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두 번째 책이 기다려지는 사람] 정원진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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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9-01 18:29 조회 2,602회 댓글 0건본문
최후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마음
정원진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올해 봄쯤이었을까. “그 책 읽어 봤어?”로 시작해서 “강추”로 입소문을 몰고 오는,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를 쓴 작가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서샘들께는 물론 도서관을 사랑하는 절친에게까지 추천받은 그 책을 아니 읽을 수 없었고, 읽고 감동을 아니 받을 수 없었다. 1990년대생, 중학교 새내기 사서교사,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는 작가는 모두에게 사랑받고픈 욕심 탓에 한때 자신의 마음이 가난했음을 문장으로 고백한다. 도서관 문지기 혹은 샘 맞냐고 묻는 무례한 질문들 앞에서 수없이 번민한 끝에 그는 ‘맨얼굴의 진심’을 계속 밀고 나가기로 한다. 사서교사의 업을 세운 바로 뒤로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있는 그대로 사랑”함으로써 타인에게 깃든 색들의 다채로움도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 사람이 있는 학교도서관이라면 아이들도 교사에 대한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열린 도서관의 정체성이 그로 하여금 더 살아날 것임을 나도 믿어 보기로 한다.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 2쇄 출간을 축하드려요. 책 쓰기의 시작은 아이들과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쓰셨는데, 독립출판물을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어느 날, 제가 근무하는 구미 지역에서 자기 삶을 직접 쓰고 편집·디자인해서 책으로 만드는 인문 체험 프로그램을 열더라고요. ‘생애 출판-나를 쓰다’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소식을 접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으로 출판을 공부하고 아이들과 수업을 해도 괜찮겠다.’ 청소년을 위한 책 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간 기획서를 난생처음 써 봤어요. 합격이 되고 나선 나를 만든 취향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생애 첫 출판을 했죠. 『그러데이션』이라는 50쪽짜리 제 책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내 책을 또 내 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작년 6월쯤 출판 제작을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들었어요. 발코니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발코니에서 나락으로(편집자 주: 출판사를 통해 5주간 책 만들기를 배우고 부산 나락서점으로 입고할 수 있는 클래스)’였는데, 그곳에서 출판의 전 과정을 배웠어요. 인디자인 공부는 물론 책을 유통하고 서점에 입고 하는 방법까지 실습했어요. 책을 유통하려면 콘텐츠가 있어야 하잖아요.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세 달에 동안 가장 많은 글을 썼어요.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의 80퍼센트는 그 시간 동안 쓴 글이라고 할 만큼 가을과 겨울 사이 글을 쏟아 냈던 것 같아요. 당시는 제 직업에 회의감이 들던 시기여서인지 글을 쓰면서 아팠던 저를 보듬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처음엔 국어교사가 꿈이셧다고요.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을 아이들에게 국어 시간에 요구하는 게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씀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이 좋아서 국어 문법과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특히 국어 문법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말소리가 이렇게 날까?’ 흥미로웠고 언어를 깊이 알아갈수록 즐겁더라고요. 반면 문학 공부만큼은 어릴 때부터 하기 싫었어요. 학교에서 교과서로 정답이 없는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고 ‘이걸 이렇게 가르쳐서 뭘 하겠다는 걸까?’ 싶었죠. 대학에 들어온 뒤론 사서교사가 하는 일이 책을 다루는 일이니, 국어과와 밀접하다고 판단해서 복수전공을 하며 문헌정보교육학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사서교사가 하는 독서교육은 아이들의 생각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을요. 대부분 국어교육은 문학작품을 읽고 정답을 가르치는 방식에 가깝지만, 사서교사가 하는 독서교육은 여러 방향의 수업을 꾀할 수 있고, 그 모든 방향이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품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 틀렸다거나 정답은 이거라는 식으로 대처하지 않고, ‘네 생각이 맞아.’ 해 줄 수 있는 사서교사의 일에 매력을 느꼈죠.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자 행복했어요. 이는 임용고시 합격 전에도 지금도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교육 방식이에요.
정답을 요구하지 않고 자존감을 기르는 교육의 가능성에 주목하셨다는 점이 반가워요. 퀴어와 비거니즘 등의 주제 서가를 마련하셔서 눈길이 가는데, 민원이 들어오진 않나요?
"도서관 문지기 아니었어요?" 하고 묻는 학생의 질문을 들으면 누구라도 생채기가 생길 텐데요. 그런 폭언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작년에 많은 폭언을 들었어요. (웃음) 아이들이 저를 함부로 대할 땐 아직 내가 가르쳐 줘야 하는 시기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요. 고의성이 다분한 질문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저는 침착하게 설명하는 편이에요. 선생님도 선생님이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해 줘요. 문헌정보교육학을 공부하고 임용고시를 치른 뒤 합격을 한 다음 발령받았음을 알려 주곤 하는데, 사서선생님이 되기까지 과정을 잘 몰라서 질문하는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답변을 한 후로도 고의로 물을 경우, 이 세상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있다는 마음으로 태연하게 넘기는 편이에요. 2년 차가 된 올해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무덤덤해지더라고요. 조금 초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작년에는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봐 혼자서 삭혔어요. 수많은 폭언을 소화하고, 출근하고, 또 다른 폭언을 소화해 내는 날을 반복하면서 글을 썼고요. 그 와중에 선배와 동기 선생님들과 소통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의 교류가 얼마나 소중한지 체감했어요.
모범생으로 살며 '금상 필체'를 유지했다고 고백하신 부분에 공감했어요. 있는 나를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 겪은 영광의 상처도 클 것 같아요.
학생 시절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화장실에 가거나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공부만 했어요. 처음엔 재밌어서 했는데, 어느새 ‘원진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 하는 말을
계속 들어야만 하는 강박이 생겼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계속 정자세로 있을 만큼 정돈된 제 모습만 보여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 가서도 술 한 번 안 먹고 욕 한 번 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군대에서 ‘스스로를 가둬야 하는 생활’을 맞닥뜨렸죠. 그곳에선 새벽 6시 반에 눈뜨고 싶지 않아도 일어나야 하고 밤 10시에 자고 싶지 않아도 그 시간에 불이 매일 꺼져요.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스스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하는 성격이라고 여겼는데, ‘나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주체성과 자율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힘이 들자 글이 쓰고 싶었고 그때 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문장을 썼어요. 학생 시절부터
백일장에 나갈 만큼 글을 곧잘 썼는데, 사실 그때 쓴 글들은 심사위원 입맛에 맞게 쓴 ‘금상 필체’에
가까웠거든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일이 엄청난 터닝 포인트였어요.
책에서 도현이가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선생님 같은 사서선생님이 되고 싶어졌거든요." 대답한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지더라고요. 사서를 꿈꾸는 제자들을 종종 마주할 텐데, 어떤 것들을 같이하고 싶나요?
이런 말부터 전하고 싶어요. 사서교사는 전교에 단 한 명뿐인 소중한 존재란다. 그러니 자신이 학교도서관을 변화시켜 나가는 개혁자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아가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보고 걸어나가면 된다고 말이에요. 지금은 고1이 된, 저와 도서부에서 활동하면서 사서교사가 꿈이 된 학생이 꿈을 이룬다면 제자 중 제일 먼저 사서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친구랑 사서교사의 수업 시수를 확보하는 일을 같이해 보고 싶어요. 사실 국어 교과로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독서교육을 받기 힘들어요. 문법, 화법 등 국어 교과는 가르칠 영역이 많은데, 교육청에서는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초등과정에만 독서 수업을 배치했어요. 독서교육을 가장 핵심적으로 하는 사서교사를 여전히 발령하지 않는 실정이고요. 사서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단독 과목을 만들어서 독서교육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힘을 합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다양한 수업모델을 개발하는 일을 추진해야 할 테고요.
종종 교과가 거대한 사회이고 제가 그 사회에 걸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 있어요. ‘소수자’로 일하면서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에 관심이 더욱 깊어졌어요. 그래서 사서교사로 일하는 지금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어떻게 교육으로 연결할까 고민하다 보면, 제가 힘들었던 것처럼 소수자라는 이유로 고통받았을 사람들의 상처를 생각하고 공감하게 돼요.
학교도서관 생활뿐 아니라 아이돌 그룸 '여자친구', 피겨 덕후임도 인증(?)하셨는데요. 요즘은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시나요?
굿즈에 관심이 많아요. 도서관을 따뜻하게 단장하고 싶어서 조명을 사들이고 서가도 새롭게 설치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엽서로 만들어 주는 계획을 꾸리는 중이에요. 도서관에서 했던 활동들을 굿즈 상품으로 남겨서 아이들이 간직해 볼 수 있도록요. 지금은 ‘여자친구’가 해체된 뒤 그룹 소속이었던 은하, 신비, 엄지가 다시 팀을 만든 ‘비비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웃음) 책에도 썼듯이 그 친구들은 저랑 동년배이기도 해서 공감이 잘 가고 가끔 자랑스럽거든요. 마음이 사나웠을 땐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서 밤새도록 건반을 두드리며 잡념을 없애기도 했어요. 필사 덕질도 자주 해요. 최은영 소설가의 『밝은 밤』에 제가 겪은 감정을 묘사한 대목들이 많아서 이따금 옮겨 썼어요. 최근엔 류시화 시인의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에 나오는 「달에 관한 명상」, 「흉터의 문장」을 읽곤 해요. 교직 생활을 하며 때때로 흔들리는 마음을 덕질로 다스려요.
일인의 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서선생님을 평화로운 곳에서 일하는 교사로 '무례하게'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그런 사람에게 학교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전한다면요?
학생들이 공부, 암기, 성적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요. 저도 그런 현실에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본 세대인데, 아이들이 자유학기제를 암만 겪더라도 잠깐일 뿐 시험을 치르며 받는 스트레스는 여전해요. 성적에 몰두하느라 살면서 길러야 할 것들을 정작 못 길러요. 학교도서관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 분리교육을 시키지도 않고, 집중 못한다고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 모든 아이를 평등하게 가르치는 공간이에요. 교과의 선두에서 달리진 못하지만, 아이들이 힘들 때 최후에는 학교도서관에 와서 사서선생님에게 치유 받고 책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교과서 안의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라요. 세상을 보는 눈과 힘을 기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학교도서관임을 믿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책은 '나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쓴 기록'이지 않을까 싶어요. 안아주고 싶거나 지지하고픈 나의 순간들, 나아가 금상 필체 대신 선생님의 필체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본다면요?
고1 시절의 저를 가장 안아 주고 싶어요.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정작 저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의 저를 제일 보듬어 주고 싶어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괴로워서 외면하곤 했는데, 책을 쓰면서 어린 날의 저를 정면으로 마주했고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학생을 떠올리며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 제1부를 담았어요.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도 제 책을 읽고 용기를 가진다면 좋겠어요. 지지하는 순간은 제가 글을 쓸 때예요. 책을 쓸 때만 해도 내면의 이야기를 다 꺼내느라 호흡이 가빠질 만큼 힘들었는데, 오래 견디고 출간을 한 뒤 연락이 왔어요.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드러내 주셔서 감사해요.” 읽고 많이 공감했다는 사서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내가 잘해 냈구나.’ 싶어요.
하루 중 노을이 지는 시간을 좋아해요. 노을의 시간은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그려 보게 만드는 시간이니까요. 아픔을 토닥여 주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러데이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지금까지 글로 썼으니, 이제는 금상 필체가 아닌 ‘노을빛 필체’로 또 다른 오늘을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