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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청소년에게 권하는 그림책]더 나은 삶을 위한 ‘선한 연대’의 바람이 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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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1-05 16:31 조회 8,0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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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면을 먹을 때』
하세가와 요시후미 | 고래이야기 | 2009

그림책을 펼치면 웃음부터 나온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수채화로 살려낸 익살스러운 아이들의 표정과 앞의 말이 반복되면서 묘한 리듬감을 주는 재기 넘치는 글이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한 그릇을 들고 막 국물을 마시려는 아이, 그 뒤 소파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 창문으로 보이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 그림이 그려진 표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가 라면의 면발을 음미하며 ‘후루룩’ 먹는 바로 그 순간, 내 이웃, 이웃 마을, 이웃 나라에서 일어나는 다른 아이들의 일상을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가 앵글을 이동하며 포착하듯 담담하게 장면을 보여준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고양이 방울이는 하품을 하고, 이웃집 미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이웃집의 디디는 비데 단추를 누른다. 바이올린 켜는 미미와 야구하는 이웃 마을 남자아이를 거쳐 요리하는 여자아이까지 이어지며 행복한 아이의 일상이 같은 시간 안에서 그려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행복한 하루 일상이다.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가 웃을 수 없는 이야기로
이제 화면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동을 향한다. 이때부터 미소를 머금고 그림책을 보던 독자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나라 아이들의 일상은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바삐 달려가는 아이, 부모가 배를 타고 일을 하는 동안 동생을 돌보는 아이, 하나뿐인 공동우물에서 물을 긷는 아이, 집안의 귀한 자산인 소를 돌보는 아이, 빵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도 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아이들과 뛰어놀 수 없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온전하게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전쟁과 기아에 지쳐 쓰러진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사막의 삭막한 바람이 분다. 그때, 그 바람은 같은 시간 라면을 먹고 있는 주인공의 집 창가에도 분다. 이제 더 이상 고양이 방울이가 바라보던 창가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쓰러진 아이가 있던 사막의 그것과 닮아 있다. 책을 다 덮고 나면 이 그림책의 면지가 왜 바람 부는 사막 같았는지 비로소 이해된다.



작가의 주제 의식을 함축적, 감동적으로 그려내
청소년들에게 이 그림책을 권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이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맛깔스러움 때문이다. 시적 구조를 가진 글과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수채화가 완벽하게 조화된 그림책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감정과 느낌을 생생하게 살리면서도 주제를 설득력 있게 함축적으로 표현한 수작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상도 많이 받았다. 뛰어난 일본 작가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두 번째는 독자들이 평화와 인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작가의 주제 의식을 감동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작가는 라면을 먹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는 서로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장황한 구호보다 훨씬 효과적인 언어로 보여준다.

내가 행복할 때 지구촌 곳곳에선 불행한 일들이…
이 그림책은 두 개의 구조가 서로 견주며 구성되어 있다. 작은 틀에서 보면 각 장면마다 ‘○○○이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견주고 있고, 큰 틀에서 보면 일본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과 다른 나라의 아이들의 불행한 일상이 서로 견주고 있다. 큰 틀의 구조를 맞추어 보면 이렇게 이야기가 성립된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최악의 식량난으로 폭동을 겪고 있는 아이티의 아이들은 진흙과 소금, 야채, 쇼트닝 등으로 만든 진흙 쿠키로 굶주림을 달래고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나라에 사는 어린이들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5초에 한 명씩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라면 하나 먹는 10분이란 시간 동안에 120명의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은냄비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의 열 살 남짓 소녀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급료는 1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벽돌 1,000개를 나를 때마다 미화 90센트를 받는다. 그의 부모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보낼 여력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커피, 코코아, 오렌지, 바나나, 사탕수수 등 기호식품들은 모두 이런 어린이들의 노동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 아이들의 손은 노인의 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주름이 가득하다. 전 세계 약 3억 5,000만 명의 어린이들이 노동을, 그중 절반이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한다.

내가 비데 단추를 누를 때!
마을 우물은 말라버렸고, 식수로 사용할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나절을 걸어야 하기도 한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물을 구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그나마 이 물은 사람이 차마 먹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깨끗한 물이 없어서 8초마다 한 명꼴로 어린이가 죽어간다고 한다.

내가 바이올린을 켤 때!
베트남의 초등학생 한 소녀는 중학교에 다니려면 부모님이 1년에 10만 원을 더 벌어야 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난민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공부하고 책 읽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시설이 없다. 네팔의 한 마을에서는 십대 소녀들이 더 어린 어린이들을 위해 야학을 꾸리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1억 1,0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기본적인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를 때!
인도 돈 12루피. 우리 돈으로 310원. 이 돈은 아이들이 축구공 외피 조각을 바느질하여 공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받는 돈이다. 한 사람이 하루 4~6시간 동안 오각형, 육각형 모양의 32개 조각을 약 1,620여 회 바느질로 꿰매야 공 한 개를 만들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린 소년이 군인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전장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페루의 빈민촌에서는 깡패들이 총질을 해대는 통에 아이들은 밖에서 놀기가 어렵다.

내가 달걀을 깰 때!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여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아프리카 전체 가구 가운데 절반이 하루 1,3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평화와 인권을 지켜내는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내가 라면을 먹고, TV를 보고, 똥을 누고, 학원에 가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을 바로 그때, 지진이나 홍수, 가난과 기아, 전쟁, 민족 갈등, 종교 전쟁 등과 같은 불행한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가는 나와 같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통함’을 말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입안이 까끌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라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어쩌면, 지금 당장 뭘 어쩌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와 인권을 지켜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평화와 인권을 추상적인 단어로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이 책을 함께 읽고, 어떻게 하면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경수의 그림책 『거짓말 같은 이야기』(시공주니어, 2011)와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푸른숲, 2009)와 함께 겹쳐 읽으면서 나의 경험을 문학적인 경험으로 승화시켜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이 그림책 마지막 문장 ‘바람이 불었다’가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선한 연대’를 생각해보는 또 다른 ‘바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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