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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지구별 사서의 오늘] 도서관에서는 모두가 작가이자 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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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10-01 13:40 조회 3,2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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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닮은 각국의 전래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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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리 도서관은 출신국을 구분하여 6개 독서자조모임을 조직했다. 그중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독서 모임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군산, 목포, 남해 등 바닷가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쉬는 주말이면 5시간씩 버스를 타고 와서 2시간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일터로 돌아간 참여자가 있을 정도로 다들 모임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인도네시아 독서 모임은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주제로 책모임을 하고 싶다고 하여, 주로 『해님 달님』, 『금도끼 은도끼』, 『토끼와 거북이』등의 전래동화를 소리 내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활동은 우리나라 말을 익힐 수 있어서인지 인기가 높았다.
『콩쥐 팥쥐』를 읽던 날이었다. 콩쥐가 계모에게 구박을 받고, 두꺼비의 도움을 받아 커다란 독에다 물을 가득 채우고 동네 잔치에 가는 부분을 읽을 즈음 한 사람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도 『콩쥐 팥쥐』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전래 동화와 비교하면 계모의 딸이 언니이고 구박하는 부분이 조금 다를 뿐 착한 이가 나중에 복을 받고 억울함을 푼다는 내용은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도 사는 지역에 따라 동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콩쥐 팥쥐』와 닮은꼴인 각자의 지역 버전을 이야기하다 보니, 남은 시간이 뚝딱 지나갔다. 참여자들은 다음 독서 모임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많이 아쉬워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다고 하여, 당장 다음 모임부터는 『콩쥐 팥쥐』를 인도네시아 말로 번역해 보기로 했다. 최초로 『콩쥐 팥쥐』가 인도네시아 말로 번역되는 순간이었다.
 
좌충우돌! 『콩쥐 팥쥐』번역기
 
여러 사람이 모여 어떤 이야기를 함께 번역한다는 것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한마디로 대단히 힘겨운 과정이었다! 먼저 한국어를 직역하여 번역할 것인지, 아니면 의역을 할 것인지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자국에서 문학책을 거의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동네 어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특정한 문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우리나라 말을 구사하는 정도도 천차만별이었다. 일하는 데 필요한 몇 마디 언어만 아는 사람부터 전라도 사투리를 무난하게 사용할 정도로 말을 잘하는 사람까지 고르게 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부터 가늠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콩쥐 팥쥐』 내용을 알려 주기 위해 나는 온갖 손짓발짓과 상황극을 방불케 하는 재연을 해야 했고, 서툰 영어로 설명하는가 하면, 강사와 논의해도 해결할 수 없는 표현은 바로 결혼이주민과 전화로 연결하여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모임은 매시각마다 발전을 거듭하였다.
 
안산에서 자카르타까지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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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를 열어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한 『콩쥐 팥쥐』를 낭독하기로 하면서, 2주일에 한 번 모이던 것을 주말마다 모였다. 가을에 접어들어 이주노동자들은 점점 더 바빠져서, 휴일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만큼 모이기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번역에 대한 열정은 갈수록 불타올라서 북콘서트 일주일 전에 무사히 번역을 마무리했다.
북콘서트 하루 전날, 한컴오피스로 편집을 끝내고 70부씩 프린트를 했다. 참여자에게는 3부씩 나누어 주고, 북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에게 한 부씩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크기의 소박한 번역 책을 손에 든 순간, 이제까지 함께한 과정이 단번에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느낌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번역까지 해냈냐며, 동포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모국어로 낭독하던 이주노동자 수완디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수완디는 그 다음해 가을에 이주노동 기간이 끝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요일, 소식을 전하러 몇몇 친구들과 도서관에 왔다. 그는 캐리어 앞에서 비닐로 고이 싼 『콩쥐 팥쥐』인도네시아 번역본을 꺼내 나에게 보여 주고는 인도네시아에 가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한 것이라고 자랑할 거라고 했다.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 순간은 어제 일처럼 참으로 생생하다.
 
우리는 모두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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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웹툰 읽기를 즐겨 하는 청년은 우리 도서관 일상을 웹툰으로 그렸다. ‘크로스미디어라이브러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는 자기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고, 영화제에서 상영한 경험을 한국에 와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3년 동안 도서관에서 진행한 크로스미디어 영상 20편을 CD로 제작해 도서관에서 소장했고,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 영상 동아리 멤버들 몇몇은 얼마전, ‘원곡동의 맛집 안내 TV’를 만들어 유튜브에서 방송 중이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도서관 일기’에 긁적여 놓은 귀여운 그림들은, 이를 예쁘게 본 대학생에 의해 도서관 이모티콘으로 탄생하였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등재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어떠랴. 그 이모티콘들은 우리 도서관 포스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도서관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얼마 후면 렉가나가 쓰고, 내가 정리한 캄보디아 전래동화 『구렁이 독은 왜 없어졌을까』도 다른 글들과 함께 한국어판으로 출판된다. 율리아와 내가 쓰고, 고정순 작가가 그린 그림책 『율리아의 결혼식』도 진행중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들이 가득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을 사랑한다. ‘우리 도서관의, 우리 도서관에 의한, 우리 도서관을 위한’ 자료로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역사성을 가지게 된다. 도서관에 오는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것을 발견하도록 지원하고 부담 없이 자기 콘텐츠를 만들게끔 응원한다면,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를 소장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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