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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인물탐구-학교도서관 스태프 열전]책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언어를 낳으며 언어는 관계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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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10-29 10:08 조회 3,3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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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만, 이것 좀 물어봐도 될까요?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의도를 가지지 않은 나의 물음이 폭풍우가 되어 돌아왔다. “선생님, 요즘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말, 그 사소한 질문이 뭐가 그렇게 상대를 분노하게 했을까? 질문을 받은 선생님은 갑자기 정색하더니 나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선생님은 사서라서 그런지 생각을 많이 하시나 보네요….”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얘기한 뒤 “요즘 누가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합니까?”로 끝나는 일장연설! 수업이 비는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오신 선생님께 나 또한 편안하게 안부를 여쭈었다가 우리는 둘 다 침묵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해도 되고 ‘행복하세요?’라는 말은 하면 안 되는 이 온도차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예민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화를 끝마친 후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그 분의 반응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당신 질문에 대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으므로 나는 일단 기분이 언짢다.’


어쩌면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행복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의 답은 오히려 심플하다. “아, 요즘 A랑 싸워서 기분 나빠요.”, “시간 재미없어서 요즘 안 행복해요.”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이유 또한 거창할 것이라곤 없다. “완전 좋아요. 학원에 좋아하는 애가 생겼어요!”, “요즘 떡볶이에 꽂혀서 설레잖아요.” 학생들은 상대 질문의 의도 따위는 파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엔 애초에 의도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부원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던 그때에는 무엇을 하고 놀지 생각하느라 이 같은 분석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도서관에 오는 각각의 선생님들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훨씬 많은 신경을 쓴다. 그동안 나의 언어체계와 사고방식이 학생들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행복하세요?”라는 내 질문이 혹시 그 선생님께 ‘행복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상기시킨 것일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간혹 요즘 내 고민을 질문의 형식으로 말할 때가 있다.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라기보다 상대방은 그런 고민을 어떻게 견디고 해결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데 질문을 받은 상대방이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 같은 반응을 보일 때 질문의 의도를 설명하는 일이 더 난감하고 괴로운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물음에 정답 따윈 없는데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당황하며 답부터 찾아 헤매는 안타까운 일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이제 질문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자기에 대한 질문을 무척 꺼려하는 사람들일수록 진정 답하기 어려운 것을 나에게 묻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 요즘 무슨 책 읽으면 좋을까요?”



#금알바가 사는 세상
삐걱이는 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도서관 스태프가 있다.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과형 스태프 ‘금알바’다. 앞선 글에 등장했던 도서관 스태프 ‘정보그’를 하교 시간에 매일같이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던 금알바. 친구 따라 도서관 간다는 옛 속담처럼 뒤늦게 도서부원으로 입성했는데, 먼저 들어온 친구들과의 합의에 따라 잘할 때까지 인턴십 과정을 거치기로 해서 금알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7년 후인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금알바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알바는 참으로 변화가 없으며 그 점 또한 매력이다.


중학교 시절 금알바를 떠올리면 늘 따라다니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금알바는 이른바 정의의 사도로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면모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을 내면화한 금알바에게 어느 날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중학교 1학년 때 금알바의 바로 앞자리에 소위 말해 껌 좀 씹는 일진 친구가 앉게 되었다. 편견 없이 누구나와 잘 지내는 금알바는 그 일진 친구와도 이야기를 잘 나눴고 그 친구를 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과 손이 거칠기로 소문난 그 일진 친구는 단 한 번의 말다툼을 참지 못하고 다짜고짜 금알바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순간 숨죽이던 반 아이들은 그 다음 장면에서 더더욱 숨을 멎게 되었다. 반사 신경이 발달한 금알바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뺨따귀를 되갚아 줬다. 금알바에게 그 일은 과학시간에 배운 작용-반작용의 원리일 뿐이었는지 금알바는 주위의 놀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날 수업을 모두 잘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반에서 아무도 금알바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뒷날 그 일진 학생이 다른 사고를 치고 전학을 가게 되었으니 그 뒤로 금알바의 오른손은 남의 뺨 대신, 책의 뺨을 어루만지는 고운 손으로 거듭났다. 금알바의 특이한 점은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며 독서토론을 할 때 여실히 드러났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금알바의 분석은 독특했고, 감동을 받는 지점도 남달랐다. 이를테면『위대한 개츠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읽으며 모두들 질투의 감정에 공감할 때에도 금알바는 등장인물의 사회적 지위나 노력 등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황진이 시를 읽을 때에도 분위기나 정서 대신 시적 구조에 비중을 두었다. 이렇듯 다른 차원의 해석 능력은 일상 대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금알바는 친구들이 둘러서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쏘-쿨한 대화로 끝맺기도 했지만 여중생 특유의 ‘알아줬으면 하는 기분’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금알바의 여러 장점은 아깝게 묻히기도 했다. 가령 수행평가 관리를 못하는 학급 친구들에게 일일이 문자해 주고, 시험 기간마다 반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까지 자기 시간을 할애했으나 시험이 끝난 뒤 시내에 놀러가는 무리에는 쉽사리 낄 수 없었다. 모두 대화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교사 뒷담화를 할 때에도 금알바는 맞장구를 치는 법이 없었으며, 친구들은 금알바의 진심 담긴 충고들을 도덕책에나 나오는 꼰대언어로 받아들였다. 친구들이 그룹지어 놀러갈 때 금알바는 도서관에 홀로 남아 책을 읽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무렵 금알바에게 소개해 준 책들은 친구를 소개해 주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럽고 묵직한 일이었다.


나는 금알바의 언어가 학생의 언어라기보다 어른의 언어에 가깝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언어는 내면세계와 주변 환경의 결합일 것이므로 금알바의 언어가 어른스러워진 것에는 가정환경의 영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금알바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언제나 예의바른 착한 딸,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씩씩한 딸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차츰 강박이 되었고 약속한 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금알바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점점 지워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와 금알바 사이에 놓인 책들을 옆으로 잠시 접어두고 한번은 말해야지 했던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독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반드시 부모님의 짙은 그늘로부터 헤어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아마도 그때 금알바는 내가, 자신과 어머니를 억지로 분리시키려 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끊임없이 자신이 얼마나 독립적인 학생인지를 설명하고 변론을 하는 바람에 우리 대화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고,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었다.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멈추고 곁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쳐들었지만 우리 둘 다 좀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금알바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홍대언니가 된 금알바는 공과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집을 벗어나서 대학 생활을 즐겼다. 대학에서 금알바의 별명은 ‘금.또.술’이었다고 한다. 금알바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 아저씨처럼 부끄러움 때문에 또 술을 마시는 반복을 일삼았으며 나는 김혼비의 『아무튼, 술』을 권하며 금알바의 변화를 응원했다. 금알바에게 전자공학은 행간을 읽지 않아도 되는 언어였으며, 공대 친구들은 공식과 전문용어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깊고 뾰족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금알바의 언어 세계는 얼마간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는 언어학을 철학의 세계로 끌어들인 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의 글들을 읽으며 금알바를 떠올렸다. 바르트는 육십이 넘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이 ‘마망’이라 부르던 한 여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신을 ‘롤랑’이라 부르던 그 여인을 떨쳐내지 못했다. 『애도 일기』는 바르트가 엄마에게 보낸 헌사이지만 우리는 그 책 때문에 바르트를 비로소 애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언어는 누군가를 이어주는 관계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그 사람 자체로 생각하고, 누군가 남긴 책을 그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용기를 내어 금알바와 못다 한 대화를 마저 해 보아야겠다. 그래야만 나 또한 다른 ‘어른-사람’들과의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금알바에게 그리고 나에게 “요즘 행복하니?”라고 질문해 보아야겠다. 우리는 여느 중학생처럼 심플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언어로 둘러싸인 도서관은 오늘도 겹겹의 언어로 인해 더욱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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