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김화수 수원 신성초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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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7-03 09:07 조회 334회 댓글 0건본문
비빌 언덕이 되고자
열려 있는 도서관
김화수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앞서가는 사람이 뒷사람을 끌어주는 힘.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풀어 잘하는 것을 느슨하게 나눌 때 성장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해진다고 믿는 힘. 18년 차 학교도서관에서 분투해 온 김화수 사서교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근력이라고 말한 것들이다. 그는 지금의 문정과가 도서관학과로 불리던 시절을 통과해 서른아홉에 도서관 일을 시작했다. 쉽지 않은 세월을 통과했다. 열악한 처우 가운데서 퇴근 이후 각자도생이 아닌 같이 성장하는 방법을 사서 연구회에서 공부했다. 팬데믹 시기엔 사서교사로서 또 다른 출발선에 과감히 섰다. 지금은? 수원에서 독서토론을 잘 이끌기로 정평이 난 베테랑으로 활약 중. 독서교육 연구에 매진하는 동료가 많다며 자신보다 주변 사람의 뛰어남을 이야기하는 여유는 앞서 말한 마음의 근력을 꾸준히 기른 덕분일지도. 유리문을 활짝 열어놓아 모든 어린이를 매일 반기고 싶다는 그의 도서관에서 ‘우리’라는 단어의 효능을 익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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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국사서상(학교도서관 초등 부문) 수상을 축하드려요. 단상에서 상을 받으셨을 때 처음 일하던 그 시절이 스치듯 떠오르셨을 것 같아요.
2007년에 학교도서관에 발을 디뎠어요. 도서관학과(지금의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결혼 10년 차가 되던 무렵이었는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원일초등학교에서 채용 공고가 나서 지원을 했어요. 학교도서관 인력에 대한 처우가 지금보다 더 열악할 때였는데, 당시 직무 역할이 ‘교무 겸 사서’라고 기재돼 있었어요. 당시 저는 대학에서 교직 이수를 하고 정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었는데, 승산이 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편으론 교무 일이든 사서 일이든 워낙 경력이 없었기에 합격할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했어요. 당시 제 나이가 39살이었는데, 공고 알림에 취업 연령 제한이 적혀 있진 않았지만 경력이 전무하니 제 나이가 신경쓰였어요. 면접 당일 행정실에 와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저는 결혼한 이후에도 시립 공공도서관에서 뭔가를 배우거나 책 정리 자원봉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대학 시절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도서관을 여전히 가까이 두고 살아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의 위인전을 발견했어요. 여성이 전문직에 걸맞은 능력을 갖췄다 해도 1930년대에는 집에서 살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거든요. 이태영 변호사는 줄곧 자녀를 키우고 반려자를 내조하는 틈틈이 공부한 끝에 고등고시에 합격해 39살에 변호사가 되었어요(편집자 주: 이태영 변호사는 이화전문학교(지금의 이화여대)를 졸업 후 변호사가 된 이후로 불평등했던 가족법을 개정하는 데 일조했다. “암탉이 울면 새벽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암탉이 울면 새벽이 온다”라고 고쳐 연설하기도 했다). 그의 위인전을 읽은 제 나이도 서른아홉이었는데 ‘나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원일초에서의 근무는 어떠셨어요?
나중에 채용 후일담을 들었는데, 면접 본 사람들 중에 사서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했다고 하더라고요. 하루의 절반은 교무실에서, 절반은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며 동분서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나 싶어요. 근무하자마자 DLS를 접했는데, 제가 대학에서 배울 1980년대 후반 무렵만 해도 도서 정보를 분류별로 정리한 카드를 서랍에서 꺼내 책을 찾는 시스템이 익숙했거든요. 부기 학원을 다니며 타자를 배우다가 DLS 시스템을 처음 만나고는 막막했죠. 책자를 보며 DLS를 공부했고, 학교운영위 대표인 학부모와 소통하며 본격적으로 도서관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학부모들이 학교도서관 운영 전반에 대해 굉장히 좋게 평가한다면서 잘하고 계신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학교라는 곳엔 눈이 뒤에도 달려 있나?’ 싶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일 년가량을 근무하던 어느 날, 행정실장님이 ‘사서선생님 티오를 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으셨어요. 당시엔 각 학교마다 사서 티오를 내던 시절이었는데, 사서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어요. 꾸준히 일하다가 원천초를 거쳐 2020년부터는 기간제 사서교사로 가온초에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수원은 전국에서도 학령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인데, 지역 내 인프라에 따라 교육의 지원 정도가 다를 듯해요.
2019년부터 전 경기도교육감(이재정)께서 사서교사가 없는 학교도서관에 사서와 사서교사를 두는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그 무렵부턴 사서교사가 없던 자리에 기간제 사서교사를 뽑아 채우기 시작했죠. 2020년, 큰맘 먹고 기간제 사서교사에 도전했는데, 솔직히 계약 기간인 일 년을 일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거든요. 해마다 보따리를 싸고 풀어야 하는 격이니까요.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이 ‘당신 같은 사람이 (사서교사를) 안 하면 누가 하냐’ 하며 힘을 실어 주셔서 도전할 수 있었어요. 가온초는 제가 사는 집과 굉장히 먼 곳이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약을 선택했어요. 수원 지역은 원체 학교도서관계에서 선두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사서교사와 사서 배치율이 전국적으로 월등히 높아요. 수원시에 위치한 201곳 초중고 가운데 199곳에 사서교사와 사서가 배치돼 운영되고 있어요. 2024년 현재 기준 초등·중등 학교 각각 1곳만 미배치된 상황이에요(경기도교육청 평생교육과 주무관 답변). 수원은 도서관 프로그램이나 수업 연구에 대한 열정이 높아서 성과를 내기가 굉장히 치열한 곳이기도 해요. 웬만큼 해서는 (도서관 운영에 관한) 상을 받기 어려운 곳이라고 입소문이 나 있기도 하고요. 잘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거든요. 수원 지역 사서선생님들이 도서관 활성화에 기울이는 정성은 전국에서 최고이지 않을까 자부해요.
수원 신성초 도서관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국내 명화 전시를 비롯해 어린이의 동선을 고려한 도서 배치와 꼼꼼한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지역 내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자치구가 있기 마련인데, 학생들 복지에 대한 갈급함을 느낀 적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수원은 장안구, 권선구, 팔달구, 영통구로 이뤄져 있어요. 현재 제가 근무하는 신성초는 영통구에 속하는데 학교가 아파트촌에 위치하고 교육열이 높은 편이에요. 교육열이 높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사서선생님도 많아요. 숙지초에 계신 이문숙 선생님은 같은 연구회 소속으로 동료 사이에서 ‘영원한 멘토’로 불리는 분이에요. 선생님이 발령받은 숙지초에는 사서가 근무한 적이 없었대요. 학부모들 중심으로 학교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학부모가 아무리 잘해도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책 배열이나 서가 배치의 방법이 서투르게 보일 수 있잖아요. 학부모와 소통하면서 꾸준히 갈등을 극복하고 학생들과도 돈독하게 관계를 맺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원화 전시를 비롯한 독서활동을 개발해 활용하는 것은 물론, 도서관 운영에 도움이 되는 연수를 꼬박꼬박 찾아 들으시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셨어요.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널리 알려 학생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애써 오신 분이에요.
아주 많은 학교에서 근무한 건 아니지만 수원 지역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깨달은 건 ‘어린이들은 결코 못 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에요. 교육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학교에 재학하는 어린이들이 교육적 인프라가 적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보다 학습 이해도가 더 높을 순 있지만, 열약한 지역에 있는 학교 학생들도 다양한 교육적 경험치를 쌓다 보면 발전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몸소 경험했어요. 학교를 이동하고 난 후 같은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도 해내는 수준이 낮은 학생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왜 못하지?’ 싶었는데, 경험할수록 발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경험치를 더 많이 안겨 주는 것이 우리 과제구나.’ 싶어졌거든요. 이는 학교도서관의 역할이기도 한데, 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서교사 티오를 많이 내 줬으면 좋겠어요. 현재 기간제로 근무하는 사서선생님들, 젊은 청년 세대 선생님들이 공부한 게 아깝지 않도록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교육적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기회를 못 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부는 제일 중요한 인력 배치는 제대로 하지 않고 독서교육과 문해력이 시대 화두라는 말만 반복해요.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교육적 복지를, 사서교사들에에게는 인력 배치를 통해 가르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봐요.
동료들과의 커뮤니티도 끈끈하게 이어 오셨어요. 책모임인 ‘독서비밀조작단’을 비롯해 2012년부터 사서 연구회를 통해 교육현장 적용 사례를 나누고 자료집을 발간하고 계신다고요.
동아리를 이끄시면서 매해 달라지는 어린이의 문해력 수준을 어느 정도 체감하시나요?
원천초에서 3년간 토론 동아리를 이끌었는데, 가온초로 발령받은 당시에는 그런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더라고요. 아파트 등 새 건물이 들어서던 곳이었는데, 교육적 인프라가 굉장히 잘 갖춰진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 무렵 학교도서관에서 토론 동아리를 한다니까 학교 측에서 기뻐했어요. 가온초에서도 토론 동아리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북돋아 줬는데, 다른 학교 학생들과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자신감을 안겨 주고 용기를 줄수록 달라지는 어린이들을 발견했거든요. 문해력 차이를 극심하게 느끼진 못했고, 관심을 갖고 가르칠수록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의견을 활발하게 나누는 기회가 줄다 보니 학교에서 토론을 배운다는 것 자체에 희망을 갖는 분위기였어요. 열의를 불태운 건 학생들뿐만이 아니었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던 무렵에 할 수 있는 걸 마주해서인지 학부모들도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2023 학도넷 사례나눔 심포지움 당시 “진형민 작가는 독자들이 보내 준 편지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고 하셔서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라며 작가와의 만남 소회를 밝히셨어요.
당시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 지원 예산이 없었는데, 운 좋게 경기중앙교육도서관 학생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이 됐어요. 작가와의 만남으로 섭외하고 싶은 동화작가를 ‘진형민’으로 써서 신청했는데, 저희 학교에 작가님이 직접 와 주셨어요. 작가님은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작가님이셨어요. 실제로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작가님에게 보내 주면 하나부터 열까지 빠트리지 않고 다 읽어 준다고 하셔서 편지를 썼어요. 미리캔버스로 편지지를 만들어서 출력한 뒤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는 교실마다 전달했어요. 학급별로 모은 아이들의 편지를 작가님한테 드렸는데, 무척 기뻐하셨어요. 대개 작가와의 만남 전 여러 활동을 하기 마련이지만 편지 쓰기만큼은 지금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어요. 진형민 작가(『소리 질러, 운동장』, 『꼴뚜기』 등)를 비롯해 백혜영 작가(『외로움 반장』, 『우리말 모으기 대작전 말모이』)와의 만남도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한글날 무렵에 맞춰서 학교에 와 주셨고 인스타에 꼭꼭 눌러 쓴 어린이들의 편지에 감동을 먹었다고 올리신 글도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준 것 같아 저 역시 뿌듯했고요. 동시 쓰는 이안 시인(『기뻐의 비밀』, 『글자 동물원』 등)과 송현지 작가(『좋아 싫어 대신 뭐라고 말하지?』, 『열려라, 초등 문해력!』 등)와의 만남도 꽤 좋았어요. 이안 시인님은 어린이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송현지 작가님은 동화 구연을 하신 전력이 있어서인지 아이들 반응이 좋았어요. 어린이들 이야기에 경청해 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수원 하면 수원화성 등 문화유적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이와 갈 만한 문화공간도 은근히 많을 것 같아요. 수원의 숨은 명소들을 추천해 주세요.
선생님께선 책표지 전시회와 멘티미터 활동 등 팬데믹으로 대다수 도서관이 닫히다시피 한 와중에도 깨어 있는 도서관의 역할을 다해 주셨어요. 어린이들과 “도서관은 ○○○이다” 문장을 만들어 영상으로 제작하셨는데, 이 문장 짓기를 선생님께도 제안해 보고 싶어요.
사서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당시, 새롭게 업을 세우면서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카카오 오픈채팅방, 구글 도구들을 익혀 온라인 플랫폼으로도 학생들과 만나는 창구를 개설했고 관련 연수들을 듣고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실천했죠. 온라인 도구를 다루는 게 생각보다 안 어렵더라고요.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인 데다 반려자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 ‘궁하면 통한다’라는 속담을 발판으로 삼아 팬데믹 시기의 도서관을 슬기롭게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서관은 ‘열린 문’이에요. 저는 수업할 때 빼곤 도서관 문을 닫지 않아요. 어린이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열어 둔 것인데, 앞으로도 도서관 문턱이 많이 낮아졌으면 좋겠어요. 왠지 들어오기 힘든 곳이 아니라, 맘 편히 들어와서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의 약자)도 하고 책도 읽는 곳으로 어린이들 곁에 자리하면 좋겠어요. 오늘은 우리 도서부가 1학년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러 가는 날이에요. 한 아이가 “선생님, 저 이제 책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라고 말해 줬어요. 봉사하러 오신 학부모들도 도서관이 선생님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해 주셔서 힘이 나요. (웃음) 옛날만 해도 사회생활을 할 때 세웠던 철칙, 나름의 까다로움이 제게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이런 것까지 어린이들한테 요구하고 특정한 틀에 우리 모두 맞춰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이 든 후로는 안전을 기본으로 하되, 어린이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아요. 그러면 어린이들을 바라볼 때 저도 편하고, 어린이들도 저한테 편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개구쟁이 어린이들도 편안하게 여기는 곳, 그러다가 책 한 권도 슬쩍 읽어 보는 곳. 도서관이 그렇게 열린 장소로 기억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