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먹고 기르는, 닮은 존재에 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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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9-01 16:28 조회 2,996회 댓글 0건본문
래퍼가 들려주는
동물윤리와 동물복지
박하재홍 래퍼,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저자, 트위터 ‘동물복지 봇’ 운영자
노트북을 열고 습관적으로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동물’이라고 써넣는다. 매일 쏟아지는 동물복지 연관 뉴스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최소 2시간에 한 번은 검색해야 마음이 놓인다. 불과 15분 전에도 눈에 띄는 뉴스가 하나 올라왔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한우농장이 동물복지축산농장(편집자 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동물보호법에 따라 농장동물이 자신의 고유한 습성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농장임을 판단하고 인증하는 제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전국 한우농장 중에서는 3번째다. 해남의 자랑거리가 된 농장주 부부는 소들 앞에서 다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 소식을 트위터 ‘동물복지 봇’에 재빠르게 옮겼다.
필자가 운영하는 동물복지 봇(@aniko_welfare) 캡처
정부가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 제도를 시작한 건 2012년이다. 꼬박 10년째인 지금 전국에서 391곳의 축산농가가 인증을 받았는데, 그중 대부분은 닭을 기르는 농장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닭 340곳, 돼지 17곳, 젖소 31곳, 한우 농장 3곳이다. 미진한 성과일 수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동물복지 축산을 장려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정부에서 인증하는 동물복지 축산물을 찾아 볼 수 없다.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를 읽은 일본의 교포 독자가 직접 꼼꼼히 알아보고 내게 알려 준 사실이다.
작년부터는 동물복지와 온실가스 감축이 함께 거론되는 기사들이 부쩍 늘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동물복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글쎄, 이런 기사는 그대로 전달하기가 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지금 당장 동물의 형편을 개선시키자면 온실가스 발생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동물복지에 따른 권유를 따르자면, 없던 장난감을 만들어야 한다. 소들을 위해 몸을 쓰다듬는 대형 솔질 기계 장치를 설치하려면, 각종 에너지가 소모된다. 게다가 공간이 넉넉한 축사일수록 소의 배변이 미생물과 활발히 반응해 더욱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생물이 암모니아를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로 바꾼다나 뭐다나… 골치 아픈 화학 반응이다.
동물의 자리가 없는 탄소중립 정책들
그래서 독일 농장동물 생물학 연구소는 소들에게 화장실 교육을 시키는 걸 실험하고 그 결과를 작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한 줄로 간추리면 이렇다. “화장실에서 소가 배설하는 오줌의 80%를 처리하면 암모니아 방출량은 56% 줄어든다.” 어떤 소는 배변 훈련을 빨리 배우고 어떤 소는 느리게 배운다. 느리게 배우는 소에게 배변훈련은 스트레스를 수반할 테니, 동물복지 측면에서 딱히 좋은 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자고 소들을 밀집 사육 방식으로 키울 수는 없다. 온실가스 감축보다 동물복지의 당위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세부 통계를 살펴보자. 자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닭고기와 같은 가금류 식품 1Kg을 생산하며 발생하는 온실가스양은 쇠고기 식품 1Kg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양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1순위로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압박을 받는 쪽은 밀집사육을 대표하는 닭 농장이 아니라 밀집 사육과 거리가 가장 먼 소 농장이다.
올해 초 영국의 한 스타트업 회사는 소 얼굴에 씌우는 플라스틱 마스크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소의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흡수하는 마스크다. 저걸 하루에 몇 시간이나 차고 있어야 하는 걸까… 보기만 해도 답답하다. 소화 작용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줄이는 ‘저메탄사료’ 개발에도 불이 붙었다. 더 나아가 아예 메탄을 덜 내뿜는 품종을 만들어 내자는 의견도 있다. 소는 질긴 풀을 질겅대며 씹어 먹어야 기분이 좋다는데, 아무래도 풀을 더 마음껏 먹기는 힘들 것 같다.
더 못마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한우의 목숨을 단축시키면 온실가스 발생량이 꽤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2050탄소 중립’의 일환으로, 한우 적정 사육기간을 현재 30개월에서 최대 24개월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했고, 서둘러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미국은 소의 평균 도축 월령이 16∼17개월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과한 결정이라 할 수 없고, 사육기간이 축산 동물복지에서는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농가의 사료비가 절감되는 이점도 있다. 그래도 못내 애석하다. 국민 1인당 1년 소고기 소비량이 미국의 절반 정도인 13.6kg이고 그중 수입 소고기가 무려 67%나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한우 농장의 온실가스 감축이 이토록 시급할까?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동물복지를 저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동물복지는 우선순위로 증진되어야 한다. 인류의 도덕철학은 ‘동물윤리’를 다루고 있고, 동물복지는 동물윤리를 구현하는 최소한의 실천에 불과하니까.
동물복지에 관한 오해와 진실
동물복지를 위해 채식을 해야 할까?
동물복지 증진과 온실가스 감축을 둘 다 고려했을 때 전체 가축 수를 줄이는 방법만이 최선이다. 지구상에는 가축 수가 너무 많다. 야생 포유류의 무게를 다 합쳐 봐야 1억 톤이라는데, 사람과 가축을 합친 무게는 무려 10억 톤에 달한다. 가축 수의 감소는 동물복지 정책의 암묵적인 지향점이기도 하다. 가축 수를 무한정 늘리다 보니 동물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게 되었고, 알에서 깨어난 수평아리는 기계로 바로 갈아 없애야 하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올해 독일은 수평아리 대량 도살을 금지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식물성 식단이 동물성 재료가 포함된 식단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반드시 적은 건 아니다. 물을 대는 논농사가 적지 않은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듯, 식물 재배 방법과 운송 거리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식물성 기반의 생활 방식이 기후위기의 시대에 미덕인 점은 자명하다. 그 결과 비거니즘이 확장되고 플렉시테리안(편집자 주: 채식주의자 중 가장 낮은 단계의 식습관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 상황에 따라 생선, 유제품 등의 섭취를 하기도 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식품 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서울에는 ‘고기 없는 정육점’이라는 콘셉트의 식물성 대체육 팝업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정부 또한 세계 수출 및 식량안보 차원에서 식용곤충을 포함한 대체육과 배양육에 꾸준히 투자할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국가라서 육류의 해외 수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대안이 바로 대체육과 배양육이다.
이 지점에서 가축이 아닌 반려견과 반려묘의 육류 섭취에 대한 고민이 발생한다. 미국 내 육류 소비 중 25∼30%를 반려동물이 소비한다는 분석도 있다.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채식 식단만 제공하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들도 있지만, 수의학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2018년에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육식동물인 고양이에게 채식을 시키는 사람은 동물복지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반려동물에게 무작정 고기를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펫사료협회장은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 시장에 ‘신선한 생육’이 유행하면서, 다른 가축의 불필요한 희생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생고기를 넣은 화식과 생식이 유행한다. 뼈를 제거하고 엄선된 부위의 살코기만 쓴다는 업체들도 꽤 많다. 사람도 먹는 내장을 부산물이라고 표현하고, 뼈는 버리는 부위라고 주장하는 업체도 있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이탈리아 8대 정육점 푸주한으로 저명한 다리오 체키니 씨는 동물의 희생을 생각해 특정 부위만 골라 먹지 말고, 코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수의대에 진학했지만, 250년 전통의 정육점을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했다. 대신 동물복지를 준수해 사육하고 도축한 소와 돼지고기만 취급한다고 한다. 소와 돼지의 지위를 인간보다 한참 낮게 설정하긴 했지만, 동물윤리를 고민하고 확고히 실천한다. 그리고 그의 동물 윤리 의식에서 개와 고양이의 지위는 인간과 돼지 중간 어디 쯤일 것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그러하듯이.
동물윤리의 난제는 동물이 단지 몇 가지 종류가 아니라는 데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 같은 유인원부터 식물에 가까워 보이는 해면동물까지 몽땅 동물이라고 한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윤리를 실현하려면 우선 다양한 동물을 다루는 방식을 법과 제도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동물의 지위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발견해 대중을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지위라는 표현이 불편할 수 있지만, 다른 적절한 표현이 어렵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그 기준이 감정의 ‘지각 능력’이든, 의지의 ‘행동능력’이든, 아니면 둘을 합친 무엇이거나 그 밖의 것이든. 그나마 다행인 건 동물에 온정을 지닌 이들의 헌신으로 ‘동물복지’라는 뚜렷한 개념과 제도가 생겼고,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2012년부터 국가 차원의 동물복지 정책과 논의가 활발해졌다는 사실이다.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박하재홍 지음│슬로비│2021
동물을 존중하는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면
어린이와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성인이 되면 동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을 갖는다. 어떤 현장에서 일하든지 푸주한 다리오 체키니 씨처럼 동물윤리를 당연한 도덕철학으로 여기고 실천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근래에 나는 동물복지보다 ‘동물윤리’라는 용어가 더 받아들이기 쉽고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윤리는 세상의 다양한 종교 경전이나, 오래된 전통문화에도 있다. ‘동물권리’라는 표현도 아주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동물권리는 ‘축산업과 어업의 종식’을 1차 목표로 삼는 동물해방 운동의 언어로 사용되기에 상황에 따라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가령 농업고등학교 축산과 수업에서 동물권리의 뜻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동물권리도 동물윤리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동물윤리의 당위성을 받아들인다면, 동물복지부터 동물 해방에 이르기까지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를 갈망하는 모든 고군분투에 저절로 폭 넓은 이해심이 우러나지 않을까. 우리 삶의 곳곳에서 동물윤리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여기까지 긴 문장들을 끄집어냈다.
동물윤리를 실천하려면 당장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다음과 같이 행동으로 옮긴다.
첫째, 소소한 선물을 보내야 할 경우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계란이나 식물성 만두 꾸러미를 선물로 보낸다. 아직 자기 손으로 동물복지 축산품이나 대체육 제품을 구입한 적이 없는 지인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채식 식단을 정확히 알려 주고 제공하는 식당을 자주 찾아가고 SNS에 칭찬 후기와 후한 별점을 준다. 셋째, 마음에 드는 동물보호단체를 눈여겨보았다가 틈틈이 기부한다. 마지막으로 랩 가사를 쓸 때 동물을 귀하게 여기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올해 6월에는 <바다거북의 여행>이라는 랩 음악을 완성했다. 멕시코 바다거북 보호 캠프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떠올려 작사했는데, 제8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 선정되었다. 앞으로 이 곡 덕분에 동물윤리와 동물복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바라볼 수밖에, 넌 바다거북답게
저 밖은 더 위험해, 하지만, 겁은 안 내
지구의 거울 앞에 빛나, 조석 간만의 차
당기며 어기여차, 떠올라 밤 하늘 창”
-<바다거북의 여행> 가사 중에서
“저기 헤엄치고 있는 동물, 수달 아니야?” “우와, 너구리 가족이다!” 요즘 심심찮게 도시에서 야생동물이 출현했다는 목격담이 종종 들려온다. 도시는 자연과 야생동물에게 우호적인 장소가 아니다. 도시는 다른 생물의 서식조건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인간의 효율적 삶과 편리한 주거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도로, 자동차, 지하철, 빌딩, 담벼락 등 비생태적인 요소가 지배하는 도시는 자연에 대비되는 인간 문명의 결정체처럼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나 아스팔트 틈 사이로 초록 잎은 올라오며, 이따금 보이는 도심 야생동물의 존재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도시에 나타난 야생동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동걸 국립생태원 현장 과학자
똥을 찾아라
양정아, 이해인, 고지연, 이수리 비건교사 나는냥1)
2019 개정 누리과정2)의 자연 탐구 영역에는 ‘생명과 자연환경을 소중히 여긴다’라는 내용이 있다. 동물권과 기후위기를 다루는 내용이다. 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어떤 동물은 먹고, 어떤 동물은 관찰을 명분 삼아 가두어 전시한다. 점심시간에는 제시간에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만큼 ‘골고루 먹도록’ 지도하고, 곤충과 동물을 채집통이나 우리에 가두어 어린이들이 ‘잘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한다.
1) 비건교사 나는냥은 ‘어린이·청소년과 함께하는 즐겁고 건강한 비건 생활'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다양한 비거니즘 교육 콘텐츠를 기획, 제작, 수집하는 모임이다
(출처: 비건교사 나는냥 블로그 blog.naver. com/veganedu/2227 84592096).
2) 만 3~5세의 취학 이전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공통의 보육, 교육과정을 제공하 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괴리 속에서 교사로서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지, 어린이들에게 어떤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할지 고민했다. 급식에 나오는 동물성 반찬을 제외하고 먹거나 간식을 대체유나 과일 주스, 구황작물, 떡 등으로 구성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대신에 사진이나 모형으로 대체하는 등 방안을 강구했지만 한계가 따랐다.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답답하고, 외로웠다.
그러다 우연히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김동진 외)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추적단 불꽃부터 유·초등 교사, 중·고등 교사, 교대 졸업생과 재학생 및 교수, 양육자와 비양육자, 문화예술인까지 페미니즘 교육을 고민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동료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다. 함께 고민하면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 서 비거니즘 교육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나처럼 간절히 동료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SNS 계정을 만들어 게시물을 올렸다. 비건교사 나는냥의 첫 게시물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바라지 않아도 주변의 이목을 받는다. 난 700명 가까이 되는 학교 공동체 중 도시락을 준비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건을 지향한 지 6년이 되었고, 세상의 질문이 다양해질 때가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도시락을 들고 다니세요?” 도시락을 준비한 가장 큰 이유는 동물이 없는 정돈된 식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거니즘을 공부하고,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유는 전보다 분명해졌다. 비인간 동물은 나와 다르지 않다. 그들도 각각의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다. 하지만 도시락을 향한 질문에 비인간 동물 역시 인간과 같이 기쁘고, 슬프고, 아프다고 답하면 상대는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미간을 구기며 바짝 날을 세운다. 그러고는 채식을 하면 몸이 상한다거나 인간은 원래 잡식성이라거나 식물은 아프지 않냐고 한다.
내가 쓴 글을 활용하여 ‘인물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는 국어 수업을 한 적 있다. 공장식 축산과 그 구조를 공고히 만드는 소비를 고발하는 글이었다. 글을 읽은 학생들은 내가 비건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가 ‘동물이 불쌍해서’라고 생각했다. 어린 학생들도 의사소통할 수 없는, 도축되어 깔끔한 상품이 된 비인간 동물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겼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할 수 있듯, 구원도 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기인한 태도였다. 나는 그들이 찾아낸 이유를 ‘비인간 동물이 인간과 다르지 않아서’라고 정정했다.
진실은 균열을 만든다. 내가 뒷걸음질 칠 수 없었듯 학생들도 육식을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A 학생은 완전 채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동하며 환영했지만, 학생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운영하는 채식 급식은 그마저도 페스코(편집자 주: 계란, 우유, 생선 섭취는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채식주의자)에 그친다. 학생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과 두부조림, 심한 경우 밥뿐이었다. 감수성을 지닌 대가는 가혹했다. 사회는 동물권을 말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일을 개인의 취향으로 단정한다. 선택에 대한 불이익 역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축소한다. 하지만 채식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 모두를 위한 권리다. 사회는 이를 보장하는 지구 공동체의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지만 학교가 동물 감수성을 중요시해도 더 넓은 사회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동물권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난 학생이 비건이 되겠다고 했을 때 걱정 없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차근차근 다가가는 비건 교육 콘텐츠
: 없어서 만든 비거니즘 그림 동화책
학교에도 동물권을 ‘아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앎’은 비건 개인에 대한 배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눈앞의 비건이 부족함 없이 한 끼를 해결하기를,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 너머의 비인간 동물은 상상하지 못한다. 때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하기를 망설이는 듯했다. 비건교사 나는냥은 서울문화재단과의 인터뷰에서 ‘공감의 상상력’을 길러 주고 싶다고 한 바 있다.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상상의 재료를 갖추고 상상을 연습해야 한다. 상상의 재료를 갖추는 것은 동물의 고통을 공부하는 것이고, 상상을 연습하는 것은 ‘고통을 공부하는 고통’ 3)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성 폭력의 역사를 시로 쓴 에밀리 정민 윤(『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말이다. 비거니즘 교육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렸다.
3)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에서 따 온 표현이다
고통은 공포와 불쾌를 만든다. 학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고통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견딜 만한 고통을 통해 바르고 단단한 상상의 근육을 키우기를 바랐다. 이에 적절한 교육 자료가 그림동화였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글, 직관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그림이 동물권에 관한 편견이 굳어지기 전 아동·청소년에게 다가가기 좋을 것 같았다. 비청소년에게도 허용되는 상냥함과 너그러움도 좋았다. 그림동화 만들기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성별, 정상 가족, 성소수자, 인종, 장애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는 동화책을 찾아 함께 읽었다. 동물권에 관한 책도 찾아봤지만, 당시에는 권수가 많지 않았다.
“상상의 재료를 갖추는 것은 동물의 고통을 공부하는 것이고,
상상을 연습하는 것은 ‘고통을 공부하는 고통’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성 폭력의 역사를 시로 쓴 에밀리 정민 윤(『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말이다.
비거니즘 교육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렸다.”
그래서 직접 교육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비건교사 나는냥의 동화 모임에 참여했다. 격주에 한 번씩 화상 채팅으로 모여 진행 상황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의 형태로 편집했다. 세 회원이 출판 등록을 하기까지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동화책이 『양송이와 양동이, 건강 검진하는 날』, 『오늘 뭐 먹었어?』, 『날개 공장 공장장 공작새』다. 지금은 청각 장애인도 동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그림 해설 작업을 하고 있다.
『양송이와 양동이, 건강 검진하는 날』은 구조된 유기묘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어린이의 시선으로 쓴 동화다. 이 책은 반려동물은 함께 살기로 선택한 가족이므로 늙고 병들어도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날개 공장 공장장 공작새』에는 전시 동물들이 자유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오늘 뭐 먹었어?』는 매일 하는 식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물으며 메뉴와 부위의 이름에 감춰진 비인간 동물들의 얼굴들을 보여 준다. 반려동물, 전시 동물, 공장식 축산업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은 비인간 동물도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그들이 슬픔과 괴로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들의 슬픔과 괴로움에 책임이 있다.
비거니즘 동요 <원하는 대로>가 만들어지기까지
동요는 그림동화보다 더 접근하기 좋은 콘텐츠였다. 비건교사 나는냥 첫 모임에서 어린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비거니즘 동요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비건을 긍정적으로 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마침 녹음실 제공이 가능한 동료와 작곡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 비거니즘 창작 동요 모임이 만들어졌다.
처음 쓴 가사는 동물이 고통받는 현실을 고발하는 어둡고 무거운 내용이었다. 가사를 다듬는 과정에서 한 동료가 어린이들이 동물의 고통을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물었다. 어린이들은 어른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태어나 어른의 가치관을 교육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어른이 저지른 과오를 떠넘기는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동의해서 가사를 바꿨다. 비인간 동물이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해 동물이 해방되는 희망적인 모습을 담고, 후렴에는 동물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좀 더 쉽고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가사를 읽고 다듬으며 동물 착취, 공장식 축산, 동물 전시, 동물해방을 주제로 담은 가사를 완성했다. 제목은 후렴 가사 일부를 따서 <원하는 대로>로 정했다. 완성한 가사에 각자 리듬을 붙이고, 작곡이 가능한 동료가 그것을 토대로 전체 악보를 만들었다. (...)
녹음과 후반 작업까지 끝난 후에는 음원 공개 방법을 논의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비거니즘 동요를 더 많이, 자주 부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린이들이 자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접근성이 좋은 유튜브를 선택했다. 음원의 영상은 비건교사 나는냥과 양둥이 하우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악보는 비건교사 나는냥 블로그에서 받아 볼 수 있다. 어린이에게 비거니즘을 쉽고 즐겁게 알려 주고 싶은 분이 널리 활용하셨으면 한다.
지속 가능한 비건 교육을 위해 '귀엽고 행복하기'
‘실천하는 지성인’이라는 추켜세움에 손을 내저으면서도 속으로 우쭐대던 때가 있었다. 으쓱한 어깨, 높아진 콧대에 교사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해졌다. 도덕적 흠결을 찾으려는 눈초리를 피하고 악의와 무지로 점철된 반박을 내리누르기 위해서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높아진 만큼 추락의 충격은 커졌다. 실수와 실패에 쉽게, 오래 죄책감을 느꼈다. 그 낙차를 극복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검열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건 나빠.’,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지.’,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날 비판할 자격 없어.’
이젠 안다. 도덕적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격과 불이익에 대한 우려 없이 신념을 밝힐 수 있었던 것, 신념에 맞는 생활방식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은 덕이었다. 운이 좋아 온실 같은 환경에서 화초처럼 지냈고, 운이 좋아 비건을 실천할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운은 실력이 아니라 권력, 옳은 일을 하려는 욕망을 실현할 권력이었다. 실천에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같은 실천에도 훨씬 큰 용기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각자의 자리에서 이뤄지는 모든 실천이 소중하다. 때로는 좀 ‘으스댈’ 필요가 있다. 구조의 관성은 우리의 변화보다 힘이 세다. 우리는 훈장처럼 무력감을 가져야 한다. 이 거친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실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화자찬이 필요하다. 실천하는 나를 제대로 인정하고 효능감을 느껴야 견딜 수 있다. 매일 작고 귀여운 실천을 들여다봐야 한다. 귀여운 것은 실수하거나 어딘가 부족해도 계속 귀엽다.
교육이라는 무대 위에서 영원히 홀로 서서 관객석에 앉은 학생들에게 박수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거니즘 교육은 동료를 만드는 과정이다. 언젠가는 학생들과 같은 뜻 위에 서기를, 그들에게 감동보다 연대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무대를 뺏기지 않고 활용해 보려 한다. 돈과 명예 대신 고통과 야유를 받더라도, 무대에서 버티고 있으면 관객들은 우리를 보게 되어 있다. 귀여운 실천을 하며 버티자. 되도록 행복하게.
선한 영향을 나누는 동료를 찾는다면
(...) 무엇을 해도 제자리걸음 같고, 뜻이 다른 집단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카카오톡 오픈 채팅에 ‘비건교사 나는냥’을 검색해 보자. 세계 비건의 날(11월 1일) 네 자리를 입력하면 의지가 되는 커뮤니티가 열릴 것이다. 동화 제작, 독서 모임 등 비건교사 나는냥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연초 활동 회원모집 기간에 신청할 수 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말은 ‘morgen fr h(내일 아침)’이었다고 한다. 내일 아침을 꿈꿀 수 없는 것은 지금의 비인간 동물도 마찬가지다. (...)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에서 떠올린 시처럼, “어느 날,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비인간 동물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2 <학교도서관저널> 9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