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박지혜 충남 내포초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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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5-01-03 13:57 조회 152회 댓글 0건본문
기분 좋은 소란으로
내일이 기다려지는 도서관
박지혜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김상화 기자
매월 크든 작든 심상치 않은 이벤트가 열리는 곳, 그리하여 기분 좋은 소란이 끊이지 않는 곳. 충남 내포초의 책마루도서관이다. 지난해 열린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이곳은 교내에서 만든 자체 독서록을 일정 기준 이상만 쓰면 누구나 도서관 VIP가 된다. 재밌는 건 이들을 위해 학기말마다 열린다는‘ VIP 초청 행사’. 지난여름엔 시원한 아이스티를 타 텀블러에 담아 주었고, 겨울엔 붕어빵을 오븐에 따끈따끈 데워 선물했다고! 행사만 열리면 축제처럼 뽑기도 하고, 게임도 즐기며 선물까지 받아 가는 이 흥겨운 도서관에 혹자는 갸웃할지도‘. 혼자서 이걸 어떻게?’ 그 비책은 이번 인터뷰에서 확인하시길. 경력이 쌓일수록 권장도서 꾸리기보다 아이들 이름 한 번 더 불러주기가 중요함을 느꼈다는 박지혜 선생님. 그가 부단히 꾸리고자 하는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 재미있는 곳, 책을 읽진 않아도 무언가 할 게 있는 곳”으로서의 학교도서관에는 환영 받는 아이들 목소리가 높디높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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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도서관대회에서 내포초 도서관이 장관상을 수상했지요. 축하드립니다. 홀로 걸어오신 곡절의 시간이 있으셨으리라 싶은데, 첫 출근일부터 오늘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고 싶으실까요?
“사서교사, 사서 고생. 해 볼 만하다!” (웃음) 이 말이 제 첫 부임지의 두 번째 교장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일 건데요. 제가 2013년에도 홍성초에서 교육부장관상을 한 번 받았었어요. 그런데 수상 이후 계속 강의 요청이 들어오니까,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사서교사가 사서 고생을 한다.” 하시더라고요. 좋은 뜻으로요.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고생은 많았지만 그만큼 느낀 보람도 많아요. “사서교사가 있어 우리 학교 참 좋다” “사서교사가 있으니 역시 다르다” 하는 말들이 들릴 때죠. 사서교사가 없으면 교과교사가 학교도서관을 담당해야 하는데, 저희가 있으면 전문적으로 모든 걸 다 관리하니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니까요.
초년기에 가장 보람을 느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첫 부임지였던 홍성초에서 5년을 있다 보니 생긴 일인데요. 당시 저랑 똑같이 1학년에 입학했던 아이들은 5년이란 시간을 저와 함께한 거잖아요?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도서관에 자주 오게 되고, 저랑 소통하는 걸 보게 된 게 참 좋았어요. (기자: 그때도 동아리 운영을 하셨을까요?) 네. 제가 2009년 첫 부임이었는데, 5년 차였던 2013년 당시 교육부에서 주최하고 대구EXCO에서 열린 ‘대한민국 창의체험 페스티벌’이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서 열린 ‘독서PT대회’에 저와 1학년부터 함께해 5학년이 됐던 독서동아리 아이들이 나가서 은상을 탔어요. 그걸 준비하려고 모여서 밤까지도 부단히 PT연습을 했던 시간이 아이들한테도, 저한테도 큰 경험이 됐어요. 더욱이 기억에 남는 게, 제 결혼식이 그 대회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결혼식 전날까지도 아이들을 지도하고 식을 올렸어요. 대회 당일에는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시고요. 그 홍성초에 있었던 마지막 5년 차에 함께했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독서토론 동아리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실까요?
보통은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데요. 기억에 남는 게, 1학기 때 『블랙아웃』이라는 고학년 동화를 읽었는데, 이 책이 부모님이 출장 간 사이 갑작스레 나라에 일주일간 모든 전기가 끊긴 비상사태가 생겨, 주인공 남매가 아파트에서 살아남으려는 내용이에요. 남매가 돈이 없어서 여러 상황을 겪거든요?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한테도 “주어진 돈은 딱 5만 원. 마트에서 어떤 물건을 사서 5일 동안 버틸 것이고, 요일별로 뭘 먹을 건지 생각해 보자.” 하고 얘기를 나눠 봤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학생이 가장 현명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면서, 다 같이 ‘정말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인식했어요.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불시에 이런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한테 작게나마 상기시켜 줄 수 있었던 듯해요. 현실적으로 많이 와닿진 않아도, 우리나라는 전시를 대비해야 하는 나라니까요. 어제만 해도 그랬죠.1) 이 일도 연결지어서 5·18 관련 동화를 읽고 아이들하고 얘기 나누면 지금 상황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질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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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다음 날인, 2024년 12월 4일이었다.
선생님께서 독서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을 여쭈어요.
이건 경력이 쌓이며 바뀌었어요. 초반에는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걸 목표로 두는 독서교육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이만큼 독서하면 이렇게 글짓기 잘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 줘야 하는 일로 접근한 거죠. 그런데 저도 경력이 쌓이고, 아이도 낳아 기르면서 왜 ‘독서’에 ‘교육’이 붙었을까, 한번 돌이켜보게 됐어요. 사실 독서는 평생 해야 하는 습관 같은건데, 초등에서부터 ‘이 책은 꼭 읽어야 해.’ 하고 부담을 주는 듯한 거죠. 방학이면 항상 추천도서가 나오고, 학년별 권장도서가 나오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저도 그 흐름에 맞춰 살아왔었는데, 좀 지나고 나니 ‘이게 아닌데’ 싶었어요. 그냥 아이들이 책과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친근하게 여기고 좋아해야 하는데 여기에 ‘교육’을 붙이니까 모든 게 아이들에게 공부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그 뒤로는 도서관을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 재미있는 곳, 책을 읽진 않아도 무언가 할 게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일환으로 2023년에는 거의 매월 행사를 열었어요. 도서관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열어서 매달 소소한 만들기 활동을 했고, 2024년에도 계속 도서관 소식지 이벤트를 작게나마 열었어요. 책 안 읽던 아이들도 “어? 퀴즈 있대. 가서 풀자.” 하고 와서 보다 한 권 읽게 되는 거죠. 학교도서관은 아이들이 거의 처음 경험하는 도서관일 수 있으니 책 읽는 공간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은 가르치지만, 저는 도서관에서 영화 상영도 많이 하고, 수업 때 이야기하는 것도 크게 제재하지 않아요. (기자: 그럼 반면에, 학교도서관에서 꼭 지키도록 하는 원칙이 있다면요?) 도서관에서만큼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게 하려 해요. 사실 도서관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이 오지만 관심을 상대적으로 못 받는 아이들도 많이 와요.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최대한 반갑게 맞이해 주려 노력해요. 이름 한 번이라도 더 불러 주려 하고요. 아이들이 성적이 어떻든, 교실에서 생활이 어떻든 도서관 안에서만큼은 환영 받을 수 있게.
수업 노하우도 궁금한데요, 최근 진행한 수업 사례를 공유해 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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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학기에 2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업인데요. ‘충남온학력’이라고 해서, 충남교육청에서 기초학력 향상을 골자로 ‘온(ON)시스템’2)이라는 걸 개발해 특허까지 낸 수업 시스템이 있어요. 이 시스템의 하위에 여러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중 저는 ‘사고도구어’3)를 기반으로 문해력을 함양하는, ‘온생각’이라는 수업을 진행했어요. 사고도구어는 아이들이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는 단어를 말해요. 아이들 나이대별로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단어에 등급이 있는데요. 1단계가 초등 저학년, 2단계가 초등 중학년~고학년, 3단계가 중등, 4단계가 고등이에요. 처음엔 이 수업에 부정적이었어요. 어떻게 책에서 단어 추출한 걸로 ‘이 책은 몇 단계 책’이라고 등급화하는 게 가능한가 싶어서. 근데 사고도구어 목록에 속한 단어들 자체는 아이들에게 필요해 보였어요. 살펴봤더니, 1단계(초등 저학년) 단어가 총 43개더라고요. 그래서 2024년 2학기에 딱 2학년을 대상으로 하루에 네 단어씩 10차시 수업을 진행해, 총 43개 단어를 전부 익히는 수업을 진행해 봤어요. 수업은 일력의 형태로 ‘사고도구어 달력’을 만들어 실천했어요. 아이들한테 달력의 양식만 준 후 그 안에 사고도구어(단어)와 그 뜻을 쓰게 하고, 해당 사고도구어를 활용한 문장도 써 본 다음, 그 문장의 상황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 아래 그리게 했어요. 이렇게 10차시를 쭉 진행했더니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수업이 매시간 같은 형태로 가능하니까 교사로서 수업 준비 시간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었어요. |
2) 2023년 8월 충청남도교육청에서 처음 선보인 학습 시스템. 기초학력 종합지원을 위한‘ 온채움’, 한글 해득이 느린 학습자를 지원하는‘온한글’, 사고도구어를 기반으로 문해력 향상을 돕는‘ 온생각’으로 구성돼 있다.3) 사고 및 논리 전개 과정을 담당하는 단어들로서, 언어 능력 신장에 기반이 되는 단어
‘과정’과 ‘결과’라는 사고도구어를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유계영 작가의 『꼴찌라도 괜찮아!』를 읽어 줬어요. 책에서 주인공 기찬이는 운동회 속 이어달리기 주자로 뛰다가 사정이 생기는데요.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전부 읽어 주지 않고,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물음을 던진 다음, “오늘 배울 단어가 ‘과정’과 ‘결과’라는 단어야. 과정은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쓰이는 단어이고, 결과는 그 일이 끝나고 난 상태를 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설명해 줬더니 아이들이 ‘시험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거나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등 배운 단어들을 자신만의 예시로 바꿔서 표현하더라고요. 막 시작 단계라 점진적으로 보완되긴 해야겠지만 충남교육청에서 개발한 이 사고도구어 활용 온생각 시스템이 잘 활용되면 학생들 문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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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포초만의 특별한 독서 프로그램인데, 사실 이것 때문에 상을 받은 것 같거든요. ‘행복빛길’이라는 자체 독서록인데, 감상문 쓰길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담을 줄인 독서록이에요. 아주 간단해요. 그냥 ‘책 제목, 지은이, 한 줄 생각’만 적어요. 그래서 ‘재밌었다’라고만 적는 아이들도 있고, 책 속 구절을 발췌해 적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게 쓴 걸 갖고 학기말에 한 번씩 도서관 VIP를 뽑아 초청 행사를 열어요. VIP는 일정 기준 이상 독서록을 쓰면 선정돼요. 1~2학년의 경우 1년에 200권 이상의 독서록 작성, 대출 권수 50권 이상이 기준이에요. 학년별로 요일을 다르게 해서 초청하고, 아이들에게 초청장 티켓을 보내요. 그렇게 VIP들이 도서관에 오면 이들만을 위한 절대음감 게임, 룰렛 돌리기, 뽑기 같은 체험 코너가 있어서 참여만 하면 과자랑 선물을 받아 가요. VIP들을 위한 특별한 도서관 축제죠!
올해로써 충남에서만 3년 연속 장관상이 나왔죠. 충남의 독서교육 분위기가 궁금한데요. 관내 쌤들끼리는 어떻게 커뮤니티를 이루고 계신가요?
일단 충남독서교육연구회라고, 사서교사 전체가 들어가 있는 모임이 하나 있어요. 또 홍성 관내만 해도 초중등 합하면 열 분 정도 계시거든요? 이 선생님들끼리는 주로 단톡방을 많이 활용하시고, 그 안에서도 원하시는 분들은 전문적학습공동체(전학공)에 같이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그래도 충남에서는 독서교육을 항상 중시하고 예산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있어요. 그렇다 해도 선생님들이 각 학교에서 열심히 하시니까 이렇게 연속해서 상을 받는 건데요.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은 선생님이 더 많아요. 다들 겸손하셔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요.
초등에서 도서관 1인 운영 체제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신 바가 있을까요?
연속 수상의 쾌거에도 충남의 학교도서관 전담인력 배치율은 올해도 전국 하위권인 실정인데요. 교육 당국에 아쉬운 점은 없을까요?
학생 수에 비례해 교사도 줄고 있는 실정이지만 학생 수 대비가 아니라 학교당 인력이 배치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가 아니라 무조건 있어야 되는 사람으로요. 그래서 현장에 있는 분들이 ‘사서교사가 있으면 학교도서관이 다르다’뿐만 아니라,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 학교도서관 수업을 대부분 단독으로 많이 했는데요. 사실 활용수업을 학부 때 전공으로 배우기도 했고, 활용수업 사례가 많이 공유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초등에서 학급 담임선생님께 활용수업을 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교육과정상으로도 그렇고,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활용수업에 도전해 이론으로 배웠던 걸 실제로 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서평단 활동을 해 보고 싶어요. 책을 많이 보긴 하는데 기록도 중요하니까요. 사실 사서교사는 책에 대해서 전문가여야 되는데, (제가) 책제목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있더라고요. 일상 업무 중에는 책을 열어 볼 새가 없는 거죠. 이번 2025년에는 가능하다면 책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