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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름 방학 그곳 이 책_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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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0-22 17:47 조회 5,8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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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를 만드는 마법의 공간, 감이당 세미나룸
강민혁
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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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은행원이다. 어쩌다 이런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삶이란 우여곡절을 무기로 뜻밖의 길을 걷도록 이끄는 짓궂은 사제와도 같다. 사십을 딱 일 년 남겨 놓은 서른아홉, 여전히 나는 미친 듯이 술을 마셔대고, 끊임없이 2차, 3차를 외치는 나날이 이어지던 그때, 심상치 않게 갑작스런 술병이 도졌다. 새벽부터 온몸에 슬금슬금 열이 나고 목이 부어오르더니, 복통까지 요동쳤다. 아내 손에 이끌려 엉금엉금 동네 병원을 기어 들어갔는데,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그렇게 술 마시다간 곧 죽습니다.” 사실 누구나 그 정도 술병은 당연하게 여기던 터라, 의사 선생의 충고쯤이야 흘려들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내 귀청이 그 ‘죽는다’는 말을 새로운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질 거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 순간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게 용솟음쳤다. 아마 욕망은 이 기회를 노리고 내 앞뒤로 흘러 다녔을 것이다. 그러다 어떤 촉발과 함께 솟아오르며 나를 이끌고 길을 나섰으리라.
그때 내가 찾아간 곳은 헬스클럽도 아니고, 명상센터도 아니고, 영어학원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곳, 더군다나 은행원인 내가 도무지 갈 것 같지 않을 공간, 바로 “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실”이다. 남산 아래 자리 잡은 연구실은 나 같은 은행원에게는 아주 낯설고 기이한 곳이다. 처음 가서 공부한 것은 이름도 생소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를 내용이 오갔지만, 그 공간의 기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난무하였건만, 놀랍게도 내겐 그것이 아름답다고만 여겨졌다. 오랜 사회생활 속으로 잃어버린 정신세계가 폭포 뒤에 숨어서 새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이 공간을 찾았다. 세미나룸을 찾으면서 술·담배를 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점점 다른 정신, 다른 신체를 갖게 되었다. 가족–학교–회사로 이어지며 구성된 예속적인 습관은 이 세미나룸에서 해체되었다. 소크라테스, 니체, 푸코, 들뢰즈, 루쉰, 연암으로 이어진 친구들과 스승들을 이 세미나룸으로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이 공간을 잊지 않고 찾아간다. 내가 처음 찾아간 날 보았던 그 아름다움을 다시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신체를 구성하는 기쁨을 획득하기 위해서. 아마 내게 방학이 주어진다면 나는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이 마법의 공간을 찾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정동호 옮김|책세상|2000
니체는 신체가 이미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라고 말한다. 나는 하나의 나가 아니라는 것. 나에겐 복음과도 같은 소리다. 내게 새로운 ‘나’들로 무궁하다니!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지음|김재인 옮김|새물결|2001
화려한 개념들과 문장들로 새로운 철학을 이야기하는 무척 매혹적인 책. 그러나 그 화려함 뒤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신중하게 깔아 놓은 저항의 길까지 볼 수 있다면 더 황홀할 책.
 
『주체의 해석학』
미셸 푸코 지음|심세광 옮김|동문선|2007
푸코는 통념적인 그리스·로마 철학을 파헤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거대한 대륙을 들어 올렸다.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자기가 되기”로 표현될 ‘자기배려’라는 멋진 사유의 대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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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갖가지 ‘서사’가 있는 헌책방 신촌 ‘숨어있는책’
김청연
한겨레 교육섹션 <함께하는교육>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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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쓰던 물건을 물려받고 자란 둘째여서일까. 본래 성격이 그런 걸까. 나는 새 물건보다 헌 물건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거 이번에 출시된 완전 최신제품이야. 신상이라고!” 누군가 선물이라며 깔끔하게 잘 포장된 상자를 내밀 때 은근 당황도 하는 편이다. “이 포장 좀 뜯어줘. 아니, 이거 네가 좀 쓰다가 주지….” 내 마음속에는 이상하게 새것이 주는 불편과 부담스러움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막 사온 듯 구겨지지 않은 서점 종이봉투에 담긴 책을 선물로 주는 것보다는 그것을 주는 이가 몇 번 펼쳐 본 듯 흔적이 있는 책을 더 좋아한다. 책 앞장에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적었거나 선물해 주는 이가 책을 읽고 구석구석 인상 깊었던 구절에 밑줄을 그어 뒀다면 그건 내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다. 이렇게 사람 때가 묻은,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선물이 좋다.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로에 있는 ‘숨어있는책’은 이런 내가 잘 가는 공간이다. 신촌역 현대백화점 맞은편 도로 쪽에 위치한 이곳은 헌책방 마니아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때 묻은 책들로 가득한 이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왜그랬을까?’,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는 거지?’ 나에게 또는 남에게 실망했을 때, 사람이 싫어질 때 ‘우이씨.’ 혼잣말을 하며 걷다 보면 발길은 어느새 헌책방을 향해 있다. 누렇게 바랜 옛날 책들을 앞에 두고 있으면 생각은 과거로 향한다. ‘이 책이 나왔을 시절이면 나는 몇 살이었지?’, ‘그래. 이때 이런 게 유행했었어.’ 덕분에 지금 고민들은 어딘가로 잠깐 사라진다. 아마 지금 중학생에게는 초등학교 시절로, 고등학생에게는 중학생 시절로, 어른에게는 학창시절 어딘가로 잠시 여행 떠날 기회를 선사하는 공간이 될 거다.
때론 누군가 그어 둔 밑줄이나 적어 둔 메모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이름, 나이, 성별, 사는 곳, 성격,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사연. 아주 가끔 이런 것들까지 상상해 보게 하는 메모도 보인다. ‘누구도 펼쳐 보지 않았던 새 책’으로는 해 볼 수 없는 경험. ‘누군가 펼쳐 봤던 헌책’만이 줄 수 있는 이 색다른 경험의 기회가 좋다.
누군가의 ‘이야기’, 갖가지 ‘서사’가 있는 헌책을 나 자신에게 사 줬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상사에게 잔뜩 깨지고 갔을 때 발견한 해문문고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한참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고민하던 때 발견한 강석경 작가의 『일하는 예술가들』이 그런 책들이다. 이렇게 구입한 헌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다시 팔거나 선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대가 변해 대형서점 못지않게 세련된 헌책방도 등장했다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고, 비좁아도 옛날식 헌책방만이 주는 이상한 편안함이 있다. 게다가 이 책방은 지하에 있어 시원하기까지 하다. 여름날, 슬리퍼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찾아가 보시길~! 참고로 이 근처에는 ‘공씨책방’이라는 헌책방도 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
최종규 지음|그물코|2006
헌책방 마니아인 저자가 2004년 5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헌책방을 다니면서 산 책,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60여 군데 헌책방이 소개돼 있어 헌책방 순례를 떠날 때 참고하면 좋다.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이민아 옮김|궁리|2004
런던 채링크로스가에 있는 헌책방 직원 프랭크와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는 작가 헬렌.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약 2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헌책방 시대의 낭만을 곱씹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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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커다란 세상책!! 수성동 계곡, 백사실 계곡
김경숙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사무처장
 
한여름,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 여행하기 좋은 때입니다. 그래도 시원한 숲 그늘 아래에서 자연바람 맞으며 세상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숲을 만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지요. 손바람 일으키는 부채 하나 들고 해우산도 하나 거머쥐고 떠나 볼까요?
 
수성동 계곡
겸제 정선이 실경으로 그린 ‘인왕제색도’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갑니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조금 올라가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덥지 않은 때라면 그냥 살살 걸어올라가 우리은행 뒷골목으로 접어들어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라 세종마을이라 불리는 서촌의 이모저모(이상의 집, 대오서점, 박노수미술관, 윤동주 하숙집터)를 두루 살피며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수성동 계곡 가는 버스(09번)를 잡아타고 종점에서 내려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래된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가 옛 모습을 회복했는데요. 바로 인왕산 아래 첫 계곡 수성동(水聲洞) 계곡이에요. 비오는 날 찾으면 우레와 같은 계곡 물소리도 만날 수 있다지요.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수성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此心雪韻)’라는 시를 남겼어요.
 
入谷不數武 골짝을 들어서자 몇 걸음 안가
吼雷殷屐下 발 밑에서 우레소리 우르르르릉
濕翠似裹身 젖다 못한 산안개 몸을 감싸니
晝行復疑夜 낮에 가도 밤인가 의심되누나
(중략)
山心正肅然 산심이 정히도 숙연해지니
鳥雀無喧者 지저귀는 소리 없네 온갖 새들도
願將此聲歸 원컨대 이 소리를 가지고 가서
砭彼俗而野 저 야속한 무리들을 깨우쳤으면
                                                                   –『완당전집』 중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과 백사실 계곡
수성동 계곡을 따라 인왕산 석굴암 가는 숲길을 땀을 식혀가며 조금 오르면 2차선 인왕산 길을 만나요. 인왕산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창의(자하)문 쪽으로 산허리를 따라 나있는 걷기 좋은 길을 가만가만 걷습니다.
시인 윤동주가 하숙집을 나와 거닐었을 그 산책길을 20분쯤 따라 걸으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만납니다. 윤동주문학관을 둘러보며 맑디맑은 윤동주의 아픈 젊음을 만나보세요. 길 건너 창의문 문루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요.
백사실(白沙室) 계곡이라고도 하는 부암동 백석동천 숲으로 갑니다. 갖가지 카페와 음식점들이 있는 동네 길을 걸어가면 참 예쁜 숲길로 들어가요. 숲 아래쪽으로 천천히 걸으면 주춧돌만 남아있는 수백평 규모의 옛 집터가 있어요. 백사실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유적지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확실하진 않다 하고요. 연못가에 앉아 품고 간 책을 보아도 좋고 무념무상을 즐겨도 좋고요. 해질녘까지 고요히 지내보세요. 여름 한가운데, 숲, 커다란 세상책의 신비에 빠져봅시다.
 
『운영전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 사랑』
조현설 지음|흩날린 그림|휴머니스트|2013
죽음을 넘어서도 놓지 못한 운영과 김진사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유영이라는 가난한 선비를 통해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수성동 계곡이 그 안타까운 사랑의 배경이다.
 
『오래된 서울』
최종현, 김창희 지음|동하|2013
서울의 역사적 지리적 원점을 추적하는 ‘서울의 탄생’과 서울 중에서도 인왕산과 서촌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장소와 사람의 관계를 자세하게 살펴본다.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윤동주 지음|신형건 엮음|조경주 그림|푸른책들|2006
윤동주가 동시라고 스스로 밝힌 작품 35편과 그 외 동시로 읽힐 만한 시들과 대표작 「서시」, 「별 헤는 밤」 등 어린이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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