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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유현아 시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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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14 13:31 조회 1,3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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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회사원에서 일하는 풍경을 쓰는 시인으로



서울 상계동에서 쭉 자라셨는데, 청소년 시절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작은 집에서 여섯 명이 오글오글 모여서 살았어요. 부모님께서 봉제공장을 하셨는데, 사업이 망해서 무허가 집 이 모여 있는 상계동에서 터를 잡으셨죠. 그 시절엔 워낙 가난했기에 굶는 게 당연했고, 김밥을 못 싸서 소풍도 못 갔어요. 늘 수제비를 먹었죠.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선 저더러 “쟤는 거지 같이 입고 다니는데, 왜 공부를 잘 하지?”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전 가난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이 돈 버는 것밖엔 없다고 생각했고, 중3 때 상고에 진학하기로 맘을 정했어요. 하지만 제 고교 진로 선택지를 본 선생님께선 당장 엄마 모셔 오라고 하셨죠. (웃음)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엄마가 박카스 한 박스를 사들고 부리나케 학교로 오셨던 기억이 나요. 엄마 는 당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네 대학 등록금은 마련할 테니 인문계고로 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제 뜻대로 진학 을 했어요. 집안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이 모인 공부를 잘하는 상고로 갔는데, 거기선 오히려 제 등수가 떨어지더 라고요. 그래도 취업은 잘 돼서 졸업식을 이틀 앞둔 2월 18일에 큰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곳에서 20년을 근무 했죠. 


2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셨다니 대단해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저는 그 흔한 문예부 같은 것도 몰랐어요. 엄마가 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서 누군가 밖에 내다버린 책을 갖 고 오시곤 했는데, 단테의 『신곡』,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책이었어요. 저는 그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곤 했어요. 그러다가 입사한 회사에서 노조가 생겼고 저도 노조에 가입했어요. 노조 활동을 도와 주던 한 서울대생 오빠가 저더러 노보에 글을 써서 내보라고 하더라고요. 오빠는 제가 쓴 글을 읽고 나더니 “현 아야, 너는 글을 써야겠다.”라고 말했는데, 그때가 제 나이 스물한 살 무렵이었어요. 노보에 쓴 글은 그저 제 삶 에 대해 쓴 에세이였고, 오빠의 말을 들은 후부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어요. 정작 몇 년 전에 다시 만 난 오빠는 “내가 그런 말을 했어?”라며 되묻더라고요. (웃음)


2006년에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하셨는데, 시 쓰기에 흥미를 붙이신 계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과 KBS가 주최하는 근로자연극제에 공동창작 희곡을 올릴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거기서 배우도 해보고 희곡도 써 봤어요. 연극제를 하고 나니, 희곡을 제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럼 글을 잘 쓰 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찾아보니, 대학에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있었어요. 제 집과 회사에서 가깝고 야 간으로 다닐 수 있는 문창과에 들어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때가 서른다섯 무렵이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당시 교수님이셨던 차창룡 시인께서 제가 쓴 시를 보시고 “이건 시가 아니에요. 그냥 일기처럼 써서 가져와 보세요.” 그러시더라고요. 청계천이 복개하던 날에 엄마랑 함께 걸었던 일을 써서 다시 글 을 제출했더니, “이게 시예요. 이제 이렇게 쓰세요.” 하셨어요. 제 첫 시집에 실린 「어머니의 청계천」은 그렇게 해 서 나온 제 첫 시예요. 저는 이 시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수상한 이후에도 몇 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꾸준 히 시를 썼어요. 그러다가 그동안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제 첫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이 나 오게 됐어요. 그 후에야 청탁과 강연 요청이 들어왔죠. 


작가님의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에 나오는 ‘기타 등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일 상이 평범한 저와 제 친구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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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담긴 시들은 모두 제가 회사 다니면서 썼던 거예요. 사실 제 시들은 다 지질하고요. (웃음) 시집을 내고 난 다음부턴 작가와의 대화도 하고, 대학원을 마친 후엔 제가 졸업한 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도 했어요. 문화기획 관련 일, 서 울문화재단이나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글쓰기 관련 행사를 많이 꾸 렸어요.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도 했는데, 도서관에서 하는 시 쓰기 수업을 제안 받아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대단한 비 법을 알려주진 않았어요. 너의 하루, 특별했던 일 한 가지, 네 마음에 대해 짧게 쓰라고 말하곤 했죠. 십 년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 어요. 아이들은 시를 잘 쓰려고 하기보단 시를 통해 자기의 마음을 풀어내는 것 에 더 관심이 있더라고요. 이후 삶 쓰기 수업을 종종 맡았고, 자연스레 10대와 모이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제 학창시절도 되돌아봤어요. 



모두의 열일곱 마음에 청진기를 대고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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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눅이 사라지는 방법』은 출판사로부터 시 청탁을 받으면서 시작하게 된 시집이라고요.

창비교육 공식 블로그에 ‘청소년시 연재’라는 카테고리가 있어요. 매달 신작시 를 싣는 코너인데, 거기에 실을 시를 청탁받고 「열일곱」, 「회사 다니는 엄마」를 써서 발표했어요. 두 시를 발표하고 나니 독자들의 반응이 잇따랐어요. 특히 ‘엄마의 일기장’ 시리즈를 독자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후 출판사에서 청소 년시집을 내자고 제안하셔서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제가 만난 청소년들 이야기이자 제 딸과 조카인 세영과 희정이의 이야 기예요. 특성화고에 다니는 조카를 통해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 었거든요. 무엇보다 이 시집은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전 요즘도 수능 때만 되면 마음 한구석이 따가워요. 이 세상에 수능 보는 열아홉만 있는 건 아니에요. 사 람들은 11월만 되면 세상의 모든 고3이 수능을 본다고 여기는데 그 시간에 실 습을 가는 아이도 있고,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도 있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 이 수능에 관심을 쏟는 시기를 관통하고 있을 청소년들의 쓸쓸함, 저 또한 느꼈던 그 감정들을 시로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때론 연애로, 입시 상담으로, 집과 학교를 오가며 분투하는 열일곱의 속마음이 시에서 생생 하게 느껴졌어요. 특성화고 학생을 화자로 정하신 이유는요? 

제가 제일 잘하는 건 제 상처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특성화고 학생이 제 시의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누군가는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퇴근하면 하계역에서 내려서 124번 버스를 타 는데, 그 버스가 중계동 은행사거리를 거쳐서 가곤 해요. 주변 일대가 학원가여서 제가 야근하고 버스를 타면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타는 걸 볼 수 있어요. 저는 그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유 심히 듣곤 해요. 어느 날은 “나 오늘 담임이랑 상담했는데, 담임이 ‘넌 뭐가 될래?’ 물어보더라.” 말하는 아이들 을 봤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오디션이나 볼 걸~” 하고 말하는 아이가 겉으로는 깔깔깔 웃어도 상담하러 가서 샘께 무시당한 셈이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읊조렸던 “이럴 줄 알았으면”을 떠올리며 「입시 상담」을 썼어요. 이 시에선 “내가 치고 싶던 피아노나 더 친다고 해 볼걸”, “시나 더 써 본다고 할걸”이라고 되뇌는 주인공의 속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실제로 생활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쓰기도 했어요. 


「첫 만남」에서 “어떻게 살고 싶니?” 질문을 건넨 ‘이상한 나의 선생님’ 덕분에 주인공이 용 기를 얻지만,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라서 아이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한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 오더라고요. 

「첫 만남」은 우리 청소년들 곁에 ‘그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을 담아서 쓴 거예요. 대부분 기간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안부도 못 전하고 업무를 마무리하곤 하잖아요. 어떤 아이들은 그런 걸 별거 아니라고 생 각할 수 있겠지만, 이별을 제대로 못해서 상처 받는 아이도 있을 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작별 인사」에서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 던 주인공이 “담임이 말도 없이 가 버렸다/개학하면 제대로 인사 하려고 했는데”, “눈알이 따끔거린다” 말한 것처럼요. 시에 나 오는 기간제 교사는 “어떻게 살고 싶어?”라고 주인공에게 물 어봐 준 최초의 어른이에요. 실제로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 니?”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니?”라고 물으면, 아이가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답한다고 해요. 그렇게 용기를 주는 선생님들이 곁에 있어야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습하는 고3의 마음,

야근하는 엄마의 마음은 같다 


시집에는 택배 일하는 삼촌, 잘릴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 인사도 못하고 떠난 선생님 등 여 러 인물이 등장해요.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셨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노동자가 될 거야.”라고 말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일을 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요. 저는 그 런 이야기가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특성화고 학생들은 대학에 가는 대신 노동 현장으로 곧바로 뛰어들잖아요. 사람들은 이 아이들이 일하는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취직했다는 사실만 중시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노동의 강도에 대해서 고심하고, 생각하게 돼요. 노동에 대한 정의에도 관심이 많아 요. 「근로하는 삼촌 노동하는 엄마」에도 나오듯이, ‘근로자’를 매번 다르게 쓰는 현상도 눈여겨볼 만하죠. 소 위 관공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근로자’라고 부르고, 생산직으로 일하고 ‘없이 사는 사람’에겐 ‘노 동자’라고 쉽게 부르곤 하잖아요. 단어가 다르게 쓰이는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해요. 반면에 10대들은 근로자와 노동자 같은 단어의 구분은 아무 소용없다고 느낄지도 몰라요.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으면 되는 거 라고 생각할지도요. 때때로 아이들이 어떤 현상을 어른보다 더 공정하게 보거든요. 


열아홉에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들도 있는데, 대부분 어른들이 일에 대한 앎이나 노동 감수성 키우기에 둔감한 것 같아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숨겨요. 노동의 의미를 잘 알면, 나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세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주변을 보는 시야도 넓어질 텐데 말이에요.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들이 있을 텐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부모의 아픈 모습도 잘 안 보여 주려고 하고요. 자기의 슬픔과 외부의 아픔이 잘 연결돼야 아이들이 잘 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 들의 작은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한 다고 면박 주거나 공부나 하라고 윽박지르지 말고요.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을 쓰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를 꼽아 주신다면요? 

책에 첫 번째로 실린 「열일곱」을 베스트로 꼽고 싶어요. 이 시에 나오는 ‘택배 일하는 삼촌’이 제 동생이거든요. 제가 책 냈다는 이야기를 안 했는데, 동생이 제 시집을 사서 읽어봤나 봐요. 동생이 어느 날, “누나가 쓴 「열일 곱」 봤는데, 왜 그 시에 내 이야기 썼어?” 하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 시가 동생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썼어 요. 일단 어땠냐고 물어보니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시였다고, 좋았다고 말해 주었어요. (웃음) 표제작인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도 기억에 남아요.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교복들이 어떤 차이 를 보여 줄 때가 있어요. 외고, 인문계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구별 지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외고 학생들의 교 복을 보고, 자기 교복을 찢어버리고 싶은 아이도 있을 수 있어요. 교복 사이에서 서열을 느껴 주눅이 든 아이 곁 에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 아이가 한번은 잘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시간 또는 하루만큼은 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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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깨에 붙은 주눅,

같이 이고 가는 내일을 위하여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님의 열아홉이 외로웠던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선배들이 많으셨잖아요. 

그때의 저는 잘 견뎠던 것 같아요. 친구도 없었고, 외롭고 가난했지만요. 선배들과는 지금도 잘 지내요. 열아홉 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만난 선배들이 저를 잘 보듬어 줬어요. 힘들어서 거의 매일 울다시피 했는데, 돌이 켜보니 그때마다 곁을 지켜준 선배들도 고작 스물한 살짜리 언니더라고요. (웃음) 저를 지지해준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견디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들이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을 읽으면 좋을까요? 

직장을 다니며 10대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일기장’ 편에 엄마들이 공감할 만한 이 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쓸쓸한 마음이 드는 중딩과 고딩들에게도 권해요. 소리 지르고 싶은 아이에게도 강추하 고요. 어쩌면 분노와 슬픔, 아픔도 힘껏 드러낼 줄 알아야 밝은 감정을 더 건강하게 내비칠 수 있어요. 대부분 청 소년시집에 외롭고 슬픈 것보다 희망을 전하는 시가 많은데, 독자들이 혼자라고 느끼는 아이가 나오는 제 시집 을 읽고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가장 쓰고 싶은 시는 무엇인가요? 

사랑시요. 어쩌면 평생 못 쓸지도 몰라요. (웃음) 실은 제 시집에 발문을 써준 김현 시인이나 다른 동료 시인의 시들을 보면 굉장히 모던하고 세련됐거든요. 저는 이야기를 풀듯이 쓰는데, 앞으로도 제가 잘 쓸 수 있는 걸 계 속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작에서 제가 삶과 부딪치는 과정을 내면적으로 다뤘다면, 지금 준비 중인 책에선 제가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다룰 참이에요. 나의 곁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를 모아 보려고요. 아마도 어른들을 위한 시집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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