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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 아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 상상력 - 그림책,어떻게 읽고 어떻게 읽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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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5 16:01 조회 7,0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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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란 OO다
이 동 림 오늘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어떻게 아이들의 상상력을 바르게 키울 것인지, 또 좋은 그림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정보산업의 발달로 인간이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관심은 책이 아닌 자극적인 게임이나 영상매체에 온통 쏠려있지요. 이런 아이들의 상상력은 병들어있기 쉽습니다. 비뚤어진 상상을 하게 되는 거지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다보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짚어냅니다. 그런 순간엔 교사로서 굉장히 고무되지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결국 아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높은 성적이나 좋은 대학이 아닌, 이렇게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그 무엇, 자신만의 세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요즘은 아이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걸림돌이 많지요.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시선을 그림책으로 향하게 해서 바람직한 상상력을 구축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한 성 옥 상상력이란 용어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어떤 것을 연상한다는 의미가 있겠고, 또 하나는 그림책은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하면서 읽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뇌를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의 상상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 서는 ‘그림책이 상상력을 돕는다’라고 전제한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동의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상이라는 건 읽는 사람이 어떤 것에도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림책에는 그림이 이미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이의 연상을 제한시키기 때문이지요. 물론 읽는 이가 생각지도 못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면 사고 확장에 도움이 되겠지만요. 후자의 경우라면 100% 동의합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좌뇌와 우뇌의 세포를 함께 사용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뇌의 기능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요.

박 은 덕 저에게 상상력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단어로 표현이 잘 안 되더라고요. 자주쓰는 단어인데도 ‘그림책과 상상력’ 이렇게 하니까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세계라는 것이 상상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이야기의 영상을 계속 돌리고 있잖아요. 잘 듣고 있는 아이들은 영상이 잘 그려지는 친구들이고 딴 짓 하는 아이들은 영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 거죠. 상상력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동 림 상상력에 대한 정의를 모두들 조금씩 다르게 내리고 계신 듯하네요. 심조원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심 조 원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긴 한데, 상상력은 ‘자기만의 공간’인 것 같아요. 자기만의 공간이 있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그 안에 이야기가 생기는 것 같거든요. 그림책 안에는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감성을 통해서 구축해놓은 작가들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우 지 영 좌담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였어요. 저에게 상상력이란 ‘현실을 전복하는 힘’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그걸 뒤집어서 새롭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보니 그게 그림책에 한정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 즉 창조의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욕구들을 자극하는 모든 것은 상상력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영 경 상상력을 가로막는 시대에 사는 것 같아요. 상상력이란 것은 ‘직관력이나 이성의 대척점에 있는 감성이라는, 뭔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어도 오감으로 통하는 측면’을 미덕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상력이라는 건 심심하고 여유가 좀 있어야 생길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글 쓰고 그림 그렸던 작품이 『아씨방 일곱 동무』였는데, 그 책을 만들게 된 단초가 학창시절 때 읽은 『규중칠우쟁론기』였어요. 그 가 전체 수필을 접하면서 그 시절에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썼구나 하고 감명을 받아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쓰게 된 거예요. 외모를 형상화하는 데 연구를 오랜 기간 했어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했던 작업이었죠. 저는 최근의 교육현실이라든가 아이들이 처해있는 환경을 생각하면, 상상력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안타까워요. 상상력이라는 건 그림책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림책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저 자신도 이 시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더 잘 성장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 선 희 아까 한성옥 선생님께서 그림이 때로는 상상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아주 어린영아들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심상을 떠올리는 데는 그림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책이 상상력과 관련해서 좋은 점은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거예요. 일상에서 어떤 생각을 자주 하다가 나와 같은 생각을 책에서 만나면 일종의 피드백을 받는 셈이잖아요. 그래서 책이 상상력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상상력이 부족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부족함도 없고 답이 너무 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저희 때는 어렵게 살기도 살았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해보면서 행동했던 것 같아요.



한 성 옥 물론 영아들에게 그림책이 좋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최근에는 애니메이션도 점점 진화해서 시장을 넓히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새롭게 다른 종류의 매체로 발전시켜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린아이로만 뒀던 독자들을 성인에게까지 넓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 분들께도 그림책을 읽어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그림책,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읽을까
나 선 희 제가 지난 학기에 대학원생들한테 과제를 줬어요. 그림책을 하나 정해서 최소 세 번 이상 읽고 읽을 때마다 표지부터 시작해서 뒷표지까지 펼침면 기준으로 쭉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이 그 과제를 하면서 스스로 너무 놀란 거예요. 읽을 때마다 다 다르니까. 처음에는 숨은그림찾기처럼 읽는대요. 대부분의 그림책 좀 봤다는 대학원 친구들인데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책을 읽고 와서 발표를 한 다음에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또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더군요. 그런 걸로 봤을 때 그림책은 어떤책보다도 가능성이 훨씬 많은 장르인 것 같아요.

한 성 옥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품고 있는 그 감흥과 구조를 그냥 본다고 되는 게 아니고 학습되는 것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중심으로만 읽으면 그 그림책을 전혀 본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림책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다양한 것들을 대해 이야기하고 많은 요소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장르잖아요. 그림책의 진짜 맛을 느끼면서 볼 필요가 있어요.

나 선 희 그러니까 어떻게 얘기하면 그림책이 주는 재미는 공백에 있는 것 같아요. 권윤덕 선생님이 쓰신 『시리동동 거미동동』 맨 끝에 보면 “바다처럼 넓은 것은?” 하고 나온 다음에 “엄마의 마음”이라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권윤덕 선생님한테 재판 찍을 때는 “바다처럼 넓은 것은?”에서 끝내라고 말씀드렸어요. 마지막에 그한마디 정도는 독자가 채워 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동 림 어떤 그림책은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고 어떤책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그림책을 누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접근시키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지요. 같은 그림책이라도 독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 이것이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이 분명히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묘미를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또 읽히는 사람에 따라 상상력의 범위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나 선 희 그림책 자체가 상상력을 준다고만 하기에는 독자들의 범위가 너무 좁잖아요. 요즘 정보그림책이 많이 나오는데, 정보그림책의 그림이 실제 내용을 파악하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 보면 오히려 지적 수준이 높은 아이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시를 읽을 때와 소설을 읽을 때의 우리의 태도가 다르듯, 그림책을 대할 때도 어떤 그림책이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른 태도들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심 조 원 저는 그림책이 상상력을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 아이들의 공간 안에 그림책이 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여유롭게 글을 볼 수 있어야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그림책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주어져 있어야 하는데 학교에서 읽어주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지루한 수업시간에 하니까.



우 지 영 상상력을 이야기하기에는 그림책조차도 아이들에게 압박이 되는 현실부터 떠오르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이나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걸 아이들한테 줘야할까, 그림책이라는 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뭘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이런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잖아요.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 1위가 가수예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공부 안 해도 되고 미래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엄마 아빠가 보여주는 아이들의 미래상이라는 게 별 게 없잖아요. 좋은 대학 졸업해서 좋은 회사 나와도 모두 월급쟁이거든요. 좀 더 많이 받고 덜 받고의 차이일 뿐. 그 이상의 다른 삶을 제시해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정해진 길 외에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밖에서는 청소를 하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뭐 그럴 수 있는 여지들을 주는 것, 그런 삶의 방식들을 제시해줘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렵죠.

어른들에게 그림책이란
이 동 림 그림책은 아이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정말 의미 있게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우울할때마다 그림책을 본다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 독서치료 쪽으로 가시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은 분명히 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상상력이 풍부한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다르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많이 나와야 되고, 많이 읽게끔 해줘야하고, 제대로 접근 시켜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나 선 희 생활동화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려드는 책들이 많은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프랑스 작가들이 쓴 그림책을 보면 굉장히 재밌어요. 일상을 배경으로 재미들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될까하는 고민도 해봅니다. 또 반드시 한 컷 한 컷을 이어서 정확한 논리를 부연해 이야기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고요. 일단은 어머니들부터 그림책을 즐겁게 읽으셔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아이들을 낳고 기를 엄마들이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지면 그림책을 읽는 문화가 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성 옥 어떤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교육의 목표를 무엇에 두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같은 경우 경쟁보다 창의성에 중점을 둔교육 목표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서 커리큘럼이 거기에 맞게 짜이고, 모든 학제가 거기에 맞춰서 나오기 때문에 여지가 있는 거죠.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 방향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어느 한쪽에서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교육은 오로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잖아요. 교육 목표가 그렇다보니 재미를 따질 시간이 없어요. 여러 가지 것들이 아직은 억압이 많아서 애로 사항이 많은 거예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각자가 어느 정도 모험을 해야 되겠지요. 다른 것도 건드려보고 서로 돕고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들 조금씩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런 노력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거겠지요. 우리 열심히 합시다.



심 조 원 아이한테 뭔가 야단을 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때 헷갈리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완성된 인격체라고 생각을 하고 이 아이는 미완성된 인격체라고 생각을 해야만 내가 뭔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건데, 나랑은 굉장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아이니까 일러줄 말이 물음표일때가 많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어른들은 판타지에 살고 아이들은 현실에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가족에 관한 거 하나만 봐도 그래요. 아이들 눈에 보이는 가족은 애정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은 그걸 다 꿰뚫어보는데, 어른들은 ‘가족은 늘 화목하고 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라고 하는 판타지에 살아요. 그렇게 아이들이 보는 진실과 어른들이 가공해 놓은 세계가 다른 것이 좋은 그림책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유럽의 그림책을 조금 동경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어떤 사회적 담론이 있고, 진실을 이야기하기가 쉬우니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 보거든요. 아이들에게 그런 책을 주기 위해서는 그런 담론들을 우리 세대가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출판사에 있지만, 그래도 90년대 초에는 모이면 어린이에 관한 얘기를 했어요. 출판사 편집자들이 모이면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했죠.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여성들은 여성 조직이 있고 노동자들은 노조가 있고 농민들은 농민운동단체가 있는데 어린이들은 어린이단체가 없고 자기들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자신들이 어린이책을 만들어야 하는 아주 거창한 이유들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은지 꽤 된 것 같아요. 굉장히 답답할 때가 많죠. 요즘은 책을 기획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가 ‘니즈needs’에요. 저는 그 단어가 처음에 너무 낯설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가치로 책을 기획하는 세상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는 정말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의 시선이라는 건 바로 냉엄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런 시선을 따로 갖지 못하는 것이 좀 안타까워요. 그런데 문제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허구의 판타지 세계에는 상상력이 없거든요. 상상력을 찾을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얼마든지 무한한 공간으로 상상력이 펼쳐질 수 있는데 말이죠.



나 선 희 저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제시할 때 ‘이 그림책은 한 가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림책 한 권을 통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최선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거죠.

한 성 옥 우리나라 사회구조가, 예를 들자면 남자가 군대 갔다 오면 군기가 딱 생기잖아요. 아이들이 그걸 아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요.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아이들 스스로 키울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예를 들면 미국에는 지방에 가면 홈스쿨링 하는 집이 정말 많아요. 그 이유가, 홈스쿨링 교재가 깐깐하게 아주 잘 돼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뭘 하려고 해도 뒷받침이 다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 후배가 아이들을 홈스쿨링 하는 것을 보니, 어느 단계에 가니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요. 홈스쿨링을 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있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입시 위주 교육이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생각 없이 자라잖아요. 사실 교육과정이 뻔하니까 부모들도 다른 수가 없고. 아이들 보면 아실 거예요. 자기 생각을 얘기해보라고 하면 자기 생각이 없거든요. 작가들하고 이야기 해봐도 어떤 작가들은 자신들이 어떤 세계를 구현하고 싶은지, 맥락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는 작가들이 많아요.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느낄 거예요. 진짜 참담하거든요. 이건 작가가 만드는 건지 편집자가 만드는 건지 짜깁기를 하는 건지 난감하더라고요. 우리스스로가 자기 삶 안에서 투쟁을 해야 해요. 물론 투쟁은 아프지만 투쟁을 해야 맷집이 생기죠. 어떻게든 조금씩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영 경 작년에 프랑스 마리오네트 축제를 갔었는데, 굉장히 행복하게 공연을 봤어요. 그때 정말 감명 깊게 느낀 게, 일주일간 작은 도시 곳곳에서 하는데 백발이 송송한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관객층이 다양하더라고요. 거의 다 매진이 되고.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인형극이나 어린이 연극을 보러 가보면 아이들은 지루해서 거의 누워서 보고, 엄마들은 바깥에서 기다리면서 엄마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어요. 독자와의 만남 같은 때 어머니들이 저에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은 상상력을 가지도록 해줄까 하고 가끔 물어보시는데요, 어른이 되어갈수록 운동을 해야 하듯이 머리 운동, 마음 운동을 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해요. 아이들에게 뭘 주어야 될까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고, 어떤 음악이 좋고, 어떤 그림이 좋고 이런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즐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거기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또 배우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만 공연장에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바깥에서 기다리는 이런 풍토들은, 20년 후에 그 아이들이 자라면 똑같이 될 거라는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아까 아이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게 가수라고 했는데, 지역가수라는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오로지 메이저 무대만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재고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가능성은 간절함에서부터
이 동 림 사실 요즘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할 일이 적답니다. 엄마들이 다 해 와서 할 일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혼자 업무를 보는 사무직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게 다 전산화 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가르칠 수 있는 걸 굉장히 복잡한 과정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부모님들 눈치를 봐야 해요. 그런 어려움들 때문에 요즘은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가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에는 그래도 교실에서 그림책 읽어줄 시간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무척 화가 납니다. 지금 1학년부터 4학년 교과서까지 그림책이 나오는 데요, 그림책이 교과서에 들어오는 순간 그림책 망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사가 개인적으로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낫지 교과서에 그림책이 실리는 순간 어머니들은 그와 관련된 그림책을 모두 살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은 그림책 내용을 달달 외워서 문제 풀이를 하게 될 테고 교사도 거기에 맞춰 시험문제를 내야 할 테니 앞이 캄캄한 거죠.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감동과 재미를 주면서 그림책에 접근시키려는 몸부림은 학교에서도 처절하다는 겁니다. 작가님들도 처절하고 모두가 다 처절한 현실이지요. 그래도 저는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것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겁니다. 교과서를 펼치라고 할 때의 반응과는 무척 대조적이지요.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얘들아,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되겠니?”라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냅니다. 그런 모습에서 저는 희망을 봅니다. 그럴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정답을 말하는 법이 없어요. 존 버닝햄 같은 작가들의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 다음 장면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반듯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아요. 가만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요. 그런데 개구쟁이들, 말 안 듣는 아이들은 거침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서 정답이 나오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저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은 절대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번 교육과정이 들어오기 전에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빼고 그림책으로 수업 대체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림책은 꼭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성 옥 사실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장르의 가능성은 무한한데, 그림책 만드는 저희가 참 반성할 게 많아요. 우리도 물론 변명할 건 있지만요. 작가들도 자신들의 언어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반성하면서 공부할 게 많아요.



이 동 림 한성옥 선생님의 『수염 할아버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굉장히 좋아해요.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질문도 많이 하고요. 질문이 많은만큼 서로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아서 참 좋습니다. 제가 굳이 답을 해줄 필요도 없고요.

나 선 희 어떤 면에서는 교사가 오히려 답을 주지 않는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교사가 답을 알려주면 거기서 끝나지만, 답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얻게 되거든요. 일선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들이 선생님들이시잖아요.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보다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면서 오히려 선생님들이 눈물 흘리시기도 하고,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림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꼭 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이 동 림 그림책을 그냥 읽어주기도 하지만 설명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땐 설명을 해주거든요. 이건 색깔을 왜 이렇게 썼고 구조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훈련이 되어서 다음 그림책을 읽을 때 이야기의 구조를 알아차리더라고요. 또 저는 가능하면 책으로 보여주고 PPT는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뒤에 있는 아이들은 그림책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달하면서 봐요. 그런 아이들은 먼 곳에서 아스라이 보면서 ‘저 책 내가 먼저 봐야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에서 제대로 본 아이들보다 그런 아이들이 궁금증이 증폭되어서 보고 싶어 하는걸 더 많이 보더라고요. 이런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PPT를 잘 쓰지 않습니다.

나 선 희 저는 가장 슬픈 것이, 아이들에게 간절한 게 없다는 점이에요. 그게 가장 마음 아픕니다.



나 선 희 저는 가장 슬픈 것이, 아이들에게 간절한 게 없다는 점이에요. 그게 가장 마음 아픕니다.

이 동 림 맞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호기심도 갖게 되니까요. 도시에서는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여러 활동들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잖아요.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으니까 아이들이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다가 곧 심드렁해져요. 하지만 시골은 완전히 불모지거든요. 읽는 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좋은 책도 많지 않고요. 잠깐 학교도서관 얘기를 하자면요,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책을 사야 하잖아요. 교장선생님한테 좋은 그림책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재미없는 전집류가 들어오기 일쑤입니다. 거의 반값으로 주겠다고 영업을 하니까요. 그래서 시골 학교도서관엔 좋은 그림책이 부족해요. 시골에 있는 아이들이 여러 여건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뒤떨어지기 쉽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아이들을 만나보면 정말 보석 같습니다. 그림책을 읽어줘도 온 신경을 집중해서 봅니다. 그 반짝거리는 눈에서 저는 다시 힘을 얻는답니다. 이 아이들이 어쩌면 나중에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더 많이 읽히고 싶은 거지요. 이런 것들로 볼 때 아이들을 너무 부족한 것 없이 키우는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박 은 덕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게 옛날에는 그림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인식들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이렇게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겠죠.

이 동 림 네. 좋아지고 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니고, 가끔씩 영혼이 맑은 아이들이 옵니다. 개인적인 상처들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지요. 학원을 가지 않는 아이들이 늦게까지 남아서 책을 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아이들은 정말 예뻐요.

비록 지금은 묻혀있어도 언젠가 당당히 서리라는, 그런 믿음이 가게 되는 아이들이죠. 어느 학교도서관이라도 그런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정말 훌륭한 보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한다고, 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교과과정이 바뀌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참 힘들지만, 그래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제가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력은 문학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그림책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림책이 굉장히 매력적인 장르이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는 데 그림책이 분명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을 위해 좋은 그림책 많이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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