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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 김주온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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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2-03 11:04 조회 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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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길 꿈꿨던 청소년 


청소년 시기, 작가님은 어떤 직업들을 꿈꾸셨나요? 책의 서문에서 10대 때 “불의에 맞서는 일, 모두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꿈꿨다고 쓰셨는데, 구체적으로 궁금해지더라고요.

모든 직업을 다 말하면 진짜 많을 것 같고요. (웃음) 고등학생 때 집에 만화로 된 위인전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프랑스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인 시몬 베유를 소개한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었어요. 시몬 베유는 자신이 공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사상가이자 힘든 여건에도 노동자들의 삶에 다가가려고 무지 애쓴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결정적으로는 조영래 변호사님이 쓴 『전태일 평전』을 읽게 됐어요. 친구가 그 책을 읽느라 저랑 안 놀아 주길래 뺏어 읽어 봤는데, 그대로 빠져들었어요.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고 인생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시몬 베유가 제게 프랑스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알려 줬다면, 『전태일 평전』은 서울의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사람들 이야기거든요? 제가 잘 모르는 시대 얘기임에도 그때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 전태일의 삶에 대해 쓴 조영래 변호사의 글에 완전 감응해서 인권변호사에 관심이 생겼죠.

『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구할 수 있다면』에서 기후위기에 법으로 맞선 박지혜 변호사님을 인터뷰한 파트에 제가 ‘인권변호사와 공익변호사의 차이’에 대해 쓴 부분이 있잖아요. 실은 청소년 시기, 제가 실제로 많이 찾아봤기에 쓸 수 있었던 부분이에요. 제게 ‘활동가’라는 상이 없었을 때,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회 변화를 위해 전문성을 가지고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돼서 가장 진지하게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었어요. 대학에 온 이후까지도요. 하치만 그 후로는 다양한 연대 활동을 하면서 특정 직업을 가져야만 내가 바라 왔던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서, 그때그때 제가 마주한 일들에 그대로 뛰어든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사회운동이나 정치 활동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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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김주온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동사형으로 들려주신다면요?


진짜 어려운데요. (웃음) 저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 현장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 증거들을 찾고, 용기를 품게 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여전히 칼럼이나 연구 보고서, 인터뷰 글, 에세이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지만 결국 저는 소외되는 존재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려고 글을 쓰고, 연구하고, 누굴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인 듯해요. (기자: 청소년기에 꿈꿨던 일들을 여전히 꿈꾸고 계신 거네요?) 맞아요. 그런데 저도 계속 진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 일이 하나의 직업으로 요약되지 않아서 그런 듯 해요. 그러다 보니 사실 이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제 진로 고민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했어요. 책을 쓸 즈음 ‘로스쿨에 가서 법적인 전문성을 쌓아 볼까?’ 고민했거든요. 제가 그 직업이 궁금하기도 해서 박지혜 변호사님을 인터뷰이로 모셨던 거죠. (기자: 하지만 책에서 변호사님은 사회 참여를 위해 꼭 변호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죠.) 맞아요. 변호사라는 것 역시 고정된 직업이 아닌거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가 그간 활동가·정치인·연구자의 정체성으로 각각 해 왔던 일들도 계속 변화할 수 있겠더라고요. 또 (돌이켜보니) 제가 늘 새로운 걸 배우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요. 결국 지금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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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직업에 갇히기 두려워지는 마음도 있으실까요?

반반인 듯해요. 다만 이 책을 최근에 내고 나서는 작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긍정하고픈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이전까지 ‘글’은 제게 활동하며 수단적으로 써야 되는 것이었거든요. 정치 활동을 예로 들면 논평이나 발언문이죠. 그런데 이 책을 계기로 스스로 청소년소설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고 있어요. 이 책은 청소년 독자를 상정하고는 처음 써 본 글인데 책을 쓰는 과정과 제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참 편안했고, ‘나답다’는 느낌이었거든요. 20대 때는 청소년기가 너무 저랑 가깝다고 느껴져 오히려 이런 글이 어려웠는데요. 3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은 그 시기와 거리감이 생겨 지금의 청소년, 그리고 그 시기의 저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됐고, 또 걸고 싶게 된 것 같아요. 이건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치 활동도 일종의 교육적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의미가 있다고 많이 느꼈었어요.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시민 교육의 관점에서요. 정치는 결국 시민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는 과정인데 다 같이 배운다는 마음으로 활동할 때 정치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지요. ‘기본소득’과 ‘기후위기 대응’에도 분명한 연관이 있을 듯해요.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고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아이디어예요. 기후위기 전부터도 불평등 문제의 대안으로 계속 언급돼 왔죠.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똑같은 강도로 닥치지 않잖아요. 재난 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가장 취약해지죠. 홍수 때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더 피해를 입는 것처럼요. 기후위기 피해는 광범위해요. 기후 악화로 몸이 아파져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요. 특히 한국처럼 노인 빈곤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 같은 취약 계층이 더더욱 일상적 생활을 해 나가기 어려워질 수 있어요. 사회적 약자, 소수자,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기후재난에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처럼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 사회적 안전망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선별적 복지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기본소득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중요 안전망도 될 수 있어요. 기후재난으로 살기가 팍팍해지면 사회 내 혐오가 증폭될 우려가 있고, 그 비난의 화살은 공연히 소수자들을 향할 수 있는데,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거죠.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이 책의 인터뷰이들처럼 자기 일과 삶 안에서 기후위기에 실천적으로 대응해 보려는 분들에게도 디딤돌이 될 수 있어요. 지속 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에 리스크를 줄여 주는 거죠. 삶터를 바꾸거나, 노동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직접 농사를 지어 본다거나, 차를 좀 덜 타고 자전거를 타면서 살아 보려 할 때 기본소득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문제는 언제부터 관심 갖게 되셨나요? 

201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했어요. 특히 기본소득 운동을 하면서요.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 배출 행위에 세금을 많이 부과한다거나 핵발전소처럼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않은 에너지원에 세금을 매기는 방향을 고민하면서 더 많이 관심 갖게 됐어요. 탄소세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고요. 그러다 그레타 툰베리를 시작으로 세계의 청소년이 학교를 파업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후 시위를 시작했을 때 반성을 많이 했어요. 저도 어떤 부분에서는 이들보다 미래를 살고 있었기에 위기감을 좀 덜 느껴 온 건가 싶더라고요. 저는 청소년기에 정말 다양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의 청소년은 그 꿈을 애초에 불가능한 것으로 느낀다는 게…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아요. 또 그때 영국에서 ‘멸종 반란’이라는 큰 시위도 있었어요. ‘동물들이 사라졌던 것처럼 인간도 멸종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죠. 그때 기후위기 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었는데 공부할수록 ‘생태적 차원에서 인류가 정말 선을 많이 넘었구나. 거기엔 내가 누리며 살아온 방식,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구나.’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인터뷰이와의 만남이 부른, ‘나’를 긍정하는 마음  


책의 탄생 비화도 궁금합니다. 이여경 편집자님의 제안이 있었다고요. 

편집자님과 사실 사적으로 아는 사이예요. 둘이 우연히 얘기를 나누다 스파크가 파바박 튀듯이 책이 진행됐어요. 편집자님은 그때 ‘기후위기 시대의 청소년 진로서’라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획을 구체화하진 못한 상태에서 인터뷰어를 찾고 있었고, 저는 마침 로스쿨 진로 고민을 하면서 새롭게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제가 공부했던 문화학이라는 학문이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계속 사람들을 만나 오는 일이기도 했고요. 그때 얘기를 나누면서 편집자님이 저를 보고는 ‘딱인데 왜 생각을 못 했지?’ 하시니까 저도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쭉 나오는 거죠. 서로 잘됐다 싶어 기획이 빠르게 진행됐어요. 이 책 속 8인의 인터뷰이는 한두 분을 제외하고 거의 처음 기획에서 떠오른 분들이에요.


8인의 인터뷰이 모두 전업 기후활동가는 아니지만 일로써 기후위기에 대응하길 택한 분들이죠.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인터뷰이들을 찾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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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삶의 기본이 되는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야겠다 생각했어요. 흔히 말하는 의식주. 그래서 옷 만드는 분, 집 짓는 분, 농사 짓는 분을 만나고 싶었고, 우리가 쓰는 에너지를 다루는 분, 시민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 법과 언론 계통에 있는 분, 그 외에 문화를 바꾸고 욕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은 분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공적 가치를 두고 딱딱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려면 인터뷰 이전에 이 인터뷰이들에게 제가 먼저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이 사람이 된 걸까’ 궁금한 분들을 찾았고, 또 여성 인터뷰이를 많이 만나려 했어요. 사회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덜 가시화되니까요. 수도권에 살지 않는 분들도 꼭 만나려 했어요. 그런 몇 가지 기준을 갖고 편집자님과도 한 분 한 분 괜찮을지 같이 검토를 했죠.


인터뷰어로서의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인간적 호감에 바탕한 인터뷰이를 만날 때 오히려 더 긴장되는 바가 있었을 텐데요.

맞아요. 매 인터뷰가 어려웠어요. 저마다 아쉬운 점도 있었고요. 재미있었던 인터뷰는 재미있었던 대로 후회됐고, 어떤 인터뷰는 충분히 라포를 쌓지 못해 이야기를 많이 못 끌어낸 것 같아 아쉬웠어요. 신나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냥 수다를 많이 떨었지 실제로 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놓쳤다고 생각한 인터뷰도 있었고요. 그걸 글로 적는 과정에서도 어떤 부분을 남기고, 지워야 할지 되게 고민했어요. 그럴 때 편집자님이랑 이야기하면서 직업인이 읽었을 땐 흥미로워도 일을 해 보지 않은 청소년이 읽었을 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은 빼기도 했어요. 인터뷰 단락 사이사이에 제가 인터뷰이들의 일에 관해 줄글로 부연 설명을 더한 부분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 집필 방식도 글을 쓰면서 내린 결정이에요. 좀더 적극적으로, 통역을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개입해 청소년들에게 인터뷰 가이드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들이 인터뷰어로서 어려운 점이었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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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요? 인터뷰집에는 담기지 못한 비하인드 장면도 좋아요.

자연농1)을 하는 남경숙, 이연진 부부 농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충남 홍성의 ‘풀풀농장’으로 갔을 때 그냥 그 여정 자체가 여행 같았거든요? 그곳 홍동마을의 양조장 ‘이히브루’에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편집자 주: 인터뷰 시점인 2023년에 남경숙, 이연진 부부는 13년간 이어온 자연농 농산물 꾸러미 판매 사업을 중단하고, 농산물로 유기농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 ‘이히브루’를 열었다). 양조장이 아담한데 안에 들어가면 아늑하고 건축적으로도 멋있어요. 맥주 만드는 기계 설비도 멋지고요. 이히브루는 판매한 맥주병을 수거해 재사용하는데요. 인터뷰 중 이연진 농부님이 수거해 온 맥주병의 라벨지를 계속 떼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그 장면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아내분은 부산스럽게 왜 그걸 떼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시기도 했지만. (웃음) 그리고 대구의 제로 웨이스트 숍 ‘더 커먼’의 강경민 대표님을 만나러 가서도 그 공간을 느끼면서 그곳의 음식도 먹고, 그분이 설명하시는 것들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오감을 활용해 인터뷰이의 일과 삶을 이해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두 공간 모두 여러 행사를 많이 해서 독자분들도 꼭 가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 공간에 존재해 보면 진짜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기자: 저 실제로 가 보려고 책 읽으면서 책 속의 인터뷰이분들 인스타그램 팔로우하고, 네이버 지도에 별 계속 찍어 뒀어요.) 저는 이히브루 맥주가 납품되는 식당들까지 찾아서 네이버 지도에서 별을 다 찍어 놨어요. 왜냐하면 그 맥주를 들인다는 것 자체에 메시지가 있거든요.


1) 자연의 지혜를 따르며 모든 생명과 공생하는 농사. 땅을 갈지 않고, 거름을 넣지 않고, 풀과 벌레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 농부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대로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인터뷰집을 내기 전과 비교해 스스로 달라진 점이있나요?

제가 해 온 일들을 긍정하게 됐어요. 저도 미래를 생각하면 비주류로서의 불안을 당연히 겪거든요? 그래서 자격증이나 학위처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무언가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 책 속의 인터뷰이들을 만나 보니, 나부터가 내가 하나하나 해 왔던 일들의 의미를 내가 더 잘 읽어 주고 알아줘야겠다 싶었어요. 뜬금없이 새로운 길로 가려고 하기보다 ‘내가 해 왔던 일들을 잘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앞으로의 길이 보이겠구나.’ 하고요. 기후위기 시대에 내 의식주, 내가 먹고 자고 지내는 삶 하나하나를 잘 돌볼 수 있는 역량을 더 키워야겠다 싶어서 텃밭 농사도 시작했어요. 저에겐 되게 큰 변화예요. (기자: 집에서요?) 집에서 자전거 타고 5분 정도 가면 있는 곳에서요. 실제로 여름에 거기서 나오는 농작물로 밥을 해 먹었어요. 그 순환의 과정을 경험한 것이 또 저를 다르게 만들었어요. (기자: 어떤 걸 키우셨나요?) 여름에 쌈 채소를 정말 넘치게 먹었고 애호박, 가지, 토마토, 바질에다 딜이라는 허브도 키웠어요. 오이 같은 건 농사가 잘 안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막상 이걸 해 봤을 때, 이게 별게 아니고 해 볼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데서 오는 해방감도 있었어요.


조재원 건축소장님의 인터뷰 답변 중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좋아하고 감동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있죠. 작가님께서도 ‘일’을 통해 어떤 것에 깊이 감동해 본 경험이 있으실까요?

저는 20대 후반에 녹색당에서 2년간의 임기로 당 대표를 맡아 활동했었는데요. 정말 쉽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전국을 다니면서 당원들을 만날 때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밀양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는 당원들을 볼 때나 곳곳에서 동물권이나 페미니즘, 농업의 가치를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정말 소수인데 그 소수가 다 연결돼 있고, 그 마음의 기저엔 결국엔 사랑이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이런 공동체를 다른 데서는 경험하기 힘들겠다 싶었어요. 개인 간 관계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에요. 갈등과 분열의 정치와는 다른 방식의 정치 문화를 만들려 했을 때 느낀 희노애락이 잊히지 않아요. 지금은 그때만큼의 에너지로 제가 거기에 투신하고 있진 않지만 분명히 이 질문에 떠오른 건 그때의 경험이었어요. 이건 이 사회가 너무 싫고, 우리 정치는 다 썩었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내가 살아갈 곳은 이곳, 내가 지키고 싶은 곳은 이곳, 떠날 수 없는 곳은 이곳’이라는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느껴지는 힘이에요.



기후위기 시대, ‘하지 않음’은 적극적 ‘해냄’ 


“‘하지 않는 것’도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다”(35쪽)2)는 말이 이번 인터뷰집을 통과하는 핵심 문장 같았어요. 작가님도 일을 하면서 부러 하지 않는 것이 있으실 듯해요.

이 부분이 저한테도 정말 중요한 문장이었어요. 저는 무작정 더 많이, 더 빨리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뭐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라 어떤 일에 숨을 참는 느낌으로 매달릴 때가 있거든요. 그런 마음을 내려놓는 게 제가 노력한 부분이에요. 뭔가 성취하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고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했을 때 보통은 스스로 자책하고 비난하게 되잖아요. 여기서 ‘하지 않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 하지 않음이 기후위기 대응과 맞닿을 땐 무가치하지 않다는. 개인 혼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것을 이해해 주는 시선도 필요해요. 우리가 하지 않음으로써 하고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봐야 해요. 무용함의 쓸모를 말할 때 시와 같은 문학이 언급되잖아요. ‘기본소득 주면 다 방구석에서 먹고 놀면 어떡해?’ 하는 분들과 대화할 때도 예술과 문학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시장에서 바로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일이 사회에 쓸모가 없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은데,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보는 게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 편집자 주: 책 속 인터뷰이인 조재원 건축소장의 “(건물을) 짓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도 건축가로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26쪽), 박정수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의

“저희 가게가 사람들한테 필요 없어지면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돌파하는 게 아니고 그냥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125쪽)라는 말이 언급된 맥락하에 인용한 문장이다.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요즘 드는 고민이 있으실까요?

요즘 드는 고민은 트럼프 당선에 대한···(웃음) SNS에서 봤는데, 어떤 분이 일제강점기 때 언제 해방될지 모르는 채로 계속 운동해 나간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예로 들면서 이런 시기를 버티는 방법은 결국 ‘나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잘 벼려야 한다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와 닿았어요. 지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행동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내 삶 속에서 내가 결정하는 거잖아요.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지. 책에서 기후테크 스타트업 창업자 김종규 대표님도 인터뷰 중에 말하셨듯, 기후위기 시대에는 정말 ‘몇 년 후 계획’이라는 것이 의미 없을 수 있거든요. 기후위기 대응 목표는 당연히 세워야겠지만 일단 하루하루를 내 신념과 양심에 맞게 보내면서 내 마음을 잘 벼려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기후위기 시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청소년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가 관건일 것 같은데요.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저 같은 경우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예요. 저는 인류가 그간 만들어 온 이야기가 문명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을 구성하는 게 글쓰기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글쓰기가 인류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행위일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요. 그래서 제 글을 누가 읽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의미를 공유하면서 열심히 써 봐야겠다 하고 있어요. 그런 글쓰기의 동료가 되신다면 응원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일원으로서요. 우리가 바통을 넘겨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후대에 전해 나가는 임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왕이면 즐겁게 해 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끝으로, 기후위기 시대 청소년들에게 추천해 주실 콘텐츠가 있다면요?

제가 최근에 읽으면서 너무 좋았던 책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에요. 이 책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예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작품인데, 이 책을 한강 작가님 덕에 읽게 되었어요. 한강 작가가 몇 년 전 스웨덴에서 『소년이 온다』로 강연을 하면서 본인이 어렸을 때 읽었던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가 자기 안에서 어떻게 맞닿아 있었는지를 강연한 강연록이 온라인에 있었어요. 그걸 이번에 읽게 됐는데, 강연록이 되게 좋아요. 감동적인 강연이어서 현지에서도 엄청나게 화제가 됐었대요. 이번에 나온 개정판에도 한강 작가의 그 강연록이 책 뒤에 실려 있어요. 최근에 스웨덴에서 먼저 그 강연록을 책에 함께 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대요. 같이 실린 삽화도 너무 좋아요. 옳은 길을 향해서, 환한 빛을 향해서 가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이니 모든 청소년에게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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