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는 글]독서이력,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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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1-18 13:42 조회 5,530회 댓글 0건본문
조수진 서울 관악중 사서
지난 상반기, 도서관계는 ‘도서검열’이라는 문제로 뜨거웠다. 경기도교육청이 학교들에 공문을 보내 특정도서와 관련하여 ‘지도 편달’을 요청했고, 한 지역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특정 도서가 문제시되어 권장도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도서검열과 관련된 이러한 이슈들로 인해 지난 7월에는 많은 단체들이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이슈들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도서관의 ‘대출반납기록’, 내지는 ‘독서이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군부독재 시절처럼 ‘독서이력’이 ‘사상검열’에 이용되는 시대는 아니더라도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 보다 강조되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출이력’을 남기는 문제는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나는 학교도서관 사서로서 학생들의 인권과 개인정보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대출기록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도서관이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배움, 즉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학생’은 ‘배워가는 단계’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사이다. 학교도서관 또한 그 일부로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비단 독서활동뿐 아니라 생활태도나 배려심 등)은 배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학생들을 지도하고 배움의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학교도서관 사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독서이력은 사서에게 아주 중요한 지도의 매개체가 된다.
학생들의 독서이력을 쭉 관찰하다 보면 그 학생이 요즘 가지고 있는 관심사가 보인다. 요리에 관심 많은 아이들은 요리와 관련된 책들을 찾고, 한창 심리학에 빠져 있는 아이는 100번대 서가를 들락날락하며, 바리스타가 되고 싶은 한 아이는 커피와 관련된 책들을 빌려 간다. 나는 종종 그런 아이들을 보면 “이 책 어땠어?” 묻기도 하고 “비슷한 책 추천해 줄까?”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 아이들은 수줍어하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아이들은 그 다음에 와서 “선생님, 제가 이런 내용의 책을 읽고 싶은데요, 혹시 관련된 책 있나요?” 하고 묻는다. 참고정보 서비스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독서이력은 학생들의 정성적 평가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어느 중학교 사서선생님이 한 학생의 독서이력을 꾸준히 관리하고 학생과 함께 독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나갔다. 이 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찾아왔더란다. 중학교 시절, 독서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만들었던 것이 향후 고등학생이 되어서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자신이 학과를 결정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수시전형에 독서이력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사서는 독서이력을 통해서 아이들의 독서 편식을 막아 줄 수 있다. 겉으로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은 아이들도 독서이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독서 편식을 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대출 권수는 많지만 빌려간 책들이 모조리 판타지라든지, 가벼운 성장소설만 읽는다든지. 양서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독서편식은 아이들의 세계관을 좁게 만들고 그 이상의 어려운 책은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아이들을 보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마냥 칭찬해 줄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고른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이들의 심리상태나 정서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성문제, 가족문제 등등. 말은 하지 않아도 어떤 경우에는 대출이력을 보면 그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학교도서관은 책을 읽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 아이들에게 휴식이나 도피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지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 주는 일. 학교도서관 사서로서 수많은 사서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이력은 이력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나 이곳은 학교도서관이고 그 안에서 사서는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