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깊이 들여다본 선과 악의 세계 - 전상국 『우상의 눈물』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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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5 20:56 조회 12,414회 댓글 0건본문
T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요즘 학생들은 이걸 얼마만큼 실감나게 읽을
까 하는 점이었다. 1980년에 쓴 작품이니까 너희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
당시의 교실 풍경이나 청소년 문화랄까 정서 같은 게 낯설지는 않았니? 선생님은 80
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이 소설을 읽었는데 너무나 실감이 나서 숨죽이며 읽
었던 기억이 난다.
S - 세대 차이 같은 거 말씀인가요? 뭐 그렇지도 않아요. 이 소설을 읽고 아주 옛날 이야기
라는 생각은 별로 안했어요. 사실 우리 학교같이 자유로운 학교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여기에 나오는 학생들 간의 싸움이나 알력이랄지 힘 대결 같은
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십 대들의 세계에는 조금씩은 다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리고 소설이 꼭 똑같은 경험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T -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먼저 소설의 핵심인물인 기표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S - 네, 기표는 정말 나쁜 아이죠. 반에서 자기 눈에 아니꼽게 보이는 친구를 잔인하게 폭
행하는 장면은 정말 질릴 정도예요. 유리병을 깨서 자기 팔뚝에 그어 피를 핥게 한다
든지 담뱃불로 지진다든지 하는 건 무섭네요. 그리고 또 그런 잔인성을 무기로 재수파
라는 조직을 이끌고 학교에서 제일 두려운 존재가 되어 있죠.
S - 그중에서 체육복을 갈가리 찢는 장면은 진짜 섬뜩해요. 어쩌면 이렇게까지 비뚤어져 있
나 싶어요. 그런데 특이한 건 유대가 그렇게 끔찍하게 당하고도 기표를 단순히 증오하
거나 무서워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에요. 뭐랄까 기표에게 묘하게 끌리는 면이 있죠.
T - 자세히 보면 기표는 그냥 나쁜 사람은 아니지. 작품 속에서 ‘악 그 자체, 거짓 착함을
가장하는 교활함조차도 없는 철저한 악’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점이 흥미로워 보
여. 기표에게 린치를 당하고도 그다지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유대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가 악마의 자식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순수하다고 하는 게 예사롭지
않지.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이 시험 사건인데…….
S - 이 사건이 묘해요. 기표를 낙제에서 구해 주자고 형우를 중심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
이 공모해서 커닝을 시켜 주는데 기표가 커닝페이퍼를 찢으며 어떤 새끼냐고 하자 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서로 자기가 그랬다고 그러고……. 그런 후에 형우가 야산에
끌려가 죽도록 맞죠. 그런데 여기서 형우가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자기를 때린 기표
와 재수파를 불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교묘하게 기표를 압박하죠. 결국 재수파도 무력화
시키고……. 그리고 형우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으로 학교에서 영웅이
되죠. 학우를 아끼고 의리로써 지켜주고 참다운 우정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칭찬이 쏟아
지고요.
T - 그래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게 역전돼지. 이때부터 기표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는데.
S - 그래요. 담임이 기표가 감추고 싶어 하던 가정 사정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기표를 위해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담임과 형우는 반 아이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멋진 연설을
하면서 기표집의 가난한 처지를 낱낱이 공개하죠.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급우를
돕는 반 아이들 이야기를 신문에 내고 영화로 만들 계획까지 세웁니다. 그때 기표가 갑
자기 사라지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T - 이 모든 일들을 관찰하는 사람은 유대지. 유대의 마음이 어떤지 보면, 표면적으로는 나
무랄 데 없는 형우나 담임에게 자꾸 반감을 느끼고 있어. 두 사람은 늘 좋은 의도로 행
동하는데도 유대는 그게 의심스럽거든. 그건 겉으로는 악행으로 똘똘 뭉친 기표에게
서는 못 느끼던 감정이지.
S - 그 이유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담임도 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유
대를 스파이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커닝 사건 같은 것의 내막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그러잖아요. 형우도 기표와 맞서서 자기의 정의감을 과시하려는
게 역력히 보이죠.
S - 그러니까 유대가 담임과 형우에게 느낀 건 착한 행동의 이면에 감추어진 이기주의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걸 딱 꼬집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S - 저는 그걸 위선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T - 그래 정확한 표현 같구나. 담임과 형우가 기표를 위한다고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 유대
가 어떻게 따지는지 한번 보자.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거냐, 기표냐 아니면 우
리들 자신이냐’고 묻지.
S - 그래요 저도 읽으면서 그 점이 싫었어요. 특히 반에서 기표를 돕자고 하면서 멋진 말로
늘어놓는 연설은 정말 역겹게 들려요. 기표를 돕자고 하는 행동 속에 숨어있는 위선적
인 면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기표의 처지를 진짜로 동정한다면 남의 불행을 그렇
게 여러 사람 앞에서 내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봐요.
T - 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는 유대의 눈이 날카로워지면서 인식이 깊어지는 게 이 소설
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담임과 형우가 도저히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거든. 기표가 악하기는 하지만 그런 악행이 자기 방식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고 이해하고 있지. 모두가 기표의 겉모습만 보고 비난하지만 그가 왜 그
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은 유대 말고는 없지. 다들 자신이 생각
하는 착한 방식으로 기표를 도우려고 한단 말이야. 그리고 그런 자기중심주의랄까
편협함은 결국 위선을 낳게 되는데 유대는 그것을 점차 깨달아 가거든. 유대가 담임
과 형우에게서 결정적으로 환멸을 느끼는 것도 겉으로는 기표를 위한다지만 가난이
라는 약점을 들추어서 골치 아픈 존재를 무력화시키려는 음흉한 의도를 알아채는 순
간이지.
S - 분위기를 막 기표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지고……. 그 장면이 제일 불편했어요. 기표의
몰락을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제가 읽어 볼게요. “형우는 기표네 가정 사
정을 낱낱이 이야기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온 기표의 허
상을 빈곤이라는 그 역겨운 것의 한 자락에 붙들어 맨 다음 벌거벗기려 하는 것 같았다.
기표는 판잣집 그 냄새나는 어둑한 방에서 라면가락을 허겁지겁 건져먹는 한 마리 동정
받아 마땅한 벌레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T - 기표는 마지막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면서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이 무섭다는 것이지?
S -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심정은 공감이 가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요. 좋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인상적인 대사나 지문 하나가 큰 충격을 주거나 가슴
이 먹먹한 감동을 주는데 기표의 마지막 말도 저에겐 그런 느낌을 주었어요. 너무 쇼
킹했어요.
S - 아마도 자기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계속 전개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괴로웠던 게 아닐까요. 악의 세계에서 지배자로 군림해 오다가 갑자기 착하
게 살아야 하니까 뭐가 뭔지 헷갈렸을 수도 있고 담임과 형우의 도움이 자신의 약점
을 들추기는 해도 겉으로는 좋은 의도로 하는 것이니까 옛날처럼 막 거부할 수도 없
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바뀌어 가니까 무서웠던 게 아닐까요?
T - 그래,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여기서 잠시 자선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해. 우리는 남을
도울 때 스스로 좋은 일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칫하면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
의 미덕을 드러내려는 숨은 마음이 있다는 걸 놓치기 쉽지. 남을 도울 때는 먼저 이런
점을 경계하면서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섬세하고 겸허해야 하거
든. 그러려면 자연이 조용하고 표 나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경에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도
움받는 사람이 자선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바뀌길 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올바른 자
선의 태도가 아니지. 그리고 사람이란 존재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
도 아니고.
자기기만에 빠진 의로운 행위는 이 소설처럼 매스컴의 미화라는 덫에 걸
리면 더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이 소설에는 어떤 면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
해나 존중 없이 행해지는 자선행위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봐. 기표의 마지막 말은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당당히 살아가는 자신을 교묘
한 방식으로 파괴하는 세상에게 외치는 기표 나름의 반항이고 항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량한 말과 행동과 자선의 외피를 두른 세상이 자신을 압박한다고 생각하
니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라지는 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자신은 그냥 악
한 존재이고 세상은 아니꼽지만 자기보다는 선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상을 보니까
세상이 자기보다 더 악하다는 걸 알고는 무서웠던 게 아닐까. 기표의 절규는 정말 많
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세상의 허위를 향해 내지르는 한 소년의 외침치고
는 말이야…….
S - 그래요 정말 그 마지막 구절을 읽고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놀랐어요. 유
대도 기표의 폭력이 고통스러웠지만 기표의 세계를 존중해 준 건 기표에게는 형우나
담임 같은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기표가 비록 악한이었지만 왜
한때나마 아이들의 우상이었는지도 알 것 같아요.
S - 다 읽고 나니까 씁쓸했어요. 기표의 적나라한 폭력보다 담임과 형우의 위장된 행동이
더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가 선과 악의 문제를 결코 단순하게 판단하며
살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정말 세상의 비밀 한쪽을 훔쳐본 느낌이 들어요.
T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니까 문득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 떠오르더구나. “교활한 천
사보다 순수한 악마가 낫다”라는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S - 이 이야기에는 그런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힘과 권력을 비판하는 소설로도 보여요. 예를 들어 교실이라는 작은 조직 내에서 담
임이 하는 교묘한 행동이나 형우와 기표의 대결 같은 것은 인간들이 힘과 지배력을
얻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잘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요.
T - 그래, 그거 아주 멋진 분석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단순히 교육 문제를 다룬 학원소설
로 한정할 수는 없다고 봐.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건 우리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지.
S - 이 소설을 집단이 소수자나 아웃사이더를 어떤 식으로 배제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라
고 볼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어 담임이 자기 반을 항해하는 배에 비유한다든지 하면
서 일사불란함을 강조하고 거기에 거역하는 사람들을 역행가지라고 하면서 잘라버
려야 한다든지 하잖아요.
T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대체로 학교나 사회는 기표 같은 반사회적인 인물을 형우의
표현처럼 인간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모범적인 존재로 만들어 편입시키려고 하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주의가 자신의
명분에 도취될 때 그것은 소수자에게도 가혹한 것이지만 스스로도 위선이라는 윤리
적 모순 때문에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만다는 점이야. 반면에 기표의 악마성은 역설적으
로 정상적인 사람들의 허위를 폭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
지. 만일 집단 내에 아웃사이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각성을 하기가 쉽지 않겠
지.
문학에는 흔히 트릭스터라고 하는 특이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가끔 등장하는데 트
릭스터란 원래 신화에 나오는 말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악동이나 괴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지. 트릭스터는 기존의 관습과 룰을 파괴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들을 쩔쩔매
게 하고 사회가 고수하려는 가치들을 파괴하고 전복하니까 골치 아픈 존재지만 결국
에는 영혼의 안내자 역할을 하면서 활력을 잃은 주인공이 새로운 비전을 찾게 해준다
고 해. 우상의 눈물을 트릭스터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표
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어.
까 하는 점이었다. 1980년에 쓴 작품이니까 너희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
당시의 교실 풍경이나 청소년 문화랄까 정서 같은 게 낯설지는 않았니? 선생님은 80
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이 소설을 읽었는데 너무나 실감이 나서 숨죽이며 읽
었던 기억이 난다.
S - 세대 차이 같은 거 말씀인가요? 뭐 그렇지도 않아요. 이 소설을 읽고 아주 옛날 이야기
라는 생각은 별로 안했어요. 사실 우리 학교같이 자유로운 학교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여기에 나오는 학생들 간의 싸움이나 알력이랄지 힘 대결 같은
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십 대들의 세계에는 조금씩은 다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리고 소설이 꼭 똑같은 경험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T -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먼저 소설의 핵심인물인 기표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S - 네, 기표는 정말 나쁜 아이죠. 반에서 자기 눈에 아니꼽게 보이는 친구를 잔인하게 폭
행하는 장면은 정말 질릴 정도예요. 유리병을 깨서 자기 팔뚝에 그어 피를 핥게 한다
든지 담뱃불로 지진다든지 하는 건 무섭네요. 그리고 또 그런 잔인성을 무기로 재수파
라는 조직을 이끌고 학교에서 제일 두려운 존재가 되어 있죠.
S - 그중에서 체육복을 갈가리 찢는 장면은 진짜 섬뜩해요. 어쩌면 이렇게까지 비뚤어져 있
나 싶어요. 그런데 특이한 건 유대가 그렇게 끔찍하게 당하고도 기표를 단순히 증오하
거나 무서워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에요. 뭐랄까 기표에게 묘하게 끌리는 면이 있죠.
T - 자세히 보면 기표는 그냥 나쁜 사람은 아니지. 작품 속에서 ‘악 그 자체, 거짓 착함을
가장하는 교활함조차도 없는 철저한 악’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점이 흥미로워 보
여. 기표에게 린치를 당하고도 그다지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유대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가 악마의 자식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순수하다고 하는 게 예사롭지
않지.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이 시험 사건인데…….
S - 이 사건이 묘해요. 기표를 낙제에서 구해 주자고 형우를 중심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
이 공모해서 커닝을 시켜 주는데 기표가 커닝페이퍼를 찢으며 어떤 새끼냐고 하자 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서로 자기가 그랬다고 그러고……. 그런 후에 형우가 야산에
끌려가 죽도록 맞죠. 그런데 여기서 형우가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자기를 때린 기표
와 재수파를 불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교묘하게 기표를 압박하죠. 결국 재수파도 무력화
시키고……. 그리고 형우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으로 학교에서 영웅이
되죠. 학우를 아끼고 의리로써 지켜주고 참다운 우정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칭찬이 쏟아
지고요.
T - 그래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게 역전돼지. 이때부터 기표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는데.
S - 그래요. 담임이 기표가 감추고 싶어 하던 가정 사정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기표를 위해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담임과 형우는 반 아이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멋진 연설을
하면서 기표집의 가난한 처지를 낱낱이 공개하죠.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급우를
돕는 반 아이들 이야기를 신문에 내고 영화로 만들 계획까지 세웁니다. 그때 기표가 갑
자기 사라지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T - 이 모든 일들을 관찰하는 사람은 유대지. 유대의 마음이 어떤지 보면, 표면적으로는 나
무랄 데 없는 형우나 담임에게 자꾸 반감을 느끼고 있어. 두 사람은 늘 좋은 의도로 행
동하는데도 유대는 그게 의심스럽거든. 그건 겉으로는 악행으로 똘똘 뭉친 기표에게
서는 못 느끼던 감정이지.
S - 그 이유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담임도 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유
대를 스파이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커닝 사건 같은 것의 내막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그러잖아요. 형우도 기표와 맞서서 자기의 정의감을 과시하려는
게 역력히 보이죠.
S - 그러니까 유대가 담임과 형우에게 느낀 건 착한 행동의 이면에 감추어진 이기주의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걸 딱 꼬집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S - 저는 그걸 위선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T - 그래 정확한 표현 같구나. 담임과 형우가 기표를 위한다고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 유대
가 어떻게 따지는지 한번 보자.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거냐, 기표냐 아니면 우
리들 자신이냐’고 묻지.
S - 그래요 저도 읽으면서 그 점이 싫었어요. 특히 반에서 기표를 돕자고 하면서 멋진 말로
늘어놓는 연설은 정말 역겹게 들려요. 기표를 돕자고 하는 행동 속에 숨어있는 위선적
인 면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기표의 처지를 진짜로 동정한다면 남의 불행을 그렇
게 여러 사람 앞에서 내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봐요.
T - 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는 유대의 눈이 날카로워지면서 인식이 깊어지는 게 이 소설
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담임과 형우가 도저히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거든. 기표가 악하기는 하지만 그런 악행이 자기 방식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고 이해하고 있지. 모두가 기표의 겉모습만 보고 비난하지만 그가 왜 그
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은 유대 말고는 없지. 다들 자신이 생각
하는 착한 방식으로 기표를 도우려고 한단 말이야. 그리고 그런 자기중심주의랄까
편협함은 결국 위선을 낳게 되는데 유대는 그것을 점차 깨달아 가거든. 유대가 담임
과 형우에게서 결정적으로 환멸을 느끼는 것도 겉으로는 기표를 위한다지만 가난이
라는 약점을 들추어서 골치 아픈 존재를 무력화시키려는 음흉한 의도를 알아채는 순
간이지.
S - 분위기를 막 기표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지고……. 그 장면이 제일 불편했어요. 기표의
몰락을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제가 읽어 볼게요. “형우는 기표네 가정 사
정을 낱낱이 이야기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온 기표의 허
상을 빈곤이라는 그 역겨운 것의 한 자락에 붙들어 맨 다음 벌거벗기려 하는 것 같았다.
기표는 판잣집 그 냄새나는 어둑한 방에서 라면가락을 허겁지겁 건져먹는 한 마리 동정
받아 마땅한 벌레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T - 기표는 마지막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면서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이 무섭다는 것이지?
S -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심정은 공감이 가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요. 좋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인상적인 대사나 지문 하나가 큰 충격을 주거나 가슴
이 먹먹한 감동을 주는데 기표의 마지막 말도 저에겐 그런 느낌을 주었어요. 너무 쇼
킹했어요.
S - 아마도 자기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계속 전개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괴로웠던 게 아닐까요. 악의 세계에서 지배자로 군림해 오다가 갑자기 착하
게 살아야 하니까 뭐가 뭔지 헷갈렸을 수도 있고 담임과 형우의 도움이 자신의 약점
을 들추기는 해도 겉으로는 좋은 의도로 하는 것이니까 옛날처럼 막 거부할 수도 없
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바뀌어 가니까 무서웠던 게 아닐까요?
T - 그래,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여기서 잠시 자선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해. 우리는 남을
도울 때 스스로 좋은 일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칫하면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
의 미덕을 드러내려는 숨은 마음이 있다는 걸 놓치기 쉽지. 남을 도울 때는 먼저 이런
점을 경계하면서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섬세하고 겸허해야 하거
든. 그러려면 자연이 조용하고 표 나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경에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도
움받는 사람이 자선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바뀌길 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올바른 자
선의 태도가 아니지. 그리고 사람이란 존재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
도 아니고.
자기기만에 빠진 의로운 행위는 이 소설처럼 매스컴의 미화라는 덫에 걸
리면 더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이 소설에는 어떤 면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
해나 존중 없이 행해지는 자선행위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봐. 기표의 마지막 말은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당당히 살아가는 자신을 교묘
한 방식으로 파괴하는 세상에게 외치는 기표 나름의 반항이고 항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량한 말과 행동과 자선의 외피를 두른 세상이 자신을 압박한다고 생각하
니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라지는 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자신은 그냥 악
한 존재이고 세상은 아니꼽지만 자기보다는 선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상을 보니까
세상이 자기보다 더 악하다는 걸 알고는 무서웠던 게 아닐까. 기표의 절규는 정말 많
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세상의 허위를 향해 내지르는 한 소년의 외침치고
는 말이야…….
S - 그래요 정말 그 마지막 구절을 읽고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놀랐어요. 유
대도 기표의 폭력이 고통스러웠지만 기표의 세계를 존중해 준 건 기표에게는 형우나
담임 같은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기표가 비록 악한이었지만 왜
한때나마 아이들의 우상이었는지도 알 것 같아요.
S - 다 읽고 나니까 씁쓸했어요. 기표의 적나라한 폭력보다 담임과 형우의 위장된 행동이
더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가 선과 악의 문제를 결코 단순하게 판단하며
살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정말 세상의 비밀 한쪽을 훔쳐본 느낌이 들어요.
T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니까 문득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 떠오르더구나. “교활한 천
사보다 순수한 악마가 낫다”라는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S - 이 이야기에는 그런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힘과 권력을 비판하는 소설로도 보여요. 예를 들어 교실이라는 작은 조직 내에서 담
임이 하는 교묘한 행동이나 형우와 기표의 대결 같은 것은 인간들이 힘과 지배력을
얻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잘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요.
T - 그래, 그거 아주 멋진 분석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단순히 교육 문제를 다룬 학원소설
로 한정할 수는 없다고 봐.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건 우리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지.
S - 이 소설을 집단이 소수자나 아웃사이더를 어떤 식으로 배제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라
고 볼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어 담임이 자기 반을 항해하는 배에 비유한다든지 하면
서 일사불란함을 강조하고 거기에 거역하는 사람들을 역행가지라고 하면서 잘라버
려야 한다든지 하잖아요.
T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대체로 학교나 사회는 기표 같은 반사회적인 인물을 형우의
표현처럼 인간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모범적인 존재로 만들어 편입시키려고 하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주의가 자신의
명분에 도취될 때 그것은 소수자에게도 가혹한 것이지만 스스로도 위선이라는 윤리
적 모순 때문에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만다는 점이야. 반면에 기표의 악마성은 역설적으
로 정상적인 사람들의 허위를 폭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
지. 만일 집단 내에 아웃사이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각성을 하기가 쉽지 않겠
지.
문학에는 흔히 트릭스터라고 하는 특이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가끔 등장하는데 트
릭스터란 원래 신화에 나오는 말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악동이나 괴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지. 트릭스터는 기존의 관습과 룰을 파괴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들을 쩔쩔매
게 하고 사회가 고수하려는 가치들을 파괴하고 전복하니까 골치 아픈 존재지만 결국
에는 영혼의 안내자 역할을 하면서 활력을 잃은 주인공이 새로운 비전을 찾게 해준다
고 해. 우상의 눈물을 트릭스터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표
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어.