심어 놓을 수는 없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글 작가의 이야기 설정을 넘어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누구나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변주해야 한다. 스케치가 완료되면 편집자와 글 작가는 스케치를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다. 문제 될 만한 것들, 추릴 것들, 추가해야 할 것들을 논의하고 일러스트레이터는 의견을 반영해 스케치를 수정한다. 스케치 수정까지 끝나면 일러스트 작업의 80퍼센트는 마친 셈이다. 이제 채색 방향만 결정하면 남겨진 것은 육체 노동이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캔과 표지 작업
채색에 과몰입하면 시간 감각이 없어져서 수면시간이 엉망이 되기 일쑤다. 쉬어야 할 시점을 놓쳐서 몸은 이리저리 뒤틀린다. 잠시나마 먹고 쉬는 것도 편하지 않다. 단순히 시간에 쫓겨서가 아니라 그림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 없어 다른 무엇에 완전히 감각을 열어 둘 수가 없다. 많은 화가들이 이 위험한 경계를 간과해 디스크와 근육통과 우울함과 각종 질환에 만성적으로 시달린다. 손바닥만한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 깜찍한 일도, 사랑스러운 일도, 우아한 일도 아니다. 꽤 독한 육체노동과 일상의 즐거움을 반납한 잔인한 인내로 한 권 한 권 책이 만들어진다. 프리랜서들이 난데없이 주중에 여행을 가거나 한가한 일상을 보내는 걸 목격하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 날을 제외한 그들의 일상은 대체로 참혹했을 것이다.
채색이 끝난 그림은 스캔실로 보내진다(컴퓨터 작업이면 스캔 없이 데이터 송고로 끝난다). 이 과정에 스캔실 실장님들의 테크닉이 빛을 발한다. 연필 선을 얼마나 잘 살려 주셨는지, 색감을 얼마나 원화와 비슷하게 보정하셨는지에 따라 인쇄된 그림의 품질이 결정되기도 한다. 스캔을 마친 그림은 데이터로 변환되어 디자이너에게 송고된다. 본격적으로 책의 외형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실 모습
반짝이는 어린이를 선과 색으로 잇는 기쁨
디자인이 끝나면 출판사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책의 pdf 파일을 보낸다. 여러 명이 다각도에서 수차례 검토하며 나오는 것이 책이지만 그래도 늘 실수가 발견된다. 검토 과정이 끝나면 드디어 인쇄소로 파일이 송고되고 인쇄가 시작된다! 인쇄 감리에 매번 가기보다는 전화상으로 디자이너와 주의 사항을 협의하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감리를 보러 가면 나는 기장님들이 그렇게 무섭다. 색상을 표현하는 그분들의 섬세함이 경이롭고, 예민한 만큼 무뚝뚝한 뒷모습이 왠지 어렵다. 열중하는 그 뒷모습을 보면 까다롭게 굴 수가 없다!
아침에 체크한 오늘의 할 일은 역시나 반밖에 못 해냈다. 계획을 반으로 줄이면 또 그 반밖에 못 할까 봐 일정표는 늘 나를 앞서 달린다. 나의 에너지가 그 옛날의 나와 같지 않아 작업은 점점 느려지고 몸의 피로도도 높아졌지만 다행히 마음의 온도는 그리 식지 않았다. 책 속의 아이들이 무언가 깨닫고 성장하는 그 순간 나도 반짝하면서 변화하는 그 소박한 매력이 오늘도 책상 앞에 나를 붙들어 두고 있는 것 같다. (...)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2 <학교도서관저널> 12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