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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서샘의 레알 분투기]행정직 사서로 근무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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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6-25 14:38 조회 3,1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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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함만으로 존재할 수 없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
-행정직 사서로 B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5년
 
 
#교장선생님 내 편 만들기
교장선생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하면서 도 어려운 일이었다. 토요일에도 도서관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사서가 직접 개방하라는 것이 교장선생님의 요구사항이었다. B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교장선생님이 계셨던 2년은 이 요구를 수용했고, 교장선생님이 바뀌는 틈을 타서 토요일 도서관 개방은 학부모의 도움을 빌리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당연시 생각했던 휴일에도 진료하는 병원과 영업하는 가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고, 학교에서 큰 유혈 사태 없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타이밍은 관리자가 바뀔 때라는 걸 알게 되었고, 주5일 근무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토요일 도서관을 개방할 때 특별수당으로 한 시간당 15,000원씩 네 시간을 근무해서 60,000원을 받으며 일했지만, 그것이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주 5일 근무의 삶의 질과 바꿀 만한 가치는 아니었다.
 
#행정실장님 내 편 만들기
행정실장님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건 도서관 운영계획서를 제출한 뒤였다. 교사가 아닌 행정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나의 실질적인 상사는 행정실장님이었다. 행정실장님이 2월 업무분장 시기에 각자 맡은 업무의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업무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합당하지 않은 맥락에서 내려진 거라서 모든 직원들
이 지나가겠거니 하고 제출하지 않았는데, 나는 실장님의 히스테릭한 요구 사항에 보란 듯이 더 멋지게 계획서를 작성해서 한 방 보여 주고 싶은 오기로 작성했다. 학부 때 수강했던 도서관 경영론 수업에서 배웠던 SWOT기술을 B고등학교 도서관에 적용시켜 분석한 후 기회-강점(SO), 약점-기회(WO), 강점-위협(ST) 관점에 기반을 둔 도서관 운영 방안을 제시한 후 도서관 연관 계획을 짰다. 4쪽짜리 보고서였는데, 그것은 1년 넘게 실장님의 파티션 중앙자리에 걸려 있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내 편 만들기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학년별로 종례시간이 다른 초등학교의 도서관은 학생들이 방과 후 수업에 가기 전, 스쿨버스에 탑승하기 전, 엄마가 데리러 오기 전에 대기하는 장소로 인식되어 도서관에 온 적 없는 학생은 없
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사서교사가수업을 하겠다고 하면 두 팔 벌리고 환영한다. 사서교사가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확실하다. 반면 고등학교 도서관에서는 사서교사가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A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근무하면서 정규수업은 아니더라도 방과 후 수업으로 독서·논술 수업을 했음에도 불구하
고 도서관은 아는 사람만 알고 오는 사람만 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수업 권한이 전혀 없는 사서로서 어떻게 도서관 입지를 다져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사서로서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도서관 행사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행사들을 공들여 하기로 결심했다. 첫해에는 도서관 운영비가 책정되지 않아서 따로 요구해야 했지만, 그 후부터는 학교에서 매년 이백만 원을 주었다.
 
#행사 기획, 진행
행사를 기획할 때 다음카페 ‘전국학교도서관모임’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게시판의 글들을 검색하고 정독했다. 학교도서관 종합자료 게시판에 아낌없이 정보를 공유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매년 ‘부모드림, 세계 책의 날&사제드림, 독서의 달, 작가와의 만남, 연말 기념 행사, 신착도서 환영 행사 2회’ 총 7번의 행사는 고정적으로 진행했다.
중간중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할 때 원작소설을 홍보하거나 시험기간에 직접 응원 문구를 쓴 비타민을 나누어 주거나, 4월이 되면 노란 리본을 나누는 행사들은 비공식적으로 소소하게 진행했다.
 
#부모드림 행사
부모드림 행사는 한지희 선생님의 사제드림 행사를 모방해서 기획했다. B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아이들이 어버이날에 집에 갈 수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대신 책선물을 배송해 주었다. 행사 기간 동안 학생들은 응모권에부모님께 선물하고 싶은 책 이름을 기재한 후 응모함에 제출한다. 당첨된 학생들은 예쁘게 교복을 착용한 후 학교도서관을 배경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촬영하고 부모님께 드릴 편지를 써온다. 학생들이 기재한 책을 학교 예산으로 주문하고, 책과 사진과 편지를 함께 예쁘게 포장한 뒤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택배 발송을 한다. 조금은 복잡한 과정이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 진행하고 난 뒤 뿌듯했다.
 
#작가와의 만남
작가와의 만남은 년 1회 진행했다.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가를 모시면 도서관의 존재감이 활짝 필 것 같아서 섭외에 많은 공을 들였다. 처음 모신 작가는 안도현 시인이었다. B고등학교는 서울에 위치하지 않아서 많은 작가들이 거리 문제로 거절했다. 같은 지역의 학교도서관에서 근래 안도현 시인을 초청했다는 홍보글에 용기를 얻어 안도현 시인의 섭외를 시도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니 당시 어느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고 나와서 학과 사무실에 엄청 떨면서 전화했다. 긴장이 무색하게 과사에서는 친절하게 작가님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로 연락을 했더니 작가님은 너무나 흔쾌히 행사 진행을 수락해 주었다. 교감선생님께 섭외 사실을 알리니 바로 국어과 선생님들을 붙여 주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행사 계획서에는
기획의도 및 목적, 실천계획(일시, 장소, 대상), 세부운영계획, 예산항목, 협조요청사항 등을 기재했다. 특히 협조요청사항에 행사 준비로 인한 도서관 폐관 시간, 사진 촬영자, 음향 및 장비설치자 등을 기재해 결재를 받아두면 차후 행사를 준비할 때 도움을 구하기 수월하다.
 
#도서관의 존재감
학교에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연을 위한 멋진 공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할 때 항상 도서관을 고집했다. 굳이 힘들게 200개의 간의 의자를 5층까지 끌고 와서 도서관을 행사 장소로 꾸민 것은 오로지 ‘존재감’을 위해서였다. 이런 멋진 행사를 도서관에서 주관했다는 것과 사서인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는 사실을 암암리에 확실하게 공표하고 싶었다. 그 만큼 도서관과 사서의 입지가 내게는 엄청 중요한 문제였다.
 
#작가를 만나기 전에
작가와의 만남이 학생들에게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참석하는 학생들에게 만남 전에 수행해야 하는 미션들을 제시했다. 질문은 꼭 만들어 오게 했고, 작품론 연구보고서, 간단한 독후활동, 작가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문장과 작가님께 전하는 응원메시지 쓰기 가운데 한 가지의 활동을 선택하게 했다. 학생들이 제출해야 했던 활동지들은 단지 형식적인 과제로 끝내지 않고 전부 모아 한 장 한 장 파일철을 하여 작가님께 선물로 드렸다. 또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았던 만큼나 역시 사전·사후지도에 많은 신경을 썼다. 참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새긴 맞춤형 초대장을 발송했고, 졸업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도서관 쿠폰들을 발급했고,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생기부에 기재될 수 있도록 했다.
 
#작가 섭외?!
한 번의 섭외가 성공하기까지 수십 번 거절당했지만 그 거절의 과정이 예상과는 다르게 매번 친절했다. 출판사에 연락해서 작가의 연락처를 물으면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지만 메일주소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TV에 출연한 유명 작가들도 ‘읽씹’ 하지 않고 상냥한 문장으로 거절 답장을 주었다. 섭외를 위해 작가들의 작품들도 탐독하고, 신간 사인
회도 다니고, 9장 분량의 손편지도 썼다. 지나고 보니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닌 작가님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심 가득한 즐거운 업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인지라 전화통화를 했을 때보다 메일을 보냈을 때 성공확률이 더 높았다. 메일에는 일시, 장소, 참석 대상, 참석 인원, 취지, 강연비를 제시했는데 그중 일시와 참석 인원은 편하신 대로 조정하겠다고 썼다. 강연비 측정은 공립과 사립이 다른데, 사립은 기관 자체의 표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서울공립학교는 작년 기준 2018학년도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 책자96페이지에 ‘교육강사수당 지급기준’이 따로 명시되어 있다. 이 자료는 행정실을 통해 알게 됐다. 행정실에 문의했더니 친절하게 책자의 해당 페이지를 복사해 주었다. 역시 모르는 부분은 바로바로 물어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고 빠르다.
 
#추억할 도서관 행사
학교의 기숙사에 갇혀 있는 학생들에게 연말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12월에는 항상 도서관 행사를 진행했다. 크리스마스에도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침에, 친구에게 쓴 엽서를 배달해 주는 아이템을 연례행사로 진행했다. 배달은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리지만, 친구에게 깊은 이야기를 편하게 쓰라는 의미
로 엽서에 쓴 내용을 누구도 보지 못하게 가리개를 따로 만들어 넣어 주었다. 물론 그 가리개에는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서명과 그 이유를 꼭 쓰게 했다. 그밖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모티브로 한 영화 <러브레터>에도 등장하는, 책 뒷면에 꽂는 도서대출카드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카드를 학생들마다 졸업 후 20년 뒤 모교에 찾아왔
을 때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싶어 할 만한 책의 뒷면에 붙여 주었다.
 
#도서부 동아리 운영
행정직 사서였지만 처음에는 도서부 동아리를 운영했다. 학생들과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는데 교무실과 행정실의 기 싸움으로 인해 도서부를 운영하지 못하게 됐다. (물론 교무실에서 도서부 운영을 막은 건 아니고 행정실에서 손 떼라고 했다.) 하지만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기에 봉사자를 모집해 학생사서단과 서가봉사단을 구성했다. 학생사서단은 5명의 정예멤버로 구성하여 사서가 없는 채로 도서관이 개방된 방과
후 시간과 토요일 일정 시간에 도서관의 대출·반납을 책임져 주었고, 책 정리를 도와주는 서가봉사단은 학기당 15명씩 뽑아 각자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와서 책 정리를 돕게 했다. 이들에게는 봉사시간과 생기부 기록,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행사를 직접 진행할 수 있는 기회 및 수행평가 기간에 연장되지 않는 책을 연장할 수 있는 특혜를
주어 참여를 독려했다. 봉사시간은 물론 수상 관련 내용도 꼭 학기 초에 내부 결재를 받아놓아야 연말에 생기부에 기록이 가능하다. 학생사서단의 생기부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생활 창의적 체험활동-봉사활동누가기록-특기사항 : 미디어콘텐츠 기획자를 희망하는 학생답게 평소에도 책에 관심을 가지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모습이 귀감이 돼 학생 사서로 선발되어 활발히 활동함. 매주 정해진 시간
에 규칙적인 활동을 통해 학우들이 도서관 이용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시간 약속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깨달음. 바쁜 일이 있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갖가지 일에 순발력 있게 대처함. 학생 사서로서 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기획을 하여 학우들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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