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오, 미자!』 박숲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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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1-14 11:00 조회 3,992회 댓글 0건본문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꼬마에서
내 안의 숲을 키우는 그림책 작가로
일러스트를 전공했는데 그림 그리기를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어릴 적부터 친구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한 살 터울인 제 사촌언니가 그림을 곧잘 그렸
었는데 그걸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사실 처음엔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화려한 색
감을 좋아해서 의상디자인과에 진학했는데,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내성적이어
서인지 개성 강한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리는 건 계속 해오던 일이니 해보
자 마음먹고 그림 그리는 일을 쭉 해왔어요.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면서 주변에 조언
을 구했는데, 제 일러스트를 보신 한 선생님께서 제 그림이 어린이 그림책과 잘 맞을 거라고 하
셨어요. 그땐 책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림책 작업이 십 년 뒤쯤에나 할 수 있는 먼
일 같이 느껴졌어요. 이후 이석구, 에릭 칼,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등 작가의 책을 읽었고, 일 년
동안 김수정 그림책 기획자의 수업을 들으며 동기들과 그림책 공부를 했어요.
아티스트 챌린지 등 예술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활동에도 관심이 두터운 것 같아요.
캠페인 활동으로 벌였던 아티스트 챌린지는 릴레이 방식으로 24~48시간 내에 제 아이디를 해
시태그로 걸고, 제가 그린 그림을 SNS 계정에 올리면 그 그림 개수에 따라서 정해진 기부처에
기부가 되는 자그마한 활동이에요.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무렵,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줘
야 할지 고민하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챌린지 캠페인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이후로도
루게릭병 등 관련 캠페인 활동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아보는 편이에요.
작가님의 필명 ‘박숲’의 뜻이 궁금해요.
종종 제 그림에 대해 의견을 내는 사람과 마주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특히
저에게 그림을 쉽게 그릴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과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때
부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뿌리 같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고, 내면부터 단단해져야겠다 싶었어
요. 나중에 필명을 지을 일이 생기면, 이름에 ‘뿌리’의 의미를 지닌 말을 꼭 넣어야겠다고 다짐했
어요. 그러다가 제 본명인 민지의 ‘민’과 뿌리의 ‘뿌’자를 합쳐 필명을 ‘뿌민’이라고 지었는데,
친구들이 그 필명을 듣더니 “민지 왔어요, 뿌우!”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고심 끝에
뿌리로 가득한 숲이 되자는 뜻에서 필명을 ‘박숲’으로 지었어요.
첫 그림책 『오, 미자!』는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요?
『오, 미자!』는 대학원 시절, 그림책 수업 때 만든 두 번째 더미북이에요. 대학원 졸업 즈음에 동
기들과 만든 더미북을 바탕으로 낭독회를 열었는데, 당시에 그림책 출판사 관계자들도 참석했
어요. 저희가 조그맣게 전시를 하면, 출판사 사람들이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림책 출판을 제안
하기도 하거든요. 낭독회에 오신 한 출판사 편집장님께서 제 작품을 보고 연락을 주셔서 저도
책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우리 곁 수많은 미자의 삶, 그림으로 돋보기
『오, 미자!』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희 아버지가 오미자를 참 좋아하세요. 아버지가 매일같이 오미자에 물
을 타서 엄마한테 주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무렵이 제가 한창 그림
책 제목을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어김없이 오미자 이야
기를 꺼내셨는데 ‘그래, 이거다!’ 싶어서 그림책 제목을 『오, 미자!』로 정
했어요.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을 갖고 있잖아요. 저와 이름은 같지만 각
기 다른 박민지가 살아가듯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 이야기를 그림
책으로 보여 주는 일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청소부로 일하던 이모와
소방관으로 일하는 사촌오빠 등 몸을 써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제 주변에 많아서 그 이야기를 그림책에 잘 풀어내고 싶었어요.
청소부, 전기 기사, 스턴트우먼, 포장이사 직원 등 일하는 여성들이 책에 등장하는데,
이런 직업은 어떻게 정했나요?
전기기사의 경우 전기 수리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그 분들은 하청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데 고압선을 만지며 일해야 해서 팔다리가 잘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대요. 그런데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감수하는 거고, 갑질이 자주 일어나도 묵묵히 견뎌낸대요. 저는 그런 전기 기사 직업을 가진 미
자를 그림책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주연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않지만, 자기 자리에서 연기로 최선
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스턴트우먼으로 사는 캐릭터도 소개하고 싶었어요. 포장이사 일을 하는 미
자도 책에 나오는데, 이는 제 어릴 적 이사를 했던 기억에서 착안한 거예요. 대개 사람들이 포장이사를
예약하면 집 안 청소, 설거지, 그릇 정리와 같은 일을 하는 여성이 이사 당일에 한 명씩 오거든요. 그 일
들을 매일같이 해내는 캐릭터도 책에 등장시켰어요. 사실, 책에 나온 청소부나 택배기사 일을 하는 여성
들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쉽게 잊힐 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밝은 조명을
비춰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림뿐 아니라 “산다는 건 맵거나 쓸 때도 있고, 시거나 짤 때도 있습니다.” 등의 문장들도
인상적인데,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처음 그림책을 작업할 땐 의성어나 의태어를 많이 썼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무게감이 떨어진다
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래서 텍스트를 고치는 데 거의 세 달이 걸렸어요. 편집자와 함께 의견을 조율
하면서 문장을 간결하게 고쳤고, 좀 더 임팩트 있는 문장을 선별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했어요. 실은
“산다는 건 맵거나 쓸 때가 있고, 시거나 짤 때도 있습니다.” 문장을 담은 장면을 그리는 데도 공을 많
이 들였어요. 미자처럼, 우리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침에 길을 나서는 출근길 풍경을 묘사했는데,
막상 그려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금 애를 먹었어요. 그 다음 장면에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는
늘 당신 가까이에 함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는 제 그림책의 핵심 문장이기도 해요. 독자
와 서로 연대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과 그림을 담았어요.
누군가의 엄마 혹은
여동생의 하루는 어떤 날씨일까?
책 속 일하는 미자들 가운데 유독 마음이 가는 미자가 있을 것 같아요.
책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청소부는 큰이모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렸어요. 옛날 어르신들은 집안에서 유
독 한 명만 밀어주곤 했잖아요. 장남만 대학에 보내고, 딸들은 집안에 보탬이 되라며 일을 시키는 게
관행이다시피 했는데, 그런 세월을 겪으신 큰이모에게는 그게 한이 되었어요. 어렸을 때 내가 공부를
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은데, 집에서 교육을 안 시켜줬다며 서운해 하시는 이모의 모습을 종종 봤어
요. 큰이모는 이제 청소 일을 그만두셨지만 배움과 상관없이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에요. 큰이모를
통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걸 알게 됐을 정도로요. 청소 일을 하며 살아가는 미자 말고도 제 책에 여
성 택배 기사 이야기가 나와요. 실은 제 둘째 이모가 싱글맘으로 택배 기사 일을 하고 계세요. 저는 두
이모를 힘껏 응원하고 싶어요.
여성 택배 기사가 흔치 않은데, 그 분들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여성 택배 기사가 화물차를 몰기도 해요. 그런 경우가 흔치 않아서 여성 택배 기사 이야기를 찾아봤는
데, 대부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일하러 갈 준비를 하고 오후 4시쯤에 퇴근하신대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육아할 시간을 벌기 위해 기사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이나 관련 플랫폼
에서 그 이야기를 접했는데, 저도 저희 엄마가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
왔던 터라 공감이 갔어요. 사실 다섯 명의 미자 중에 저희 엄마 이야기를 넣고 싶었는데, 제가 아직 엄마
가 겪는 감정의 면면을 꼼꼼하게 알진 못하잖아요. 그래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 택배 기사를
책에 표현했어요.
“아줌마가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저, 여자 성격 불같네.”라고 딴죽 거는 사람들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일하는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일을 하다가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목소리를 내면 “저 여자, 성격 드세네.”, “좀
센 편이다.”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불합리한 상황에서 자
기 의견을 내는 수많은 ‘미자들’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제가 텔레마케터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하는 분들이 다 여자였어요. 어느 날,
저한테 전화로 욕을 엄청 세게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화가 난 나머지 그 사람 번호를 제
휴대폰에 저장해 봤어요. 그러면 카카오톡에 자동으로 프로필이 뜨는데, 확인해 보니 그 사람은
어떤 딸아이의 아빠더라고요. 그 사실을 확인했던 순간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저는 저와 같은
수많은 미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에게 나쁘게 대했던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요. 자기 자녀가 커서 나중에 자기가 했던 욕설을 똑같이 들을 수 있고,
나의 엄마도 여성이기에 그런 부당한 일을 겪을 수있잖아요. 부디 편견을 갖지 않고 같은 사람으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오, 미자!』가 부드러운 페미니즘 책으로도 느껴지는데,
‘페미니즘’ 글자만 들어도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기 전부터 편을 가르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았잖아
요. 저는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 대 남성 문제로 보거나 혐오와 연관 지어 치부할 부분이 아니라고 봐
요. 어쩌면 여성이 일하면서 겪는 여러 갈등이 내 어머니, 누나, 여동생이 겪을 수 있는 일임을 공감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남자든 여자든 우리 주변에 있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
고 공감하는 시각부터 가져야 해요.
미자의 일과 마음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길
어린이들이 『오, 미자!』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은 팁을 살짝 공개한다면요?
다섯 명의 미자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번째 장면마다 “나는 활기찬 미자입니다.”,
“나는 피하지 않는 미자입니다.” 등의 문장이 나와요. 어린이들이 성격과 하는 일이 다른
미자 캐릭터들에 감정을 이입해서친구에게 책을 읽어 주면 효과적인 읽기가 되지 않을까요?
엄마가 책 속에 나오는 미자와 비슷한 일을 한다면 엄마의 일과 마음,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도 직장에서 분투할 수많은 미자들에게 응원 한마디 날려 주세요.
삶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힘들 때가 더 많은 법이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변에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더라고요. 자신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오늘을 잘 살아가
면 좋겠어요. 세상의 많은 미자들이 삶을 잘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나요?
기회가 닿는다면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는 그림책을 한 번 더 그리고 싶어요. 추
상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코파이의 ‘정’을 주제로 이웃과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저는 최근에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점점 즐거워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나를 위한
책으로, ‘내가 살고 싶은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나이 먹는 게 좀 더 즐거워질 것
같아요.
최근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해요. 요새 취미로 노래를 연습하는데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지는 3개월밖
에 안 됐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마다 얇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서 고쳐 보려고 연습을 시작
했거든요.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보컬 선생님이 저더러 “이해 안 된 것 같은데, 왜
매일 이해하는 척해요?” 말하곤 하세요. (웃음) 조만간 연습을 많이 해서 박선주의 <오즈의 마법사>를 잘
불러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