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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쇳밥일지』 천현우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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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11-01 15:52 조회 1,0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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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인을 요청하자 천현우 작가는 “쇳물보다 뜨겁고 강철보다 단단하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라고 적어 주었다. 독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자신 에게 다짐하듯 던지는 말 같기도 하였다. 




글 쓰는 청년 용접사가 되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해 달라, 현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 달라··· 다양한 요구에 응답하며 글 쓰는 용접사로 지낸 기간은 의무감과 부담감이 교차하는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지금보다 현장에서 용접하며 글쓰기를 겸업할 때가 오히려 부담감이 덜 했어요. 현장에 발을 붙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말에 공신력이 생기니까요. 제가 직접 본 현장을 글로 옮기기 때문에 제 시점이 문제시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저널리스트로서 글을 쓰기 때문에 현장의 ‘그때 그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데 부담이 커요. 제가 초보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요. 의무감은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산업 현장의 청년들 이야기를 알려 달라고 하니까 알려 주었을 뿐이에요. 제 이야기가 세상을 옳게 한다면 좋은 것이죠. 저는 의무감 없이 다만 알려야 하기에 알렸던 거예요.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몰라서 제 모든 이야기를 그때 다 쏟았어요. <피렌체의 식탁>에서 시작해서 <미디어오늘>, <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썼고, 『주간경향』에서 ‘천현우의 쇳밥일지’를 연재했어요. 글쓰기 외에도 작년 9월부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고요. 위원회에서 지방 기술직 청년들의 숙련 붕괴 현상을 지적하고, 흙수저 청년들을 지원할 때 청년 당사자보다는 부모를 지원하는 게 좀더 정책 효과가 좋다는 제의를 했어요. 흙수저 청년들은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노령연금이나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과도한 부양 의무를 지는 경우가 많아요. 청년이 진 무거운 부양 의무부터 먼저 덜어 주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였어요. 이 모든 과정을 몰아치듯 소화해 왔다고 그 시절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난, 아동 학대, 왕따의 괴로움 속에서 위태로운 유년기를 보내셨어요. 그때 게임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요.

제가 유년 시절에 즐겼던 게임과 요즘 게임이 비슷한지 잘 모르겠어요. 게임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어요. 최신 게임들은 ‘레벨 디자인(특정 레벨에 도달해야 입장할 수 있는 맵 등 레벨에 따라 동선과 난 이도를 조절하는 게임의 요소)’이 잘 되어 있어서 고수와 하수가 단절되어 있어요. 제가 했던 당시 게임들은 고수와 하수가 함께 섞여서 게임을 했어요. 실제 사회와 비슷해서 게임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배울 수도 있었죠. 고수와 하수를 만나지 못하게 나누는 것은 고수가 하수에게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아서일 텐데, 저는 고수에게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많았어요. 난이도가 높은 던전(dungeon)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고수가 앞장을 서 주고, 하수였던 제가 뒤를 따르는 식으로요. 버프(buff)를 주거나 공략법을 알려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히려 현실보다 게임 속 세상이 더 따뜻하다고 느꼈어요. 제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마을(플레이어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물건을 사고팔고 낚시도 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채팅으로 나눴던 시간도 좋았어요. 채팅으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콘텐츠였어요. 요즘 게임은 밀도가 너무 높아져서 게임성을 즐기는 데 집중하고 모르는 사람과 마을에서 채팅하진 않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이 좋았던 이유는 현실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을 갔을 때 서울 말씨를 쓴다고 저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를 제가 때리면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저를 때렸는데, 만약 게임이었다면 이런 사사로운 복수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떠밀리듯 전문대에 진학하셨다고요. 비자발적 대학 진학을 종용하는 부모, 교사 등 어른들의 목소리가 컸을 것 같아요.

제가 고3 때는 학생 수도 많았고, 대학 진학에 대한 열기가 오늘날보다 더 뜨거웠어요.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학교)’의 입결이 서울권 대학과 비슷할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했어요. 그래서 국가 정책으로 고졸 청년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학벌이라는 건 부모가 자녀에게 유일하게 갖춰 줄 수 있는 보험이지 않을까요? 돈이 아주 많은 부모라면 자녀의 학벌 문제에 크게 개의치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현장 노동자들이 왜 임금을 올리기 위해 파업하고 정년 연장을 위해 노력할까요? 뼈 빠지게 일해서 자녀들 대학 보내놨더니 서른 넘도록 취업을 못 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현실이죠. 4년제 학위를 요구하는 직업이 대우받는 사회 현상도 비자발적 대학 진학 문제에 한몫하는 것 같고요. 저는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고 해서 최하층민이 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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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전공과 상관없는 용접사를 진로로 선택하시면서 어떤 어려운 점이 있으셨나요?

저는 전자공학이라는 제 전공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용접을 접했을 때는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었네?’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대학 진학을 엄청 후회했어요. 차라리 폴리텍에 있는 1년제 용접학과를 나왔으면 병역특례도 수월했을 거고, 경력도 쌓고, 대우도 더 좋았을 텐데 후회가 컸어요. 저는 집안 사정상 등록금이 저렴한 대학으로 가야 해서 폴리텍대학 진학이 강제되었고, 떠밀리듯 대학을 가다 보니 공고에서 전공했던 전자공학을 그대로 선택했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할 기회도 없이 보험은 만들어 놔야 한다는 이유로 대학을 진학했어요. 전공과 직업이 연결되지 않는 문제도 결국 비자발적 대학 진학과 연결되는 거예요. 원치 않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돈을 쓰면서 매우 큰 사회적 비용이 낭비돼요. 저는 차라리 특성화고 학생들이 1년 동안 현장실습을 하거나, 학기를 나눠서 길게 직업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렇게 되면 학교가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거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야 하는 상황의 학생들은 이론보단 현장을 빨리 배우는 게 더 도움이 돼요. 회사를 분별하는 방법, 좀더 좋은 현장을 고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경험으로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진로교육도 중요하지만 현장 취업을 고려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복잡한 매뉴얼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안전교육은 별거 없어요. 위험한 일을 시키면 하지 않겠다고 거부해도 된다고 알려 주면 돼요. 위험한 일을 거부하지 못하면 사고가 나니까요. 반드시 자신의 안전을 생각해서 위험한 일은 단호하게 거부하라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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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빛을 번쩍이며 용접하는 작가의 모습과 작업 도구가 놓여 있는 작업대 

 



혐오하고 재단하는 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법


청강대 졸업 축사에서 "맨눈으론 못 보던 빛 안쪽"을 볼 수 있는 용접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셨어요. 용접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은요?

용접은 직관적인 기술이에요. 외관을 봤을 때 균일하고 예쁘다면 대체로 작업을 잘했다고 생각하면 돼요. 용접 기술은 단계별로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구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위를 보며 작업을 해야 한다면 쇳물이 중력의 영향으로 바닥으로 떨어지니까 훨씬 더 정밀한 작업을 요해요. 혹은 원형으로 용접해야 한다면 끊임없이 각도를 조절하며 균일하게 작업해야 하니까 매우 어렵겠죠? 그런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낼 때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규모가 큰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예전에 제가 창원에서 다리를 건설한 적이 있어요. 다리를 완성했을 때도 기뻤지만 나중에 돌아가 보니 데이트 명소가 되어 있을 때 ‘저 다리 내가 만들었지!’라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어요. 용접이 직관과 결과물의 예술이다 보니,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결과물도 예쁘게 만들어요. 용접을 잘하는 사람이 예쁜 결과물을 만든다는 단순한 공식이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아요.


시련이 닥칠 때마다 "마음의 비만"과 같은 냉소를 경계하셨어요. 마음을 지키는 나만의 방법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SNS를 끊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경제발전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 소리치는 건 비교가 너무 쉬워진 사회에 원인이 있어요. SNS에 접속해 보면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과 비교가 너무 직관적으로 되다 보니 사람들이 좌절하고 냉소하는 것 같아요.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방법은 나에게 좀더 집중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운동과 독서가 큰 도움이 됐어요. 낡은 방식일 수는 있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요.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나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남을 의식하는 시간이 길수록 좌절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면서 내게 관심을 많이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해요. 내가 중심이 되면 SNS를 통해 타인의 멋진 삶을 보더라도 나의 삶과 분리해서 볼 수 있어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선행되기 전까지는 SNS를 멀리하는 게 좋아요. 

 

현장직 노동자들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만연한데요. 어린이·청소년들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로를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관에게 할 법한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 (웃음) 어른들이 먼저 현장직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할 텐데요.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단 사회적인 움직임이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아주 형편없이 취급해요. 평균 임금은 너무 낮은데,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는 커요. 다양한 노조 사이에서 유난히 임금을 많이 받아가는 소수의 노조 집단이 존재 하고, 사람들은 그들을 ‘귀족노조’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이 전체 노동자 집단을 대표한다고 몰아가면 안 돼요. 대다수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하니까요. 현장직 노동자들이 땀 흘린 만큼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보상을 받는 사회가 돼야 해요. 그래야 학생들이 현장직을 직업으로 선택 했을 때 적어도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은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조선 시대보다 더 오래전부터 몸 써서 하는 일을 천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지만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블루칼라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삶을 영위할 만큼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는 기초적인 토대조차 없으니 인식을 먼저 논하는 건 어렵지요. 임금 문제와 더불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중요해요.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위험한 작업을 근로자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실용적인 관점에서 청년들이 현장직을 선택할 수 있어요. 


사회 진출을 앞둔 십 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특성화고 학생들이 많이 눌려 있어요. ‘공부를 못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라는 세상의 냉소를 받으면서 패배감을 안고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도 대놓고 그런 비난을 하진 않지만 무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눈치를 주는 어른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머리가 나빠서 당신들이 그 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사회에 나와 보면 서울대를 나왔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 는 것도 아니고, 실업계고를 나왔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일 잘하는 머리는 따로 있어요. 일찍부터 사회에 진출해서 일하다 보면 이십 대 중반쯤이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눈에 보일 거예요. 사무직이든 현장직이든 노동 현장은 본질적으로 똑같아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건 어디든 똑같은 거예요. 특성화고 학생들은 일찍 사회로 나온 만큼 먼저 일머리를 체득해 나갈 것이니 4년제 나온 사람들에게 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고 집에 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파 보자고 제안할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영역, 관심이 가는 취미 활동 등을 깊숙이 공부하다 보면 그것이 의외의 변수를 만들어 낼 때가 많아요. 나만의 콘텐츠가 일머리와 결합해 또 다른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글쓰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기술


일하면서 틈틈이 읽었던 책들이 훗날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고요. 작가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인생의 책은 단언컨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입니다. 지식의 차원보다는 만남의 장이 되어 주었다는 면에서요. 책을 읽고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저자인 경남대 양승훈 교수님께 만남을 청했고, 그 만남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되었어요. 이 책을 빼고 천현우를 얘기할 수가 없어요. 

제가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책은 <민중의소리>의 이완배 기자가 쓴 『경제의 속살』 시리즈예요. 행동경제학의 입문서라고 볼 수 있는 책인데요.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행동경제학이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내가 그때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반추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생각의 폭이 얼마나 좁아지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문학 쪽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지만 좋아하는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최민석 작가입니다. 전직 복서와 삼류 작가의 만남을 그린 『능력자』라는 소설을 쓰셨어요. 작가의 글 스타일이 저와 잘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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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오월의봄, 2019 | 『경제의 속살 1~4』 이완재, 민중의소리, 2018 | 『능력자』 최민석, 민음사, 2012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어요. 작가님께 글쓰기란 무엇인가요? 

글쓰기는 ‘수단’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저는 글쓰기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용접도 먹고살기 위한 기술이지 그 외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단지 표현의 기술이에요. 현장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목소리를 냈고, 그로 인해 저는 크고 작은 이익을 볼 수 있었어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아요. 글쓰기도 좋고,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지요. 표현 수단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기술의 발전에만 집착하게 돼요. 기교가 뛰어난 글이라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잖아요? 글 쓰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의 전달력이 훨씬 중요해요.

 
올해 3월부터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alookso) 에디터로 전향하셨다고요.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해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기사를 쉽게 재밌게 쓰는 거예요. 그리고 막연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남들과 다른 노동기사를 쓰는 건데요. 가끔 노동기사를 보다 보면 객관적인 ‘현상’은 전달하고 있지만 ‘맥락’은 없는 경우를 종종 봐요. 이렇게 전달하면 독자들은 ‘어떤 사건’으로 기억해 버리기 때문에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어요.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만큼 왜 노동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 맥락을 문제시하는 게 필요해요. 

아직 6개월밖에 일을 하지 않았고, 맥락을 어떻게 찾는지, 좋은 기사란 무엇인지 등등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는 상황이에요. 포부를 이야기하기엔 이른 시점이고 큰 그림 정도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룩소는 쌍방 소통을 지향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이에요. 대부분 미디어 회사들은 정보 공급자의 역할을 하고, 독자들은 소비자인 경우가 많은데요. 얼룩소에서는 소비자인 독자들에게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글을 써 보라고 권유해요. 소비자인 동시에 공급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좋은 글을 쓰면 보상을 줄 수 있는 체계도 마련되어 있고요. 소비자와 공급자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예요. 저는 얼룩소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기도 하고, 브리프(brief)를 쓰기도 했어요. 스타트업의 특성상 자주 업무가 바뀌다 보니 어떤 일을 전담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단계인 것 같아요. 앞으로 자리를 잘 잡도록 노력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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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천현우,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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