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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소설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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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3-05 09:38 조회 9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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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쓰는 낮밤을 지켜 온 마음


교사 생활을 하시다가 소설로 마흔에 등단하셨어요. 낮에는 칠판 앞을, 밤에는 노트북 앞에서 버티셨을 시간이 깊었을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았어요. (웃음) 지금은 6학년 담임과 생활인성부장을 맡고 있어요. 생활인성부장은 학교폭력 담당 교사를 뜻하는데,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폭력을) 예방하는 일을 하거든요. 분쟁이나 다툼이 벌어졌을 때 학교폭력 책임 교사가 가운데서 역할을 잘하면 폭력으로 얽힌 사람들이 덜 힘들게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있어요.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6년째 맡고 있어요. 수업도 좋아하는데요. 가르치는 일은 아이들과 같이 사는 거예요.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전과목을 가르치기에 아이들과 온종일 지내요. 서로를 가족처럼 알아 가면서 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는 게 좋습니다. 학교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한 뒤 딸아이랑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오향장육도 하고 갈비찜도 하고요. 제가 손이 좀 빨라서 후다닥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밖에 나와서부턴 글을 써요. 집에 있으면 딸아이가 저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에(?) 소설 작업은 집안일을 마무리 짓고 밖에서 하는 편입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글을 쓰고 귀가하는 게 생활이에요. 공휴일이나 휴일에는 열두 시간씩 쓸 때도 있고요. 많이 쓰고 많이 버리는 게 작업을 오래 유지해 온 비결(?)이에요.


교직 생활을 하던 중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순간이 왔을 텐데, 언제였나요? 

대학 때 단편소설을 몇 편 써 봤고요. 그 뒤로는 교사의 삶에 충실했어요. 시민단체에서 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진보적인 교육 운동을 했는데, 그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딸아이가 자폐장애를 진단받는 과정을 2013년쯤부터 겪었는데, 당시 십 년 정도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지금은 그 터널을 통과해서 잘 살고 있어요.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감,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도 따랐고요. 소설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 시기에서 비롯됐어요. 당시 일상은 피폐했지만 뭔가 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어느 날 아내에게 나가서 뭐라도 써야겠다고 얘기한 뒤에 밤 9시부터 글을 썼어요.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9시쯤 자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모두 잠든 걸 확인하고 9시쯤 나와서 12시까지 글을 쓰고 돌아오는 일을 계속했는데, 30대 후반에 시작한 글쓰기가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 단편소설 「곰씨의 동굴」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았죠.


학교 전산실 곰씨의 이야기를 다룬 「곰씨의 동굴」에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세 인물이 등장해요. 실제로 학교는 다양한 근로자들의 노동으로 구성되는 장소이기도 한데, 교육 공간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것 같아요.

등단 무렵 여러 단편소설을 썼는데, 당시엔 국회의사당이라든가 다른 배경을 바탕으로 쓴 원고도 많이 썼어요. 『곰씨의 동굴』이 등단의 문턱을 넘었던 거죠. 작품 배경이 학교인데, 실제 제 일터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과 비애감을 잘 감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2년 무렵 교사가 됐는데, 그때만 해도 아침을 못 먹거나 학교에 못 오는 아이가 있으면 부랴부랴 밥 먹이고 학교에 데려오곤 했어요. 같이 PC방도 가고, 가정 방문도 할 만큼 깊이 관계를 맺었어요. 수

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수업 운동과 수업 연구를 활발하게 했던 시기도 거쳤고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잘 돌보는 일’ 또한 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위험하지 않도록 살펴 줘야 하죠.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집에 그대로 돌아가서는 안 돼요. 공동체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교사가 아이들의 감정과 반응을 잘 살펴줘야죠. 이제 얼굴만 봐도 학급 아이들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예전보다 그 감각이 노련해진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배우고, 잘 쉬고, 잘 놀다가 집에 잘 돌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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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리 하나린’ 시리즈를 비롯해 『열세 살 우리는』, 『우리가 개를 지키려는 이유』 등에서 어린이 간 계급 갈등을 생생하게 표현하셨어요. 희망적이지만 날카로운 구석도 많아서 학부모 독자의 호불호가 강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고학년 장편 동화를 쓰게 된 이유가 있는데요. (성인 소설로) 등단해서 소설가가 된 이후에 장편 소설 공모전에 완성한 작품을 냈는데, 바로 최종심까지 올라갔었어요. 콧대가 높았죠. (웃음) 하지만 그 뒤 아무도 저한테 소설 청탁을 하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그냥 사라질 수 있겠다 싶어서 모든 걸 해 보자 싶었죠.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흰 우유를 딸기 우유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건 나현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 『딸기 우유 공약』도 그 무렵에 썼던 거예요. 청소년소설 『훌훌』도 한 번도 청소년 눈높이를 한 문학을 해 보진 않았지만 ‘써 보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던 원고예요. 당시 뉴베리 수상작 등 외국 작품들을 숱하게 읽었는데, 독자를 탄복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어요. 어린이문학에도 진지하게 사유할 만한 문장들이 많았고 과격한 장면들도 등장하더라고요. 저도 써 보고 싶어졌고요. 이후 고학년 장편 동화뿐 아니라 청소년소설 등 다양하게 썼는데,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를 재해석한 판타지 동화 ‘우투리 하나린’ 시리즈는 제 기존 작품들과 결이 달라요. 다이내믹하고 장대한 서사인데 초자연적인 존재, 이신론이라는 세계관도 등장하죠. 9권까지 냈는데 조용히 마무리됐어요. (웃음) 아무래도 광활한 이야기를 소화하는 문제로 인해 학부모의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싶어요. 부당 해고를 당한 아버지로 집안 분위기가 침울해진 일상을 살아가는 보리 그리고 루리, 세희의 이야기를 그려 낸 『열세 살 우리는』을 유독 좋아하는데요. 독자 중에서 세희의 사정을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독자(편집자 주: 소설에서 세희는 주인공과 비슷하게 ‘엇나가는’ 인물이지만 결정적인 거짓말로 보리에게 상처를 준다. 세희가 방황하는 이유가 극중에는 드러나지 않는다.)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주인공인 보리의 이야기가 희석됐을 것 같아요. 특히 단식 투쟁을 하다 실려 나오는 아빠를 마주한 장면 특유의 뾰족함을 좋아해요.


『훌훌』에는 열여덟 살 아이들이 각자의 가정사로 버거워하는 하루들이 그려지는데, 끝내는 가뿐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소설 속 어른들 역시 막연한 버팀목이 아니라, 각자 사연이 있는 어른들이라서 더 공감이 갔달까요?

당시 소설을 쓴 기간을 정확히 따지자면 50일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고민하고 썼다기보다는 제 안에 있던 걸 툭툭 그대로 반영해서 『훌훌』이 탄생했어요. 이 소설은 입양아로 자란 열여덟 살 주인공과 친구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로, 대학만 합격하면 과거를 털고 독립하고자 하는 주인공 유리가 등장해요. 소설에서 유리의 할아버지가 복막암을 앓는데, 실은 저희 어머니가 그때쯤 복막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복막암처럼 골치 아픈 암이 아니라 갑상선암 혹은 위암 초기라는 병명을 제시했을 거예요. 소설은 할아버지의 수술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인물들이 수술 결과를 들으러 가기 직전의 상황에서 마무리되는데, 부러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어요. 소설의 원래 제목은 ‘유리’였어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당시 저를 담당했던 곽수빈 편집자가 ‘훌훌’이라는 책제목을 제안했는데, 정말 탁월한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을 키워 줬던 서정희 씨도 잘 살아 보려 했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역시 사연이 많아요(소설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용사였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한다). 삶은 때때로 잘 풀리기도 잘 안 풀리기도 하기에 그것들의 일면도 잘 표현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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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윤옥이 살리고 싶었던 사람들


정윤옥의 일대기를 다룬 『지켜야 할 세계』를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하셨다고요. 무려 7년 동안 소설을 다듬으셨는데, 초고와 비교했을 때 인물들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처음 완성했을 때는 어둡고 쓸쓸한 이야기였어요. 사는 게 힘들고 삶을 보는 시선도 스산했던 시기에 초고를 썼거든요. 소설에 나오는 윤옥이나 윤옥의 어머니, 그의 제자 수연 모두 삶의 아픔으로부터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는 인물들이에요. 윤옥이 가족과 교실을 지키기 위해 고투한 세월이 펼쳐지는데, 그의 어머니가 아들인 지호를 지키려 한 과정도 곡진하게 그려져요. 두 어머니는 자기 방식대로 나와 타인의 세계를 지키려 했고, 마침내 각자의 방식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죠. 초고를 쓸 때만 해도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였어요. 윤옥 대신 택수라는 이름을 가진 교사가 아이를 돌보며 양육하는 일을 끝끝내 해내는 이야기였죠. 당시 분량이 1500매가 넘었는데, 퇴고를 거쳐 700매가 채 되지 않는 원고로 탈고했어요. 오랜 시간 깎아 내고 덜어 냈죠. 출판사에 여러 번 투고했지만, 반려되었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었어요.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하니 세 어머니(윤옥, 윤옥의 어머니, 수연)의 구도가 명징해졌고, 주인공이 아들 상현을 비롯한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게 표현하게 됐어요. 주인공을 대하는 주변 인물의 시선, 말투, 반응도 거듭 수정해 작품을 완성했죠.


윤옥이 그가 맡아 키우는 상현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영광’이라는 단어에 대해 “잘 보이는 안경”이라고 답한 상현이 대견했어요. 어쩌면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그 장면은 소설의 핵심 대목이에요. 주인공이 죽는 날, 어린 상현과의 기억을 반추하는 장면으로도 이어지고, 윤옥이 제자 수연을 구원한 날이기도 하거든요. 자신의 아이를 선생인 윤옥에게 맡겼던 수연은 IMF로 공장이 줄줄이 도산하던 시기, 힘든 마음을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윤옥을 찾아가요. 수연은 자기 아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사랑하는 나의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된 자신의 선생님을 마주해요. 고맙다고 말하기도,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는 묘하고 비루한 상황에서 수연은 뛰쳐나가죠. 그때 윤옥은 수연을 향해 달려가 제자를 끌어안아요. 윤옥은 또다시 수연을 옛날처럼 잃어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윤옥은 수연에게 오랫동안 손 내밀었고, 비로소 수연은 윤옥의 손을 맞잡아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주지요.


교사 윤옥이 꿈꾸는 교실, 바라는 학교의 모습이 중간중간 드러나는데요. 윤옥이 꿈에 그리던 교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소설은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교육에 관한 소설을 한국 소설가가 쓴다면 제가 제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예를 들어 윤옥이 배웠던 교육학, 수업 이론은 학문 중심주의를 지향하는 브루너1)의 수업 이론에 기반을 뒀어요. 윤옥은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학문하는 사람, 즉 인문학도로 살아왔기에 언어학을 깊게 아는 것은 물론, 거기서 파생된 교과 지식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죠. 특히 윤옥은 교과서 없이도 자기가 체득한 지식을 잘 가르치고 체계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막상 학교에서는 입시와 시험, 학습 진도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교육 철학에 기반한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그럼에도 윤옥은 교실을 떠나지 않고 자기 일을 꾸준히 밀고 나가요. 윤옥은 프레이리2)의 학문과 이상에도 공감했던 인물로, 그가 그랬던 것처럼 대화를 통해 민중의 의식을 깨우쳐 세상을 더 이롭게 하고 싶어 했어요. 소설에서 심란한 상황 속에서도 윤옥은 교실로 돌아가 커튼을 바꾸어요. 모두 똑같은 색의 커튼이 달린 교실들 틈바구니에서 윤옥의 교실만 다른 색으로 빛이 나지요. 윤옥은 ‘행동하는 사람’이었어요. 사비를 털어 화분과 보드게임을 사서 교실을 단장하고, 매일같이 학급을 돌봤어요. 맨 마지막에 윤옥이 선생님한테 얘기 듣고 싶은 사람 남으라고 하니까 교실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남잖아요. 아이들은 그를 ‘최강 윤옥’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웃음) 


1) 인지심리학 및 인지학습이론 발달에 큰 공헌을 한 미국 심리학자. 환원주의적 사고와 암기에 바탕한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다.
2) 20세기를 대표하는 브라질 태생의 교육사상가.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 해방’이라 주장했으며, 그의 저서 『페다고지』는 민중교육학의 고전으로 읽힌다.


윤옥에게서 작가님의 얼굴이 겹쳐 보이네요. 아들 지호의 행방을 찾아 제주로 내려간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압권이었어요. 윤옥의 어머니 캐릭터를 구현할 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윤옥의 어머니는 단단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평생 죄책감(편집자 주: 소설에서 윤옥의 어머니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 지호를 하성호 목사가 운영하는 시설에 보낸다. 이후 지호는 종적이 묘연해진다.)을 갖고 살잖아요. 윤옥이 대학생이던 시절, 지호가 살던 곳에 찾아간 윤옥이 지호가 그곳에 없다고 전화했을 때 “그런 얘들 원래 오래 못 산다.”라고 답한 어머니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아픔을) 덮고 견디면서 당신도 버티셨던 거죠. 그런 어머니가 윤옥에게 전하는 편지를 쓸 때 저도 울면서 썼어요. 소설에서 윤옥의 어머니가 지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돌보면서 이렇게 말해요. “도드라진 등뼈와 갈빗대 사이로 투둑투둑 손가락이 들어갔다. 굴곡진 뼈다귀가 애처로워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작은 남자가 우는 것이다.” 그 대목을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대개 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건조하게 쓰는 것이 글쓰기의 정석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웃음) 단단한 내면과 고집을 가진 어머니의 성격을 편지로 잘 드러내고 싶었죠. 


기부금(촌지) 받기를 거부해 온 윤옥을 민들레야학당으로 이끈 정훈, 수연, 그의 자녀인 상현 등 소설에는 다양한 주변 인물이 나오는데,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인물은 주인공 윤옥이죠. 일관되게 나쁜 인간으로 나오는 건 정훈이고요. 윤옥의 대학 동기였던 정훈은 위선적인 데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에요.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종종 있는데, 어떤 독자들은 ‘정훈과 윤옥을 훗날 만나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워낙 나쁜 놈이어서 더 이상 정훈이 윤옥 근처에 있지 않았으면 싶었어요. (웃음) 물론 정훈도 내면의 소용돌이를 갖고 있었겠지만요. 소설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성격 변화가 가장 컸던 인물은 수연의 아들인 상현이에요. 이는 『훌훌』을 쓰면서 달라진 변화인데요. 입양아들이 막연하게 상처가 많고 힘들게 살 거라고 여겼는데, 이야기를 쓰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초고에서 상현은 주인공에게 고통이자 짐이 되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최종 원고에선 교사가 되기 위해 애쓴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상현의 상처를 주변 사람들이 들추지 않고 지지하는 것으로 수정했어요. 상현이 온전히 스스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듬었죠. 『지켜야 할 세계』를 쓰면서 가장 많이 덜어 낸 장면은 윤옥의 동생 지호와 윤옥의 학생 시영의 뇌병변 증상을 묘사한 대목들이에요. 실제 뇌병변을 앓는 아이의 부모나 가족이 그 묘사를 읽는다면 편치 않을 테니까요. 자폐장애를 가진 제 딸아이가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기술했거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 책을 읽으면 저 역시 편치 않을 게 분명하거든요. 『훌훌』를 쓰면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독자들의 입장을 돌이켜보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다음 작품을 쓸 때 여러 당사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며 특정한 묘사를 쓰는 것(윤리)의 문제를 고심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낮은 곳을 비추는 소설가의 책무를 위하여


소설 중반부 ‘교원노조 소속 교사 식별법’에 눈길이 갔는데요. 애석하게도 그 구별법이 지금도 유효해 보였어요. 지금은 어떤 식별법으로 교사들이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있을까요?

지금의 교직 사회는 다원화된 것 같아요. 1980년대 후반에는 악랄한 정부와 인간 중심의 교육 가치관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대립각을 세우며 진영이 명확하게 갈렸던 편이에요. 지금은 서로의 입장과 가치관이 다원화되어서 꼬집어 누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다고 명확하기 말하기 어려운 듯해요. 교사는 교사의 역할에 충실하고, 가르치는 일을 기쁘게 하고, 아이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봐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교사들도 있어요. 교사는 직업이며, 나는 나의 삶이 있다는 식으로 나름의 기준선을 정하는 그룹도 있거든요. 저는 학부모들한테 제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는 데 개의치 않아요. 자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와 저녁 시간에도 자주 얘기해요. 학교폭력 담당 교사이기에 시간을 막론하고 학생과 학부모 등 당사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대처해요. 그러려면 밤 8시에도 밤 11시에도 통화하는 일이 생겨요. 저는 그게 아무렇지 않은데 (근무 시간 이후 소통하는 것에 관해)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교사들도 생겨났어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모든 학부모가 교사들을 배척한 건 아니었어요(편집자 주: 작가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서이초 희생 교사의 추도사를 낭독한 바 있다). 지난 9월 2일 그러니까, 공교육 멈춤의 날에 저희 학교의 학부모 70퍼센트 정도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냈어요. 교사들의 의견에 학부모들이 어느 정도 동의했다고 볼 수 있죠. 당시 저희 학교 교장선생님도 교사들 편에 섰고요. 옛날만 해도 맞서 싸우는 게 당연할 만큼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교장들이 많았는데, 저 역시 대립각을 세웠던 시절을 보냈어요. 촌지 문제뿐 아니라, 여성 선생님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위들이에요. 그런 면에서 달라진 게 있죠. 이제 학교는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백화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 입장을 피력하려고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들이 많아졌고, 학령인구까지 줄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예술가와 기능공을 가늠하는 양팔 저울에서 기능공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는 소설가”라고 하셨어요. 소설을 쓸 때 지키고자 하는 나와의 약속이 있다면요?

소설을 만들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기술이 숙련되면 실수를 덜 하고, 이야기를 잘 완성할 수 있어요.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소설의 완성도를 넘어선 ‘훌륭함’이에요. 이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기법을 잘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써요. 쓰면서 항상 일종의 벽에 부딪혀요. 그 벽을 반드시 넘어야 소설이 완성된단 말이죠. 시놉시스대로 하다 보면 망하는 게 보일 때가 있어요. 고만고만하고 빤한 이야기가 완성될 거라는 게 보이면, 그 벽을 넘어서려고 해요. 그건 기술로는 안 되는 거예요. 온전히 작가가 감내해야 할 몫인데, 결국 뇌가 역할을 해 줘야 순탄하게 넘어갑니다. (웃음) 그걸 못 넘는 때가 언젠가는 오리라고 생각해요. 요새 모니터를 보다가 안경을 벗는 일이 생기는데, 눈이 침침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써 보자 싶어요. 다만, 아득바득 예전처럼 소설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요. 작품을 많이 쓰는 것보다 좋은 작품을 내는 게 중요하죠.


윤옥이 수연과 상현, 시영을 지키려고 했던 만큼 윤옥을 지키는 든든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살아생전 윤옥의 퇴근길을 함께한다면, 어떤 말을 건네 주고 싶으신가요?

소설에서 윤옥이 외롭고 쓸쓸하게 비춰진 측면도 있는데, 이는 윤옥이 스스로 의도한 것이기도 해요. 그에게 꼭 나쁜 시절만 있던 것은 아니에요. 상현을 키우면서 진한 기쁨을 누렸을 거고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성취감도 느꼈을 테고, 교사 일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하면서 좋은 날도 많이 보냈을 거예요. 만약 윤옥과 같이 퇴근한다면, 그리고 윤옥의 사정을 제가 모두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애썼고, 훌륭했고, 좋은 사람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서 아직까지 세상이 밝다고 생각한다.” 윤옥의 삶은 아름답고 거룩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은 아니라고 봐요. 누구나 도전하거나 지향할 수 있는 삶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윤옥과 함께 걷는다면 “당신을 지지한다.” 같이 평범한 얘기들을 담담하게 건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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