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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09:47』 이기훈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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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21 17:13 조회 5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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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바다에 풍덩! 

다함없는 그림책을 만듭니다 

『09:47』 이기훈 작가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남궁훈 기자  



섬세한 수채 그림 위에 뜻 모를 숫자가 제목으로 얹어져 있다. 그림책을 펼치면 장엄한 대서사가 펼쳐진다. 마치 무성 애니 메이션처럼 연속적인 그림의 나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기훈 작가의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이 생생하다. 대화 도 없고 해설도 없는 이 낯선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런데 웬걸, 다채로운 그림의 향연을 자유롭게 넘 나들기만 하여도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과 솟구치는 파도의 거대한 포효가 사진처럼 선명해졌다. 문자 언어는 훌륭한 의 사소통 도구이지만 때로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레인이 설치된 수영장은 경주하기에는 좋지만, 자유 수영을 하기는 어렵다. 드넓은 무한 상상력의 공간에서 독자들이 헤엄치며 놀 수 있 도록 이기훈 작가는 오늘도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화창하고 해가 높이 뜬 날, 제천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섬세하고 매력적인 그림책의 세계에 입문하다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책을 어떻게 기획하셨는지 궁금해요. 

군대를 갔다 오면 남자들은 현실적으로 변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고 민을 하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때 서점에서 운명처럼 데이비드 위즈너의 글 없는 그림책을 만났어요. 『이상 한 화요일』, 『구름공항』 같은 책을 보며 ‘와, 이런 책도 있구나.’ 싶었어요. 밀도 높은 그림으로 자기가 하 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그림책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한 사건이 더 있네요. 미대 도 서관에서 하얀 책등이 눈에 띄어 꺼내 봤었던 가브리엘 뱅상의 『어느 개 이야기』. 당시 우리나라 출판계에 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연필로 거칠게 크로키하듯 그린 작품이었어요. 글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 나? 그런 낯섦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어요. 정답이 없는 그 매혹적인 그림책이 잊히지 않았어요. 저를 그림 책 작가로 만드는 씨앗이 거기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작품인 『양철곰』을 작업하면서 글 없는 그림책에 깊이 있는 내용과 긴 서사를 담을 수는 없을까를 고민했고, 스스로 미션을 부여했어요. 도저히 글을 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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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도 많았는데, 표현법과 구도, 배치를 바꿔 가며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기쁨이 있었죠. 왜 굳이 글 없 는 그림책을 만드나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게 이 작업은 너무나 큰 즐거움이에요. 문자 기호가 가진 한계성을 뛰어넘는 방법이 되기도 하고요. 마치 상징과 비유, 함축을 통해서 우리 감정을 전달하는 시처럼요. 


『양철곰』, 『빅 피쉬』, 『09:47』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황폐해진 세상을 묘사하는 3부작 시리즈인데요. 세 그림책을 어떻게 연결지어 보면 좋을까요? 

처음부터 3부작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어요. 오랜 기간 『양철곰』을 구상하면서 제 몸속을 ‘인간과 자연’이 라는 주제로 가득 채웠던 것 같아요. 똑같은 주제 의식을 가지고 몇 년을 살았더니 전혀 다른 배경이고, 다 른 시대의 이야기인 『빅 피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저절로 생겨났고요. 인간의 욕망은 늘 그렇듯 반복되 는 것이고, 인간의 역사도 반복되잖아요. 『빅 피쉬』를 보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종말로 치닫게 되는 노아 방주 설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지요. 『빅 피쉬』에서 망해 버 린 지구를 양철곰이 씨앗을 품어 되살려요. 그렇다면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는 과연 어떤 상황인지에 대 한 고민이 『09:47』로 이어졌고, 3부작이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인간은 자연을 배신하고 자연은 인간을 용 서하는 서사가 반복되는 거죠. 『09:47』에서는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서사를 실험했던 『알』의 독특한 구조 를 적용해 보기도 했어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경계 안에서 독자들이 즐겁게 상상할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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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7』의 작업 기간은 무려 5년이고 그에 걸맞게 작화 퀄리티가 매우 높은데요.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제가 『09:47』 작업을 시작할 때가 30대 중후반을 넘어가는 시기였어요. 그 시점이 제게는 기량적으로 여문 시기였거든요. 반대로 에너지는 점점 떨어졌어요. 그 시점이 가장 욕심낼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는 시 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작업을 수채화로 하는데요. 컴퓨터 작업은 그림 수정이 가능하지만, 수채 작업을 할 땐 자칫 잘못하면 공들인 그림을 한 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어요. 최대치의 작업을 해 보자는 욕심이 있 었기에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을 벌여 놨어요. 분량도 기존 작품의 2배이고, 정말 큰일이 난 거죠. (웃음) 그래 서 중간중간 다른 작업으로 도망을 쳤어요. 다른 거 하다가 돌아와서 『09:47』을 작업하고 그랬어요. 이번 작품에 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작업 기간이 길어진 이유예요. 『09:47』은 ‘물’ 자체였어요. 물이 주는 광 활함과 경외감을 작품에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고민이 많아지고, 물을 묘사하는 장면이 많다 보니 작업 기 간이 길어졌어요. 월리엄 터너의 그림처럼 물을 잘 표현하고 싶었고, 독자들이 그 세계를 맘껏 탐험하다가 책을 덮으면 물에 흠뻑 젖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림책은 언제나 삶과 닿아 있다, 닮아 있다 


책에 작가님의 자녀들이 은근슬쩍 등장해요. 아빠로서의 삶과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은 사뭇 다르기도 하지만, 연결되는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펜 선 하나, 붓 터치 하나에도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사랑스러움이 섞여 있어요. 아빠로서의 삶이 그림책에 체화되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기도 해요. 『09:47』에는 셋 째가 등장하는데, 이 책을 5년 동안 작업 하다 보니 “아빠 왜 내가 등장하는 책은 안 그려?” 하고 제게 묻 기도 하죠. (웃음) 책이 완성되고 셋째가 너무나도 좋아했는데요. 제가 아빠 책이 10점 만점에 몇 점이냐고 셋째에게 묻자 “아빠 책은 100점!”이라고 대답해 주었을 때, 굉장히 행복했어요. 한편으로 한국 사회의 문 화, 정치 등등 제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그림으로 흘러나오고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저만의 고유함을 찾 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과연 고유함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의문이네요. 


작가님의 자녀가 “아빠, 나도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 같나요? 

둘째랑 셋째가 늘 그림책 작가를 꿈꿨어요. 둘째는 웹툰 작가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셋째는 확고하게 그 림책 작가로 진로를 정했어요. 자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09:47』이 나오고 나서부터요. (웃음) 그런데 저 도 그렇고 제 아이들도 그렇고 그림 그리는 재능이 전혀 없어요. 그게 고민이었어요. 오랫동안 연습했는데 실력이 전혀 늘지 않으면 큰일이잖아요.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제가 다다른 결론은 결국 엉덩이 싸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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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예요. 아이들이 만약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건 알려 줄 것 같아요. 제가 재능이 없음에도 계속 노력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었거든요. “재능이 없 어도 괜찮아. 좋아하는 일이면 뭐든지 해도 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빅 피쉬』의 배 만드는 노인은 노아 같고, 『알』에서 큰 물고기에게 먹혔다가 뱉어지는 장 면에선 요나가 연상되어요. 『양철곰』에선 요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고요. 

『양철곰』을 작업하던 때까지 교회를 다녔었어요. 그런데 한국 교회들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빅 피쉬』를 그리면서부터는 교회를 더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되었어요. 하지만 혁명가이자 젊은 청년 예술 인으로서의 예수를 존경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기독교인이 에요. 제 그림책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봐도 무방해요. 하지만 하늘의 구름 모양을 기독교 신자는 십자가 로 보는데, 불교 신자는 만자(卍字)로 볼 수도 있듯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해석의 갈 래를 열어 놓고 싶어요. 기독교적인 요소를 의도적으로 넣은 게 아니라 제 안에 쌓여 있던 생각들이 자연 스럽게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다채로운 관점으로 제 그림책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믿음으로 


독자마다 작가님의 그림책에 대한 감상이 다양할 것 같은데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읽기 방법이 있나요? 

책을 안 보던 아이들이 제 그림책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요. 글이 많은 책은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들은 이미지 언어가 훨씬 더 편하니까 제 그림책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책은 글자로 만들어졌다는 고정관념도 깰 수 있고 요. 간혹 어른들이 제 그림책을 보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이들이 알까?”라고 항의하는 분들이 계세요. 저는 “그건 어른들의 우려입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아이들이 가진 인생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누릴 수 있 는 특별한 체험이 있어요. 오히려 부모나 선생님이 어떤 정답을 주어 버리면, 여러 갈래로 뻗을 수 있는 상 상력의 줄기가 꺾일 수 있어요. 학생들이 제 그림책을 볼 때 제가 마련해 놓은 길을 따라가도 괜찮지만, 자 신만의 길을 얼마든지 가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예심에 『09:47』이 올랐습니다. 열심히 작업하신 만큼 뿌듯하실 것 같은데요. 꾸준히 그림책 작업을 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졌 습니다.  

그림책 시장이 상당히 작아졌어요. 태어나는 아기들도 십몇 년 전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확 줄었고요. 하 지만 감사하게도 최근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그림책을 사랑해 주셔서 제게 힘이 됩니다. 아동 그 림책에 한정되어 있다가 점차 분야가 확장되어 가면서 교육적인 관점을 벗어난 책들도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었어요. 성인 독자와 시니어 독자를 위한 그림책들도 출간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제 작품을 그림책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시장이지 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림책이라는 틀에 맞추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스스로 찾으며 동력을 만들고 있어요. 


십여 년 동안 이어졌던 욕망 3부작이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구상 중인 차기작이 혹시 있을까요? 

『09:47』 출간 이후 인터뷰나 강연 등 일정이 몰리다 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진 못했어요. 하지 만 대략적인 윤곽은 나오고 있어요. 시와 그림이 함께 나오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사와 구체적 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고요. 인간관계에 대해 글을 써 놓은 게 한 편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콘티를 만드는 중입니다. 계획대로 책이 나온다면 제 그림책 중에서 최초로 글 있는 그림책이 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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