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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로지나 노, 지나』 이란주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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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16 11:19 조회 1,5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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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에서 만난 이웃과 

같이 행복하려고 시작한 인권 운동 


네팔 이주민들과 친구가 된 덕분에 인권을 배우기 시작하셨다고요. 그 분들과 어떻게 만나셨어요? 

제가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행운이 왔을까 생각하게 한 분들이 있어요. 바로 네팔, 미얀마, 방글라데시에 서 온 이주민들이에요. 1994년 무렵, 국내에서 산재를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상당히 많다는 기사를 읽었어 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협력 중이라는 단체도 언급했길래 그곳을 찾아갔죠. 건물 옥탑에 자리했던 단 체 사무실에 들어가니 상근자들은 다 일하러 갔고 네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네팔에선 형이나 오빠를 ‘다이’라고 부르는데,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다이’들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 줬어요. 다이들은 빨간 밍크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대낮부터 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을까 싶었다가 저도 옥탑에 온 지 5분만에 이불을 덮었어요. (웃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난한 단체들은 난방비를 아낄 수밖에 없거든요. 저 는 그곳을 들락날락하며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 쉼터를 오가던 네팔 분들과 정이 들었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됐어요. 미얀마 친구들은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에 서 처음 만났는데, 서광사라는 절간에서 저희 사무실로 쓰라며 일주문 근처에 방을 내주셨어요. 불교 국가 인 미얀마에서 온 이주민들이 사무실로 모였고, 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의 조직도 생겨났죠.


낯선 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6년 넘게 감금됐던 찬드라부터 국내 최초 이주노동자 파업인 ‘아모르파업’에 이르기까지 간단치 않은 사연들이 『말해요, 찬드라』에 담겨 있어요. 책을 쓰신 계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이주민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려면 통로가 필요했죠. 저는 당시 사무실 소 식지에 제가 상담활동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싣곤 했어요. 그 소식지가 세간에 돌아다니다가 삶이보이는 창 출판사 편집자 눈에 띄었나 봐요. 그 편집자가 제가 상담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해 보자고 제 안했어요. 제가 원고 마감일을 번번이 여기곤 했는데도, 편집자는 제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 편집자가 송경동 시인인데, 그 분은 사실 운동가에 가까워요. 그래서 제가 가끔 가짜시인이라고 놀려 요. (웃음) 책표지에 실렸던 찬드라 언니(찬드라 쿠마리 구룽)는 병원에서 발견되기 전부터 국내의 네팔 사람 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이름이었어요. 네팔 공동체 사무실에서는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들 의 이름을 기록했었는데, 찬드라 언니만 실종이라고 표시돼 있었거든요. 수소문 끝에 한 병원에서 찬드라 언니를 만났어요. 그런데 가둘 땐 언제고, 내보낼 땐 가족이 와서 사인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무실 식구들은 ‘멘붕’에 빠졌고, 이 사건을 사회에 알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고, 찬드라 언니의 가족이 초청돼서 그간의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됐어요. 박찬욱 감독이 찬드라 언니 이야기 를 단편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이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으로 개봉하기도 했지요. 


199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를 도입했고 2003년 고용허가제를 실시했다고 하셨는데, 두 제도의 차이점과 한계는 무엇인가요? 

이미 1992년부터 해외에 투자 법인을 세운 국내 회사가 현지에서 노동자를 모집해 왔어요. 현지 노동자들 을 국내로 데려와서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받기도 했고요. 국내의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는 데 이주 노동자가 도움이 된다는 판단 등으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가 생겼고, 정부가 타국 사람들을 초대하 기 시작했죠. 그런데 정부가 중소기업중앙회에 제도 운영을 맡기면서 이주민들의 인권이 방치돼요. 자국 민을 해외 인력으로 보낸 나라의 정부들은 인력 송출회사를 제도에 가담하게끔 하고, 뒷돈을 받는 브로커 들이 성행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연수생들의 첫 월급은 200달러였고, 환산하면 16만 원(당시 국내 최저임금 22~23만 원)이었어요. 브로커를 통해 많은 돈을 써서 일하러 온 사람 입장에선 월급이 적어서 생사가 걸릴 수밖에 없었죠. 1997년에 외환위기가 오면서 대다수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뺏고, 기숙사 문 을 잠그고 퇴근하거나 월급의 일정 금액을 ‘강제 적립’ 방식의 저축을 하게 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옮 길 수 없게 했어요. 이를 못 견딘 사람들 대부분이 도망갔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져서 고용허가제가 실시됐어요. 이제 노동자들은 ‘정부 대 정부’의 계약을 통해 한국어시험을 치른 뒤 시험 점 수에 따라 농수산업, 건설업 등으로 일을 배정받게 됐어요. 정부가 제도 운영을 책임진다는 건 획기적인 변화였지만, 노동자에게 직업을 택하거나 회사를 옮길 권리는 없었죠. 이 부분은 지금도 연수제도를 관통 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예요. 얼마 전에도 성폭력 당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만들겠다고 회사 측 이 협박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여전히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죠.


국내 첫 다문화 책공간인 꼬마도서관을 여셨고, 초중고에서 상호문화교육활동을 하고 계신데 피부로 느낀 다문화교육의 현실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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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이주민들이 도서관에 안 와도 책을 빌릴 수 있게 책수레를 끌고 공장 근처를 돌았었어요. “우리 얘들 은 책 안 읽어!” 하는 고용주들이 많았고 저는 “저기 계신 분들은 책 읽고 싶다고 하셨는데요.”라고 응수 하곤 했어요. 멀찍이 저와 마주했던 노동자들이 주말에 도서관에 와서 그때 속상했다며 털어놨었는데, 다 문화교육을 위해 만난 한국 어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이주노동자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어도, 그들을 한국인과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평등의 마음’은 대부분 없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 변해 야 이주노동자의 삶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대 사무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교육활동 을 기획했어요.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차별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업을 하려고 학교 문을 두드렸죠. 저 학년 학생들에겐 이주민 문화에 관해, 고학년 학생들에겐 우리가 가지는 인권 차별과 편견이 무엇인지 짚 어 주고 있어요(2015년 기준 수업 운영 473회). 저흰 강사단을 만들어서 함 께 공부하는데, 이주민 강사는 학생 들에게 고국 문화를 전달하고 선주 민 강사는 학생들에게 평등, 다양성 등 가치에 관해 들려주곤 해요. 수업 이 끝나면 이주민 강사에게 자기 좀 안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반갑게도 아이들이 수업을 재미있고 따뜻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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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처럼 사는 로지나, 가까운 우리 아이들 이야기


『로지나 노, 지나』에 “꿈조차 빼앗긴 채 불안한 삶을 견디고 있는 모든 미등록이주청소 년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쓰셨어요. ‘미등록이주청소년’의 뜻은 무엇이고, 르포 소설로 쓰신 이유는요?

미등록이주청소년이란 국내 체류 자격이 없거나 비자가 없는 청소년을 일 컬어요. 이와 관련해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흔히 쓰이지만 저는 가능한 한 이 용어를 안 쓰려고 해요. 오래전 사무실에 상담하러 온 분에게 어떤 체류 자격을 갖고 있는지 물은 적 있는데, 그분이 자기 이마를 탕탕 치며 “여기, ‘불법 사람’이라고 쓰여 있잖아요!”라고 하셨거든요.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나요. 사람이 불법이라는 의미는 맞지 않는 표현이거니와 이 단어를 대할 때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싶었죠. 현재 국내의 18세 미만 미등록이주청소년 이 1만 명 이상 있는 걸로 추산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모르는 실정이에요. 최근엔 학교에서 비자 없는 학생을 보내라고 할 만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교사가 생겨나고 있어요. 하지만 제 소설 속 로지나처럼, 후기 청소 년 나이가 됐을 무렵 경제적인 여건으로 학교에 더 이상 못 다니는 아이들 이 많아요. 이런 사연들을 내 옆집에 사는 아이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게 친근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소설로 써야겠다!’ 싶었어요.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틈틈이 청소년소설의 화자처럼 말하는 방 법을 고민했고, 김중미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며 참고하기도 했어요. 


책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로지나와 동생 라주, 몽골에서 온 나라 등 여러 청소년이 나오 는데,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과정부터 녹록지 않더라고요.
 

로지나는 다섯 살에 한국으로 온 아이예요. 함께 행복동에서 사는 로지나의 친구 나라는 초등학교 연령 쯤에 한국으로 온 이주민 아이들을, 뭉크는 청년기에 온 아이들을 대표해서 등장시킨 캐릭터들이에요. 저 는 실제 상담에서 어려움을 겪는 미등록이주청소년들을 많이 만나요. 상담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고민 을 털어놓는 사람이 가진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고, 문제를 풀기 위한 과정을 겪다 보면 상대방의 아픈 내면을 가까이서 보게 돼요. 로지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어를 배웠고 자신을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 각하지만, 한국은 로지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책제목 ‘로지나 노, 지나’에서 볼 수 있듯이, 로지 나는 자신의 이름 즉, 신분을 계속 ‘노(No)’ 하고 거부당해 왔어요. 그렇게 비슷한 듯 다른 고투를 겪는 이 주청소년들 이야기를 르포 소설 형식으로 담았어요. 


2012년, 친구의 싸움을 말리다가 경찰서로 가게 된 몽골 아이가 신원조회 결과 미등록이 주아동이라는 게 드러났고, 보증금 2천만 원을 내면 풀어줄 테니 출국 준비를 하라는 법 무부의 통보를 받은 사례를 책에 담으셨어요. 이런 상황에 처한 이주아동들이 얼마나 있나요? 

그런 사례는 넘쳐나요(편집자 주: 2016년 기준 출입국사무소에 구금된 미성년자 인원은 197명으로 추산된다. 박혜 련 의원실, 법무부 출처). 몽골 아이의 경우는 학교에서 이주청소년들에게도 평등하게 교육해왔던 선생님의 개입이 있었던 특이한 사례였어요. “어떻게 제 학생이 그렇게 쫓겨날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던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저도 깊이 반성했어요. 쫓겨나는 아이들을 원체 많이 봐서 내면화가 됐던지, 선생님 의 그 질문이 저를 일깨워 주셨거든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등록이주청소년이란 이유로 구금되고,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던 페버의 사례도 눈여겨봐야 해요. 당시 18세 소년이던 페버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 을 해결하고픈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였고, 인권단체들이 조력해서 사건이 어느 정도 해결됐어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2020년 5월, 국가인권위가 장기체류 미등록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제 도를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어요. 소설을 쓰는 와중에 관련 결정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여태 법무부는 깜깜무소식이에요. 


책 끄트머리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출생과 이름을 제대로 등록하여 신분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짚어 주셨는데, 이주아동 등록제도를 만들려면 무엇부터 갖춰야 할까요?

한국인은 자녀가 출생하면 동사무소에서 출생등록을 하잖아요. 국내 체류 외국인들에게는 이런 제도가 없어요. 비자가 있는 부모의 경우, 자기 나라 대사관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여권을 발급할 수 있고,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등록도 가능해요. 하지만 비자가 없는 경우, 본국에서도 자기 국민을 도 와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브로커가 60만 원에서 80만 원 사이의 돈을 받아서 대신 이주민의 출 생등록을 해줘요. 어떤 사람들은 그 돈이 없어서 출생등록을 못하고, 난민들은 우리 정부의 도움조차 못 받아요. 출생등록을 못하거나 비자가 없어서 미등록에 처한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돼 요. 이를 개선하려면, 중앙정부에서 이주민들의 출생등록을 받는 방법부터 안착시켜야 해요. 지방정부 차 원에서 이주민들의 등록을 받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 예를 들어, 부천시에서 이주아동의 등록을 받아서 그 아동에게 부천 거주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을 하거나 거주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법을 갖 출 수 있겠죠. 단, 이주아동을 등록할 때 아이의 부모 정보까지 출입국에 주지 말아야 해요. 현재 여러 이 해관계가 얽혀 있어 지방정부가 못 나서는 상황인데, 저희는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합법적인 등록 시스템을 만들자고 계속 제안하는 중이에요. 



노(No)지나 말고, 

로지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학급마다 이주민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학생 들을 마주하는 바람직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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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라는 호칭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특정 전제 안에서 이주민 학생들을 바라보는 건 옳지 않아요. 예 를 들어, 다문화 학생이기에 특정한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학생이 한국어능력을 향상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교육을 집중 해서 제공하는 게 옳아요. 이를테면, 어떤 학생이 운동에 취약하 면 운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뒷받침을 해줘야 하잖아요. 학생 한 명 한 명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기에 교육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어떤 학교에서는 ‘다문화 특별반’ 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모아놓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교실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 대 부분이 특별반 명칭을 부담스러워해요. 저는 한국어 지도가 필요하면, 그냥 한국어 반이라고 하는 게 맞 다고 말씀드려요. 교사들도 ‘다문화 학생’이라는 표현을 삼가했으면 좋겠어요. 교육 당국을 비롯해서 교사 들이 이주민을 보는 관점, 발상 모든 부분을 전환해야 해요. 


넓게 보면,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막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야 할 텐데요. 전작 『나의 미누 삼촌』에서 ‘무나 머던’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저희 독자들에 게도 소개해 주세요. 

카트만두에서 살던 무나와 머던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려다 영영 이별하는 이야기인 ‘무나와 머던’은 네팔에서 백 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이기도 해요. 남편 머던이 티베트 라싸로 장사하러 떠났는데 전염병으로 자신이 죽었다고 소식이 잘못 전해져서 아내 무나와 어머니가 죽고, 머던까지 세상을 뜨게 돼요. 오래전에 미누가 이 이야기를 제게 들려줬는데요. 미누가 무나 머던 이야기가 뭔지 묻는 저에게 네팔 다 아는 척하 더니 그것도 모르냐며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무나 머던 이야기는 네팔이 워낙 산지에 있는 척박한 나라이기에, 먹고사는 게 힘든 통에 국민들이 어디론가 떠나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보여 주는 이야기 이기도 해요.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이동하는 ‘이주의 시대’잖아요. 누구든지 둥지를 떠나 고독한 삶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어요. 타향이든 타국이든 우리 모두가 떠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 누구나 그 삶을 이해하고, 서로 보듬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미누가 알려 준 것처럼, 우리 모두는 무나 와 머던이니까요. 


몇 해 전 미얀마 어린이들과 바다여행도 다녀오셨는데요. 보람 있던 순간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미얀마 양곤 서쪽에 자리 잡은 홀라잉따야에는 쫀지학교가 있는데, 거기 학생들과 바다를 보러 갔었어요. 그곳 학생들 대부분이 바다를 본 적 없거든요. 처음엔 아이들에게 미안했어요. 장거리로 어딘가 가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멀미약을 못 먹여서 난리가 났었거든요. 버스에서 축 늘어졌던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 바다를 처음 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총알 같이 달려가서 ‘퐁당’하더라고요. (웃음) 그때도 기뻤지만 저 는 매 순간이 보람 있어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책제목처럼, 나 혼자만 잘 먹고, 좋은 데 다니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옆 사람과 나눠 먹고, 바다도 보러 가고 아이들과 노는 가운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 잖아요.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한 사람들과 기회를 나누는 일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에요. 


우리 주변에 있을 수많은 로지나와 라주, 나라, 뭉크에게 ‘찐 한마디’ 부탁드려요.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한마디밖에 안 떠오르네요. “애들아, 잘 살지?” 한국에 남아 살고 있을 라주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우리 잘 살자. 잘 견디자. 잘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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