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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서샘의 퇴직 후 생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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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7-01 15:16 조회 3,9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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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항성을 되돌아보며

책을 만듭니다


강민선 임시제본소 대표




저는 2014년 1월에 서울의 한 구립도서관에 입사해서 2018년 6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공공도서관 사서로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집, 작업실, 카페와 길거리에서 읽고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사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독자, 어쩌다 사서로 일하고 있지만 호시탐탐 뛰쳐나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아니, ‘신의 직업’이라고 불리는 사서직 을 걷어차 버리고 나오려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럼요. 우리는 신이 아닌걸요.



도서관이라는 항성을 떠나며


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도서관을 즐겨 다니는 사람들처럼 저 역시 책과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했습니다. 독서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유년기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동네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 이사를 하면 집 근처 도서관부터 찾아보는 사람이 저였어요. 바로 여러분처럼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도 도서관 사서였습니다. 문정과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원에 다녔고 거기서 받은 자격증으로 서울의 한 구 립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일하는 시간은 당연히 즐거웠습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어요. 물론 시간이 이만큼 지나고 보니 드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저더러 ‘완벽한 하루’에 대한 환상이 있대요. 하루 중에 단 1분만 틀어져도 그날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자책하면서 슬퍼한다고요. 온갖 변수가 가득한 세상에서 저와 같은 사람은 시간을 멈추거나 저를 바꾸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제가 도서관을 이용자로서 좋아했던 이유는 도서관에 오면 완벽한 하루가 보장된다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원하는 서가에 가서 원하는 책을 읽고 원하는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던 경험들이요. 진공 상태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저를 건드릴 수 있는 건 오직 책 속의 문장들뿐이었어요. 하지만 사서로 일할 때는 다른 것들이 저를 건드리는 일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사서 생활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도서관을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모두 알고 있을 그 책,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강민선, 임시제본소) 말이에요.

이전에도 독립출판물을 낸 적이 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도서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제가 쓴 책 곳곳에 이미 도서관 이야기가 있었어요. 도서관에서 매일 일하고, 저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의 보고가 바로 도서관 이니까요. 매일 썼어요. 쓰고 있으면 손상된 하루가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독립출판물 권수를 늘려 가며 도서관에서의 시간을 버티다 다섯 번째 책을 만들고 난 뒤에 도서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독립출판이라는 혜성


창업이라는 거창한 계획이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독립출판물을 입고했던 서점에 판매 금액을 정산해 줄 때 계산서를 발급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어요. 출판사에서 계산서를 발급해 주지 않으면 판매된 책의 세금을 서점에서 떠안아야 하거든요. 꼭 입고하고 싶은 서점이 있었는데, 거기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있어야 만 책을 받아 준다기에 그 서점에 입고하기 위해서라도 출판사 등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때까지 임시로 사용하던 ‘임시제본소’라는 출판사 이름을 구청에 신고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며칠 뒤 신고증을 받아 들고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을 마치자 출판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출판사가 서울에만 7만 곳이 넘더군요. 그중 1만 8천여 곳이 폐업이라고 나와 있지만, 영업 중이어도 책을 만들지 않아 임시 휴업인 곳이 많은 게 출판업계라고 하죠. 어쨌거나 제 이름으로 계산서를 발급하고 제가 만든 책에 ISBN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출판사 등록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의 개정판을 내는 것이었어요.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던 재고가 마침 다 떨어졌고 도서관을 그만둔 시점에서 다시 쓰고 싶은 부분도 있었거든요. 표지를 새로 만들고 대형 온라인 서점에 책을 보내자 독립출판계 바깥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땐 몰랐어요. 이 책이 저의 대표작이 될 줄은. 이후로도 계속 다른 글을 쓰고 다른 책을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이 책으로 기억하더라고요. 이 책으로 시작해서 다른 책도 찾아 읽는 것 같았고요. 그때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 꾸준히 찾아 주는 책이 한 권 정도 있으면 다음 책을 만들기가 조금 수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도서관은 제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장소이자 삶의 희망과 절망, 페이소스(편집자 주: pathos, 허전하고 슬픈 마음, 연민과 동정을 자아내는 비애감)를 차례로 안겨 준 곳이에요. 그곳에서 얻은 경험과 감정을 모아 책을 내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이니 도서관을 저의 시그니처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개정 6쇄를 찍을 무렵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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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제본소의 책들



안정 궤도를 여행하는 법


원고를 제안받으면서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릴 수 있었던 방법을 소개해 달라’는 대목이 의아했습니다. 안정 궤도라… 누가 퍼트린 헛소문인가 싶어 당혹스럽다가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정말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하니 괜찮더라고요. 저도 현재에 만족합니다. 지금처럼만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당신의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거 모르세요?”라며 은근히 내밀 수 있는 책이 있고, 그걸로 먹고살 만 하느냐고 물었을 때 ‘보시다시피’라고 보여 줄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고, 새 책이 인쇄되어 나올 무렵엔 다음 책에 관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는 상태. 책 만드는 일을 하 는 사람에게 이것만 한 ‘안정’이 어디 있겠어요. 



“글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쓰고 싶은 것은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도 글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제가 안온한 도서관에서 완벽한 하루를 느꼈던 것처럼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생각뿐입니다.”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다음번엔 이번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애쓰는 겁니다. 무작정 좋아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 땐 인식하지 못하다가 그렇게 만든 책이 쌓이면서 저만의 관점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쓰고 싶은 것은 제 글을 읽는 누구도 글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제가 안온한 도서관에서 완벽한 하루를 느꼈던 것처럼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생각뿐입니다. 나머진 죄다 부수적인 요소예요. 책의 주제와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읽는 사람의 손에 들린 이상 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싶어요. 안아 주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원고 청탁서에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것이 저의 현실입니다. 이게 없으면 책도 없어요. 

글 쓸 때 꼭 필요한 물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핸드크림? 손수건? 또 뭐가 있더라? 그러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없었다가, 어느 순간 생겼고, 한번 생기자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요해진 물건, 아니 사람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딱 한 사람. 저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저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냈을지도 모르겠어요. 비슷한 장소를 거닐다 비슷한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웃고 노래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심장이 무지개색이 되고 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용기를 냅니다. 저의 중력이 되어 주는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에게서 이탈하지 않도록 적당한 속도와 운동 에너지로 천천히 공전하는 일. 이것이 저의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게 직업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하니까 되던데요?



도서관이라는 항성을 바라보며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 ‘임시제본소’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시절, 출장으로 몇 차례 와 본 바로 그 현장이었습니다. 혹시나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을 우연히라도 만나지 않을까 생각만 했을 뿐인데 눈가가 아팠습니다. 그런 우연은 비록 없었지만 대신 다른 무수한 사서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도서전은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임이 분명했고 그중 특별히 제 앞에 머물러 준 이들은 사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 어쩌다 사서로 일하고 있지만, 호시탐탐 걷어차 버리고 나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겐 도서관이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준비해 둔 방명록에 긴 편지를 남겨 둔 이도 있고 퇴사하고 찾아오겠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만의 완벽한 하루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완벽한 하루라는 건 없다고 체념하고 포기할 게 아니라 그 하루를 위해 우리 각자 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세상을 더 재밌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책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도서관이 제게 준 선물이자 꾸준히 갚아 나가고 싶은 영혼의 빚. 여러분에게는 무엇일까요? 그게 무엇이든 꼭 한번 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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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강민선 대표의 모습  





조화로운 나눔을 위해
책방을 꾸립니다


김영화 세런디피티78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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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런디피티78 책방의 모습  



Q1. 퇴직 후 책방을 일군 선배의 경험담을 궁금해하시는 사서선생님들께 힌트가 되어 주실 것 같아요. 자기소개와 더불어 책방 소개도 부탁합니다. 


결혼 후 아이를 양육하며 사서교사로 일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한 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어요. 특히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심하던 중에 책방 창업에 관심을 가졌고, 책방 투어를 하면서 결심을 굳히고 창업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세런디피티78은 저희 부부가 나눔과 실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후 만든 문화공간입니다.

책방은 여주의 한적한 숲속에 있습니다. 책, 음악, 미술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소개하며 작가들을 만나고 서로 어울리며 인문학적 통찰을 나누자는 목표를 가지고 2018년에 열었습니다. 책방을 여는 데 받았던 영감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어요.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인데, 40여 년을 노동하는 일상 속에서 균형 있게 나눔의 문화를 추구해 온 부부의 정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희 세런 디피티78 책방도 니어링 부부가 꿈꿨던 세상을 위한 소통의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세런디피티’는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저희 카페 공간에서, 책에서, 타인과의 만남에서 독자들이 마음껏 행운을 잡으라 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 대국이 열렸지요. 인공지능에게 번번이 지다가, 제4대국에서 78번 수로 이세돌이 이겼습니다. 알파고가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없는 수였던가 봅니다. 복기할 때도 그런 수를 둔 이유를 풀지 못했는데, 그 78번째 ‘우연의 수’를 ‘행운의 수’라고 여겨서 책방 이름을 세렌디피티78이라고 지었어요. 7전8기라는 의미와 이곳에서 78세까지 건강하게 문화생활과 책모임을 하고 싶다는 의미도 담았고요. 귀농을 하셨거나 농사를 짓고 계신 주민들 중에서 거의 일흔이신 분들은 왜 78세까지만 하냐는 분들도 종종 계세요. (웃음)



Q2. 책방 창업을 꿈꾸며 은퇴 전에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독서활동과 책방 탐방을 하며 창업 준비를 했습니다. 은퇴 전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즐기다 보니, 독서 관련 문화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졌어요.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나 인문학 강의, 세미나. 음악회, 미술관 견학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책방 경영을 위한 안목을 높이고 견문을 넓혔어요. 공간을 만들어서 지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고 그 일을 5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 시간을 들여 꾸준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지역의 요구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방을 열기 전부터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하나 하려고 준비를 시작했어요.

일찍이 다양한 책을 접하고 읽음으로써 지식이 쌓였고, 북큐레이션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삶의 여정에서 힘들어하거나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지금 그 친구에게 어떤 책이 필요할까?’, ‘이 책을 읽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책을 추천하곤 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하지요. 사실 모든 사람 간의 만남은 우연이에요. 책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이고요. 제가 추천한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고객을 대한다고 한다면, 사서선생님이야말로 책방을 꾸리는 데 최적의 사람이 아닐까요? 


Q3. 개업일이 2018년 5월 15일인데, 서점 운영 5년 차에 접어드셨어요. 코로나 시기동안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버티셨나요?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궁금해요. 

책방을 열던 당시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너무 허무맹랑하고 힘들 것 같은 이 일을 왜 하냐고 말렸어요. 돈이 많아서 건물을 지은 것도 아니고, 책 공간을 만드는 기간도 오래 걸렸어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많이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5개 정도의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코로나로 모임을 할 수 없다 보니 몇 주 간은 모일 수 없었고,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줌으로 하는 팀도 생겨났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임을 계속하기 어렵다 보니 관계가 느슨해지고 급기야 모임이 중단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모임 구성원들 중에서 출산한 뒤에 친정집 오듯 책방에 아기를 데려오고 남편과 함께 왔던 이용자가 있어서 반가웠어요. 책을 매개로 관계가 확대되니 감사하더라고요. 육아를 하며 모임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꼭 책방에 와서 지속적으로 책을 사 가고, 책방을 도와주려는 선의에 감사하곤 해요. 이런 관계를 지속하는 게 소중해요.
책방 모임 중에서 50대 여성들로 구성된 팀이 있어요. 지금은 40대부터 60대까지 함께 모이는데, 60대들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이분들의 이야기가 자극이 되기도 하고요.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같은 책을 읽어도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이 다르고 연령층마다 관점이 달라요. 다르다 보니 토론이 더 풍성해지고 구성원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토론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격 려해 주니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달빛독서회는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번 모이면 심도 있는 열띤 토론이 일어나곤 해요. 그래서 달빛독서회 주관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많이 꾀하는 편이에요. 모임 때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니 생각이 확장되는 듯합니다.
저희 책방에서는 독자와의 ‘나눔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역 농민들의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플리마켓, 바자회, 옥토버 페스티발 등을 계획 중이고요. 인디밴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앙상블과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려고 해요. 추억의 영화 등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 상영에 특히 관심을 기울입니다. 전시회,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글쓰기 교실, 귀농·귀촌을 위한 은퇴준비 교실 등 여러 분야의 흥미로운 행사들을 기획 중입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 저희 책방의 주된 목표입니다.
 

Q4. 학교도서관 생활과 서점 경영자로서의 생활은 다를 것 같아요. 서점 경영을 익히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중점적으로 하셨나요?

사실 도서관 생활과 서점 경영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해요. 둘 다 서비스 정신을 기반으로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서점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익 창출이 큰 관건이겠죠. 이익이 생기는 부분을 다양하게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책방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숙제 같아요. 요즘은 책방과 카페를 병행하다 보니, 서점으로서의 기능과 카페로서의 기능을 잘 생각하여 계획을 짜고, 이에 맞게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격적으로 책방을 열기 전에 경기서점학교(편집자 주: 서점 창업에 필요한 운영의 실제, 북큐레이션, 공간을 기획하는 방법 등을 알려 주는 문화 사업.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권 등이 주관함.) 등 서점 경영 관련 세미나를 들으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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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모임에 참여 중인 독서 회원들


Q5. 말씀하신 것처럼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매출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책방을 꾸릴 수 있을 테니까요. 정기적인 수입을 위해서 지키고자 했던 철칙을 알려 주신다면요? 

독서 모임을 꾸리면서 독자들에게 회비를 받아요. 모임 회비는 만 원 정도고요. 회비가 저렴한 편이라 만남을 잘 꾸리기가 쉽진 않아요. 음악회를 열거나 작가를 초청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참여자들에게 회비를 비싸게 받을 수 없어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커피 한 잔을 파는 게 수익이 가장 커요. 하지만 커피를 팔았을 때보다 독자들이 책을 사가면 훨씬 더 기쁘더라고요. 책을 팔면서 생기는 이익은 거의 없지만 제가 컬렉션해 둔 책을 독자들이 사 가면 제가 행복해져요. 그건 책방을 꾸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 같아요. 요즘 대부분 젊은 세대는 e-Book을 읽기 때문에 이곳에서 종이책을 거의 사지 않아요.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종종 독자들에게 책방 공간을 대여하기도 해요. 음료 구입을 기본 조건으로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필요한 세팅도 다 해 드려요. 각종 소모임이나 세미나 등등 공간 대여의 성격 혹은 인원수에 따라 대여료를 달리 책정하는데, 매출에 약간의 도움이 됩니다. 서점 안쪽에 자리한 모임 공간은 경치가 무척 좋은 곳에 자리해 있어요.
 

Q6. '파레토 법칙'을 언급하시면서 책방을 운영하는 데 "나의 노력은 22%이고, 주변의 도움이 78%"라고 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어떻게 받으셨는지, 책방지기로서 중요한 태도에 대해서 자유로이 들려주세요.

살기 좋은 공동체를 누구나 원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은 또 다른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요.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지식은 깊이가 없어요. 책방 운영을 하다 보면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분도 만나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우리를 흔드는 경우가 많아요. 힘든 일이에요.
그럴 때 남편과의 대화에서 서로 힘을 얻기도 하지만 책을 통해서 스스로 단단해 지려고 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책이 저에게 힘이 되었는데, 그 책이 『페스트』 (알베르 까뮈)입니다.
책에 나오는 인물 ‘타루’에 따르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하더라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난국을 이겨 내는 방법이라고요. 이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성실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실함을 실천하는 일이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여기서 지역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간청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각자 가진 재능으로 서로 만들어 가는 것, 그러다 보면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고 언젠가는 그 문화를 꽃피우지 않을까 생각해요.
책방을 연다는 것은 지역 문화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꾸준함으로 지속할 때, 그 열정을 가지고 있을 때야 비로소 이 공간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책방에서 만난 여러 인연들이 도와주고, 아껴 주고, 사랑해 주므로 세렌디피티78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많은 사서선생님들과 함께 할 날을 기대하며,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힐링도 할 겸 저희 책방에 찾아와 주시면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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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런디피티78 오시는 길 경기 여주시 명품로 127-40 전화 031-883-7822




또 하나의 미래를 꿈꾸며
북트레일러를 연구합니다

 

최용훈 리딩에듀 북트레일러 연구소장




저는 여러 기관에서 북트레일러 강의를 하고 있으며, 대림대학교 도서관미디어정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헌정보학과에 큰 뜻을 가지고 진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업 시장에서 조금 불리한 2년제 대학을 나와서 준사서 자격증을 가지고 학교도서관 사서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했으니 이공계 관련 학과에 진학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계기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전문강사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거창한 꿈이나 계획을 세워서 실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처한 상황보다 좀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간절함이 컸습니다. 저처럼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던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헌정보학이라는 신세계와 만나고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수능으로 정해지는 듯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사범대 수학교육과에 등록금을 냈지만 가고 싶은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을 포기하고 재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원하는 학과에는 원서조차 넣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패배감을 느끼며,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 대학에 가지 않고 돈을 버는 건 어떨지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로 대학 배치표를 쫙 펼쳐 봤습니다. 1998년 당시에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관련 학과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컴퓨터 관련 학과는 모든 대학에 다 있을 정도였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흔한 학과보다는 흔하지 않은 학과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학과가 바로 문헌정보학과였습니다. 문헌정보학이 어떤 학문인지도 몰랐고, 사서라는 직업에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개강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학생이 무척 많았는데, 40명 중 남학생은 4명밖에 없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문헌정보학 과목들은 왜 그렇게 재미가 없는지… 몇 안 되는 남학생들도 저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넷이서 수업보다는 노는 것에 죽이 잘 맞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런 친구들 있지 않았나요? 공부는 안 하면서 학과 집행부 일이나 동아리 활동은 열심히 하는 친구들, 그게 저였습니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해서도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더 열정을 쏟으면서 대학 생활을 하고, 최저 학점으로 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학교도서관과의 만남

 

졸업 후에도 취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졸업생이지만 여전히 학교 연습실에서 후배들과 연습하는 게 즐거웠고 미래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던 날, 우연히 만난 교수님께서 학교도서관 취업을 권하셨습니다. 2000년대 초, ‘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경기도에 학교도서관이 많이 생겼던 시기여서 저는 어렵지 않게 학교도서관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처우와 근무 여건이 열악했습니다. 당시 공무직 사서는 일용직이었고, 그마저도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이었습니다. 주5일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토요일까지 출근하며 꼬박 한 달을 근무하면 실수령액으로 100만 원이 안 되는 급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 선생님 들과 생활하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계획을 세워 도서관을 꾸려 가고 여러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쉬는 시간과 방과 후에 꾸준히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또래 선생님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학교에 놀러 간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즐겁게 근무했습니다.

일은 즐거웠지만, 계약직이라는 위치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처우는 힘들었습니다. 계약직에서 벗어나고자 이직을 하려고 알아보았지만 4년제 졸업 및 정사서 자격증 소지자만 응시할 수 있다는 수많은 공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의 차이는 무척 컸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았습니다.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던 모습과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는 모습이 한심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평생교육원에서 문헌정보 학사 과정을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되어, 바로 등록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 시절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레포트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절대 지각하거나 결석하지 않고, 삶의 1순위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평생교육원 과정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교육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교육대학원에서 필수가 아니었던 논문까지 작성하면서 졸업을 하고 사서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몇 년 동안 임용고시 TO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년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자격증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터닝 포인트, 북트레일러 공부


2003년부터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매년 다양한 독서활동과 행사를 진행했지만, 언제부턴가 쳇바퀴 돌듯 같은 종류의 독서활동을 반복해서 운영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활동들이 반복될 때마다 형식적인 일회성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건 없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고민은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에도 이어졌습니다. 뚜렷한 연구목적이나 목표 없이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보니, 방향을 잃은 배처럼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무척 불안했습니다. 논문은 어떤 주제로 작성할지, 무사히 졸업은 할 수 있을지, 졸업 후에도 여전히 고학력 무기계약직 사서로 남아 있지는 않을지 고민하며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2학기를 마쳤을 때는 자퇴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북트레일러 공모전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로 제작된 북트레일러를 보면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표현력, 이야기 재구성 능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모전 참가를 위한 북트레일러 제작이 아니라 독서활동이나 협력수업의 결과물로 북트레일러를 제작하면 어떨까? 북트레일러와 독서활동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렸고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북트레일러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만, 국내에 북트레일러 관련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북트레일러와 독서활동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국내외 무수히 많은 자료를 검색해서 읽고 분석했습니다. 사전을 옆에 끼고 단어 하나하나를 해석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찾기 하듯 자료를 찾았고, 유용한 정보를 발견할 때마다 느꼈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고 적용방법을 연구한 후, 학교도서관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박사과정을 졸업하고도 제 삶과 업무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트레일러를 주제로 논문을 완성하고 나니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독서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학창시절 상이라고는 개근상만 받아 봤는데, 북트레일러 논문을 준비하면서 학교도서관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으로 경기도교육감 표창, 전국도서관운영평가에서 문체부장관 표창, 2018년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연구한 북트레일러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강의 요청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든 학교도서관을 떠난 지금


처음엔 교장선생님도 외부 강의를 흔쾌히 승낙해 주셨지만, 강의가 점점 많아지면서 곤란한 기색을 보이는 날들이 많아졌고, 강의를 나가게 되면 도서관 운영이 안 되다보니 그 피해는 자연스레 학생들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5년간 학교도서관 업무를 하면서 무수한 문서작업에 지치기도 했고, 몇 년간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번아웃을 경험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나중에 그만두기는 더 힘들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과감하게 학교도서관을 그만뒀습니다.

학교도서관을 그만두고 전문강사로 생활한 지 4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북트레일러 강의 요청이 꾸준히 들어와서 여러 기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강의하다 보니 지겨울 것도 같지만, 이번에는 어떤 북트레일러가 탄생할지 항상 기대되고 대단한 작품을 만나면 감동하기도 합니다. 멀리 지방으로 강의를 갈 때면 여행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다닙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북트레일러 연구 외에도 또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이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의 속담입니다. 현실에 답답함이 느껴질 때 핑계보다는 방법을 생각하고 찾아보면 어떨까요? 저의 이야기가 작은 동기가 되길 바라며 이만 마무리합니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2 <학교도서관저널> 7+8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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