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경 서울 봉영여중 사서

 

매년 학기말이 되면 특수목적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대출목록을 뽑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교에서 진학 희망 학생의 독서이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출이력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기소개’ 작성 란에서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작성하시오.’라는 문항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책이 아닌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을 골라 읽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로 정보가 힘이 되는 사회다. 작은 정보들이 모여서 빅데이터가 되고 이렇게 모인 빅데이터는 도서관 이용자의 독서 취향이나 독서 습관, 관심 영역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도서관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책을 대출하는 행위 자체를 개인의 비밀 즉, 개인정보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특정 이유로 도서관 이용자의 일정 기간 동안의 도서대출이력을 수집하여 도서관 이용자의 독서 습관이나 독서 성향, 관심 영역 등을 분석하였다면 이것은 분명 개인정보 침해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 제12조 1항에 의하면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도서관 이용자의 대출이력은 넓은 의미에서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에 해당된다.
도서관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대출반납서비스가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는 도서관 이용자인 학생의 이름과 학번, 대출 반납된 책에 대한 기록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대출반납 서비스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학생 개개인의 대출 및 반납 기록이 언제까지 도서관 서버에 저장되어 있어야 개인정보보호에 위배되지 않을까? 물론 도서관 이용 통계 등을 산출하기 위하여 이용 기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미국 매디슨공공도서관은 도서관 이용자의 대출정보를 30일간 또는 다음 대출자가 대출할 때까지 보관한다는 대출이력 보관 기간을 정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인정보보호지침’을 마련하여 도서관 이용자의 도서대출 기록도 임의 삭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서관 이용자의 도서대출 기록이 개인정보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기록의 보관 기관에 대한 규정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도서관은 지식정보격차 해소와 지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표적 기관이다. 도서관에서 개인의 지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감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책을 선택하여 읽고, 선택한 책에서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문 안에서의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개인정보인 대출 이력이 수집되고 분석될 경우 도서관 설립 목적인 지식정보격차의 해소와 지적 자유 보장이 과연 지켜진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인윤리선언 제6조에는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 조직, 보존하여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최종책임자로서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도서관인은 이용자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그 공개를 강요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도서관 이용자의 책을 선택하는 행위나 선호도가 모이면 이는 그 이용자를 나타낼 수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기에 도서관 사서는 도서관인윤리선언에서 명시한 것처럼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니며, 이를 위해 도서관 이용자의 대출이력 보관 기간 등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