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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나와 평등한 말』 김보미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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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7-01 17:27 조회 1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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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지려고

운동과 언어 공부에 빠진 언니


운동 덕후라는 입소문을 들었어요. 기자로 살면서 운동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20대에 시작한 요가를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저랑 잘 맞아서 꾸준히 하다 보니 습관이 자리 잡더라고요. 운동을 오래 한 덕분에 육체적으로 아픈 상황이 남들보다 많이 안 생겨요. 아플 만한 상황이 되기 전에 제가 몸을 잘 풀어 주거든요. 사실 이런 걸 아는 여성들이 드물어요. 어릴 때부터 대부분 남성들은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구기 종목에도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그나마 혼자 하는 운동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나와 잘 맞는 운동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체육 활동이 한정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하고 싶은 종목을 잘 찾아서 운동할 수 있을까 가능성을 열고 싶어서 ‘언니네 체육관’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사회부이지만, 예전에 일했던 뉴콘텐츠팀에서 위밋업스포츠 팀과 협업하여 은퇴한 여성 운동선수들이 여성들에게 자기의 주 종목 운동을 가르쳐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2년 정도 땀 흘리는 여성들 이야기 주제로 영상 클립을 여러 편 만들었죠. 저도 언니네 체육관에서 주짓수 클래스에 참여해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겨루기 운동을 하면서 승부욕이 생기고, 지더라도 타인과 몸을 부대끼며 움직이는 일에서 오는 희열이 컸어요. 많은 여성들이 최대한 여러 운동을 시도해 보고 자기와 잘 맞는 운동을 찾아보길 바라요. 자기 언어를 찾아가듯이 운동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 보면 좋겠어요.


'플랫'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셨다고요. 직장 내 성차별 연구결과를 언급하는 등 다양한 여성 주제 기사가 눈에 띄는데, 플랫을 만든 이유와 추천하는 콘텐츠를 꼽는다면요?

플랫은 <경향신문>의 기사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여성 중심 서사를 모아 아카이빙 하자는 취지로 구상했어요. 최근에는 후배들이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50, 60대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일해 왔는지 인터뷰한 기록을 모은 것이에요. 인터뷰를 맡았던 젠더기획팀은 콘텐츠를 만들 때 몇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 노인 세대 여성의 이야기를 어둡고 쓸쓸한 시선으로 그리지 않을 것. 둘째, 가급적 언론에 등장한 적 없는 인물을 발굴할 것. 셋째, 실명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을 것. 넷째,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하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데이터를 함께 보여 줄 것. 프로젝트 막바지에는 인터뷰이들의 명함을 만들어 드렸고, 프로젝트에 담은 이야기를 책으로 냈어요(『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2020). 여성의 날에는 여성들의 구호를 모아서 인터렉티브 콘텐츠를 만들었고, 김진숙 위원이 복직되기 전 그의 일대기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어요. 플랫폼을 운영하는 후배들은 저보다 젠더 콘텐츠를 훨씬 잘 다뤄요. 제가 속했던 세대는 구조적 차별을 언어로 말하기 어려웠는데, 그 어려움을 말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 보자고 처음 말한 세대들이 지금 청년 세대거든요. 지금은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넘겨줬어요. 


일 년간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지내셨는데, 작가님의 관심사인 차별과 관련지어 타국에서 들었던 체감은 어떠했나요?

제가 일본에 건너갔을 즈음은 『82년생 김지영』이 번역되어 막 출간됐을 때예요. 일본 여성들이 생활하는 것을 멀리서 보면서 쉬운 페미니즘 책을 일본어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어요. 가령, 한국의 대학에서는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이 거의 없잖아요. 일본에서는 하이힐 소리가 많이 들렸어요. 학교 앞 상점에 가면 상품 진열대 맨 앞에 놓인 게 스타킹이었고, 서점에 가면 『남자친구랑 레스토랑에 갔을 때 입에 묻히지 않고 예쁘게 먹는 법』이라는 책이 떡 하니 놓여 있었어요. 2015년 당시,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여성 혐오나 차별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하이힐을 좋아해서 신는 여성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다수 일본 여성들에게 하이힐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는 듯했어요. 여름에 스타킹을 신는 건 불편할 텐데, 맨다리로 다니면 안 된다는 식의 유교적인 분위기가 그 나라에선 더욱 강했어요. TV를 보면 미성년자 여성이 중년 남성들이 술 마시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는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런 장면을 내보내지 않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에 최소한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는 느낌을 줄곧 받았어요. 『나와 평등한 말』을 번역한다면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을 만큼이었어요. 최근엔 바뀌지 않았을까 싶어요. 3년 전 당시엔 온도차가 극심했죠.  


『단어의 사생활』, 『거리의 언어학』 등 언어 관련 책들을 탐독하셨는데, 직업을 위한 공부 이상으로 언어에 관심이 크신 것 같아요.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쓰면서 제가 새로운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책을 쓰면서 젊은 세대들이 쓰는 줄임말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예전에는 썼지만 없어진 단어라든가 신조어를 살펴보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언어를 매일 다루는 기자다 보니 언어 관련 책이나 여러 단어를 살피는 일이 익숙해요. 저는 SNS를 많이 하는데, 요즘 대부분 젊은 세대들이 다루는 콘텐츠에 언어는 거의 없어요. 감탄사나 즉각적 반응을 위한 외침이 많아요. 그런 측면에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현상이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내 마음을 말로 전달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파악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챌린지를 통해서 춤을 춘다던가 하는 연출에만 집중하고 언어가 간단하게 휘발되어 버리니, 여운이 없겠구나 싶었어요. 가령, 나한테 우울이 찾아왔을 때 그게 뭔지 알아야 해결할 수 있잖아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그 상태에 처한 원인을 스스로 알아내야 해요. 즉각적인 반응과 감탄사만 있는 SNS를 오래 쓰면 감정을 살피는 힘과 타인의 말을 잘 듣는 연습이 부족해질 수 있겠다는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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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평등한 말』 김보미 지음 | 구정인 그림 | 너머학교 | 2021
『슬기로운 언어생활』 김보미 지음 | 푸른들녘 | 2021




불평등한 말을 알고 새로운 말로 바꾸는 생각


『나와 평등한 말』 첫머리에 개인마다 가진 '언어 지문'을 풍부하게 만들자고 제안하셨는데, 십 대의 언어 지문을 어떻게 살피셨나요?

저도 사실 바른 언어생활을 하면서 자라진 않았어요. (웃음) 십 대에 썼던 센 말들이 제 감정을 대변해 주기도 했고, 그때 제가 썼던 말들 또한 당시 저를 나타내는 말들이었거든요. 지금은 나이가 들다 보니 거친 말을 안 쓰는 시기가 자연스레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 거친 말을 썼던 이유가 타당하다고 해서, 혹은 그런 말이 저를 대변했으니 나쁜 언어를 써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 대신 이런 말을 쓰자.”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필요해요. 요즘은 십 대들이 어떤 말을 주로 쓰는지 어른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TV를 보면서 언어 습관을 함께 짚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다수 공간들이 개인화됐어요. 카톡이나 SNS로만 소통하다 보니, 십 대들이 어떤 말을 쓰는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말을 쓰든 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쓰는 욕이 어떤 어원에서 비롯됐는지, 생각 없이 쓴 말이 어떤 편견에서 비롯됐는지 알면 어른이 되었을 땐 차츰 그 말을 안 쓸 수 있어요. SNS에 집중된 십 대들의 언어를 지켜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목격했고, 우리가 대안으로 쓸 수 있는 말들을 알려 주고 싶어서 『슬기로운 언어생활』, 『나와 평등한 말』에 담았어요.


낙태 대신 임신 중지, 저출산 대신 저출생 등 고정관념이 담긴 단어를 바로잡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하셨어요. 대안으로 제시하신 단어들 중 교사부터 제대로 알고 학생들에게 썼으면 하는 단어를 꼽는다면요? 

첫 번째로 ‘○○녀’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쓰면 안 되는 말이에요. ‘○○녀’라는 말을 쓰는 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견고하게 하는 행위예요.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에도 ‘○○녀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신문 보도가 즐비한데, 피해자의 성별만 부각하는 보도 형태는 가해자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아요. ‘○○녀’라는 프레임은 불필요하게 피해자의 성별을 밝히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유행어를 연상시킨다며 독자들이 언론을 강하게 비판한 사례도 있어요. 두 번째,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단어들(편집자 주: 『나와 평등한 말』 2장 ‘내 몸을 왜 다른 사람이 평가하나요?’에 관련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을 살펴보고 대안으로 쓸 수 있는 단어들을 교사들이 먼저 터득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닫을 ‘폐’라는 한자어를 가진 폐경 대신, 생리를 모두 완성했다는 뜻의 완경을 대안어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른이 알아야 청소년들에게 대안어로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최근 제가 쓴 책을 주제로 강연을 간 적 있는데, 한 학생이 “자궁의 ‘자’가 아들이라는 뜻이라 하더라도 그걸 누가 아들이 사는 궁이라고 생각하나요? 포궁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요?” 하고 질문하더라고요. 제가 책에 생리 대신 ‘정혈(깨끗한 피)’, 자궁 대신 ‘포궁(세포를 뜻하는 포에 집 궁자를 합한 말)’ 등을 쓰자고 제안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대안어를 써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더라고요.


십 대 남학생 입장에선 대안으로 제시한 단어들이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뭐라고 답변하셨나요?

학생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어차피 언어는 쓰는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사장되기에 그런 낯선 말들이 대안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죠. 국립국어원에서도 한 달에 몇십개씩 새로운 말들을 공표하는데 대부분 새로 등재한 말들을 곧바로 쓰지 않잖아요. 

저는 이런 행위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궁을 포궁으로 바꾸자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오래 써 온 말 중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나은 방법을 고민한다면 많은 것들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요. 폐경을 아무리 완경이라고 고쳐서 말하자고 해도 그 단어가 생활에 자리 잡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왜 바꾸려고 했는지 서로 안다면, 훗날 여성들이 폐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더 나은 단어를 모색할 수 있어요. 저는 우리가 쓰는 낡은 말을 바꾸려고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당장 일상 언어로 녹아들지 못하더라도 그릇된 언어를 바꾸려는 시도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출발선이 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해요. “우리는 폐경이 아니라 완경을 하는 거야.”라고 말해 주는 선생님이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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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평등한 말』 본문 중에서, ⓒ 구정인 

5장에서 '몰카' 대신 '불법 촬영'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밝히셨어요. N번방 사건은 십 대들의 인권이 가장 취약했던 대표 사례인데, 이와 관련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한 적 있나요?

너 지금 몰카 찍냐고 친구에게 종종 물어보기도 할 만큼 ‘몰카’라는 말을 흔하게 쓰죠. 그런 말을 쓰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불법 촬영을 가볍게 취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몰카라는 단어를 왜 다른 말로 바꿔야 하는지 누구보다 절실히 알아요. N번방 사건은 어른들이 방치하던 영역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했던 청소년들이 벼랑에 내몰렸던 일이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어른들의 무지가 합쳐진 최악의 사건이었어요. 겉핥기 식으로 생각하면 “일탈계 계정에 자기 사진을 왜 올려?”라고 청소년을 무지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세대가 어렸을 때 하위문화가 있었듯이 지금 청소년 세대에게도 하위문화가 있어요. 지금 세대는 인터넷에 문화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인데, 그 문화에 참여하는 행위를 나쁘다고 할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어떤 식으로 범죄에 이용됐는지 정확히 아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디지털 성범죄에 무지했던 어른들과 경찰들 때문에 불꽃추적단이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른들의 책무예요. 복수라는 뜻의 ‘리벤지(revenge)’와 음란물이라는 뜻의 ‘포르노(porn·porno graphy)’를 합친 리벤지 포르노를 처음부터 ‘디지털 성범죄’라고 명명했다면 이렇게 사태가 악화됐을지, 수십 억을 불법으로 벌어들인 소라넷 사이트가 생길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어요. 불법 촬영, 디지털 성범죄라는 단어를 명확히 쓰는 일부터 한다면 사건에 가려졌던 가해자의 범죄가 선명해질 거예요.


특히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은 왜 바람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답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른들도 종종 그런 외모 판단을 내리곤 하잖아요.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가진 위험성이란 무엇일까요?

“너 살쪘어.”와 “너 날씬하고 예쁘다.”는 궁극적으로 똑같은 말이에요. 하나는 몸을 비하하는 말이고 하나는 칭찬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둘 다 외모 평가를 내렸다는 데서 같은 말이에요. 살 빠져서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할 거고, 살쪘다는 말을 들었다면 날씬해지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할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 똑같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갖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집착하게 하는 말이 될 수 있어요. 나아가 건강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기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길 수 있고요.

어른들이 제일 조심해야 하는 말 중 하나가 “너 예쁘게 생겼다.”예요. 어린 시절에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외모를 기반으로 한 가치평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나 관련 기준을 마련할 만한 준거 집단이 생기기도 전에 그 말에 휘둘릴 수 있어요. 예쁘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또 들을까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판단이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남들의 평가가 자신을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예쁘다는 말이 누군가의 ‘몸의 결정권’을 앗아갈 수 있어요. 설리가 방송에서 “예쁘다는 말이 왜 나쁜 건가요?” 하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것도 평가잖아요. 나에 대해서.”라고 답한 적 있어요. 그 말이 맞아요. 외모를 평가하는 모든 말이 내 몸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집착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어요.




차별 없는 언어생활 = 나다움을 회복하는 일


성적 수치심 대신 성적 불쾌감을 써야 하며, 수치심을 가지는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여야 한다는 문장에 공감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성인보다 건강한 대안을 찾는 청소년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대안을 찾는 젊은 친구들이 곁에 항상 많아요. 사실 저는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의 성폭력을 겪은 적은 없어 요. 누군가 제 지인을 능욕하는 사진도 제 얼굴에 뭔가를 합성한 사진도 본 적 없고요. 저희 세대는 성인 지 관점으로 생존권을 말하거나 데이트폭력을 인식 하는 것을 제대로 할 줄 몰랐어요. 이는 차별을 직시 하는 언어가 예전 세대 사이에서 부재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그런 이미지들을 흔하게 볼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생존을 걸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죠. 자기 인권을 해치는 일들이 십 대 친구들 사이에선 실존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 사실을 제일 외면하는 곳이 학교예요.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잖아요. 그러면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을 텐데, 불법 촬영을 비롯한 강력범죄를 어떻게 학생들이 해결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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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도 문제의 심각성을 비슷하게 느끼고 있어요. 교사들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스쿨 미투에 이미 100곳 넘는 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동안 주변에서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뜻해요. 이 문제를 청소년 문제로만 두는 건 옳지 않아요.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라면, 저희 세대에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악습을 끊어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땐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고 흔히들 표현했지만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안다면,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크게 느끼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면, 멈춰야죠. 적어도 외면하는 일부터요. 


불평등을 개선하고 약자를 지원하는 제도를 반대하는 백래시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데, 최근엔 여성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두터워지고 있어요. 교실에서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에는 유독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어요. 커밍아웃을 ‘땡밍아웃’ 같은 말로 변형 해서 쓰곤 하는데, ‘이 사람들을 가리키는 언어는 이렇게 써도 돼.’ 하고 쉽게 내재화해 버리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혐오하는 대상도 다양한 취약계층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도 ‘잼민이’라고 부르잖아요. 어린이들은 공론의 장에서 배제해도 된다는 생각도 짙어지고 있어요. 어린이를 줄여서 부르는 말들도 차별의 언어가 될 수 있는데, 흔히 주식을 처음 하는 사람을 ‘주린이’, 부동산 공부를 처음 하는 사람을 ‘부린이’라고 부르죠. 그런 말들에는 어린이는 무조건 서툴고 어떤 일을 하든지 미숙한 사람이라는 관점이 깔려 있어요. 어린이 집단을 싸잡아서 카테고리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강의 갔을 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청소년들이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그럼 어린이들이 미숙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답해요. 어린이들이 하는 일이 부족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그 집단을 미숙함의 대표 명사로 쓰는 건 다른 일이라고요. 다시 말해 어린이 집단을 획일화해서 편견을 심어 주는 단어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이런 언어 사용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선을 긋는 폭력적인 행위가 언어로부터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슬기로운 언어생활』에서 갈수록 "센 수식어를 찾는 쪽으로 언어가 바뀌고 있다."고 짚어주셨는데, 세고 화려한 이미지와 언어의 세계에서 사는 십 대들에게 이것만큼은 지키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혐오, 즉 타인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언어라는 형태로 빚어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 주변에 동성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동성 애를 비하하는 단어를 써서 욕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친구는 다시는 자기에 대해서 밖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거예요. 상대의 행동이나 모습을 보고 게 이, 레즈, 트랜스 같은 단어를 넣어 장난스럽게 놀리곤 하는데 성소수자 친구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절대 나의 정체성을 들키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닫을 수 있어요. 그런 사회에서 이런 말은 단순한 언어적 표현을 넘어 소수자를 향한 위협이 되기도 해요. 언제고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상처를 주진 않는지 생각해 보길 바라요. 내가 무심코 재미로 했던 한마디가 내 친구가 자기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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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평등한 말』 본문 중에서, ⓒ 구정인   



“예쁘다는 말이 누군가의 ‘몸의 결정권’을 앗아갈 수 있어요. 

설리가 방송에서 “예쁘다는 말이 왜 나쁜 건가요?” 하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것도 평가잖아요. 나에 대해서.”라고 답한 적 있어요. 그 말이 맞아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이 틀린 말, 나아가 누군가의 생활을 해치는 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문득 작가님이 갖고 싶은 언어 지문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지네요.

이십 대 여성으로 살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니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시간을 보냈더라면 훨씬 힘들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기자라고 성추행을 당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약간의 위협으로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안전하게 살지 않았나 싶어요. 주변을 보면 가면 증후군(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큰 업적을 쌓은 여성들이 ‘자신은 운으로 높은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심리 상태)을 앓는 여성들이 많아요. 직장 일을 오래 한 여성일수록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더 많고요.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괜찮더라도 한계치를 넘어서면 ‘현타’가 올 수 있어요. 더는 그러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요. 여성이 운전을 잘할 리 없고, 경찰일 수 없다는 편견이 있는 사회에서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스스로 전문성과 능력을 의심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애써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고 그냥 자기 모양대로 같이 살았으면 해요. 그런 면에서 저도 제 언어 지문이 ‘나다운 모양’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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