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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 『김단오 씨, 날다』 임복순 동시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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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4-02 10:31 조회 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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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아이들 모습
시로 적어 내리기까지


2011년 등단 때부터 초등 교사로 일하고 계셨지요. 어린이들과 함께 동시를 읽으며 동시가 자연스레 삶에 스몄으려나요. 동시인으로서 어떻게 첫 펜을 쥐게 되셨는지 듣고 싶어요.  

사실 동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제가) 교사였지만 동시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동화책이나 소설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동시인으로서 첫 펜을 들게 된 이유는··· 제가 결혼하고 딸이 둘인데, 아이들에게도 시가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데, 도로 표지판에 ‘곡선 도로를 지나서 직진하세요’를 뜻하는 화살표 표지판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보고 아이들이 “엄마 저 화살표는 하늘로 가라는 표시인가요?” 하고 묻는 거예요. 엄마가 되고 나서 이렇게 순간순간 어른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너무나 창의적이고 엉뚱한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저희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작은아이가 네 살 정도 되었을 때쯤인데요. 집 뒤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아이가 읽는 책으로 어린이집 선생님들하고 말을 많이 나누다 보니 거기 계신 분이 시를 쓰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이 시와 동시를 같이 쓰고 있는 분이었는데 저보고 “혹시 동시를 써 보지 않겠냐.” 제안을 주셨어요. 동화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있었는데, 제안을 받으니 그날 이후로 동시라는 세계가 굉장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몇 년의 습작 기간을 거쳐 2011년에 창비 어린이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동시를 쓰게 되었어요.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곳”에서 자라셨다고요. 고향이 경북 울진이신 걸로 들었는데요. 울진에서 나고 자란 경험이 동시인 임복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해요. 

부모님이 대대로 울진 토박이분들이세요.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울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울진에서 다녔어요. 울진이 동해안이잖아요. 바다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이건 가장 어릴 때 기억 중 하나인데, 아버지께서 낚시를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따라 바다에 나갔다가 해가 져서 저 혼자 모래사장에서 잠이 들면, 아버지가 낚시 도구를 챙기고 저를 업은 뒤 흥얼흥얼 노래를 하시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의 따뜻했던 등, 들려 오던 파도 소리,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이런 것들이 아마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날의 바다인 것 같아요. 또 살던 집 뒤에 뒷산이 있었는데요. 동네 아이들하고 올라가서 진달래도 꺾어 보고, 토끼도 쫓아가 보고, 갈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그러다 또 배고프면 친구들하고 우르르 몰려가 우리 집이나 친구 집에서 밥 먹고 놀고 그랬어요. 그런 기억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믿음, 편안함으로 이어져 시를 쓰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나만 보았지」의 종혁이, 「아침에 돋는 날개」의 태성이 외 다양한 교실 속 아이들이 시인님 시에 등장해요. 교실 속에서 아이들의 어떤 모습이 시인님께 시적인 순간들로 찾아오나요? 

오랜 세월 하룻낮 동안의 대부분을 아이들하고 지냈는데요.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일상에서 뭔가 탁 포착되는, 시적인 순간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걸 시인들 말로는 그분이 오신다고. (웃음) 보통 집에 가서 하루를 떠올리거든요. 자기 전에 막 몰려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유난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는 거예요. 「나만 보았지」(『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수록)의 종혁이가 그랬어요. 시험 시간이었고, 다들 조용히 연필 소리만 내면서 수학 문제를 푸는데 종혁이 혼자 수학이 싫어서 기린 필통을 잡고 공중에 돌리고, 필통에다 맴매를 했다가, 뽀뽀도 했다가, 필통 배도 갈라 보았다가. (웃음) 저 혼자 그 장면을 보는데 종혁이가 너무 귀여웠어요. 그게 잊히지 않아서 쓴 시가 「나만 보았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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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모님이 일찍 출근하셔서 빨리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 중에서 가끔 「아침에 돋는 날개」(『김단오 씨, 날다』 수록)의 태성이 같은 모습이 보여요. 일찍 학교에 온 아이가 가방을 벗어 놓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은 자기 책을 안 보고 먼저 온 아이가 무슨 책을 읽나 굉장히 궁금해해요. 그리고 그 아이가 재미있는 만화책이라도 보는 날에는 등 뒤에 와서 같이 보죠. 태성이가 앉아 있으면 한 녀석이 뒤에 와서 오른쪽 어깨 너머로 보고, 그다음 아이가 왼쪽으로 서서 보고. 그날 마침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사악 드는데, 교실은 따뜻하고 커튼까지 막 펄럭펄럭. 그런데 이 태성이라는 아이가 눕혀 있던 책을 천천히 세우는 거예요. 뒤의 아이들 보라고. 이 장면이 그림처럼 잊히지 않아서 결국 시로 쓰게 된 거였어요. 사실 어느 학년을 맡든 매년 보는 장면이기도 하거든요.
아이들끼리 막 대화하는데 아이들 언어 표현이 지금까지 제가 만나보지 못한 시적인 표현으로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얼른 주워다 쓰는 거죠. (웃음) 교실 안에서 아이들 하는 행동이 순수하고 예쁠 때, 아이들이 아이들이기에 하는 귀여운 행동들이 제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때 그것들이 제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다 천천히 동시로 살아나는 것 같아요.



동시 쓰기,

요령 없이 일상의 순간을 길어 내는 일


최근 두 번째 동시집 『김단오 씨, 날다』를 7년 만에 출간하셨지요. 이번 시집에서는 ‘교사’ 임복순이 아닌, ‘사람’ 임복순의 시가 좀더 보이는 것 같아요. 프라이팬에 깨를 볶고, 등산 중 통나무 의자에 앉아 쉬고, 생선 가게와 꽃집에 들르는 ‘일상의 시편’들이 넉넉한데요. 

사실 제 시가 거창하거나 아주 독특하거나 어떤 주제가 선명하다기보다는 그냥 전부 제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에요.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 가족들, 학생들, 동료 직장인들, 우리 동네 사람들 이야기죠. 누군가와 같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얻어 오는 시가 되게 많아요. 그런 일상의 순간들이 시로 다가오는 걸 기다리며 동시를 쓰다 보니 시가 모이는 기간이 조금 길어진 것도 있어요. 비단 교실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저희 할머니라든지, 우리 아이들이 보는 할머니라든지, 제가 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라든지… 모든 사람이 겪을 법한 그런 평범한 일상 안에서도 저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순간들이 시로 많이 모이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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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을 해 주신 잡지사들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한 달에 몇 편씩 여러 군데서 7년간 청탁을 해 주셨는데요. 그때마다 건강한 숙제처럼 시를 집중해서 쓰면서, 그렇게 시가 많이 모였어요. 물론 제 삶에 들어온 사람들이 시적인 순간을 가져다줘 자발적으로 쓴 시도 많지만요. 이 자리를 빌려 원고 청탁을 해 주신 모든 출판인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순한 사람」에서 스스로 ‘순한 사람’임을 인정하셨지만,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들” 앞에서는 “순한 사람이고 싶지 않”고 “순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고 하셨어요. 순한 사람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벼려야 할 때가 있다고 들려요.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순하고 선한 일들만 만날 수 있을까요. 뜻하지 않게 등장하는 사건이나 사람들 앞에서 싸워야 할 때도 있지요. 이런 일들은 비단 개인적인 일로만 그치지 않아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서이초 교사의 순직 등만 해도 사람들이 너무나 슬퍼했고, 분노했어요. 이런 일들 앞에서는 누구라도 순함을 버리고 마음을 단단히 벼려야겠지요. 공정과 상식이 결여된 사람들이 벌이는 일련의 일들. 정의가 실종된 일부 사회에서는 정말이지 마음을 단단히 벼려야 해요. 제가 늘 만나는 대상이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약자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를 보면 돕고 싶고, 좋은 사람 앞에서는 베풀고 싶어지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보통의 순하고 선한 마음일 텐데요. 순하고 선한 사람들이 잘못된 일들 앞에서 단단하고 단호해질 때 저는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런 멋진 어른들이 많아져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좀더 즐거워지면 좋겠어요. 이 세상이 희망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좋겠는 마음이에요. 


표제작 「김단오 씨, 날다」를 읽고서, 시인은 세상에 가려진 것을 잘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자가 배드민턴 셔틀콕 안쪽에 가려져 있던 이름, “셔틀콕 생산자 김단오”씨를 발견해 시 속에서 호명하고 있는 것처럼요. 세상에 가려진 무언가를 잘 찾기 위해 동시인으로서 특별히 노력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동시를 쓰면서부터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요. 어느 한 장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나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어떻게 이걸 시로 써 볼까.’ 해요.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다못해 선생님들과 회식할 때도, 친구들과 모임에서 밥을 먹을 때도 친구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는 건 계속 그 자리에서 혼자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친구가 “나 오늘 벼룩시장에서 스카프를 아주 싸게 샀는데 너무 예뻐.” 이렇게 말하면 ‘명품보다 더 예쁜 스카프인데 벼룩시장에서 얼마를 주고 샀다네? 이걸 시로 어떻게 표현해 보지?’ 하고 생각하게 돼요. 특별히 노력한다기보다는 동시를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예전에는 그냥 듣고 “아, 예뻐.” “아, 너무 재미있네.” 하고 잊어 버렸을 순간이나 이야기들을 이제는 차곡차곡 가슴에도 저장하고 머릿속에도 기억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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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수업을 할 때였어요. 제 발밑에 떨어진 셔틀콕을 집어 들었는데 안에 생산자 이름이 있는 거예요. 보통은 회사 로고나 설명글 같은 게 있는데 한글로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는 걸 보고 이게 시구나, 하면서 그 장면이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어요. 야채 박스에서만 보던 걸 셔틀콕에서는 처음 봤거든요. 그러면서 이 하나의 셔틀콕을 만들기 위해 김단오 씨가 날개의 무게며 셔틀콕 날아가는 속도며 얼마나 연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분은 지금 ‘이름을 날리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다음 체육관을 한번 둘러봤는데, 햇살 아래 서른 명의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거든요. 아이들 위로 날아다니는 수많은 셔틀콕이 너무 눈부시게 보이는 거예요. 하얀 꽃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요. 그 순간이 제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찍혀, 「김단오 씨, 날다」로 탄생하게 되었어요.



자연이 아름다워도

사람에 더 눈길이 가는 사람


여전히 ‘동시는 어린이들만 향유하는 장르’라는 편견이 있죠. 성인들에게 동시의 매력을 마음껏 자랑해 주신다면요? 

동시를 읽으면 누구나 내 안에 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동심을 느낄 수가 있어요. 감춰져 있던 날개 같은 게 확 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최근에는 동시의 개념도 바뀌면서 동시와 일반 시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어요. 시 중에서도 동시처럼 쉬운 언어이면서도 감동이 있는 좋은 시가 있잖아요. 똑같아요. 동시가 좀더 읽기 쉬운 언어로 되어 있을 뿐, 동시가 주는 삶의 감동은 여타 시와 같아요. 동시에서도 삶이 만져지거든요. 삶의 깊이, 삶의 시간, 삶의 이야기가 있어요.

최근에 칠순 되신 친척분께 제 동시집을 드렸어요. 그분은 평생 동시를 읽어 보지 않은 분이에요. 그분이 저를 보고 시 잘 읽었다며 이렇게 말하시더라고요. “자네 시를 봤더니 아이들이 좋아할 시도 많고,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좋아할 만한 시가 많더라. 그런데 부모가 읽어도 좋은 시가 많더라. 또, 노년이 읽어도 울컥하는 시도 있더라. 어느 세대가 읽든 다 좋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게 너무 기뻤어요. 이 말이 바로 동시의 얼굴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도 요즘 동시에 관심 갖는 어른이 많아지는 걸 느껴요. 본인이 먼저 동시집을 읽고 너무 좋아서 자녀에게 소개해 주는 분도 많고요.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님들께 편지를 쓰는데요. 편지 맨 마지막에는 늘 다양한 동시를 네 편 정도 실어요. ‘자녀와 이 시를 읽어 보고 재미있게 대화를 나눠 보시고, 시를 읽으면서 조금 더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이면서요. 그러면 학부모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세요. 학기 끝날 때 “선생님이 보내 주신 동시 읽는 행복이 너무 컸다.”, “동시를 전혀 모르고 자랐는데 일 년간 보내 주신 동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하는 문자가 와요. 한 명의 선생님이 동시 한 편을 읽어 주면 그 한 편이 몇 명의 가족에게 전파되고, 그렇게 동시가 동심처럼 퍼져 나가는 걸 보고 있어요. 저는 행복한 동시 전도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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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머리말에서는 “나이도 얼굴도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삶에 들어와 시가 되어 주었다고 하셨고, 『김단오 씨, 날다』에서는 책에 실린 시들을 “저에게 말을 건네 오거나 제가 말을 건넨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밝히셨지요. 시인님께 ‘사람’이란 어떤 시적 풍경으로 다가오나요? 

자라면서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 준 것이 뭘까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며 키우지 않았으면, 친구들과 내가 만나 함께 여행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지 않았으면,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사랑하고,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사랑하고 예뻐하며 아이들과 서로 삶을 배우는 시간이 없었으면 내가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또 어른으로서 성숙한 동시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어요. 실제로 만나는 주위 사람만이 아니더라도 TV에서 만나는 학자들의 철학적인 말에 감동할 때나, 수필집과 역사책 등 사람이 쓴 수많은 종류의 책을 읽고서 그 내용이 마음에 다가왔을 때, 그들이 해 준 말과 써 준 좋은 글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자랐지만 아직도 저는 자연보다 사람에게 더 시선이 가요. 사람들의 표정, 언어, 행동이 제게 더 다가와요. 생일날 꽃 한 다발 들고 오는 가족들이라든가, 부족한 선생님도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해 주는 꼬맹이들이 있어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이 저의 기쁨이자, 위로이자, 힘이고 즐거움이에요. 그 모든 게 저의 시적 풍경이랍니다. 


벌써 10년 넘게 동시인으로 살아 오고 계시지요. 삶을 마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동시를 접하기 전과 후로 분명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사소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무언가에 굉장히 골똘해지는 버릇도 들었고요. 사물이나 사람 간의 관계를 조금 더 소중하게, 아끼게 된 게 가장 커요. 또 제가 다른 시를 썼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동시를 쓰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진 것 같아요. 동심으로 살 때가 더 많아졌어요. 삶이 좀더 풍성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 풍성함에는 시를 쓰는 행복도 있지만, 시를 쓰는 고통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그 고뇌와 고통의 시간이 한 편의 시로 탄생했을 때 다시 행복해져요. 또 달라진 점은 몰랐던 세계였던 동시인들을 만나게 됐다는 점, 그분들과 시로 이야기 나누며 치유의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동시인들이 친구가 되면 그 또한 굉장히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주 작은 풀꽃이든, 커다란 자연이든, 아주 작은 아이든, 아주 연세 드신 분들이든 상관없이 존재들을 아끼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시선이 더 넓고 깊어졌다는 생각이요. 다른 한편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더 맑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웃음) 행복하다는 생각을 조금 더 자주 하는 어른이 되었답니다.


시인님의 동시를 읽다 보면 화자가 세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진하게 느껴져요. 앞으로 그 애정이 향할 곳은 어디일까요? 

아마 크게 변함은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사람이죠. 다만 사람을 바라보는 그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지 않을까, 그 애정이 조금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해요.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까 노년의 삶에 이제 시선이 좀 가요. 길에 다니는 어르신들, 다리 한쪽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치료나 운동 겸해서 산을 오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뒷모습 같은 걸 보면 굉장히 가슴이 찡해져요. 노인들을 더 관심 갖고 보게 될 것 같아요. 또 여행을 워낙 좋아하니까 여행하면서 자연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그럼에도 아마 제가 예상하기에, 애정의 시선이 늘 향하고 있는 건 사람일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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