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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수화 배우는 만화』핑크복어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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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6-03 10:19 조회 3,9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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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는 핑크복어,
어느 날 수어를 배우기로 했다

언제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나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연습장에 만화를 그린 다음 친구들과 돌려보곤 했어요.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꽃보다 남자』, <세일러문> 등을 곧잘 봤어요. 저도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평범하게 읽으며 자랐던 것 같아요. 특히 노란색을 좋아해서 <세일러문>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세일러문’을 가장 좋아했어요. (웃음) 미술로 대단한 걸 하겠단 생각은 안 했지만 어릴 때부터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 등 그림과 관련된 직업을 말하곤 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입시미술을 접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이 내 직업이 되겠구나 싶었죠. 지금은 만화를 그리면서 청소년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냥 배우고 싶어서’ 수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수어교실에 등록하게 됐나요?
다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 목적이 있잖아요. 자격증을 딴다든가, 취업을 잘하고 싶다든가 하는 게 있는데 수어를 그런 목적으로 배우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그런 목적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만났던 한 친구가 마음속에 있어서인지 언젠가 수어를 배워야지 싶었어요. 짝꿍과 대화를 충분히 나누지 못해서 항상 아쉬웠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구화(청각장애인이 특수한 교육을 통해 음성 언어를 익혀 소통하는 방식)를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어떻게 수어를 배워야 하나 꾸준히 찾아봤고, 여유가 생겼을 때 마음먹고 수어교실에 등록했어요. 농아인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수어교실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신청서를 써서 제출하면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어를 배울 수 있어요.



글로 써서 얘기를 나눴던 짝꿍 이야기가 만화에 나오던데, 그 친구와 소식이 닿았는지 궁금해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만났어요. 주로 제가 알림장을 적어 주거나 필기할 거리를 대신 써 주곤 했는데, 짝꿍은 공부를 무척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어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해서 그 친구와 한 학기 동안 지내고 헤어졌는데, 이후로도 친구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건 제가 그 친구에게 말을 걸 때마다 많이 망설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청각장애인의 등을 함부로 두드리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도 그 친구를 부를 땐 살며시 다가가라고 주의를 주셨거든요. 친구를 찾고 싶어서 몇몇 고등학교 동창에게 수소문했더니, 동창들도 그 친구의 이름조차 모르더라고요. 제 책에 친구에 대한 힌트라도 넣어서 찾고 싶었는데,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소식을 알 길이 없어서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초급반에서 수어를 처음 공부할 때 어떤 점이 낯설었나요?
선생님이 중간중간 교재에 언급된 내용과 실생활에서 쓰는 수어를 비교해 가며 가르쳐 주시는데, 어쩌다가 한번 놓치면 어떤 대목을 읽고 있는지 모르게 되더라고요. 수업을 받을 때마다 엄청 집중해야 했기에 그만큼 공부하는 시간도 빨리 흘러갔던 것 같아요. 특히 질문하기가 힘들었어요. 당시 선생님께서 한글보다 수어를 주로 쓰셔서 의사소통이 힘들었어요. 이는 외국어를 공부할 때 원어민 선생님을 마주하면 겪게 되는 어려움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선생님을 장애인이라고 인식해서인지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요.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고, 내가 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을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죠. 내 안에 깃든 이런 편견들을 수어를 배우면서 발견했고, 혼란을 겪으면서 제 생각도 차츰 바뀌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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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터 ㅎ까지, 칸칸마다 담긴 수어 초보자의 하루
브런치 연재로 시작한 작품을 어떻게 책으로 어떻게 내게 되었나요?

일상을 만화로 표현하는 게 익숙해서 수어를 배웠던 과정도 일기처럼 만화로 연재했어요. 제가 수어를 언제까지 배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수어를 배우고 나서의 감정을 꼬박꼬박 잘 기록하고 싶었거든요. 출간된 단행본 분량의 절반 정도를 연재했을 무렵,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종이책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2년 동안 웹툰 형식으로 연재했기에 종이책 형식으로 다시 편집하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걸렸어요. 여러 수어 동작과 단어들을 어떻게 실을지 독자를 고려하여 꼼꼼하게 조율하고 검수하는 과정도 거쳤어요.



손동작, 제스처, 표정이 잘 어우러져야 수어라고 할 수 있다고 책에서 언급했는데, 수어의 개념을 몇 가지 더 짚어 주세요.
수어는 온몸을 쓰는 언어이기에,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도 풍부해야 해요. 간혹 청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손짓이나 발짓도 수어인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이 흔하게 “저리 가.”라고 손을 휘젓는 동작들이 다 수어더라고요. 또한 ‘농인’이란 청각장애가 있고 수어로 소통하는 사람을 말하고, ‘청각장애인’이란 청각장애가 있고 음성언어로 소통을 하는 사람을 말해요. 저는 ‘농사회’는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의미인 줄 알았는데, 수어를 주로 쓰는 농인들의 사회를 일컫는 단어였어요. 수어를 공부하다 보면 수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는 말들도 접하게 되는데, 이런 말들을 ‘농식 수어’라고 해요. 농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쓰는, 농문화가 녹아 있는 언어라는 뜻이에요.


‘수어’보다 ‘수화’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들리는데, 책 본문에서 ‘수어’로 통일해서 쓴 이유는요?
책을 만들 때에 ‘수화’ 단어를 둘러싸고 출판사 편집자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수어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은 책 제목의 ‘수화’를 ‘수어’로 고쳤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대부분 청인들에게 ‘수어’라는 단어가 덜 와 닿을 것 같아서 접근성을 고려하여 책표지에만 ‘수화’로 표기했어요. 본문에서는 ‘수어’로 통일해서 썼는데, 이는 사람들이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거예요. 그리고 책의 일러두기에 표시한 것처럼, 농사회의 독립된 언어를 가리키는 공식 명칭인 ‘수어’를 존중하기 위해서예요. 세계에 여러 언어가 있듯이, 수어 역시 하나의 언어로 인정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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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이든 농인이든 우리는 대화가 필요해
수어를 배운 지 3개월 뒤에 중급반으로 옮겼는데, 여러 사람과 함께하면서 깊이 배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수어는 왜 이렇게 어휘가 부족하지?’ 싶었던 적이 종종 있었어요. 책에 표현한 것처럼, 빨간색만 해도 보라색에 가까운 빨간색, 주홍빛이 도는 빨간색 등 다양한 표현이 있을 텐데, 왜 수어는 다 똑같이 빨간색으로 표현하는지 질문하고 싶었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실제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언어보다도 자기 언어를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 표현을 자세히 배우지 않아서 몰랐던 것뿐이더라고요. 상대방에게 색깔에 대한 수어를 표현할 때에는 표정을 더하거나 기존 색 표현을 결합하거나, 해당 색상의 사물에 빗대는 방식으로 구별하여 말을 전달해요. 수어를 배우면서 그동안 음성언어를 써 온 제 관점으로만 수어를 해석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책에서 작가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동성애자를 뜻하는 수어를 새롭게 만들던 장면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수어 동작을 살펴보면 사물의 모양이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많아요. 게이, 레즈비언을 뜻하는 수어는 성관계 행위를 본떠서 만들어졌는데, 부부를 뜻하는 수어 동작만 다르더라고요. 제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새로운 표현을 제시했고, 저는 그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좋았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장면이 불편하게 다가올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요. “남의 언어를 왜 저렇게 함부로 만들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수어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수어에 대해 알아보고 자기 생각을 나눠 본다면 의미가 있을 듯해요. 농인 청소년과 청인 청소년이 최근에 생겨난 신조어에 대한 수어를 함께 만들어보는 활동을 나눈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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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농인을 위한 교육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얼마나 접하기 어려웠나요?
농인 청소년이 예체능에 관심 있을 때 그와 관련된 교육 정보를 찾아봐도 찾을 수 없더라고요. 농인 청소년을 위한 웹툰 강의를 의뢰받은 적이 있어서 관련 내용을 인터넷으로 자세히 찾아보니, 미술뿐 아니라 음악, 체육 분야의 교육에 대한 정보도 부실했어요. 저는 농아인 학교에서 이런 점을 개선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육 분야를 자세히 모르지만, 농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이나 음악 교육은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진로를 중심으로 가르치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농인들이 자유롭게 학교에서 예체능 공부를 하거나 예체능 학원에 등록할 수 있도록 농인을 위한 예체능 교육 기반부터 갖춰야 해요.



수어로 유튜브 채널을 꾸리는 하개월에 따르면, 미국에선 농인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더라고요. 농인과 청인,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란 무엇일까요?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실 그 마음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내 질문이 상대방에게 어처구니 없을까봐 농인에게 못 물어본 질문이 많았거든요. 책에 표현한 것처럼, 수어를 하면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런 분들에게 왜 소리를 내는지 질문을 했었어요. 청인 입장에선 소리가 나니 보게 되는 건데, 이런 행동으로 오랫동안 상처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답을 바로 하기보다는 기분 나쁜 내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왜 그런 걸 물어봐?”, “그게 왜 문제야?”라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러면 대개 청인들은 그 다음에 대답을 못 해요. ‘내 질문이 되게 기분 나쁜가봐.’ 하고 생각하는 데 그쳐 버려요. 그런데 이 질문이 왜 나쁜지 대다수 청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런 간극은 서로 대화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시혜나 조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봐요.





작게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만화를 위하여
청인들에게 수어의 매력을 소개한다면요?
수어는 굉장히 직관적인 언어예요.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고도 나와 마주하는 사람의 표정과 손동작을 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시끄러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멀리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작가님 브런치 대문에 적힌 “저는 언제나 화장실에 앉아 볼일 보면서 볼 수 있는 좋은 만화를 그리려고 합니다.”라는 문장이 와닿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그리고 싶나요?
독자가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나아가 우리가 평소에 편견을 갖고 행동했던 것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가까이는 농인이 청인에 대해 갖는 편견 등을 다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농인도 청인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 있으니, 서로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편견을 갖지 않고 한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상은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생각하지 않았던 걸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제작업의 방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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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연재 중인 만화 「생각보다 잘 자랐습니다」를 살짝 소개해 주세요.
사람들은 인종 차별, 동성애 등 크고 작은 편견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곤 하잖아요. 저 역시 그런 편견으로 받은 상처가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고, 가정폭력을 겪어 왔기에 여러 가지로 차별을 느껴 왔어요. 여기서 차별이란 사회적인 차별,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차별일 수도 있고, 저 스스로를 향한 차별일 수도 있어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던 시절을 지나왔는데, 「생각보다 잘 자랐습니다」를 통해 ‘이 사람도 평범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담백하게 전하고 싶어요. 단, ‘너는 나중에는 잘될 거야.’, ‘희망이 생길 거야.’ 하는 극복담처럼 읽히는 것은 지양하려고 해요.


수어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 줬던 그 친구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그동안 잘 지내 왔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림을 계속 그리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보통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하는 말들 있잖아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말을 건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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