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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저자 - 짙게, 세상과 소통하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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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7 22:10 조회 7,9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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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소통하다
왕지윤
반갑습니다. 추운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여울 예, 반갑습니다.
왕지윤 작가님께서 최근에 내신 책 『소통』과 제일 인지도가 높은 『시네필 다이어리 1, 2』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여쭙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내신 책이 『소통』입니다. 사실은 예전 책에서도 이 단어에 관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화두라고 할까? 이 단어를 마음속에 담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정여울 어떤 말을 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고민해 온 것 자체가 소통의 문제예요. 소통하려고 하는 의지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잖아요. 부모님한테 내가 뭘 원하는지 설득하는데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과 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공을 독문학에서 국문학으로 바꿀 때, 모국어로도 이렇게 소통하기가 어려운데 외국어로는 어떻게 소통을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국문학을 전공해보니까 모국어라서 더 쉬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우리가 쓰는 언어는 모두 그 언어만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영화나 문학도 더 넓게 보면 소통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요즘은 많이 들으려고 해요.

듣는 동안에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눈빛이나 분위기들이 모두 소통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인간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처절한 몸짓을 하는 것 같아요. 넓은 의미의 소통을 위해서 언어학에도 관심이 있고 언어 외적인 것도 공부해 보고 싶어요. 넓은 의미의 소통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정움 저는 『소통』이 참 좋았어요. 쉽게 읽히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의 감정, 느낌 등이 잘 전달되어서 좋았어요. 저는 전화 통화를 하는 것보다 문자를 많이 보내는 편인데요. 문자를 보낼 때 이모티콘을 많이 써요. 그러다보니 문자에 이모티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도 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 내려면 한계가 있어서 이모티콘을 쓸 때가 있어요. 그런데 책을 쓰거나 서평을 쓸 때는 이모티콘이 허용이 안 되서 적절한 표현이 곤란할 때도 있어요. 아이들도 그럴 때가 있을 듯해요.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할 때, 이모티콘 사용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정여울 이모티콘을 쓰느냐 안 쓰느냐보다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지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듯이 소설을 많이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설에는 사투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이 살아 있었는데 지금은 언어가 미디어 중심이라서 미디어에서 안 쓰는 언어가 죽는 거예요. 좋은 언어 교육을 위해서는 다양한 연령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좋아요. 연배가 높은 작가의 작품에는 백 년 전의 언어들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고, 젊은 작가들은 이모티콘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죠. 어른들과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이런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이모티콘 말고도 저는 외래어도 적극적으로 한국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래어도 한국화 되면서 새로움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어는 계속 개발되고 신조어가 창조되는데, 그런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언어의 다양성이라든지 세대적, 지역적인 언어의 다양성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의 주요 소통 방식에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한글을 다른 이모티콘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과 이모티콘으로 글쓰기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금지하기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찬미 『소통』을 읽으면서 걸그룹 문화라든지 광고에서 다루는 장례나 죽음, 드라마홀릭 등에 대한 지적들은 평소에는 어렴풋하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예민하게 감지해 내고 글로 자세하게 풀어쓰는 그런 감각들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는 건가요?
정여울 모든 게 비결이고 아무 것도 비결이 아닌 건데, 관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끈기가 별로 없어서 뭔가 관찰하고 묘사하는 걸 잘 못해요. 근데 미디어를 그나마 관찰할 수 있는 건 미디어가 조금만 재미없어도 채널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도 상투적이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 때문에 못 볼 수도 있는데, 그걸 잠깐 참으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도 있고, 그 불편함을 응시하게 돼요.

왜 불편할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죠. 그렇게 하다보면 그것은 나만의 잘못도 아니고 미디어만의 잘못도 아니죠. 제가 일부러 그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봐야 되겠다고 하며 보는 건 아니에요. 제가 비판하는 모든 것들은 제 자신에게도 있는 욕망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떳떳하게 쓸 수 있는 거예요.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안 그러려고 노력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우리는 안 그러는 게 나은 것 같다.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에 조금씩은 저항하는 법을 우리 스스로 개발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글을 쓰는 것에 비해 실천하는 것은 너무 적은데 점점 더 제가 쓰는 만큼 실천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결국에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미디어와 현실과 저 자신 그리고 문학, 영화 같은 것들까지 합쳐져서 마음속에서 항상 고민의 기차가 막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왕지윤 『소통』이 쉽고 재밌기는 한데 전작에 비해 너무 가벼워진 느낌도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여울 책은 어떤 편집자가 만드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미디어 아라크네』는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다뤘는데, 편집자가 인문학적으로 미디어에 접근하길 원해서 굉장히 무거워요. 『소통』은 편집자가 조금 어려운 것 같은 부분은 다 빼자고 하더라고요. 모든 글이 다 책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내고싶어도 출판사에서 아니라고 하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소통』은 기존의 제 글을 좋아하셨던 분들이 보면,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왕지윤
지향점을 바꾼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여울 그런 건 아니에요. 저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제 어머니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항상 제 책을 보시면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하셨어요. 그런데 『소통』을 읽으시고는 처음으로 이건 이해가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동생들도 쉽고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제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변심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저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걸 편집부에서 끌어낸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이찬미 『소통』 뒷부분에 에세이처럼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어서 좋았어요. 책에서 보면 예전에는 선배가 책을 뜨겁게 추천해주고, 책에 직접 글을 써주는 대학 문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런 문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정여울 대기업에 다니는 제 친구들을 보면 학교 다닐 때 취미도 많던 친구들이었는데, 대부분 못하고 살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소비로 대체하려고 하는데, 소비로 대체가 안 되거든요. 소비는 일회적인 쾌락은 크지만, 지속시키는 게 어려워요. 뭔가 지속이 되는 만족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 느낌을 나눌 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사람들을 권태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사유를 하게 하면서 건강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작은 모임들이 많아져야 해요. 학생들 같은 경우, 시험을 위한 스터디를 하더라도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영화를 본다든지 아니면 스터디와 상관없는 다른 콘텐츠를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상에서 약간의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문학비평을 하면서 보면 모였을 때 분위기가 가장 좋은 게 낭독회였어요. 낭독을 하면 누가하든 어디서하든 분위기가 다 좋더라고요. 낭독의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고, 소설을 읽든 시를 읽든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작은 모임들을 지속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와 철학으로 말 걸기
이인문
보통 영화를 소개하는 책을 보면 영화와 작가 혹은 영화와 책 등 하나 정도만 엮는데, 『시네필 다이어리』를 읽다보니까, 하나의 주제 아래 영화 소개를 비롯해 여러 명의 작가와 여러 권의 책을 엮으시던데요, 그 많은 책은 언제 그렇게 다 읽으시고 내용들은 언제 다 요약을 해놓으시고, 어떻게 녹여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여울 저의 삶을 바꾼 책이 『시네필 다이어리』예요. 제가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기획을 하고 글을 쓴 건 『시네필 다이어리』가 처음이에요. 제목과 콘셉트는 제가 다 잡았어요. 1권은 거의 매일매일 썼어요. 제가 비정규직이어서 매일 출근하는 것을 몰라요. 그런데 이 책을 위해서 매일 쓰고 집중력 있게 했어요. 그동안 제가 목적의식 없이 봤던 드라마나 영화들이 한꺼번에 생각이 나더라고요. 너무 많이 생각이 나서 잘라내느라 힘들었어요. 요즘에는 재미있게 본 영화라도 1년이 지나면 잘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영화를 찾기 힘든 것 같아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시네필 다이어리』에는 옛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영화들이요. 쓰면서 만화나 드라마도 생각났지만 되도록이면 문학과 영화, 철학으로 한정했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축적되면서 그 안에서 숙성되고 발효되는 기억들이 글쓰기라는 계기를 만나서 폭발하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저는 평생 스승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책에 나오는 모든 텍스트들이 제 스승이었던 것 같아요.

이인문 『시네필 다이어리』를 매일 쓰셨다고 하셨는데, 여러 영화를 엮어 내시고 주제도 잡고 하시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셨을 텐데요, 하루 일상이 어떠셨는지 참 궁금합니다.
정여울 그게, 어떤 날은 잘 되고, 또 어떤 날은 한 줄도 안 써져요. 그게 글쓰기잖아요. 어떤 날은 삼일 치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는데, 거의 대부분은 매일매일 썼어요. 그래서 연재 분량을 맞췄어요. 그런데 글마다 패턴이 달라요. 한 번에 생각이 나는 콘셉트가 있고 또 한 페이지 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마음을 놓고 관련 책을 뒤져본다든지 하면서 스스로 쉼을 뒀어요. 예전에 주로 평론을 쓸 때는 그 텍스트에 대한 부담감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네필 다이어리』는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썼어요.

내 생각이 가는 대로 계획 없이 따라가 보자는 생각으로 썼어요. 사실 많이 놀아야 글도 나오거든요. 걷기도 하고 상관없는 영화도 보고 그랬어요.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들을 좀 했어요. 그러면 머릿속에 여백이 생겨 쓸 수 있어요. 쓰는 동안에는 다른 영화도 많이 보고 명상도 많이 하고 글쓰기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이찬미 저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리뷰 같은 것을 많이 찾아서 읽곤 해요. 『시네필 다이어리』는 영화를 철학과 관련지어서 색다르고 깊이 있게 다가왔어요. 글을 쓰시면서 철학사상과 영화를 연결했을 때 그게 한 번에 자연스럽게 떠오르셨는지요?

정여울 한 번에 떠오른 경우는 적어요. 쓰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처음 쓸 때에는 독자들이 많이 봤을 것 같은 영화를 중심으로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로 쓰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다 해보니까 어떤 경지에 오른 영화들과 어떤 경지에 이른 철학은 어떻게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철학 자체도 삶을 바라보는 사유의 체계잖아요. 그것이 정말 어떤 경지에 올랐다면 어떤 영화든 철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았죠. 그 철학이 이 영화를 그냥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저라는 프리즘이 사이에 끼어 있는 거죠. 저의 관점이 섞이니까 조금 더 과격하게, 정말로 상관없는 영화일지라도 연결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직관적인 느낌으로 어울릴 것 같은 것들끼리 연결했던 것 같아요.

왕지윤 경계를 허물어 보겠다거나 새로운 것을 연결해 보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늘 있으신지요?
정여울 저 자신도 누구랑 있는가에 따라 다르더라고요. 그 모습들을 정리해서 본다면 완전히 다중인격이겠다 싶어요. 그런데 칸트가 말한 것처럼 현대인들은 문명사회에서 연기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공간이 달라질 때마다 사람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역할을 하는 거지요. 텍스트를 연결시키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를 연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소심해서 비슷한 점이 있는 것만 연결시키지만 조금 공부를 더 해서 과감한 연결을 해 보고 싶어요. 동서양을 연결한다든지 아니면 수천 년 차이가 나는 텍스트를 연결하든지, 아니면 음악과 미술처럼 장르 자체가 다른 것으로요.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비춰주는 각도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 앞에서는 녹음기가 되고 싶고 또 어떤 사람 앞에서는 카메라가 되고 싶은 거예요. 항상 우리가 피사체만인 것은 아니잖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불투명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지요.

정움 『시네필 다이어리』 1권의 맨 처음에 나오는 게 <색, 계>라는 영화잖아요. 이 영화를 맨 처음에 넣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남자고등학교에 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 소개를 해 주고 싶은데 19세미만관람불가이고, 야한 장면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소개하기가 좀 애매하더라고요. 혹시 아이들이 본다면 영화를 음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책의 처음에 넣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정여울 예,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이 영화가 야한 장면만 알려져 있고 진짜 본모습은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원래 갖고 있는 장점이 많은데 미디어가 주목하는 것은 정사 장면이어서 이 영화의 진면목에 더 애정을 갖고 있었어요. 내가 느끼는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 영화가 <색, 계>였어요. 저도 처음엔 고민을 좀 했어요. 두 권으로 기획된 책의 1권 첫 번째인데 19금을 넣어도 될까 하는. 그런데 이 책 때문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초대를 많이 받았어요. 초대 받았을 때 19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저 분들은 이해를 해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별로 신경 안 쓰는 세상이 드디어 왔구나, 많이 좋아졌구나 생각했어요.

떠남, 만남 그리고 글쓰기
왕지윤
어렸을 때 책을 접하는 환경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정여울 집밖에 없었어요.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어린이를 위한 책이 다양하지 않았어요.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욕을 먹으면서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저에게 책 사주시는 데 쓰셨어요. 친구 집에 가도 그 친구보다 그 친구의 서재에 관심이 있었어요. 저는 친구집에 있는 책이 너무 부러운 거예요. 그래서 친구랑 안 놀고 그 책 읽고 있고 그러면 친구가 되게 싫어하고 그랬어요. 제가 책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동네도서관에 다녔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은 친구 집, 피아노학원 등 아주 제한된 제가 갈 수 있는 공간에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아요.

이인문 많은 시간들을 책 읽고 산책하시는데 쓰시는 것 같은데, 또 다른 취미가 있으신지?
정여울 어렸을 때는 음악이 하고 싶어서 피아노를 쳤었는데, 음악을 전공하기에는 끈기가 부족한 거예요. 언젠가 제가 힘들고 슬퍼하고 있을 때 남편이 디지털피아노를 사줬어요. 어렸을 때는 아날로그 피아노가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으니까요. 그때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내내 쳤었어요. 지금은 한 달에 한두 번 치고 있는데 그래도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피아노든 뭐든 음악이 취미가 돼서, 글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뜻밖의 타인과 만나는 소통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을 늘 생각을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취미생활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어렸을 때 포기했던 음악을 조금 해보고 싶어요. 제 글쓰기와 연관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왕지윤 처음 평론책을 내신 다음, 사람들 대하기가 조금 어려워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한참 활발한 활동을 하실 때 그런 마음이 드셨다는 게 조금 의아한데요,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정여울 책을 내기 전과 후가 정말 달라요. 책을 내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독자들의 기호에 맞게, 말을 다듬는 과정을 거치면서 설레고 떨리기도 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나면 다른 두려움이 찾아와요. 정말 최선을 다해도 지나고 나면 그게 최선이 아니잖아요. 나는 계속 변하니까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내느냐에 따라 저자를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두려웠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바꾸면서 규정되지 않은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지금도 글 자체가 어떤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내 자신도 변하고 읽는 사람도 변할 수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책을 낼 때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하고 항상 아쉬운 거죠.

왕지윤 고민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고 보면 되겠네요.
정여울 예, 그렇죠. 책임감도 더 커지구요.
왕지윤 다양한 미디어를 다루면서 문화비평가라고도 소개가 되시던데요, 미디어에 따라서는 시의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해서 1, 2년만 지나도 굉장히 오래된 얘기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자리매김이 된다면 소통이 오기도 할 것 같은데, 허탈하시기도 할 것 같아요. 열정이 많으셔서 계속 이런 것들을 하실 것 같긴 한데 어떠세요?

정여울 그런 딜레마가 열정을 위축시킬 때도 있어요. 제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책은 유행을 안 타니까 책에 대해서만 쓰고 싶은지. 저는 아니라고 해요. 그러면 미디어에 대해서만 쓰고 싶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둘이 어떻게든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낸 책들을 보니까 미디어에 대해서 쓴 책들이 문학에 대한 것보다 더 많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그런데 미디어에 관련한 글쓰기가 문학을 하는데 도움이 됐고, 제가 문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미디어를 조금이나마 새롭게 보는데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서평으로 시작을 했는데, 서평을 쓸 때 사람들이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미디어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미디어가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척 하지만 실은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광고, 영화, 드라마 등의 영향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완전 무시한다면 저 자신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영향을 글쓰기에 조금씩 녹여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왕지윤 대학교에서 강의도 계속 해오셨고, 고등학교에서 강연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학생들을 만나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여울 강의라는 게, 아이들은 일단 선생님이 자기한테 학점을 주는 기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한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나열하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이게 대결구도가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이해를 시키고, 소통을 하려고 작은 노력들을 하면 분명히 보상이 있더라고요. 애들한테 고민이 있을 때, 글쓰기가 막힐 때 언제든지 이메일을 보내라 해요. 처음엔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안 해요. 그런데 이메일 답장을 빨리 해준다든지, 좀 더 친절하게 수업에서 말하기 힘든 것들도 얘기해주면 확실히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런 일대일 대응으로 친밀성을 쌓아가는 것이 공동체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왕지윤 카페보다 그런 이메일이나 개인소통에 더 집중하실 생각이신가요?
정여울 예, 저는 개인 소통을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 거 같아요. 당분간은. 제가 지금 잘 못하고 있는 게 블로그나 카페 관리거든요. 제 글쓰기 캠프도 있는데 전혀 관리가 안 돼요. 그걸 나중에는 좀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요. 그러려면 제가 좀 부지런해야 하는데, 사실 글쓰기와 관련 없이 그냥 제 삶을 살 때는 진짜 게으르고 좀 금치산자거든요. 그런데 블로그 같은 일인 미디어를 잘 관리하려면 재능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사진도 많이 찍어놓아야 하고, 무엇보다 매일매일 업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그런 소통을.

정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안 하세요?
정여울 페이스북도 있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들어가 봐요. 제 싸이월드나 제 페이스북은 다 남들이 만들어 준 거예요. 원래 없는데 자꾸 만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만들어 놓으면, 자기들끼리 글을 막 써놔요. 싸이월드도 초기에는 좀 열심히 했어요. 근데 진짜 힘들더라고요. 제 성정에 안 맞더라고요.
왕지윤 성정을 떠나서 사실은 너무 많은 곳에서 연재를 하시던데요,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신 건 아니겠고 오랫동안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시고 끊임없이 해 오셨던 것 같은데, 어지간한 열정과 관심이 아니면 하기가 힘드셨을 텐데요.

정여울 벤야민이 말한 산책자 있잖아요. 항상 어떤 뚜렷한 목표 없이 걸어 다니면서 사물을 관찰하며 자신의 사유와 연결시키는 그런 산책자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에요. 저는 1년 동안 열심히 하다가 한 2주 정도는 빚을 내서라도 해외여행을 가요. 여행은 비전을 탐구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비전을 생각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글만 쓰고 원고에 매몰된 삶이 될 수 있는데, 여행이 조금씩 새로운 글쓰기를 실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 놓고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놓죠. 사실 논문도 쓰고 싶어요. 학위 논문 같은 것 말고요. 논문만의 기쁨이 있거든요. 정말 이 세상에서 열 명, 많으면 백 명 정도밖에 안 읽는 그런 글을 쓸 때 기쁨이 있어요. 한 명의 독자가 저한테는 천군만마인 그런 글도 있어요.

왕지윤 우리는 보통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데, 작가님은 직업으로 고민하고 봐야 하는 대상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시는지요? 직업이 아니었다면 마음을 놓고 바라볼 텐데, 그런 것들이 딱딱하게 다가오시지는 않는지요?
정여울 감정에도 체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감정의 체력이 좀 강한 것 같은데, 강한 게 조금 문제가 되기도 해요. 너무 많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받아들이려 했죠. 약간은 일중독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일과 휴식의 배분을 잘하려고 해요.

되도록 많이 놀자, 내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놀자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쉬는 것도 참 어렵더라고요. 여행은 어떤 때는 노동이기도 해서 정말로 감정이 쉬는 건 참 어려워요. 잠자는 것 말고 정말 감정이 쉬게 하려면 그것도 내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몽상하는 것이 제일 어렵죠. 요즘에는 그런 것들을 하려고 노력을 해요.
왕지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여울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씨네21>, <GQ>,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녀만의 생각들을 담은 저서로는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공저),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씨네필 다이어리 1, 2』, 옮긴 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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