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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나나』 이희영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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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3-07 11:53 조회 1,21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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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 

인생을 배우고 소설을 쓰기까지 


개교기념일에 학교 간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과 짜장면을 먹으러 가셨다고 하신 일화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십 대 때 그보다 더 짜릿하게 하신 일탈이 또 있나요? 

샤론 스톤이 등장하는 <원초적 본능> 비디오를 만화책 사이에 끼워 놓고 도서대여점에서 빌린 적 있어요. 그걸 까먹고 지내다가 대여점에서 영화를 빨리 반납해 달라는 독촉 전화가 왔어요. (웃음)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한테 엄청 혼났는데, 저는 <원초적 본능>이 코믹 영화라고 계속 우겼어요. 그렇게 가끔 성인 영화를 빌려 보거나 집에 있는 담금주를 친구들끼리 마신 정도랄까요? 공부도 그럭저럭 했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곤 했지만 저는 실은 존재감이 없던 학생이었어요. 주변 친구들은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출중하고 재능도 있었는데, 저는 뛰어난 것 없이 소위 ‘중간’쯤 되는 아이라고 스스로 여겼거든요. 특히 자기비하를 많 이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20등인데 10등을 목표로 공부했고 시험 결과 15등을 했다고 쳐요. 등수가 5등 이나 오른 셈인데, ‘너는 역시 못해.’ 이런 이야기를 속으로 자주 되뇌곤 했어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 보다 제가 계획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비난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시절의 제게 하고 싶었던 말을 지금 소설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러스트를 전공하셨지만 다른 진로를 고민했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인생 공부”를 하셨다고요. 어떤 인생 공부를 하셨나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제가 있던 나고야에 조그만 한인 타운 같은 게 있었어요. 그곳 중식당에서 일 을 했는데 저를 고용한 사장님은 제가 쓴 『보통의 노을』에 나오는 주방장 아저씨보다 우락부락했지만 속 마음만큼은 깊으셨어요. 저를 잘 챙겨 주셨고 따뜻하셨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런저런 학원에서 아르바 이트를 했고 호주에서도 몇 년간 살았어요. 공부하며 일하며 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시절만 해 도 저와 트러블이 생기거나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눴던 것 같아요. ‘나랑 의 견이 다르네. 나쁜 사람이다.’ 단정 짓곤 했죠. 이후 직장에 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제가 만났던 사 람들을 돌이켜봤어요. 그 사람들에게도 각자 사연이 있고 대립했던 이유에 제 문제도 끼여 있었다는 사실 을 깨달았어요. 소설을 쓰는 일이란 사람을 공부하고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들을 그려 내는 일이니까요. 


단편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최근 쓰신 소설과 형식 은 다르지만 여전히 그 시절 작가님의 문장에서도 사람에 대한 온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첫 소설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페인트』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도 다 쓰고 투고한 뒤 바탕화면 휴지통에 냅다 버렸었어요. (웃음) 공모 전에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소설이 당선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는 우 연히 인터넷에서 ‘박카스 아줌마’ 이야기를 접하고 쓴 저의 첫 소설이에요. 소설을 쓸 당시 일과 육아를 병 행하기 힘들어서 일을 그만뒀는데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경력이 단절된 데서 그치지 않고 이대로 사 라지는 걸까 싶어서 자격증을 공부할까 고민했었죠. 그때 남편이 “네 삶의 모든 것을 왜 경제력으로 구분 지어? 꼭 경제활동을 안 하더라도 자아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넌지시 말해 줬어요. 그때 제가 뭐에 미 쳤는지 “글 한번 써 볼까?” 하고서 막 웃었어요. 정적을 깨고 남편이 말했어요. “하고 싶으면 해야지.” 머리 를 한 대 맞은 것 같더라고요. 이후 집에서 한참 떨어진 평생교육원의 문예창작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는 데 문학을 전공한 사람 혹은 논술강사같이 쟁쟁한 학우가 많았어요. 저는 기본기가 없다 보니 열심히 썼어 요. 소설가가 된 이후로도 소설가라는 말이 낯설어선지 주위에 글 쓰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많이 알리지 않았어요. 저를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저에 관하여 ‘글쟁이 아줌마’라고 말하는 걸 더 좋아해요. (웃음) 


예전에 하신 인터뷰에서 “작가를 꿈꾸기보다 글쓰기 자체에 몰입하는 게 더 좋다”고 하 신 대목이 와 닿았어요. 꼭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쓰는 삶에 집중하고자 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시는구나 싶었거든요. 

소설가는 어두운 곳, 우리가 간과했던 곳을 비춰 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의 작품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고요. 그런데 그런 사명감이 아직 저한테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는 우 리 사회의 일면을 꼬집고 비판하기보다 제가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요. 의무감이 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게 피부로도 느껴져서 그런 세상을 물려준 어른으로서 책임 감을 통감하고 있어요. 핸드폰만 켜도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다 알 수 있는 아이들로부터 “결국은 공무원 시험 칠 건데 대학을 왜 가요?”, “예술 계통 일하면 먹고살 만해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받고 있거든요. 그 런 말을 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 이야기에 마음이 쓰여요. 주변 환경 때문에 일찍이 패배주의에 젖어 있거 나 시니컬해진 아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른으로서 깊게 가질 수밖에 없어요. 


『보통의 노을』에서 “엄마의 마음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전 장을 누비고 계시나요? 

세상 풍파에 맞서서 진짜 장수가 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요. 더구나 『보통의 노을』에 나오는 주 인공의 엄마 최지혜 씨처럼, 미혼모나 미혼부가 되어 아이를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세상 의 많은 최지혜 씨들을 존경합니다. 그런 분들과 저를 비교하면 어휴, 제가 전장을 누비고 있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어요. 그럼에도 엄마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있어요. 최근엔 젊은 아빠들이 육아휴직 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기에 아들을 키우는 일이 힘들었어요. 이 제는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저만의 루틴을 지킬 수 있게 됐어요. 틈틈이 집안일을 하면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고, 하루에 원고지 30매씩을 쓰자는 저만의 약 속을 지키려고 해요. 일전에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조정래 작가께서 달력 같은 걸 그린 갱지를 본 적이 있 거든요. 칸으로 새겨진 하루마다 30매를 쓰면 다 썼다는 표시로 엑스 표시를 하신 걸 보고 저도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웬만하면 꼬박 30매씩 쓰려고 해요. 사춘기 아들과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며 하 루만큼 쓸 원고 분량을 지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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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영혼들의 본격 마음돌봄 대작전 


영혼이 희박해진 분들께 권하는 소설이라는 장강명 소설가의 추천사에 공감이 갔는데 요. 『나나』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으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저희 집 골목 앞에 남학생 둘이 지나가더라고요. 한 명이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잘 됐지?” 하면서 친구에게 호응을 끌어내고 싶어 했는데, 듣던 친구는 핸드폰을 보면서 “잘 됐네.” 하고 간단하게 답하더라 고요. 그러고 “진짜 영혼 없는 리액션이다.” 하고 얘기를 꺼낸 친구가 응수하는 걸 봤어요. 영혼이 없다는 건 죽었다는 뜻일 텐데, 그러면서도 핸드폰 보고 할말 다 나누는 청소년들 이야기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어서 『나나』를 쓰기 시작했죠. 이 책은 완벽한 모범생이 되려고 빈틈없는 하루를 사는 한수리 와 죽은 동생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모두에게 착한 아이로 살아가는 은류의 이야기예요. 둘은 버스 사고를 당한 후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일주일 내에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영혼 사 냥꾼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는 상황에 놓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교사를 염두에 두고 책 을 쓰지 않았는데, 강의를 위해 학교를 갈 때마다 선생님들이 『나나』를 읽고 울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쩌면 한수리 같은 모범생 중에 교사가 되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어른이 되기 전까진 “너는 선생 님 된다는 애가.” 어른이 돼선 “애들 앞에 서는 사람이 말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자기검열을 하셨을 교사들에게 공감이 됐다는 말을 듣고 죄송스러웠어요. 


교실과 SNS에서 ‘인싸’가 되지 않으면 불안한 수리는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도 실수 할 수 있지.”라고 말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아이였어요. 무엇이 수리를 힘들게 만든 걸까요? 

저도 나름 ‘K-장녀’인데요. (웃음) 저도 누나니까, 네가 맏이니까 하는 말들을 숱하게 들으면서 컸어요. 제 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에 대해 걱정하고 공포를 느 낀다는 사실이에요. 고민이 있어도 부모님께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이 나를 나약하게 보겠구나 하는 염려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가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는 대상이 부모나 교 사일 텐데, 그런 어른들에게 “너 이것밖에 안 돼?”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인지 자신을 많이 감추더라고요. 더구나 SNS가 활발해지면서 예전에는 우리 반, 우리 학교, 연예인 정도가 비교 대상이었는데 이젠 전 세 계가 아이들의 비교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예쁘고,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고, 각국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쓰는 건 기본인 데다 춤과 노래까지 완벽한 아이들이 SNS 관리도 잘해요.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 은 나라는 존재보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쉽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어요. 


육체를 되찾으려고 열심인 수리와 달리, 류는 모든 걸 내려놓으려고 해서 마음이 쓰였어 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게 된 류의 모습은 어른들에 게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류처럼 동생이 아픈 상황에 놓이지 않더라도,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님이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하거나 누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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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보면, 류의 엄마에게 섭섭함을 느끼 는 경우가 흔했거든요. 류가 가족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토로하기도 했고요. “네 가 형이니까.”, “네가 막내니까.” 하는 엄마 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쉽게 상처 받아요. 그 상처가 오래가기도 하고, 류처럼 ‘예스 맨’이 되거나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안타 까운 습관이 생기기도 해요. 엄마 입장에 서는 류의 동생이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기에, 자식에 대한 편애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 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형제 중 에서 저보다 누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저는 그 아이 에게 절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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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고 수리나 류와 닮은 사람 들이 우리 주변에 많은데요. 무엇부 터 해 보면 사소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작게라도 나만을 위한 이벤트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에 조금 더 신경”쓰기 위해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내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나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내가 좋아할지, 어떤 경험을 겪게 하면 내가 행복해할지 시간을 갖는 경험이 청 소년들에게 많아졌으면 해요. 큰 멀티 상영관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든지, 좋 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간다든지 하는 일들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어요. ‘덕후’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데요.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거기에 푹 빠져 보면 어떨까요? 단순히 무얼 사기보다는 여행이나 미 술관을 다녀오는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찾아보고, 그걸 즐겁게 할 수 있는 경험적인 이벤트를 나에게 선물해 보세요.  




그 삶이 어떻게 비치든 내 삶을 사랑하기로 


모범생 수리와 비슷하게 자란 교사가 많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나나』를 읽은 교사 혹은 학생들은 어떤 장면을 인상깊게 기억하던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너무 많이 해요. 수리처럼 성적이 상위권에 속한 대부분 학생들 은 등수가 높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고, 자신이 그 성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거든요. 이 아이 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요.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리는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고, 점수 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이 판가름 난다는 걸 알게 돼요. 최근에 줌(zoom)으로 해외에 있는 한국 아이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수리가 받아쓰 기를 한 후 짝꿍과 점수를 확인하는 장면이라고 답하더라고요. ‘모래주머니’를 쓰는 문제에 수리는 ‘모레 주머니’라는 오답을 썼음에도 9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지만 “귓불까지 홧홧”해져서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받아쓰기 점수를 60점 받은 수리의 짝꿍은 수리의 시험지를 보고 웃으며 이렇 게 말하죠. 



“모레주머니? 진짜 그런 주머니 있었으면 좋겠다. 그 주머니에서 모레를 꺼내서 오늘 써 버리는 거 야. 

내일모레 할 만화도 오늘 보고, 모레 생일이면 오늘 미리 선물 받고, 그치?” (『나나』, 162쪽 중에서) 



그 장면을 읽은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본래 이런 존재였는데, 받아쓰기를 틀리고 안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데, 자신이 내내 아이들에게 “모레주머니라고 쓰는 거 틀렸어.”라고 말해 온 것 같아서 울컥했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다양한 가능성과 생각을 가진 아이들을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욱여 놓고서 상상력을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반성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요. 


『썸머썸머 베케이션』의 하준이, 『페인트』의 제누301, 『보통의 노을』의 노을이의 공통점 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청소년이라는 점인데요. 오히려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작가님의 소설 캐릭터들이 신선하게 느껴져요. 그중 가장 애정하는 인물을 꼽는다면요? 

이건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관한 질문 같은데요. (웃음) 종종 제 소설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올바르고 어른스러워서 판타지 같다고 하시는 어른들이 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정말 어른스러워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건네서 놀랐던 적도 많거든요. 애정하기보다는 제가 썼던 소설 속 캐릭터들 중에서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있어요. 『페인트』에서 센터장으로 나왔던 ‘박’이라는 인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본래 이런 존재였는데, 이렇게 많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데, 

자신이 내내 아이들에게 “모레주머니라고 쓰는 거 틀렸어.”라고 말해 온 것 같아서 

울컥했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다양한 가능성과 생각을 가진 아이들을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욱여놓고서 상상력을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반성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요.”



물인데, 강단 있고 할말 잘하고 장차 잘 살 것 같은 청소년 주인공들과 달리, 어른으로 나오는 박이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가정폭력을 겪었던 박은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이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소설에서 그려지는데, 그런 박을 아이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어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아이 들은 이미 어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마주하며 도리어 제가 많이 배워요. 


“모든 이야기가 끝나야 비로소 제 목이 생각난다”고 하셨는데, 소설 을 쓰고 내려놓으면서 얻는 해방 감이나 통찰도 크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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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서 그 런 이야기를 해 주신 적 있어요. “작가는 붓이야.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 고, 네가 그걸 받아 적어야 하는 거야.” 제가 쓴 소설이 다른 작가님에게 갔으면 훨씬 더 좋게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 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되레 미안해져요. 작가들은 자기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다 자식 같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제가 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다 제 자식 같아서, 더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이야기 속 인물들이 더 잘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커요. 『나나』를 쓸 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원고를 고쳐 가며 편집 부와 의견을 주고받고, 녹다운이 될 정도로 힘을 쏟았는데 그러다 보니 애정이 많이 가요. 그런데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해 주셔서 감회가 커요. 일부러 노린 건 아니에요. (웃음) 그런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독자들을 만나려고요. 


한 인터뷰에서 자녀에게 실수한 게 있으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자 하신다는 답변이 인상적이었어요. 어쩌면 그렇지 못해서 끙끙 앓는 어른이 많은 오늘, 아 이에게 늘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애쓰는 ‘어른이’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어쩌면 제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에 대한 ‘객관화’였어요. 실은 공모전에서 참 많이 떨어졌었거든요. 열심히 썼는데 계속 떨어지면 속상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를 1인칭이라고 생각하지 않 고 ‘희영이’라는 존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를 위로해 줬어요. “장편은 아무나 쓰니? 너니까 쓰 는 거야.”, “최종심까지 올라갔으니 플래카드 붙여 줘야지, 우리 희영이.” 이렇게 입말로 내가 내 이름을 불 러 가며 속삭이면 힘이 생기고 여유를 얻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칭찬에 유독 인색한데, 그중에 서 가장 인색한 칭찬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칭찬이거든요. 반대로 비난은 정말 잘 해요. (웃음) ‘네가 뭐 그 렇지.’, ‘찌질해.’ 이런 말을 되뇌었다면 저는 아마 글을 계속 못 썼을 거예요. ‘우리 ○○○ 잘했어.’ 이런 말들을 사람들 많은 데서 하면 부끄러울 수 있으니 집에서 한번 해 보세요. 


저도 저에게 칭찬한 적은 없던 것 같아요. 많이(?) 쑥스럽지만 오늘 집에 가서 제 이름을 불러 봐야겠네요. 

처음엔 어색할 텐데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내가 나에게 해 주는 말은 단 1퍼센트의 가식도 들어 있 을 수가 없거든요. 내가 열심히 산 거 아니까, ‘남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하는 마음으로 3인칭으로 나 를 부르는 연습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누구 엄마’ 소리를 더 많이 들어요. 엄마로 살며 제 이름 이 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하는데, 나라도 내 이름을 많이 불러 주자는 마음으로 3인칭 화법을 쓰고 있어 요. (웃음) 글 쓰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끝이 아니더라고요. 그럴 때도 저는 저한테 이야기해 줘요. ‘즐겨. 즐기다가 나중에 사람들이 모른 척하면 네 맘대로 쓰면 되지. 언제 네가 꿈이 작가였다고.’ 어쨌든 전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글들을 쓸 거니까요.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오늘 집으로 가서 나에게 잘했다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다독여 보세요. 당신은 충분히 칭찬받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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