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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이지현 영주가흥초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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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5-03 10:57 조회 7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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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를

친애하는 도서관

이지현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프로페셔널. 이지현 사서교사와 이야기하며 떠오른 첫 단어.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그를 완벽히 표현하기란 어렵다. 전학년 독서 수업은 물론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로 활약한 경력이 화려해서만은 아니다. 다양한 매거진과 온라인 서점의 북큐레이터로 바쁜 날을 보내는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단연 다양성. 수업으로 동료 교사와의 협력을 충족하는 데서 나아가 공평하게 배울 권리가 어린이에게 있음을 최우선으로 둔다. 프로페셔널이란 단순히 박학다식하며 효율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만이 아님을 그의 교육철학에서 엿볼 수 있다. 은근히 따뜻하면서도 치열함이 느껴져 묘하게 궁금해지는 그의 도서관에는 유독 어린이가 직접 소개하는 책 전시가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순도 백 퍼센트 ‘사서교사’라고 정의하는 사람. 어린 이용자들이 누릴 권리를 다방면의 수업 연구로 헤아리는 사람. 소백산이 자리한 영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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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현’이라는 부캐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본캐는 사서교사, 부캐는 책을 쓰거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신간을 알리는 퇴근 후 자아를 뜻하는 걸까요? 

제 아이덴티티는 사서교사예요. (웃음) 학창시절,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 흔했던 만큼 제가 공부하던 교실에도 이지현, 이지영, 이지원 등 비슷한 이름이 많았어요. 그래선지 다른 사람과 달리 스스로 특색이 없다는 생각을 줄곧 하며 자랐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인생의 전환점마다 제 선택을 도와준 건 늘 책이었고, 책을 매개로 삼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찾다가 사서교사를 알게 됐어요. 2019년, 경북 영양으로 첫 발령을 받았는데 국내에서도 가장 오지였어요. 학교도서관 장서 수와 인구수가 같았거든요. 우리 지역 인구수가 1만 4천 명이고, 학교 장서 수도 1만 4천 권이라고 기억하기 쉽도록 가르칠 수 있어서 이용자교육을 할 땐 좋았어요. 당시 영양엔 초등 1명, 중등 1명 사서교사를 배치하고 있었는데, 근무하는 사서교사가 지역의 대표성을 띨 수밖에 없었고 근무 1년 차에 연수에 뛰어들었어요. 신규라 모르는 게 많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공부해야 했죠. 다행히 공무직 사서로 일하며 교육도서관에 강의를 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큰 두려움 없이 교사와 학부모 대상 연수를 이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근무지가 영양이라고 하셨는데, 2019년이면 팬데믹 시기네요. 적응도 채 하기 전 방역으로 인한 교육환경이 달라져서 당혹스러우셨을 텐데요. 

도시에 확진자가 한 명 있는 것과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 확진자가 한 명 있는 것은 천지 차이였어요. 지역에서 이동을 아예 제한해 버리더라고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택에 몸이 계속 묶여 있었는데, 일 년간 고립된 생활을 했어요. 당시 제가 몸 담고 있는 그림책사랑교사모임(이하 ‘그사모’)에서 ZOOM 연수 등 온라인 연수가 활성화되어 많이 참여했어요. 저는 뭔가를 배우거나 도움을 받으면 보답하고 싶은 심리가 강해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그사모 모임의 영향이 컸어요. 온라인에서 그림책 모임을 활발하게 하면서 전국구 모임으로 넓혀 갔고, 체계적인 연수도 잇달아 열곤 했어요. 공부한 것을 나누기 위해 온라인 연수에 강의자로 나섰는데, 제 이름이 너무 평범하더라고요. 그래서 본래 이름 ‘이지현’을 영어로 풀어 ‘ez현’으로 지었어요. 그림책 언어인 파라텍스트(편집자주: 글 텍스트와 그림 텍스트 외 제3의 텍스트)처럼, 문자 자체도 하나의 그림 언어잖아요.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알파벳을 활용해 온라인 강의에서 ‘ez현’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강연자로 일하든 작가로 일하든 사서교사라는 정체성 하나로 활동 영역을 뻗어나간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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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령 당시 사서교사를 가까이 한 적 없는 세대가 교내에 많았을 텐데, 갈등은 없었나요? 

적응을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서교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에 충족하려면 내가 뭘 펼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영양에 근무할 당시 교장선생님이 까다롭기로 유명하셨어요. 그분이 정년퇴직하실 때 “나는 사서교사 채용을 안 하려고 했다. 차라리 보건 교사를 달라고 하려고 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거기에 이렇게 덧붙이셨어요. “독서지도야 담임교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서교사가 와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과 만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실제로 이곳 영양까지 오실 작가를 섭외하여 작가와의 만남을 여럿 실천했어요. 독서 프로그램에 쓸 책이 모자라면 지역도서관과 MOU를 맺어서 도서 대출·반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연계했고요. 당시 독서 수업뿐 아니라 교사와 독서 프로젝트도 함께 기획·운영했어요.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도 했고요. 수업한 지 2년째 되던 해, 국어 수업 일부를 맡았고 3학년을 대상으로 학기 내내 독서 수업을 이어갔어요. 학생 평가까지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셨는데, 교장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그래, 나 열심히 했나 보다.’ 하고 뿌듯했죠.

영주로 학교를 옮기셨는데, 소규모 학교에서 인구가 밀집한 학교로 옮기셔서 체감이 달랐을 것 같아요. 
영주가흥초는 43학급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루 평균 대출·반납 건수가 약 600건인 날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많아요. 아침에 도서관에 가면 앞에서 기다리는 어린이들 줄이 길어서 좀비떼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웃음) 인구가 과밀한 신도시에 위치한 학교이다 보니, 처음에 일할 땐 ‘묻혀서 조용히 지내야겠구나.’ 싶었죠.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읽은 그림책 『곰씨의 의자』(노인경)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책에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학교도서관이 무엇이 이뤄지는 공간인지 왜 내가 표현하지 않고 있을까 반성이 들더라고요. 행동해야겠다 싶어서 교장선생님께 찾아가 “사서교사 1명만으로 대출·반납을 포함해 수업까지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상주할 수 있는 인원을 충원해 달라.” 요청했어요. 관리자들은 그간의 사정을 몰랐다며 고심 끝에 방역 요원 한 명을 전담 배치해 줬어요. 대출·반납 일에서 해방되니 수업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어요.


소설 『100년 후 학교』를 비롯해 『선생님과 떠나는 하루 답사』, 『그림책 읽고 뭐하지?』 등 공저자로 참여한 책까지 포함하면 12권의 책을 쓰셨어요. 다작을 한 계기는요? 

여러 선생님과 소모임을 하면서 공부한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자연스레 여러 책을 써 왔던 것 같아요. 그사모 모임의 모토는 ‘나, 너, 우리 함께 성장’이거든요. 제가 만든 모토이기도 한데, 배운 것을 독서 현장에서 나누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에게 알려지면서 출간 제안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실은 영양에 발령받고 난 뒤 진하게 느낀 점 한 가지는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사서교사에게 교과서가 없고 법정 수업 시수가 없다고 해서 수업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다른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주어진 교육과정이 없으면 교사가 직접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며 실현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교과서가 없기에 오히려 수업 매체로 활용할 수 있는 책들로 무궁무진하게 적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최근엔 감정을 주제로 한 수업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감정에 대해 가치 정립을 하고, 관련 책과 주제활동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책을 쓰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더라고요. 저희 학교의 경우, 오전 중에는 항상 도서관에서 수업을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서 도서관을 돌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교사나 관리자가 없어요. 학교도서관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과정 안에 책 쓰기가 하나로 자리한 듯싶어요. 수업을 실천하고 그 경험으로 책을 쓰면서 교육의 선순환을 이뤄 가고자 해요. 


정명섭 작가와 함께 쓰신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에 ‘선생님을 위한 책 쓰기 활동 지도법 A-Z까지’ 부록을 써 주셨죠. 학생 저자를 대상으로 출판 기획부터 기념회 하는 법까지 상세히 짚어 주셨어요.  

전교생을 대상으로 독서교육을 평준화하는 목표를 가진 한편, 개별교육에 대한 갈증을 종종 느끼곤 해요. 이를 동아리를 지도하면서 풀고 있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5,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처음에는 독서토론 위주였어요. 작년부터는 글쓰기를 주제로 꾸준히 모이고 있는데, 일전에 책 쓰기 동아리를 꾸리면서 전문 작가님을 모신 적 있어요. 정명섭 작가님이셨는데, 학교에 직접 오셔서 글을 쓸 때 인물을 어떻게 설정하고 전체 글 구조를 어떻게 짜면 좋을지 세세하게 강의를 해주셨어요. 이후 학생들이 각자 완성한 글을 엮어서 책으로 냈는데, 작가님께서도 한 학교에 여덟 차례나 글쓰기 지도를 하러 정기적으로 간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후 출판사에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책 쓰기를 이끈 경험을 출간하고 싶다고 기척을 주었고 저도 함께 책을 쓰게 되었어요. 책 쓰기 동아리를 밀접하게 운영 하면서 마주한 변화도 짚어 볼 만한데요. 학급문집을 만들 때 연필이나 노트를 글쓰기 도구로 삼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 학생들은 온라인 도구를 익숙하게 여겨요. 각자 받은 태블릿 PC를 통해 글을 쓰면 교사는 공유 플랫폼을 통해서 다른 친구들 글도 볼 수 있게끔 플랫폼에 모아 놓아요. 미리캔버스나 캔바를 통해 자기만의 책표지를 꾸미게 하면 놀라운 미적 능력을 보여 주는 어린이도 꽤 많아요.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하루 답사 1』에 「경북 영주: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하루 답사」 꼭지를 쓰셨는데, 고향이 아닌 지역을 속속들이 아는 계기가 되셨겠네요.

영주 구석구석을 다녔어요. 이제 영주는 단순히 제가 일하기 위해 발령받은 지역이 아닌 매력이 넘치는 고장으로 보여요. (웃음) 영주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곳이에요. 가흥초는 신도심에 있어서 유적이 많진 않지만, 구도심 주변으로 나서면 걸어 다니면서 다양한 유적을 생생히 살필 수 있어요. 영주 서천을 걷다 보면 정도전의 생가이기도 한 삼판서고택과 제민루를 만날 수 있어요. 영주여고에는 영주 향교(경북 영주시 명륜길 76)가 학교 부속 건물처럼 고풍스레 자리해 있으니 들러 보길 권해요. 영주는 ‘철도의 고장’이에요. 신라 시대에도 교통의 요지였는데, 근대에 이르러 철도를 짓기 위해 대형 공사를 하면서 인근에 관사골(영주역에서 2킬로미터 거리)이 생겨났어요. 역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살던 집이 모여 이뤄진 마을인데, 지금도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어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길을 정비하고 벽화를 그려서 레트로 여행에 제격이죠. 마침 올해 학생들과의 책 쓰기 주제를 ‘지역에 숨은 유물·유적을 찾아서’로 정했어요. 답사를 다녀온 뒤 창작을 할 예정인데, 가령 천 개 이상의 고분이 분포한 순흥면에 위치한 순흥 읍내리 벽화 고분에 그려진 남녀의 정체가 무엇일지 상상하여 소설을 써 볼 수 있을 테고요.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추리하는 장르물을 쓰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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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사서교사교과연구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 영주는 초중고 사서교사 인원이 6명이라고요. 주변 지역 사서교사, 교육지원청과 어떤 협력을 맺고 있나요?

경북에선 사서교사가 지역별로 분포돼 있어요. 지역 규모나 학교 수에 따라서 적정 인원이 배치되다 보니 서로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셈이에요. 여건상 교류하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게 해준 통로가 경북사서교사교과연구회예요. 2002년에 경북 지역에 사서교사가 처음 배치됐는데, 인원이 워낙 적다 보니 소통할 수 있는 단톡방을 만들고 온라인 카페도 곧바로 개설했다고 해요. 이후에 신규 선생님들이 종종 배치되면서 카페 내 누적된 자료가 많아졌어요(카페명은 ‘경북 사서교사의 모임’, 2023 6월호 참고). 일 년에 두 차례씩 연수로 만나는데, 수업 연구뿐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 넓어지는 기회가 되곤 해요. 올해 회장을 맡으라고 했을 때 학교 운영이 벅찬 건 물론 개인적인 일도 많아서 고민스러웠지만 친밀감을 더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수락했어요. 교과연구회가 경북에 있다는 게 제게 큰 자부심이거든요. 워낙 모임이 탄탄하고 도움을 유연하게 주고받는 편이라 사서교사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협의체를 더욱 잘 끌어가고 싶어요. 올해 교과연구회는 ‘함께 성장’을 테마로 1박 2일 연수 등을 통해 결속력을 더욱 다질 예정이에요. 영주교육지원청을 통해서는 미배치된 학교에 사서교사들이 지원 업무를 나가고 있어요. 학교도서관에 상주하는 인력이 없는 곳에는 대개 교과교사가 도서관 업무를 도맡는데, 도서 구입 및 폐기 방법 등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요. 경북지역 사서교사들이 DLS 연수를 통해 정기적으로 길잡이를 하는 편이에요.


정부의 지방 소멸 대응 수립 연구용역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영주는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어요. 2020년 기준 경북 지역 인구가 2만 6천여 명 감소했는데, 도서관 지원을 다니시며 피부로 느끼시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인구 밀집 지역 학교에서 근무하기에 현재 일터에서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느끼고 있진 않아요. 영주, 청송, 의성, 영양, 안동이 경북 북부지역에 속하는데 최근 안동의 풍천풍서초 학령인구가 대폭 줄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학생 수가 천 명 정도였는데, 800명가량으로 줄었어요. 영주가흥초를 벗어나서 당장 구도심만 가더라도 인구 소멸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인근 지역에 학교도서관 지원을 나가곤 하는데, 구도심으로 갈수록 학생 수가 확 줄어든 게 보이거든요. 이곳 학교는 유휴 교실(편집자주: 학생 수가 감소하여 학교에서 쓰지 않는 교실을 가리키는 말)이 없는데, 구도심에 위치한 학교는 유휴 교실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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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했던 영양지역 학교의 학급 수도 6개였어요. 대개 12학급 이상이 있는 학교에 사서교사가 배치되는 편인데, 다소 예외적인 배치였죠. 경북에서 자란 아이들 대다수가 사서든 사서교사든 학교도서관에서의 혜택을 누린 경험이 많지 않아요. ‘이 책은 봤겠지, 이 프로그램 정도는 참여해 봤겠지.’ 싶다가도 교육·문화 지원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해서 놀라곤 해요. 그래서 소규모 학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을 때 ‘아이들 삶에 평생 기억될 학교도서관에서 이 혜택만큼은 꼭 줘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만나게 하고 싶은 작가,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프로그램들을 수소문하며 독서교육을 꾸려왔던 것 같아요. 일각에선 먼 지역으로 어린이·청소년 작가가 잘 안 갈 거라고 여는데, 대규모보단 소수의 학생들을 만나면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들어볼 수 있어 오히려 기회라고 해요. 새로운 이야기를 짓는 데 소스가 되어 주기에 소규모 지역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걸 선호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2023 10월호 금서 특집을 통해 “성을 감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품위 있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숙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고 지적하신 바 있죠. 각 지역 교육청에서 성교육 도서 현황을 제출하라는 등 압박이 여전한데, 사서는 어떤 기준을 근거로 제안할 수 있을까요?

2020년, 여가부가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으로 선정한 목록 가운데 7권의 책을 하루 만에 회수하는 사태가 일어난 바 있죠. 저희 사서교사 커뮤니티에서도 몇몇 분이 이야기했지만, 모르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요. ‘이런 게 있었어?’ 하는 반응도 여럿이었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먼저라고 봐요. 목소리가 퍼져 나가면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감대가 넓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성교육을 할 때 생물학적 성만 학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각자 다르며 그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를 익히는 게 우선돼야 해요. ‘존중’이라는 가치를 배제하고 금서 논쟁에 매달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요. 
실은 <학교도서관저널> 편집부에게 원고 제안을 받았을 때 고심했어요. 학교도서관에서 금서 주간을 운영했더니 아침부터 민원이 빗발쳤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거든요. 그럼에도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근본 가치를 되새기고 싶었어요. 『산딸기 크림 봉봉』, 『엄마가 알을 낳았대』, 『안녕? 나의 핑크 블루』 등 양질의 그림책을 원고로 소개했는데, 특정한 색으로 성역할을 구분 짓고 페미니즘을 배척하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양성평등 주간에 보건선생님과 협력하여 성교육 주제 북큐레이션도 기획했고요. 정작 아이들은 금서를 어른들이 우려한 대로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그림책 『다르게 태어난』에는 늑대로 태어난 것이 싫은 주인공이 등장해요. 책 끄트머리, 주인공은 자신이 잘못 태어났다면서 양으로 변하는데,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죠. 문제는 단순히 그렇게만 해석하는 건 어른들의 편협한 사고예요. 이 책을 읽어 줬을 때 어린이들은 ‘늑대의 취향은 그게 아닌가 봐요.’ ‘늑대는 패셔니스타인가요?’ 묻더라고요. 되레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타인을 존중해요.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데, 왜 어른들의 잣대로 ‘저건 된다 안 된다’ 선을 그을까요? 타인의 말에 흔들리기보다 교사가 읽어 보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세요. 반응이 있을 땐 성평등으로 자연스레 토론거리를 끌어내고 기질을 발휘해서 교육연극 등으로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타인을 공감하는 활동을 해도 좋아요. 용기는 책 한 권으로부터 시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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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 『100년 후 학교』를 통해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인간적인 감성과 상호작용, 그리고 가르치는 기술 밖에 존재하는 관심과 애정”을 강조하셨어요. 사서교사로서 실천하고 싶은 애정의 모양이 있다면요?

흔히들 교육에서 효율성을 따지지 말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따지죠.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을 시험이나 입시 등 일률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효율을 따지는 실정인데, 학교도서관만큼은 거기서 한 발짝 물러서도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도서관은 책을 보고, 수업을 하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등 여러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장이에요.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존중받는 것이 마땅해요. 종종 학급에서 ‘튕겨나와’ 도서관으로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보건교사와 상담교사, 사서교사가 그 아이를 다 같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때 반드시 보육의 의미로만 그 아이를 돌보지 않고, 당사자에게 정서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작년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한 어린이가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만 보는 건 제 역할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 아이에게 북큐레이터라는 역할을 맡겼어요. 누구나 다른 부분에선 부족하지만 한 가지는 차고 넘치는 게 있잖아요. 다른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게 교육의 역할이라고 저는 믿어요. 곤충과 자연 주제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생태를 주제로 한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이에 응한 아이가 차츰 자신을 알아봐 주는 학급 친구와 주변 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어요. 앞치마를 입고 생태 북큐레터임을 알리는 표식도 달았고요. 소외 없이 모든 어린이가 자기주도성을 갖고 자유를 누리는 도서관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곧 제가 실천하고 싶은 애정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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