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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도서관 마중]마음속 아이를 들추고 세상의 진심을 마주하다 ― 이옥수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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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8:26 조회 7,5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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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을 통해 ‘개 같은 날’ 대신 ‘개 나는 날’로

학생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옥수 그래. 만나서 정말 반가워. 다들 예쁘네.

윤혜린 작가님 책도 많이 읽고 준비 많이 해왔는데 좀 떨리네요.

윤혜린 최근 나온 『개 같은 날은 없다』의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이옥수 제목이 좀 세지? 만약에 형한테 매일 두들겨 맞고 사는 억울한 아이가 있다면, 그리고 오빠한테 맞은 상처 때문에 지금도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개 같은 날들이거든. 만약에 더 센 제목이 있었으면 그 제목을 붙이고 싶었을 거야. 내가 바라는 건 이중적인 의미인데, 하나는 정말 이런 아이들은 개 같은 날의 연속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날다’라는 거야. 표지에 큰 글씨로 ‘개날다’라고 나왔지? 폭력으로부터 해방돼서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정말 개가 날아다니는 재미난 상상을 하고 쓴 거야. 이런 세상을 바라면서 이 소설의 제목을 지었던 거지. ‘개날다’가 되어야 돼. ‘개 같은 날은 없다’가 아니라.

장인영 『개 같은 날은 없다』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애니멀커뮤니케이터가 나오잖아요. 솔직히 찾아보기 힘든 직업들인데, 이런 직업을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해요. 혹시 이런 일들을 경험해 보셨는지 아니면 지인 중에서 이런 직업을 가진 분이 계시는지요?

이옥수 경험을 했거나 지인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야. 『개 같은 날은 없다』는 교감이 문제거든. 내가 본 것은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폭력을 당하는 사람도 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야.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 아파요’,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데, 신호가 오면 교감을 해야 되잖아. 그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을 누구한테 맡길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교감을 할 수 있는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어. 그래서 이 교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련된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한테 자문을 구하고 전문 서적을 찾아보면서 인물을 만든 거야.

장인영 『개 같은 날은 없다』에서 민아가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잖아요. 근데 요즘에 심리 상담 받으러 병원에 간다고 하면 시선이 별로 안 좋잖아요. 근데 민아는 거리낌 없이 그냥 바로 나오는데 그런 모습에서 하고 싶으셨던 말이 있으신지?



이옥수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어린 아이가 아프면 소아과에 가잖아. 이런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일단 정신과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편견을 가지지.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아프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돼. 이 복잡한 세상에 정신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치료를 받아야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친구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힘이 들 때 우울증 걸려서 자살을 선택하는 대신,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사람이 아프고 병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거야. 아픈 정신을 치료받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야.

이예원 『개 같은 날은 없다』 마지막 부분에 찡코가 살았잖아요. 찡코를 살리신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이옥수 근데 찡코가 누구냐 하면 사실은 동물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약한 약자야. 동물이든 사람이든 말 못하고 대항하지 못하고 맞으면 찡코잖아. 동물이니까 더 소통을 할 수 없는데 그냥 때리면 맞고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는 약자잖아. 요즘 우리 아이들, 이런 약자가 많지. 폭력을 심하게 쓰는 아버지가 술 취해서 때리면 맞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아. 이게 찡코거든. 근데 그 아이가 그렇게 해서 영혼이 희생된다면 정말 세상에 희망이 없어. 그래서 아버지의 노력을 통해서 가정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밟는 것처럼 가장 약자인 찡코도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다시 나타나야 된다는 거지. 소리 지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된다는 거지. 그래서 찡코를 우리의 희망의 불씨라고 본 거야. ‘폭력에 대한 희망이 이렇게 싹트고 있어요, 우리 평등을 배워가고 있어요, 평화를 배워가고 있어요.’ 이걸 찡코를 통해서 이해시킨 거야.



말 걸기, 폭력을 지우는 특별한 방법
김은기 작가님 책은 제가 4권을 읽었는데 폭력에 대해서, 특히 가정폭력에 대해서 많이 다루셨어요. 작가님께서는 폭력의 주된 원인이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옥수 음. 맞아. 폭력은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가정에서의 폭력인 것 같아. 가정에서 이미 폭력을 경험했거나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던 사람이 결국은 학교 폭력이나 사회 폭력까지도 나갈 수 있는 거지. 우리에게는 태생적으로 가정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공간이고, 이런 처음 만나는 공동체에서 비롯된 폭력이 계속 확산된다는 거지. 그리고 악순환 된다는 거지. 확산과 악순환.

이예원 『개 같은 날은 없다』에서 가정폭력이 가족 간의 소통 부족으로 생긴 것 같은데, 이런 부족한 가족 소통의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옥수 막힌 건 다른 해결책이 없어. 일단 뚫어야 돼. 뚫는 방법이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을 통하여 소통하는 거지.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슬프면 슬프다, 기쁘면 기쁘다, 힘들면 힘들다.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소통을 해야 되는데, 이야기가 잘 안 통해. 그렇지? 이야기를 해도 엄마들이 먹혀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단 말이야. 그게 연습이 없어서 그래. 처음부터 잘 안 되지만 서로 연습을 해야 돼.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자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노력하면서 찾아보다 보면 분명히 뚫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거야. 한 번에 다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뚫는 방법, 소통하는 방법을 서로가 다 배워갈 수 있는데 누가 그걸 먼저 시작하느냐가 중요하지. 나는 그게 엄마 아빠일 수도 있지만, 우리부터 시작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거라고.

장인영 저희 아빠가 『개 같은 날은 없다』의 강민이네 아빠처럼 폭력을 쓰시는 건 아닌데, 제 머리를 툭툭 치시거나 말로 막 공격하실 때가 있어요. 근데 사회적으로 강민이네 아버지나 저희 아버지가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옥수 내 속에도 너희들 만할 때의 아이가 있어. 내면의 아이라 그렇거든. 근데 내 안에 있는 청소년은 억압당하고 두려움에 떨고 혼란스럽던 아이야. 그러니까 내 속에 있는 상처 받은 아이가 그동안 위로받지 못하고 생활 속에서 인격으로 굳어져 버린 거지. 그래서 강민의 아버지도 아마 어려운 배경에서 자랐고, 그런 모습이 자기의 인격 속에서 굳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요즘 내 속에 있는 아이를 위로해 주고 있어. 아마 어른들 마음속에도 상처 받은 그때의 또 다른 아이가 있을 거야. 강민의 아빠도 그렇고 인영이 아빠도 그렇고. 아빠가 그 마음속에 있는 아이를 위로하고 서로 화해해야 돼. 우리가 그걸 잘 몰라서 그런데, 어렵겠지만 아빠의 그 마음도 이해를 해주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인영이도 소통하려고 해야 돼. 그러니까 아빠를 이해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거지.

오늘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보듬다
김은기 제가 작가님이 쓰신 책을 대부분 읽었는데 책이 다 열린 결말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옥수 이유가 있어. 지금 이옥수 작가가 쓰는 소설들을 보면 보통 우리의 문제를 이야깃거리로 만들고, 담론화하자는 취지가 많아. 가정폭력 중에 형제자매 간의 폭력이 네이버에서 2만 건 이상이 올라와. 이런 것들이 부모님들 자존심 때문에 가려졌던 폭력이잖아. 이런 걸 끄집어내서 얘기하자는 거지. 『키싱 마이 라이프』에서는 우리 청소년의 성문제를 이야기하고, 『킬리만자로에서, 안녕』에서는 한국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죽어 가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해 이야기해. 담론의 결과는 작가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몫이야. 독자의 몫이고, 함께 모여서 토론하는 사람들의 몫이지. 그래서 내가 어떤 결과까지 제시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담론화를 위한 문학이기 때문에, 일단 열어 놓고 그 나머지 부분들은 독자들이 결론을 내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구성한 것이지.

이예원 작가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에서 안양 그린힐 섬유 봉제공장 사건, 『내 사랑, 사북』에서는 광산촌 이야기를 소재로 쓰셨는데, 이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소재들을 쓰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옥수 조금 지나간 이야기라서 이슈보다는 인권이라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어. 너희들 그거 알고 있니? 19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 알고 있지? 그 딱 한 달 전에 사북 사태가 일어났어. 그런데 광주민주화운동은 잘 아는데 사북 사태는 너희들이 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지? 그 이유가, 광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처럼 훌륭한 어른들이 리더를 하고 계셨는데, 사북에는 리더가 없었어. 자체적으로 모두가 ‘너무 힘들어요, 우린 이렇게 인권 유린을 당하고 살아요.’ 하면서 일어난 거지. 그분들이 누구냐면 자기 이름자도 제대로 못 쓰는 무지렁이 간부들이었어. 그러니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생각해봐, 그 훌륭한 리더들이나 이런 간부들이나 인권은 똑같아. 그런데 힘들고 어렵고 못 배웠다고 조명 받지 못하고, 그 사람들의 민주화 운동이 사라지면 안 되잖아. 그리고 그린힐 봉제공장 사건도 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사건이야. 어른들의 돈벌이를 위해서 아이들의 생명이 희생된 이야기잖아. 나는 이슈보다도 이 세상 누구도 인권의 침해를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예원 『내 사랑, 사북』에서 배경을 옛 사북의 탄광촌으로 하셨는데, 이 책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이옥수 1980년도에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어. 어느 날 아침에 신문을 펴봤는데 놀라웠어. 보통 신문의 앞부분에 큰 장면이 나오잖아. 근데 신문 한쪽이 백지로 남겨 있었어. 이상하지? 아침 신문이 왔는데 사고가 난 거야. 신문의 그 하얀 여백이 너무 궁금했어. 그래서 나중에 내가 그걸 추적해봤더니, 그 여백 부분에 사북 사태를 실었던 거였어. 그랬는데 아침에 위에 계신 어른들이 빨리 지우라고 했던 거야. 아침에 신문을 내보내야 하니까 급하게 지운 거지.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어. ‘아, 어른들은 정말 제대로 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리한 대로 끌고 가는 게 있구나.’ 그래서 내가 이런 것을 꼭 너희들한테 일러야겠다고 생각했지.

장인영 『킬리만자로에서, 안녕』에서는 요즘 학생들보다 학구열이 더 심한 학부모, 헬리콥터 맘이나 자기 꿈보다는 엄마들이 원하는 성적에 맞춰서 길을 가는 학생들의 얘기가 많이 나왔잖아요. 요즘에 그런 사람이 많은데 그런 학부모들과 학생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이옥수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행복해야 돼. 부모라도 내 행복에 관여할 수는 없는 거야. 꼭 무슨 좋은 자리에 취직하는 게 다 행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잖아. 살아보니까 가장 행복할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인 것 같아. 정말 그건 돈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야. 선생님은 아주 강하게 얘기하고 싶어. 남의 행복에 간섭하지 말라고. 부모라도 그 권리는 없어. 너희들 인생이잖아. 너희들 인생인데 부모가 자기 안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어서, 그게 사랑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아이에게 자기가 못한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하는 얘기는, 물론 우리를 위해서 다 좋은 얘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일들도 있거든. 너희들도 무슨 일을 하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가장 좋아하는 일, 그 일을 해야 돼. 그걸 신중하게 찾고 아주 촘촘히 들어가야 돼.
윤혜린 근데 저 같은 경우에도 좋아하는 걸 못 찾았어요. 근데 다양한 경험도 해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희 교육이 학교에서 책 읽고 시험 보는 것 위주로 되어 있어서 아쉬워요.



이옥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틈틈이 압축해 나가야 해. 책을 통해서 보고, 호기심이 있는 것은 조금 더 연장해서 책을 더 찾아보고. 우리가 일일이 현장에 가서 만나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그 분야의 책을 통해서 좁혀가는 방법이 쉬워. 그래도 결정을 못하겠으면 관련된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그 사람을 만나. 어른들이라면 내 꿈을 위해서 만나자 한다면 싫어할 사람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구체적으로 묻는 거야. 신중하게 찾아가되 넓게 찾지 말고 좁게 찾아가야 된다는 거야.



윤혜린 『키싱 마이 라이프』를 읽으면서, 요즘 사회나 학교에서는 저희 청소년들한테 이성 문제를 외면하기를 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성장소설이나 작가님의 책 같은 경우에는 이성 문제나 임신 문제를 다루면서 긍정적으로 쓰시잖아요. 저는 그걸 어른들의 모순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작가님은 좀 진심으로 쓰신 것 같아서 생각이 바뀌긴 했는데, 작가님은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옥수 아예 드러내면 되는데,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꾸 빠져들게 만드는 것에서 문제가 발단하는 거야. 우리가 음지에서 그런 것들을 대하니까 편파적으로 되지. 음란 비디오 같은 건 장사꾼들이 돈 벌려고 자극적으로 만든 것들이고, 사실 성은 아름다운 거야. 선생님은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열어놔야 한다고 생각해. 사실 우리는 다 보잖아. 영화도 보고 다 접할 수 있는데도 이렇게 자꾸 감추다 보니 안 된다는 거지. 우리의 생물학적인 성을 인정하되, 자기의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유도해야 돼. 그리고 성교육을 해도 선진국처럼 구체적으로 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위급할 때 대처할 수 있도록 수행평가에서, 약국에 가서 콘돔 사오기 같은 것도 해야 돼.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을 때는 이걸 이렇게 사용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되고, 직접 시범도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해.

장인영 요즘 점점 폭력에 무덤덤해지는 우리 사회인들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이옥수 교감해야 하고 민감해야 돼. 우리가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면 타인의 문제가 결국엔 내 문제로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는 거거든. 우리는 한 배를 탄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폭력 얘기라면 나와 상관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 나한테 닥칠지 모르는 일이야. 피해든 가해든 이게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있는 거지. 어른들도 아이들의 폭력에 관해서 자꾸 학교폭력만 얘기하는데, 학교폭력이 근본 원인이 아니야. 이 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 너희들은 무관심하고 싶어 하지 않아. 친구가 아프면 달려가서 보고 싶어. 그런데 지금 제도가 너희들 전부가 1등을 하고 숫자만 높이고 살아가라고 하고, 그런 거 보지 말라고 하잖아. 이렇게 만든 게 결국 어른들이잖아. 이 무관심을 조장하는 무관심한 공동체로 살고 있는 모든 어른들은 정말 손들고 벌서야 돼. 근데 어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도 어른들은 이미 더께가 앉고, 골이 너무 깊어져 잘 안 들어. 그런데 너희들은 듣는단 말이야.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폭력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에 너희들한테 호소하러 다니는 거야. 우리는 정말 누구도 아프게 하면 안 돼.

“나를 키운 건 오로지 독서”
김은기 작가님께서는 10대들의 시점에서 쓰신 책이 많은데요. 작가님께서 10대들의 언어를 표현하시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표현을 위해서 도움을 받은 분이 계신지요?

이옥수 도움은 안 받아, 내 일상이니까. 왜 일상이냐면 나는 늘 청소년들하고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 집 거실이 13년 전부터 동네 아이들 글방이었어. 아이들과 독서운동 하느라고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혔어.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 오는 친구들이 많아. 그리고 내가 중・고등학교 강연을 많이 가는 편이야. 내가 지금 대학에 강의를 나가니까, 대학 강의 가는 이틀 빼놓고는 거의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야.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또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 그러니까 내 물리적인 나이는 너희들보다 더 많지만, 정신적인 연령은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내 삶이니까 따로 아이들을 만나서 취재를 하는 건 없어.

윤혜린 학생들이 집으로 오면 학생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그러셨어요?

이옥수 고민만 들어주는 게 아니야. 골치 아픈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선생님, 밥 줘요, 배고파요.” 자기가 계란프라이를 해서 김치 넣고 밥 먹는 애들도 있고. 또 어떤 애들은 만날 배 아프다고 조퇴해서 우리 집 거실에서 책 읽고 있고. 내 친구들이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냐. 근데 작년에 13명이 대학을 갔다. 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갔고, 서울대도 두 명이나 갔어. 그런 아이들이 그래도 책을 꾸준히 읽으니까 되더라. 학원도 안 다니고 책만 읽은 아이들 13명이 작년에 대학에 갔어. 꿈을 향한 지름길은 독서밖에 없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2학기부터 학습 난이도가 어려워져. 그런데 책을 읽어 온 아이들은 2학년부터는 쭉 올라가. 내신에만 매달리는 애들은 2학년 되면 사고력이 부족해. 그래서 책을 읽은 아이들하고 안 읽은 아이들하고 거기에서부터 달라진다.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사회를 살아나갈 때 책을 안 읽는다면, 어른들 사이에서는 더 차이가 나겠지. 인생에 대학이 다가 아니잖아. 그건 하나의 거쳐 가는 과정이고 앞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려면 책을 읽어야 돼.

김은기 작가님께서는 많은 책을 내셨잖아요. 글이 항상 잘 써지는 것만은 아닐 텐데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세요?

이옥수 나는 슬럼프가 없어. 많이 읽거든. 그만큼 입력이 되니까 출력이 되는 거지. 이렇게 밖에 나오는 날은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어. 그렇게 읽기 때문에 슬럼프가 없다는 거야. 세상에 새로운 게 없잖아. 작가도 새로운 걸 해내는 힘은 없어. 책이라는 게 세상에 많은 지식과 정보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조합해서 상상으로 나타내는 거잖아. 그렇기 때문에 많이 읽는 게 중요해. 읽는 것 외에는 없어. 글이 안 풀릴 때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도 읽는 걸로 다 해소가 돼.

윤혜린 작가님께서는 책을 이렇게 많이 읽으시는데 독후 활동을 하시는 게 있으세요?

이옥수 그건 사람마다 성격이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다를 텐데, 나는 독후활동을 무척 싫어해. 나는 그냥 읽어. 읽고 나 혼자 생각하고, 읽어 놓으면 나중에 내 생각으로 나오고. 일일이 좋은 걸 적는 것은 안 해.

윤혜린 기억력이 좋으신가 봐요?

이옥수 아니야. 내가 그걸 그대로 갖다가 쓰는 게 아니잖아. 음식을 먹고 나서 영양가를 비타민이 할 일, 무기질이 할 일 이렇게 나누지 않잖아. 그냥 조합해서 우리 몸을 성장시키고 우리 생각을 키운 것처럼 그냥 나도 책을 먹어. 먹고 나서 그게 그냥 조합해서 또 다른 나만의 어떤 걸로 나오는 거지. 그걸 그대로 외워서 쓰고 이런 건 없어.

장인영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신 게 있으세요?

이옥수 내가 굉장히 재수 없는 작가야. 내 작가 친구들이 나보고 그래. 나는 등단은 92년도에 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2002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어. 굉장히 늦깎이 작가인데 노력한 게 별로 없어. 노력한 게 없고 그냥 계속 책을 읽었어. 어릴 때 산골에 사느라 책이 없어서 매일 만화방에 가서 10원 주고 만화 빌려 보고 무협지 빌려 보다가 좋은 책을 보니까 너무 욕심이 나서 열심히 읽었거든. 읽다보니까 나도 글을 좀 써볼까 하고 썼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작가가 되어 있더라고. 내 어릴 때 꿈이 뭔지 아니? 기차타고 서울에 가는 거였어. 산골에서 사니까 기차 타고 서울을 가야 뭐든지 할 수 있고, 볼 수가 있다고 했어. 그래서 어릴 때 항상 꿈이 기차 타고 서울 가는 거였지. 그 꿈은 이루었지. 너희들이 보기에는 찌질한 꿈 같지만 그게 꽤 원대한 꿈이야. 선생님이 30개국 넘게 배낭여행을 다녔거든. 어릴 때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이 『아라비안 나이트』였어. 그 책을 읽고 세계여행에 대한 꿈을 키웠던 거야. 나도 미지의 타국에 가서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다. 그게 책이 바탕이었던 거야. 서정주 선생님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하셨는데, 이옥수 작가를 키운 건 팔 할이 아니라 만땅이 독서였던 게 아닌가 싶어. 만약 내가 죽어서 표본을 해서 어딘가에 전시를 한다면 위에다 ‘독서’ 두 글자만 써놓을 거야. 읽는 자를 당할 순 없어. 지금 여기서 선생님 키가 제일 작아, 너희들보다 더. 그런데 당당해 보이잖아. 내가 안 읽었다면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고 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겠니.

김은기 앞으로 쓰시고자 하는 책이나 향후 출판 계획을 알고 싶어요.

이옥수 지금 쓰는 책이 있는데 얘기를 해주면 큰일 나는데… 작년인가 언제 집 고쳐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지. 선생님이 TV를 잘 안 보는데 마침 장애인 부부를 둔 아이의 집을 고쳐주는 부분을 보게 됐어. 거기서 고치기 전과 후의 집을 보여주면서 애한테 막 묻더라고. 어떠냐고 물으니까 애가 무척 좋아하는데, 그걸 보는 순간 선생님이 미치겠더라고. 집을 고쳐준 건 고마운 일인데, 그 어린애한테 ‘좋아요?’ 물으면 물론 좋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그 아이의 삶을 생각해 봐야지. 그 아이도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지 않겠니? 친구들한테라도. 부모가 장애란 걸 그렇게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겠니? 그걸 보니까 우리가 정말, 그 아이는 날마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잖아. 정상인 가정에서 정상인 부모 만나서 집 안 고쳐주고도 잘 살아가는 애들이 천지인데. 집에 와서 그렇게 얘기하면 아이는 상처가 된다는 거지. 어른들은 그런 걸 너무나 생각을 못하고 살아. 자기들이 그 결과물만 나타내려고. 그런 걸 생각하다가 심청이가 떠올랐어. 물론 소설 속이지만, 옛날에 심청이가 동네 사람들 모두의 묵인과 방조 하에 죽게 되잖아. 그 어린 아이가 죽는다는 걸 동네 사람들 모두 알았는데 누구 하나 그 소녀를 구해준 사람이 없다고. 그 아이를 효녀로만 생각한 거야. 근데 심청이는 날마다 죽고 싶었던 애였거든. 소망이 없잖아, 사실. 아버지를 위해서 매일 밥을 얻으러 다니고 삯바느질을 하고. 끝이 없는 일이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그 심청이와 그 하우스 고쳐준 아이를 보면서 우리 시대가 너무나 아이들에게 심청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착하기만 원한다. 보통 그렇잖아. 장애인 부모를 두고 잘 살아가면, “쟤 정말 착해. 부모가 그런데도,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근데 걔가 착한 거냐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거지. 그래서 우리 시대가 원하는 심청이, 그건 아니다. 그 이야기하려고. 우리 아이들에게 심청을 원하지 마라.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의 생각과 삶이 있다. 이거 이야기해 주려고 해. 현대판 심청이 이야기.

김은기 기대가 많이 돼요.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고 싶어요.

학생들 귀한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옥수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산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한국문인협회 문학작품 공모 최우수상, KBS 자녀 교육체험수기 대상을 비롯해 2004년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다룬 『키싱 마이 라이프』와 80년 사북 민주화 항쟁을 다룬 『내 사랑, 사북』 그리고 열일곱 세 소녀의 꿈과 인생을 담은『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각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으며,『푸른 사다리』, 『킬리만자로에서, 안녕』, 『개 같은 날은 없다』등 청소년 소설과, 『아빠, 업어 줘』, 『똥 싼 할머니』, 『내 친구는 천사병동에 있다』 등의 장편 동화, 저학년을 위한 『엄마랑 둘이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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