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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지구별 사서의 오늘] 멋쟁이가 되는 동안 책을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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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12-05 17:28 조회 3,40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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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머리를 자른다고요?!
 
동네의 모든 바람이 한 번씩 거쳐 가는 우리 도서관 앞마당. 이번에는 헤어 살롱이 ‘뿅!’ 하고 생겨났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헤어디자이너들이 도서관 이용자들의 스타일을 책임지겠다며 방문 제안을 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커트를 한다고?!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해보자고 응했다.
도서관을 찾는 젊은 청년들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뉜다. 출신국에서도 꽤나 패셔니스타로 통하는 청년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피부나 헤어를 가꾸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에, 미용실 가는 비용이 아까워서 머리를 계속 기르거나, 스스로 염색이나 커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헤어 살롱 프로젝트는 이 두 부류를 다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앞에 헤어 살롱이 생긴다!”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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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시간엔 모국어로 된 책을 읽어드려요
 
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우리 살롱에 온 사람들을 어떻게 책과 만나게 해줄 것인가?” 살롱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여러 고심 끝에, 참가자들이 도서관 앞에 머무는 동안 책을 읽어 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머리 자를 순서를 기다리고 커트를 하는 20∼30분 동안, 자기 출신국의 책을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읽어 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맡기고 있을 때, 졸릴 만큼 편안하다는 것을. 처음 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도서관 앞에서 머리 보자기를 쓰고 앉아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선착순 6명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모델이 필요했으므로, 도서관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한 명을 미리 참여자로 섭외하려고 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신청자가 한 명도 없으면 나라도 헤어 살롱 의자에 앉아야 할 판이었다.
먼저 안내문을 만들어서 도서관 게시판에 내걸고, 도서관에 자주 오는 청년들에게 알렸다. 몇 번씩 뭘 하느냐고 묻는 걸 보니, 내 이야기를 들은 청년들도 신기해 보였나 보다.
살롱 열리기 하루 전날, 페이스북에 알림글이 떴다. 쉬는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는 스룬이 ‘도서관 앞 헤어 살롱’ 포스터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여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서울에서, 안성에서, 의정부에서 살롱에 오겠다는 청년들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다행이다!
 
책 읽어 주는 독서 멘토 총출동!
 
일요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도서관 앞 헤어 살롱’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스룬에게는 캄보디아 책을, 피아오에게는 중국 책, 아나스타샤에게는 러시아 책을 읽어 줄 것을 부탁해 놓았다. 참가자가 늘어나서, 급히 파키스탄 책은 오벳 선생님에게 그리고 영미 책은 찰리에게 읽어 줄 수 있냐고 전화를 했다. 이 사람들은 독서 멘토가 되어 커트 순서를 기다리거나, 디자이너에게 헤어스타일을 맡긴 동안 살롱 사람들을 책의 나라로 인도해 줄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나는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난다면,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앞 헤어 살롱’은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살롱을 찾은 사람들은 평소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페이스북 친구의 안내 글을 보고 ‘도대체 도서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데, 머리까지 책임져 준다는 거야?’ 하고 궁금해서 온 청년들과 도서관 옆 공원에서 장기나 마작을 두시는 할아버지들 중에서 이발소 갈 때가 되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나를 따라온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참여 인원을 6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세 배가 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찾아왔다. 헤어디자이너들이 서울로 가는 차에 올라타기 몇 분 전까지도 참가자의 머리를 스펀지로 털어내야 할 만큼 손님이 많았다.
 
난생 처음, 도서관을 알게 된 러시아 청년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옆 동네에서 온 러시아 청년은 성큼성큼 도서관에 오더니 자기도 참여해도 되냐고 물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오벳 선생님이 청년의 두피와 어깨 마사지를 해주었다. “아∼아!”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웃음이 터졌고, 이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갔다. 러시아 청년은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러 원곡동에 오는데 이곳에 도서관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러시아 책들이 많다고 하니, 그는 파란 눈을 크게 뜨면서 진짜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책을 보기가 힘들었다고 하면서, 친구를 만나러 올 때마다 도서관에 들르겠다고 했다. 두피 마사지가 우리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었나보다.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과 러시아에서 온 청년,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 상대방의 언어에는 서툴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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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디자이너를 꿈꾼다며 찾아온 어린 자매
 
서로 눈매가 똑 닮은 자매가 뒤늦게 도서관에 도착했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는데, 헤어디자이너가 꿈이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러 시흥에서 왔다고 했다.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도서관 앞에서 헤어 살롱이 열리는 것을 알았고, 늦었지만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왔다고 했다. 다음 헤어 살롱이 열릴 때, 헤어디자이너에게 직접 궁금한 것들도 물어보고, 같
이 참여해 보기로 했다. 엄마를 찾아 1년 전에 한국에 왔다는 이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한참을 머물다가 갔다. 귀중한 만남이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도서관 앞마당에서 헤어 살롱이 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도서관을 오갔다. 어떤 이들은 다듬어진 머리에 만족해서 갔고,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고, 어떤 청년은 자기 나라의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마음에 담아갔다. 이 계기를 통해 도서관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이들이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그 마법 같은 일들이 세상의 모든 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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